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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에게서도 능동순종의 의의 전가 사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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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에게서도 능동순종의 의의 전가 사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 정이철
  • 승인 2019.03.08 13:13
  • 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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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사리 2019-03-10 23:43:52
우리에게 율법에서 획득해낸 의를 주시려고 율법을 지키셨다는 말씀은 성경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변적인 합성물이다.

비평1 2019-03-10 14:02:34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오신 분은 율법을 다 지켜서 자신이 의로운 것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

보여줄 필요 없으면 뭐하러 힘들게 이 땅에 오셨나?
걍 하늘보좌 우편에서 말씀만 하시면 된다.
지저분한 마굿간에서 탄생하실 필요도 없으며 힘든 목수일도 하실 필요가 없으며 생선 비린내 쩌는 어부들과 대장놀이도,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실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약속은 계시이며 말씀 자체가 곧 법이다.
그 계시된 법을 지켜 순종하심으로써 자신의 백성들이 보고 깨달아 구원케 하시려고 오셨다.
보고도 모르는게 사람인데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정말 바보 중에 으뜸이다.

초등학교국어교사 2019-03-10 13:49:53
“그 의인이 타락할 수 없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모든 유혹과 시험을 당하셨으나 죄는 없는 인간이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문장일까?
도무지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문장이다.
‘양’이나 ‘가’를 줘야겠다.

철면피 2019-03-10 13:40:43
“칼빈은 아담을 오만방자한 인간으로 보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욕심냈다고 했다. 아담은 불순종이 겉으로 나오기 전에 불순종을 마음 속으로 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불순종이 겉으로만 나오지 않고 probation period가 지나가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영생을 주셨을까?”

님이나 저와 같은 모든 사람에게는 오만방자한 마음이 없을까요?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당신과 저의 오만방자함을 간과하시고 성령을 주셨겠지요?
하나님께서 당신과 저같은 사람에게도 주시는데 유독 아담에게만 냉정하게 안 주실거라 단정하는 그 마음은 아담의 오만방자함을 넘어 후안무치함을 보는 듯 합니다.

Minn 2019-03-10 07:16:47
기독교강요를 샅샅이 뒤져보지 않아도 칼빈이 능동수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칼빈은 그리스도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칼빈은 회심 후에 쓴 '기독교 강요'에서 제일 첫 장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관하여 쓴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성령께서 계셔야만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모든 지혜는 이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행위언약이론이 롬 5:12-21에서 나왔으며, 거기서 바울이 아담과 주님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한 것을 안다. 바울이 그렇게 쓴 것은 아담이 주님과 동급이어서가 아니고, 한 사람으로 인한 범죄와 한 사람으로 인한 죄사함을 설명하기 위해서 바울은 그렇게 쓴 것이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아담과 주님을 같은 선상에서 보며 아담에게 약속되었던 것을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가 받게 되는 것이라고 추론했다. 이 추론을 바탕으로 몇몇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probation period를 주셨다고 지어내는 데까지 나갔다. 그분들이 그리스도를 몰랐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 이론이 주님을 주님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걸림돌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칼빈은 절대로 아담을 주님과 같은 선상에서 보지 않는다. 칼빈은 아담을 오만방자한 인간으로 보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욕심냈다고 했다. 아담은 불순종이 겉으로 나오기 전에 불순종을 마음 속으로 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불순종이 겉으로만 나오지 않고 probation period가 지나가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영생을 주셨을까? 그리고 주님만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인데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양자가 된다고 이해하지만, 아담은 어떻게 해서 양자가 되는가? 이 능동/수동적 순종 이론을 지지하는 한 신학자 (더글라스 켈리)는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주장까지 한다. 어쩌다가 아담이 주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을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땅에 보내실 때에 그 계획이 확실하셨다. 하나님의 명령은 시간을 뛰어넘어 반드시 이루어진다. 성도의 구원이 마지막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아는 것은 그분의 주권적 힘에 대한 이해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제물되심은 모든 것을 같이 결정하시고 계획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다. 그것은 메이천이 말하는 아담에게 적용된 'probation peiod'가 주님에게 적용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유일한 독생자를 교회의 죄사함과 양자됨을 위해 보내셨을 때 의인을 보내셨고, 그 의인은 의인으로 남는다. 그 의인이 타락할 수 없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모든 유혹과 시험을 당하셨으나 죄는 없는 인간이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삼위일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리스도는 아담같은 존재와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된다. 인성을 무시하고 신성만 강조해서도 안되지만, 인성을 너무 강조하면 그리스도의 신성이 무너진다. 이 밸런스를 깨는 것이 이 능동순종이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한이 요한복음과 다른 서신서들에서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 = 하나님 이다. 어떤 분이 그리스도 = 율법이라면 율법을 다 지키시는 것을 보여주셔야 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틀린 말이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오신 분은 율법을 다 지켜서 자신이 의로운 것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 결국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고 율법은 우리가 주님의 의로움을 판단하라고 준 잣대가 아니다.
율법 앞에 흠이 없으시고, 율법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하시고, 율법의 참 의미를 실행하시고 보여주신 것이 주님이시다. 그 사랑(율법의 참 의미)를 십자가에서 보여주시고 율법을 완성하셨다. 그러나 모세율법을 완벽하게 지켜 자신이 완벽함으로 성도에게 그 의를 전가시키셨다는 주장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오류로부터 출발한 오류 많은 이론이다. 칼빈을 인용하여 이 이론의 타당성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칼빈은 철저하게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 것을 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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