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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적 순종의 의 획득, 전가를 가르치는 모든 교수님들께!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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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1  23: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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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적 순종의 의 획득, 전가를 가르치는 모든 교수님들께!

저는 미국에서 <바른믿음>을 운영하고 있는 정이철 목사(예장 합동)입니다. 우연하게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의 획득과 전가'에 관한 신학 논쟁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발단은 주로 합신 출신 목회자들, 그리고 파주에 있는 어떤 신학교 출신 목회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를 믿지 않는다고 서철원 박사님과 정이철 목사를 무식하고 개혁신학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러 날 동안 수군거리고 비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능동적 순종의 의를 강하게 주장하는 노승수 목사라는 분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함으로 예기치 않은 이단사상 논쟁이 벌어졌고, 또한 능동적 순종의 의를 주장하는 분들의 일반적인 성경이해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승수 목사 (예장 합신)

노승수 목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주장했습니다.

1)그리스도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능동적 순종을 했다.

2)그리스도가 자기의 속죄를 스스로 이루었다.

3)종교개혁의 핵심은 능동적 순종의 의이다.

4)예수 믿음으로 얻는 칭의를 통해서도 죄책이 다 제거되지 않고 오직 교회에 허락한 은혜의 수단을 실천하여 이루는 성화를 통해 죄책이 제거된다.

5)원죄와 오염이 부모를 매개로 자식에게 전달(죄의 혈통유전설)된다.


존경하는 교수님들께 감히 말씀 올립니다.

이번 기회에 다시 성경을 돌아보았습니다. 정말 성경에 아담이 영생얻기 위해 지키지 못한 율법을 그리스도가 대신 지켜서 의를 획득하고 전가하여 우리를 하나님 백성되게 하신다는 말씀이 단 한절이라도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다음과 같은 의문만 더해졌습니다.
 

1) 아담의 선악과를 시내산에서 돌판으로 기록되어 주어진 율법과 동일시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지금 한국교회의 청교도 개혁신학의 스타로 떠오르는 크르넬리스 프롱크 같은 분들이 아담의 선악과와 시내산 율법을 동일시하고, 그리스도가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을 대신 지킴으로 우리에게 의를 전가하였다고 가르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그것은 율법이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을 뜻합니다.”(프롱크, 도르트신조 강해, 257)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율법을 마음에 새겨주셨습니다.”(프롱크, 257)

“아담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킬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때 율법은 사람의 친구였습니다. 아담은 율법을 바라볼 때 자신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사랑했습니다.”(프롱크, 262)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시내산에서의 율법조차도 이스라엘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 율법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차이는 돌판에 새기셨다는 것입니다.”(프롱크, 258)

“복음은 죄인에게 회개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어떻게 회개가 일어납니까? 그때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금 우리 마음에 새겨 주시고, 우리는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구원받았는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입니다.”(프롱크, 264)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한 모든 계명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자신의 죄의 짐을 느끼는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입니다.”(프롱크, 268)

“죄인은 자신의 대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순종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그 죄인에게 전가됩니다.”(프롱크, 236)
 

과연 선악과가 일련의 율법이었을까요? 선악과를 영생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율법이라고 친다면, 무죄하여 영혼과 육체 사이에 갈등이나 투쟁이 없었던 순정상태의 아담을 영생으로 이끌기 위한 조건과 이미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기만하는 죄의 종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생으로 이끌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 동일 할 수 있을까요?  

 

2)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에 율법을 지켜서 아담과 그의 후손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고 계시하셨는지에 대해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살펴 본 바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율법을 다 지켜서 의를 전가하실 것이라는 내용은 성경에 단 한줄도 나오지 않습니다. 종교개혁을 완성한 칼빈의 글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에 율법을 지켜서 의를 전가하신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칼빈은 항상 그리스도의 순종을 강조했고, 그의 ‘순종’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거의 동일한 의미의 단어였습니다.

아담의 타락 후 하나님은 곧 바로 그리스도의 율법준수가 아닌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을 계시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부터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밟아 죽일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계시되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직후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을 가리어주는 지어주신 짐승의 가죽옷도 아담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대신 피 흘리실 그리스도를 계시한 사건입니다.  

이후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아담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성육신자의 대속의 죽음을 예언했습니다. 선지자들의 글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아담이 실패한 율법을 준수하여 의를 전가하신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이사야 53장은 명백하게 그리스도가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의와 속죄를 이루신다고 예언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예례미야와 에스겔은 그리스도가 아담을 대신하여 율법을 준수하여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피 흘리심으로 아담의 죗값을 다 치르신 후 자기의 영을 죄인들의 마음에 부어 자발적으로 하나님 백성의 도리를 하게 하신다고 예언했습니다.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겔 11:19)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계시에 대한 해설자 사도 바울도 결코 율법이 구원을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죄인들이 구원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하려고 율법이 왔다고 했습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롬 5:13)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 3:24)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를 통해 의를 획득하여 전가한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율법과 모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것은 율법의 정죄 아래에서 신음하는 죄인들을 온전하게 구속하시는 완전한 희생제물로서 ‘율법의 마침’(롬 10:4)이 되시기 위함이었지, 결코 율법을 모두 지켜서 의를 획득하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의로움과 죄사함이 되는 신앙의 사건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예수께서 우리 대신 피 흘리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제거하신 것이 우리의 의이고 구원입니다. 예수께서 율법을 지켜서 의를 획득하여 전가하였다는 신학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허무는 사변적이고 무익한 사상입니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아직까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의 전가를 가르치시는 교수님들이 계시다면, 다 시 한번 깊이 숙고하시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의 복음이 한국교회에 높이 세워지게 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서철원 박사님께서 최근에 저에게 하신 말씀을 소개해 드립니다. 

“능동적, 수동적 순종의 구분은 성경적 근거가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얻은 죄 용서만이 우리의 의이고, 그리스도가 율법을 순종해서 얻은 의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준수하여 의를 이룬 것이 아니고, 율법의 요구 곧 죄 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그의 피로 죗값을 갚으심만 성립합니다. 17세기 사변적인 신학자들이 잘못 공식화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충족하여 죗값을 갚는 것만이 성경과 바울이 말합니다.” (서철원 박사)

 

2019년 3월 1일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예장 합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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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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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차리시고 2019-03-05 00:39:34

    댓글 지우고 사라지신 '신자'님을 찾습니다~~!!


    ‘신자'님의 댓글 :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것은 누구나 알것이고, 믿음의 내용에 율법준수하심을 우리에게 전가해주심으로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는데 일조되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습니다.신고 | 수정 | 삭제


    답글 5 Ø

    추천 1 반대 0


    정신차리시고 2019-03-04 18:59:38

    그렇다면 신자님은 이곳 바른믿음의 주장처럼 예수께서 율법을 완성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며 우리를 구원할 의를 획득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신고 | 수정 | 삭제


    신자 2019-03-04 20:43:59

    예수님께서 전가해주신 33년치 율법의 의를 가지고 영원을 생각합니까? 영원의 관점에선 찰나입니다.신고 | 수정 | 삭제


    정신차리시고 2019-03-04 21:25:24

    하나님의 입장에선 찰라이지만 버러지같은 님과 저같은 인간들에겐 단 하루도 율법을 지키기엔 불가능하지요.
    답변을 회피하지 말고 신자답게 자신의 소견대로 즉답하시길...신고 | 수정 | 삭제


    신자 2019-03-04 21:41:08

    로마서3:19-20
    애초에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시려고 주신것이 율법인데 그것을 지켜서 인간에게 의를 전가해준다? 그것은 스스로의 말씀과도 대치됩니다. 율법의 기능엔 의를 부과해놓치 않았고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라는 정죄의 기능이 충실한것이 율법입니다.

    로마서 3:25-26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 여김받지 인간에게 전가된 의로 말미암지 않습니다.

    로마서4:5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자에게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도대체 어디에 율법에서 의가 나오고 그 의가 전가됩니까?신고 | 수정 | 삭제


    신자 2019-03-04 22:44:43

    답변을 드려도 답변으로 이해하지도 여기지도 못하는걸 도리어 저의 회피로 여기시면 어찌합니다.


    여기까지가 신자님의 주장이고 잠시 후에 제가 댓글을 달려고 보니 댓글창 자체가 사라졌네요.
    원인이 뭐죠??신고 | 수정 | 삭제

    • 정진성 2019-03-04 17:40:23

      죄인을 대신하여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죄인의 위치에서 율법의 요구(형벌과 명령)를 완성하셨는데 왜 이것을 믿음으로 받지 않으시는건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십자가를 통하여만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율법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그분의 성품을 드러냅니다.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율법은 형벌과 완전한 의로움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것이 죄인의 것으로 간주됩니다.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성취하신것을 받습니다. 진정 자신이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인것을 깨닫는다면 받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바로잡아 2019-03-04 06:57:42

        일반 성도로서 더 이상은 못봐주겠소

        오직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 전체성경의 원리에 의거해 해석해야함이 마땅하나
        바른 개혁주의 성경해석과 교리를
        알려줘도 들어먹지를 않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사도바울, 칼빈이와서
        가르쳐도 끝까지 외면할것 같은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부인하지맙시다.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http://www.woolrimstory.net
        반론6보시고 각 교단 총회에 따라보아요^^신고 | 수정 | 삭제

        • 역사적 개혁신학? 2019-03-04 01:57:59

          역사적 개혁신학?
          대제 누가 만든것인데요?
          성경을 무너뜨리는 개혁신학은 더 이상 존속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요?
          예수님이 율법을 지켜서 의를 얻어 전가하고, 십자가에서 죽어서 죄사함을 준다는 교리가 성경적이오?
          예수님이 그런 의미로 율법을 지켰다고 성경에 어디에 있는데???
          십자가의 피가 완전한 효력이 있기 위해 율법도 지키셔야 했고, 모든 면에서 완전하셨어야 했던 것이지, 율법을 지켜서 의를 획득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오?

          그리고 아담이 율법을 못 지켜서 저주를 받았ㄷ는 근거는 또 어디에 있는 것이오? 선악과과 어째서 십계명과 모세의 율법으로 둔갑되는 것이오? 장난하지 마시오!

          다시는 스콜라주의자들이 만든 사변적인 거짓 교리를 떠들지 마시오!신고 | 수정 | 삭제

          • 롬3:26 2019-03-03 21:56:44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하심이니라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실패를 회복하시고 둘째 아담으로서
            인간이 결코 지킬 수 없던 율법을 완성하시어 하나님 앞에
            인간으로서 완전한 의를 이루셔서
            이를 자신의 피값으로 사신 사랑하는 택자들에게 값없이
            주셔서 대신 의를 이루심이
            그렇게 난리치며 반대할만한 일인가 의문입니다.

            예수안에서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의로움인데
            안타깝습니다.
            역사적 개혁교리를 무시하고 자기 잘났다고 해서 생긴문제
            아닙니까?신고 | 수정 | 삭제

            • 댓글토론 정리 2019-03-03 18:12:26

              댓글토론 중에 드러난 능동적 순종과의 유사점 차이점은 아래와 같다.


              이론의 유사한 부분
              첫 아담 .인간 .명령 내용은 선악과를 먹지 않는 것 .'안'지켰고 그것이 범죄.
              둘째아담 .인간 .명령 내용은 대신 죽으시는 것 .지키셨고 그것이 의.

              대신 죽으심이 의이며 율법의 의로운 요구 충족이며 우리 죄의 속량임. by서철원박사님
              대신 죽으심이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인 율법준수이며 의임. by능동적 순종(수동적 순종은 대신 죽으심이 대속이라고 구별함)

              공통부분
              모세의 율법 .바뀔 수 있음(히7:12) .부패한 인류는 '못'지킴.
              예수님은 말씀이심 .그러므로 율법 온전히 지키실 수 있으심.

              차이점
              모세의 율법이 주어진 근본적으로 순종 불가능한 인간의 상태와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따라 계명(고전7:19)을 지키는 '양자'의 상태는 분명히 다르다.
              명령이 주어진 첫 아담의 상태와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따라 계명을 지키는 '양자'의 상태는 앞과 같은 상태로 다른가.

              예수님의 순종은 창세 전에 결정하시며 시작되었고 성육신을 거쳐 인간으로 고난의 삶을 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루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순종은(빌2:6~11) 성경말씀에서 인간으로서의 순종에 국한되어 있는가 아닌가.
              바로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신 근거는 성육신과 고난의 삶과 십자가의 죽으심인가,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순종뿐인가.
              한 의로운 행위는(롬5:18) 대신 죽으라는 뜻대로 죽으심인가 단지 인간의 율법준수인가.

              우리가 성화 과정 중에 회개하고 일어설 수 있는 근거는 믿음 안에서 보혈의 공로를 의지함인가 예수님의 율법준수를 의지함인가.


              결론
              유대인도 이방인도 '양자'로서 성령을 따르므로 지키는 것이 가능한(롬8:4) 하나님의 계명 준수는 결국 인간으로서의 율법준수인 능동적 순종 때문인가,
              아니면 결국 양자됨까지 얻게 한 낮추신 성자하나님의 성육신과 고난의 삶과 십자가의 죽으심 때문인가.신고 | 수정 | 삭제

              • Minn 2019-03-03 16:55:44

                이 이론에 대해 공부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아직도 배우고 있다. 나의 생각을 이끄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주시는 것을 느낀다.
                능동/수동적 순종 이론과 서박사님의 이론 사이에서 무엇이 맞는가 고민해보았다. 서박사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미국 목사가 설명하는 유튜브 클립을 보았다. 그분의 설명은 나에게 시원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아직 만족스러운 결론을 도달하지 못했다. 나는 사변적인 신학자들이 만들어낸 이론이라는 생각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론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믿는 것은 성도에게 내려오는 모든 하늘의 복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최근에 깨달은 하나는 그리스도 자체가 율법이고, 율법이 나타내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아담이 불순종으로 벌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담은 이미 그 전에 마음속에 '오만'이라는 죄를 짓고 있었다. 그 오만이라는 죄를 가지고도 하나님께 순종했으면 영생했을까? 답은 아니다. 아담에게는 '사랑(그리스도)'이 뭔지 몰랐다. 사랑 안에 있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이해하지도 못했다.
                하나님의 법을 완벽하게 지키면 영생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하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에게 완벽하게 지키라고 주시지 않으셨다. 다들 그렇게 안타까워하고 애틋해하는 그 아담도 못 지켰다. 그러면 아담이 법을 완벽히, 마음과 뜻을 다해 지킬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로 왜 만드셨을까? 우리는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향한 메세지라는 것을 안다.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도, 성령을 주신 것도 다 그리스도 안의 교회가 그 분의 신부가 되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알 수 없으면 모두 불순종하게 된다. 겉으로는 순종하더라도 안은 그렇지 않다. 아담은 안으로 불순종하다가 그것이 행위로 나타났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아담이 순종했으면 얻었을 것이나 불순종해서 잃어버린 복을 다시 우리에게 돌려주려고, 그리스도께서 문자로 된 율법을 지키셨다라는 말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이것은 내가 믿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다.

                나는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에게 친구이자 형제, 신부인 교회를 주시려고 모든 계획을 세우셨고 이루어가고 계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해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그리하여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 하와가 태어났다. 아담이 있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계셨다. 성도들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았다 (엡 1:4).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던 아담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한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는 순종을 행하여, 교회를 만들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법의 순종만이 영생의 길이란 주장이 얼마나 하나님을 모르고 하는 말인가?

                능동/수동적 순종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은 이 이론의 가운데에 왜 예수님이 아닌 아담이 자리하고 있는지 설명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니냐 이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 왜 아무도 없나?신고 | 수정 | 삭제

                • Minn 2019-03-02 13:31:50

                  헤프닝으로 시작됐던 논쟁이 불이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치는 싸움입니다. 그러나 비관적이거나 낙망할 수는 없습니다.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신고 | 수정 | 삭제

                  • 이창모 2019-03-02 12:47:25

                    예수님의 순종을 능동적 순종, 수동적 순종으로 구분하는 것은 서철원 교수님의 말씀대로 사실상 벌 쓸 때 없는 사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굳이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예수님의 순종을 묘사해야 한다면, 십자가로 가시는 예수님의 모든 순종은 능동적 순종이라고 해야 한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10:18)

                    예수께서 율법에 적극적으로 순종하신 능동적 순종은 믿는 자에게 의를 전가시킬 수 있는 십자가를 성공적으로 지시기 위함이며, 십자가를 자시는 일마저도 수동적 순종이 아니라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순종이다. 그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원하심에 의한 순종마저도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능동적 순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목적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셔서 그의 생명을 내어놓으시므로, 그분의 의가 십자가를 믿는 모든 자에게 전가된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율법 아래 온전히 계신 것은 그분이 지실 십자가가 십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십자가에서 완전한 구원이 발생할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그분의 의가 완전히 전가될 수 있도록......신고 | 수정 | 삭제

                    • 너는 뭐냐? 2019-03-02 09:34:08

                      한심하구나 ...
                      합동의 신앙의 최고의 권위는 첫째 성경이고, 둘째 WCF이다. 성경에 예수님의 율법순종의 의의 획득과 전가에 대한 근거 구절이 한나도 없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WCF에도 능동이나 수동이라는 말이 없는 것은 아직 모르느냐? 이 문제는 합동의 노회나 총회에서 검토하고 말고도 없는 문제이다.신고 | 수정 | 삭제

                      1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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