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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용조의 성령세례 사상과 신사도파 임파테이션은 같은 내용
정대운  |  banneroftr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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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16  1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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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조 목사는 성령과 성령세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이 곧 성령의 세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1)

하 목사가 말하는 ‘어떤 사람들’이란 그가 평소 영향을 받았다던 존 스토트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개혁 신앙을 가진 자들이다. 하용조 목사는 2008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설교자들은 존 스토트의 책을 즐겨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용조 목사는 또 이렇게 말했다.

“구원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그 증표로 물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성령 세례를 받으면 더욱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2)

하용조 목사는 정통 개혁 신앙을 버리고 오순절주의, 은사주의의 성령론을 이야기한다. 하용조 목사가 교리적 기반이 없다는 증거들은 그의 사역 전반에 나타나지만, 특히 성령론은 오순절이나 은사주의 운동에 젖어 있다. 은사주의 운동은 무엇인가? 아무런 기준이 없는 집단들이다. 존 스토트가 은사주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보자.

“은사 운동의 지도자들은 불안한 요소 몇 가지가 있다는 것과 지금 막 심각한 신학적인 논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종종 제일 먼저 시인한다. 계속되는 논쟁 속에서 여러 가지 문제 중의 하나는 은사 운동이 조직화된 교회도 아니고 공인된 교리서를 가지고 있는 사회도 아니라는 점이다.

세기가 바뀔 무렵부터 존재하고 있는 오순절파 교회는 그 목사들이 고수해야 하는 신앙 고백서를 발행했다. 그러나 은사 운동은 여전히 아주 유동적이다. 그리고 그 운동의 지도자들과 회원들은 모두가 상호 간에 충분한 신학적인 일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오순절파 교회들의 입장과 다르지 않고, 완전히 ‘오순절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오순절적인’ 체험이라고 불러도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것을 체험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고전적인 ‘오순절 신학’의 말로 그것을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이도 있고, 또 그 이해가 유동적인 상태라서 여전히 자신들의 경험을 신학적으로 표현할 바른 방도를 찾고 있는 이도 있다.”3)

성령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동시에 받는 것이다. 일단 그리스도를 믿은 후 신앙의 초보에서 한 단계 높은 단계로 이행할 때 또다시 성령 세례를 받아 더 높은 단계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 세례가 처음 그리스도를 믿을 때 동시에 받는 것인가? 그렇지 않고 또 다른 도약인가? 그것의 차이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모든 교리들은 한두 마디 말과, 순서가 바뀌면 그 끝은 좁힐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말장난 같고 사소해 보이지만, 사실 이런 것들이 결정적인 차이를 도출해 낸다. 일단 성령 세례가 두 번째 우리가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성도들은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신앙의 대부분을 쏟아 붓는다.

문제는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야 ‘이제 됐다’라고 만족할 기준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영적 노예의 수준에서 머물며 그 한계를 통과하고자 하는 것이다. 성도의 모든 관심은 영적으로 고차원적인 곳으로 들어가기에 초점을 맞춘다. 공상적인 것으로 인생을 허비하게 만든다. 어느 단계가 완전한 성령 세례라고 확인할 수 있겠는가? 증거가 무엇인가? 그래서 ‘방언’을 성령 세례 받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는지 하용조 목사의 말을 들어 보자.4)

“첫째, 성령 세례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 성령 세례가 없다고 생각할 때, 그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성령 세례를 받고 싶다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게도 이 능력을 허락해 주십시오. 이 놀라운 축복을 허락해 주셔서 제 힘으로 예수 믿지 말게 하시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믿는 위대한 증인이 되게 해 주십시오.’ ... 성령의 말씀과 구원의 말씀을 들을 때,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나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이 선포될 때, 그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때 성령 세례가 임합니다.”

“둘째, 성령 세례를 기다려야 합니다 ... 여기서 기다림이란 기도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당신도 성령 세례를 받기까지 기다리십시오 ... 그렇습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병이 낫고 기적과 표적이 나타나기를 어린아이처럼 구하십시오.”

“셋째,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였음을 볼 때(행 8:17), 성령 세례를 먼저 받은 사람이 안수하는 것도 성령 세례를 받는 방법입니다.”(안수로 성령세례를 전파한다는 것은 이단 신사도 운동가들의 핵심적인 재능이다) 

“넷째,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백 번 양보하여 사도행전 8장과 19장의 본문을 하용조 목사 식으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한 조건으로 그가 제시한 내용들은 그 본문들에서 찾아볼 수 없다. 빌립이 전도한 사마리아인들이나 에베소에 있었던 어떤 제자들은 성령 세례 받기를 금식하며 간절히 기다린 적이 없다. 또한 하나님께 순종했다는 말도 없다. 이런 것들이 성령 세례를 받을 조건이라는 것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하 목사는 성령 세례 이후 어떻게 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5)

“성령 세례를 받으면 성령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들으십시오. 더 나아가 침묵 속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이런 교제를 통해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 내게 능력을 주십니다. 사실 지식이나 돈, 권력이나 육체는 진정한 힘이 아닙니다. 진짜 힘은 위에서 내려오는 신령한 힘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입니다.”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게 여겨졌던 구원에 대한 확신이 확실해 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전에는 회미 했던 십자가가 빛나는 십자가, 영광의 십자가, 능력의 십자가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물론 성령님이 우리에게 직접 구원을 주시지는 않지만, 십자가와 부활을 더 확실히 깨닫도록 하십니다.”

하용조 목사는 존재하지도 많은 두 번째 단계로의 도약을 위해 ‘성령의 불꽃쇼’를 진행한다. 성령 세례를 받아야 구원의 확신함에 들어가니 그 성령 세례야말로 최대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성령 세례의 기준이 방언과 이런 저런 기적을 경험한 것이기 때문에 그 기도회가 뜨겁게 달궈질 것은 확실하다.

성령 세례로 영원히 구원이 확실시되는데 지금 체면이 문제인가? 방언만 나온다면 구원이 보장되는 판에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래서 그날 저녁 집회는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성령의 불꽃쇼’를 진행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어린아이 단계에서 청소년기로 오르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불꽃쇼, 정신을 놓고 발광하며 화려한 조명과 대단한 사운드를 대동하여 이 불꽃쇼는 극치에 치닫는다. 어떤 사람은 입에서 거품이 나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상한 언어, 즉, 방언이 나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서 있을 수 없어 눕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온 몸에 한없이 전율이 흐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헛된 거짓의 놀이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이 이들의 예배는 알맹이가 없다, 사실 성령님을 몇몇 조각으로 우리에게 임재 시킬 수 있고, 성령 세례를 줄 수 있다는 하 목사는 역시 반펠라기우스주의자이다. 성령을 부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는 법칙들이 있다는 것은 그 법칙을 잘 깨닫고 그대로 실행하게 되면 성령의 임재가 있다는 뜻이다. 역시 고대 영지주의와 닮아 있다. 성령 세례를 일으키는 ‘영적인 법칙’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하 목사가 가르치는 성령 세례 받는 법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러므로 성령 세례를 받고 싶다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게도 이 능력을 허락해 주십시오. 이 놀라운 축복을 허락해 주셔서 제 힘으로 예수 믿지 말게 하시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믿는 위대한 증인이 되게 해 주십시오.’ ... 그때 성령 세례가 임합니다.

둘째, 성령 세례를 기다려야 합니다 ... 여기서 기다림이란 기도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 그렇습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병이 낫고 기적과 표적이 나타나기를 어린아이처럼 구하십시오.

셋째, 성령 세례를 먼저 받은 사람이 안수하는 것도 성령 세례를 받는 방법입니다.

넷째,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하용조 목사는 이런 저런 조건을 만족시키면 성령의 역사가 일이난다는 전형적인 반펠라기우스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당신은 사탄을 택하겠습니까, 성령님을 택하겠습니까?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6)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하여 성장시키는 것이 반펠라기우스의 핵심이 아닌가? 내가 사탄을 선택하면 사탄의 사람이 되고 성령님을 선택하면 성령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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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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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2018-08-19 11:20:08

    정대운 목사가 받은 안수(임파테이션)와 신사도파의 안수(임파테이션)는 성경적으로 어떻게 다른가요?신고 | 수정 | 삭제

    • 온누리를 어찌하나.. 2018-08-16 15:41:33

      돌아가신 분이지만
      그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장로교'의 울타리 안에서
      여전히 오순절.신사도 운동으로 활발하게
      집회(결코 예배가 아님)를 하고 있으니...

      '온누리'를 어찌하나..

      고 하용조 목사는
      장로교 목사가 맞는가?
      그분은 과연
      하나님 품에 안겼을까
      의구심이 드네요..

      가라사대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르노라."신고 |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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