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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돈 교수, 성경의 방언은 비밀스럽게 기도하는 은사박영돈의 책<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서평 4-1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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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10  10: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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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돈 교수(고려신학대학원 조직신학 학과장)

박영돈 교수의 책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의 4장을 밑줄을 쳐 가면서 읽었다. 4장의 제목은 “방언은 과연 하늘의 언어인가”이다. 한 신학자의 신학노선을 간단하게 파악하려면 그 사람의 방언에 대한 신학을 보아야 한다. 그가 방언에 대해 하는 말 몇 마디를 보면 그 사람의 신학이 보인다. 왜냐하면 방언에 대한 몇 마디가 곧 그 신학자의 성령론이고, 방언에 대한 좀 더 긴 말들은 곧 그 신학자의 조직신학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방언은 중요한 부분이다.

성경을 떠나 점점 병들어가는 현대 복음주의 교회들에게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거짓 방언이고, 동시에 가장 환영받고 있는 것도 거짓 방언이다. 이것만 보아도 아주사 거짓부흥을 통해 시작된 현대의 거짓 방언이 교회의 영적인 타락과 배도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현대의 방언은 교회가 참 복음의 길로 갈 것인가 거짓 복음의 길로 갈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대한 문제이다. 그래서 방언 문제와 관련된 싸움은 절대로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박영돈 교수의 책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의 4장의 주제가 방언이라는 사실은 박영돈 교수 자신을 위해서나 우리 모두를 위해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이다. 박영돈 교수가 자신의 책의 한 Chapter를 현대의 방언에 할애했다는 것은 굉장한 승부수를 여기에 걸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학과 신앙의 정체를 여기서 드러내어 미혹의 길을 가는 많은 팬들을 확보하겠다고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박영돈 자신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진리의 사람인지, 거짓 영의 부림을 받고 있는 거짓의 사람인지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엄청난 모험이 벌어지게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작 그 당사자 박영돈은 그 중요한 의미를 모르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시중에 떠도는 거짓 방언에 대한 각종의 잡설들과 주로 이단들이 주장하는 거짓된 이론들에다 멋있는 신학의 용어들을 포장하면서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박영돈 교수가 자신의 책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4장에서 방언의 은사에 대해 주장성령하는 그릇된 내용을 요약해 보니 대략 18가지였다. 이 모든 내용들을 한 번에 다 살펴볼 수 없으므로 앞으로 몇 번에 걸쳐서 살펴보려고 한다. 오늘은 방언에 대한 박영돈의 그릇된 주장 두 가지만 살려보도록 하자.

 

박영돈의 방언에 대한 주장 1>
사도행전의 방언과 달리 고린도교회의 방언은 기도하는 비밀언어의 방언

“고린도교회에 나타났던 방언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계시와는 정반대로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인데, 어떻게 인간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있었겠는가?”(154 페이지)

“방언은 사람이 하나님께 신비한 언어로 기도하는 것이지, 예언처럼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특성상 방언은 계시의 통로가 될 수 없다. 방언이 통역된다고 해도 그것은 단순한 기도의 내용일 뿐이지 결코 하나님이 직접 계시하신 말씀이 될 수는 없다.”(173 페이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방언은 고린도전서에 기록된 방언의 유형에 가깝다. 고린도전서 12-14장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이 방언의 특성은 특정한 지방의 언어나 외국어가 아니라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종의 신비한 언어라는 점이다. 통역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방언을 하는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바울은 방언으로만 기도하면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전 14:14)라고 하였다.”(175 페이지)

성경의 방언은 하나님이 직통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계시를 설명하는 특별계시를 내포하는(특별계시를 보충하는) 계시적인 은사였다. 쉽게 말하자면, 성경의 방언은 하나님의 직통의 설교였다. 이 점에 대해서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하나님이 언제나 유대인을 선지자로 세우시고 유대인들의 언어로 예언하시었는데,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갑자기 이방인들의 말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설명하시니 유대인들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방인들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시는 하나님을 보고서 불신앙했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한 죄악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방언이 있는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유대인들이 많이 나타났다. 최초의 방언이 나타난 사도행전 2장에서는 삼 천 명의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탄생했다.

이것이 성경의 방언의 기능이다. 성경의 방언은 하나님이 이방인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친히 설교하시는 현상이었다. 그 때에는 교회에 설교자가 없었고, 성경도 없었으니, 현실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식으로 친히 말씀하시어야 교회가 탄생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후 성경이 확정되어 교회에 주어졌고, 성경으로 복음을 설명하면서 목양하는 장로들이 세워졌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이 직접 설교하시는 방언이 나타날 필요가 없어졌다.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직접 설교하시는 초대교회의 방언이 사라졌다. 이것에 대해 의심하거나 딴 소리하는 사람은 너무도 쉽게 정체를 드러내는 이단이거나, 신학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이단들도 사도행전의 방언이 하나님의 직통의 설교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거짓 방언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또 다른 신학을 주장한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에서 다른 종류의 방언의 은사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고린도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의 혀를 움직여서 하나님 자신에게 비밀스러운 영적인 기도를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하늘의 언어’의 방언이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기독교에 두 종류의 방언이 있었다는 이런 주장은 거짓 방언에 빠진 사람들이 만들어 낸 거짓된 이론이다.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사도행전 시대와 고린도교회 시대는 동시였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처음부터 바울에게서 신학을 배운 사람이고, 바울이 전하는 기독교를 동일하게 전파한 사람이다. 바울이 가르친 성령의 은사와 누가가 설명하는 성령의 은사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 무엇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기독교의 방언의 형식은 반드시 이방인의 언어이고, 하나님이 이방인의 언어로 그리스도에 대해 친히 말씀하시는 것이 성경의 방언이라고 분명하게 설명했다. 성경의 방언이 그리스도를 거부한 완악한 유대인들에게 심판의 표적이며, 반대로 믿고 순종하는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 백성되는 복이 부어졌음이 선포하는 표적이라고 가르쳤다. 이 부분에 대해서 길게 설명할 수 없으므로 관심있는 분들은 고린도전서 14장 20-22절을 깊이 연구하기 바란다.

박영돈 교수 등이 주장하는 고린도교회에서 사도행전의 방언과 다른 이상한 기도의 방언이 나타났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이 주신 은사가 아니었다. 고린도교회에 기도를 위한 방언이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박영돈 교수처럼 다음의 성경구절을 근거로 주장한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고전 14:14)

과연 위 말씀이 바울이 방언으로 기도했음을 의미하는 내용일까?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이라는 표현은 바울이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고 있음이 전제된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바울이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내용이 아니다. 그리고 '영'으로는 기도하므로 '마음'으로는 그 기도의 내용과 의미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 과연 바울의 신학일까? 바울이 그런 내용을 가르쳤던 사람이었나? 바울이 인간의 인격 안에서 '영'과 '마음'이 따로 작용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던 적이 있었던가? '영'과 '마음'이 따로 작용하고 일한다는 것은 이방종교의 사상이지 기독교 사상이 아니다. 대체 바울은 왜 이런 이상한 말을 했을까?   

바울은 고린도전서보다 약 5개월 후에 쓰여진 고린도후서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바울이 떠난 고린도를 떠난 후 이단들이 고린도에 찾아가서 거짓된 가르침을 베풀었고, 고린도 신자들이 바울에게서 배운 것을 버리고 이단들이 가르친 것을 따라갔다고 심각하게 책망했다. 즉, 고린도에 나타난 이상한 방언기도 운동은 바울이 전한 복음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고 마귀가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이단들을 통해 뿌린 거짓 영의 씨앗이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3,4)

바울은 이상한 거짓 방언기도의 은사에 빠져 이단의 길로 가는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마귀가 하와를 미혹하였던 것처럼 이미 이단들이 고린도교회를 미혹하여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에 깊이 빠지고 말았다고 한탄하면서 책망했었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3,14)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잠입하여 비밀의 기도의 방언이라는 이상한 거짓 방언을 전파한 사람들이 이단들이었다고 명백하게 설명했다. 그들은 ‘거짓 사도들’이었고, ‘속이는 일꾼들’이었고, ‘광명의 천사’로 위장한 ‘마귀의 종들’이었다고 바울은 분명하게 설명했다. 고린도교회에 나타난 방언기도 운동은 이단들이 퍼뜨린 거짓 은사였던 것이다. 이것이 훗날 아주사 거짓부흥을 통해 대량으로 나타났다. 

고신의 조직신학 학과장이라는 박영돈 교수가 이단들이 주장하는 고린도교회의 비밀의 방언기도 이론을 동일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경의 방언은 하나님이 직접 설교하시는 계시적인 은사가 아니었고, 사람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은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아마 박영돈 교수의 신앙성장 과정이 이런 것을 가르치는 어떤 유형의 이단과 밀접했으므로 이런 사이비 신앙이 형성된 모양이다. 

그러면 박영돈 교수에게 이렇게 물어보도록 하자. 박영돈 교수의 주장대로 성경의 방언이 하나님이 교회에 말씀하시는 은사가 아니고 개인이 비밀스럽게 기도하는 은사라면, 그것은 곧 하나님이 어떤 사람의 혀를 움직여서 하나님 자신에게 스스로 기도한다는 것이다. 대체 성경의 하나님이 정말 그런 분인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혀를 움직여서 자신에게 스스로 기도하는 하나님이고, 이삭의 하나님이 그런 분이셨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언제부터 그런 이상한 하나님이었나?

하나님이 사람의 혀를 이용하여 자기가 자신에게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참으로 이상한 하나님이다. 박영돈 교수가 감히 이런 주장을 하고서도 편히 살기를 바랄 수 있을까? 명색이 고신의 교수이고 조직신학 학과장인 박영돈 교수가 이런 허접한 이단들의 이론을 답습하고 그대로 동승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수치스러운 일이다.

   

박영돈의 방언에 대한 주장 2>
정상적인 성령의 방언이지만 잘못 사용하니 문제

“바울은 은사로 인해 대혼란이 빚어진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도 은사에 대한 추구를 약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권장하였다. 은사를 간절히 구하라고 권면하였다. 그와 동시에 바울은 은사가 잘못 사용되면 교회를 세우기보다 허무는 역기능을 할 수 있다고 경계하였다.”(159 페이지)

“김동수 교수의 문제는 ... 방언이 남용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바울의 언급에 대해서는 거의 함구하고 이런 문맥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방언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만을 국부적으로 발췌하여 자신의 입장을 입증하려고 했다 ... 그 결과 방언이 잘못 사용됨으로 야기될 수 있는 혼란과 문제점을 다른 바울의 교훈은 침묵 속에 묻혀버렸다.”(160 페이지)

“그러므로 방언의 남용은 교회를 허물지만 방언의 선용은 교회를 세운다.”(182 페이지)

현대 방언은 더 많이 나타날수록 그 교회가 성경에서 멀어지는 공통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런 교회들 속에서 더 심각한 영적인 혼란이 일어난다. 참된 신앙에 조금이라고 연구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모든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하고 있다.

“현대 방언이 더욱 더 많아지고 있어도 정작 방언을 받는 사람의 삶이 변하고 교회가 성경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현대의 방언을 일으키는 영이 성령이 아니고 거짓 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 거짓 영의 미혹의 역사가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거짓 방언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동시에 교회와 신앙은 점점 무속화 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고, 진정한 성령의 열매는 점점 실종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무엇일까? 현대 방언을 일으키는 영은 성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 방언에 빠진 사람들은 거짓말로 또 거짓 영의 방언들과 각종의 미혹의 일들을 미화시킨다.

“성령의 은사를 남용하고 오용하므로 교회가 망가진다!”

미혹하는 거짓 선생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거짓 방언을 끝까지 옹호한다.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거짓 말의 정체를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생각해 보자. 성령의 은사는 성령으로 떨어져 나와서 일하는 ‘기운’이나 ‘에너지’가 아니다. 만일 은사가 성령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기운이거나 에너지라면, 성령의 은사를 오용하고 남용하여 교회가 망가진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들은 단 한순간도 성령과 분리되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 치유의 은사가 나타났다면, 그것은 성령이 그 현장에서 친히 일하신 것이다. 성령이 그 현장에 아니계셨으나 은사가 홀로 치유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은사는 성령이 친히 역사하심으로 나타난다. 성령이 어떤 사람에게서 떠나가셨다면, 은사를 그 사람에게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모든 은사는 성령에 의해서 직접 나타나고 역사한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가 사람에 의해 남용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령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스스로 인간에게 오용당하거나 남용되시지 아니하신다. 만일 누가 교회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일한다면, 성령은 즉시 알아차리고 은사를 멈추실 것이다. 그렇게 아니하시면 성령이 아니다. 성령의 은사인 방언을 오용하고 남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교회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방언이 나타나도록 일하시는 성령이 아니다. 사람에 의해 교회를 파괴하게 만드는 방언은 거짓 방언, 즉 미혹의 영의 방언이므로 그런 결과를 드러내는 것이다.

방언의 은사를 남용하여 교회가 망가진다는 것은 성령을 모욕하는 마귀의 이론이다. 어떤 사람이 교회를 파괴하여도 계속 방언하게 하시는 성령이 아니다. 그런 방언은 마귀의 방언이다. 성령의 방언이 남용된다는 것은 방언을 일으키시는 성령이 사람에 의해 남용된다는 것인데,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마귀가 준 방언으로 교회를 훼방하는 것을 끝까지 성령이 주신 방언을 남용하므로 교회가 파괴된다고 말하는 이단들의 전략을 이제라도 간파해야 한다.

그런데 고신의 고직신학 교수이고 특히 조직신학 학과장이라는 박영돈 교수가 이런 마귀의 종들의 이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현대 방언이 성령의 은사인데, 단지 성령의 방언의 은사를 받은 신자들이 남용하므로 교회가 망가지는 일들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결국 현대의 방언을 의심하지 말고 계속 하라는 것이다. (이후 방언에 대해 박영돈 교수가 주장한 16가지 그릇된 방언 이론들은 차근차근 계속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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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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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리의검 2018-02-10 11:50:55

    더 이상 군더더기를 붙일수 없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말씀입니다.신고 | 삭제

  • 바울처럼 2018-02-11 22:08:34

    1세기 경 고린도의 역사적 배경을 조금만 알아도 당시 저들이 기도한답시고 사용하던 방언이 이방 종교의 주술적인 진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을텐데 개혁신학을 교수하는 신학자라는 사람이 저런 글을 썼다는 사실이 벌써 자신의 신학이 제대로 짜여져 있지 않다는 것을 증거하는군요...ㅡ,.ㅡ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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