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혜토론 > 최갑종
예장 백석은 최갑종 총장의 이단사상을 묵인할 것인가?
정이철  |  cantoncrc@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2.07  13:04:06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미국 뉴저지에 사랑과 진리교회라는 곳이 있다. 이 지역에 사는 많은 목회자들이 이 교회를 이단교회라고 말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유래하여 사도 바울에 의해 확증된 기독교의 구원론을 이 교회의 담임목사가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 교회를 담임하는 벤자민 오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이 시작되기는 해도, 그 이후의 회개와 성화와 올바른 삶에 의해 믿음으로 시작된 구원이 완성되기도 하고, 또는 파산되어 다시 지옥에 떨어지기도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런 구원사상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이런 주장은 천주교의 행위구원론으로부터 성경의 구원신앙을 다시 회복시킨 종교개혁 사상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그래서 요즘 미국과 한국에서 벤자민 오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왜냐하면 벤자민 오 목사가 탁월한 인터넷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비성경적인 주장을 멋있게 홍보하여 한국과 미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악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벤자민 오 목사는 자신의 행위구원 사상을 펼치기 위해 행위구원론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김세윤 교수와 애매한 노선의 칭의론을 펼치면서 행위구원주의자들에게 도움을 준 박영돈 교수의 글을 크게 이용하였다. 그는 이 두 사람의 주장을 담은 특별영상을 제작하여 자신의 행위구원론 홍보에 열을 올렸다. 김세윤, 박영돈 교수 외에도 백석대학교의 총장 최갑종 교수도 벤자민 오 목사의 행위구원론 홍보에 크게 이용되었다. 벤자민 오 목사가 활용한 백석대학교 최갑종 총장에 관한 영상을 보자.

위 영상은 박영돈 교수의 칭의론 주장에 대해 최갑종 총장이 동조하는 내용이다. 최갑종 총장은 행위구원론자 벤자민 오 목사가 이용한 박영돈 교수의 주장에 매우 적극적으로 동조하였다. 그러나 영상의 이 부분만으로는 최갑종 교수가 어떤 잘못된 주장을 했는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최갑종 총장의 다른 글에서 과연 행위구원론 사상이 나타났는지 찾아보았다. 불행히도 최갑종 총장이 믿음으로 구원 받기는 하지만, 이후의 행위에 의해 다시 구원이 결정된다는 행위구원 사상을 분명하게 주장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느냐는 물음과 관련해서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성경 말씀을 따라, 전적으로 예수님을 신뢰하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물음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성령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지 않을 경우 최후 심판에서 탈락될 수 도 있다는 성경 말씀을 기억하면서 날마다 거룩한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즉 우리는 성경의 양면적인 교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최갑종, "구원론/칭의로 다시 생각하기", 코람데오닷컴, 2016년 8월 17일)

이와 같이 최갑종 총장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도 이후 성령을 따라 거룩하게 살지 않으면 최종적 구원을 얻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은 사람도 다시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 후로 날마다 거룩한 삶을 살고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지 않을 경우 최후 심판에서 탈락될 수 도 있다는 성경 말씀을 기억하면서 날마다 거룩한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최갑종 총장)

최갑종 총장의 이런 주장은 믿음으로 1차적인 칭의와 구원을 받기는 할지라도 이후의 거룩한 삶이 없으면 하나님의 최종 심판대에서 이루어지는 2차의 최종적 칭의와 구원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행위구원론자들의 전형적인 주장과 같은 내용이다.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장로교단 신학교인 백석대학교의 총장이 이런 비성경적인 구원론 신학을 가졌다는 것은 정말 충격적이고 놀라운 일이다.

최갑종 총장은 자신의 행위구원론 신학을 대범하게 여러 곳에서 주장했던 모양이다. 최갑종 총장의 구원론을 소개하는 또 다른 신문의 기사를 보았다. 최갑종의 비성경적인 행위구원 신학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닌 믿음으로, 은혜에 의한 칭의와 구원을 말하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 신자의 거룩한 삶이 없이는 종국적인 구원에 이를 수 없으며, 모든 신자는 자신의 행위에 따라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신자로 불러졌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인 심판에 따라 구원을 받지 못하고 탈락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최갑종 총장, 한국교회의 구원론 문제가 없나?(아이굿뉴스, 2014년 4월 30일)

여기서도 최갑종 총장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기는 해도 이후의 거룩한 삶의 여부에 의해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에서 다시 구원을 박탈당할 수도 있고 계속 유지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최갑종 총장이 행위구원론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더 이상의 논란이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이 정도이면 최갑종 총장이 자신의 행위구원 사상을 정직하고 정확하게 밝힌 것이다.

최갑종 총장의 주장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가르침과 구원받은 신자들의 행위에 의해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서 구원이 다시 평가되어 구원이 취소되거나 계속 유지된다는 가르침, 이 두 모두가 성경적인 구원론이라는 것이다. 최갑종 총장의 이러한 주장은 결코 조용하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최갑종 총장의 주장이 맞다면,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이 틀린 것이고 종교개혁도 다시 평가되어야 한다. 최갑종 총장의 주장이 틀리다면 예장 백석 총회는 백석대학교와 백석 총회의 신학을 보호하기 위해 최갑종 총장에 대한 공식적인 조사 및 적법한 조치를 진행하여야 한다. 최갑종 교수는 한 개인이 아니고 예장 백석 총회의 신학교인 백석대학교의 총장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예장 백석이 종교개혁 신앙을 따르는 성경적인 장로교단으로서의 정체성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이다.

과연 최갑종 총장은 성경의 어느 부분을 근거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을지라도, 이후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이 지속되기도 하고 취소되기도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최갑종 총장의 글 "한국교회의 구원론 문제가 없나?"를 찬찬히 보니 최갑종 총장이 주장하는 성경적 근거들이 설명되어 있었다. 최갑종 총장은 로마서 14:10절과 고린도후서 5:10절을 그 근거로 들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

그런데 이 말씀은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행위에 의해 다시 재평가된다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심판과 판단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고유한 권한이므로 성도가 다른 성도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최갑종은 아전인수격으로 성경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최갑종 총장은 이 말씀도 자의적으로 해석하였고 엉뚱하게 적용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행위에 의해 재평가된다는 차원에서 이 말을 하지 않았다. 바울은 자신이 지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고난당하며 살지 않고, 죽어 천국에 가는 것도 자신에게는 좋은 일이라는 뜻으로 이 말을 했다. 죽어서 천국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서면 자신이 했던 모든 일들이 들어날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누리게 될 것임을 말한 내용이다. 행위를 보시고 구원을 재평가하신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다.

   
 최갑종 총장(예장 백석 신학교 백석대학교)

또한 최갑종 총장은 바울이 갈라디아서 5:19-21절에서 비윤리적인 육(肉)의 행위를 하는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가르쳤다고 주장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최갑종 총장은 이 말씀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거짓된 주장을 펼쳤다. 바울이 이 말을 했던 이유는 구원받은 신자가 다시 이러한 행동을 하면 구원을 잃고 지옥에 떨어진다는 경고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육체의 일들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는 사람들, 즉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징을 이야기한 내용일 뿐이다.

또한 최갑종 총장은 빌립보서 2:12절이 구원받은 성도들이 거룩한 순종적 삶을 통해 자신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갈 것(유지하고 발전시켜가야 함)을 가르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여기서 바울이 이야기 한 것은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으므로 행동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 다음 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과 연관시켜 생각해 보면 바울의 의도가 분명해진다. 구원받은 자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즉 하나님이 마음에 소원을 주시면서 이끌어 가시는 '성화의 삶'을 잘 진전시키라는 뜻으로 했던 말이었을 뿐이다.

이런 유형의 성경 이해를 가진 사람이 신학 박사이고, 신학대학의 총장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다. 그 외에도 최갑종 총장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지 않다고 한다면 결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 마태복음 7:21절, 그리고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 등이 행위에 의해 구원이 다시 평가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갑종의 어리석은 주장들에 대해 일일이 살펴본다는 것은 지면의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최갑종 총장은 엉터리 성경 해석을 나열하면서 행위에 의해 구원이 재평가된다는 이단적인 주장을 철회하고 공개적으로 회개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얻은 구원이 영원한 구원임을 선포하는 다음의 말씀들 앞에 무릎 꿇고 비성경적인 구원론을 주장한 것을 통회자복해야 할 것이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히 10:14)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벧전 1:5)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 9:15)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2)

최갑종 총장이 행위에 의해 구원이 다시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들은 모두 자의적인 해석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이 다시 취소되거나 변경될 수 없음을 선언하는 성경의 말씀들은 이렇게 분명하고 확실하다.

최갑종 총장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의 영광을 파괴한 이단적 주장과 관련된 자신의 죄악을 회개해야 한다. 특히 예장 백석 총회의 신학교인 백석대학의 총장으로서 그 따위 이단적인 주장을 펼쳐서 교회를 어지럽힌 죄악을 공개적으로 수정해야 마땅하다. 만일 최갑종이 돌이키지 않으면 백석 총회가 마땅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마땅하고, 지극이 성경적인 일이다. 

정이철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4
전체보기
  • 그리스도 안에서 2018-02-07 19:38:08

    성화가 없으면 구원이 있을 수 없다

    -J. C. 라일


    우리는 많은 신자들이 처해 있는 위험한 상태를 의식해야 한다.

    거룩함이 없이는 주님을 보지 못하며,

    성화(聖化)가 없으면 구원(救援)이 있을 수 없다(히 12:14).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무익한 신앙이 얼마나 많겠는가!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로 가고 있는가!

    그것은 무섭고 두렵고 숨막히는 생각이다.

    설교자들과 교사들은 눈을 떠

    주위에 있는 영혼들의 상태를 인식하기를 바란다.



    아! 사람들이 우리의 권면을 받아들여

    장차 임할 진노로부터 피하게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

    만일 성화되지 못한 영혼들이 구원을 받아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면,

    성경은 진실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참되며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 J. C. 라일, <거룩>(복있는 사람)신고 | 수정 | 삭제

    • 그리스도 안에서 2018-02-07 19:46:30

      믿음 이후 성령님을 통한 거룩한 삶과 성화는 이방 종교들의 행위 구원과 다르다(1)

      -아더 핑크


      쉽지 않은 구원의 길

      구원 신앙을 갖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깜짝 놀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곳에서, 심지어 정통주의자로 불리는 사람들조차 구원이 매우 쉽고 간단한 것처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믿고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영접하면 그것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물질 또는 아내나 남편을 의지하듯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믿음의 대상을 의지하는 것 외에 죄인이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논리입니다.

      오늘날 이런 구원관이 만연한 탓에 거기에 동조하지 않으면 뭔가 특이하거나 잘못된 믿음을 가졌다는 오해를 받기가 십상입니다. 하지만 저는 요즘의 이러한 쉬운 구원관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마귀의 거짓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대상을 신뢰하는 데에는 자연 신앙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려면 초자연 신앙이 필요합니다.

      본질을 놓친 복음 전도

      오늘날 목회자들이나 복음 전도자들이 사용하는 방법을 관찰해보면 성령께서 그들의 생각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계시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들은 은혜라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진정으로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성령님의 사역을 경시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타락한 세대에서는 구원 신앙이 은혜의 기적으로 말미암는다는 가르침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고 대신 인간의 의지에서 나오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 만연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언제든 구원 신앙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죄인에게 인간의 타락과 믿음에 대한 말씀 몇 구절을 인용한 뒤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권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의식하는 사람조차 아주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수많은 심령을 거짓 평안으로 잠재우는 마귀의 자장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믿지만, 사실 그들의 믿음은 한낱 피상적인 논리의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목회자는 하나님의 영광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분을 대적한 죄를 깨닫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복음을 전합니다. 우선 전도 대상자를 신속하게 설득하여 그리스도께 인도할 요량으로 신약 성경을 꺼내들고 그에게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는 말씀을 읽어줍니다.

      그러고는 그에게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상대방이 그 말에 동의하면 이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는 말씀을 읽어줍니다. 그리고 “여기서 ‘누구든지’라는 말에는 누가 포함된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 물음은 상대방이 “당신과 나, 그리고 모든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됩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 죽으셨다고 믿으십니까?”라고 질문합니다. 만일 “네, 믿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오면 즉시 그에게 구원받았다는 확언을 들려줍니다.

      여러분도 이런 식으로 구원받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단지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고전 2:4), 곧 “사람의 지혜”(5절)로 이루어진 거짓 신앙에 불과합니다.

      죄인의 마음을 성결하게 하는 것이 손을 씻는 것처럼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거룩한 진리의 빛이 인간의 심령을 비춰 육신의 정욕을 죽이는 일이 마치 커튼을 걷기만 하면 아침 햇살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큼 쉽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들은 우상과 세상과 죄를 버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돌아와 거룩하게 사는 것이 키를 조종하여 배를 올바른 항로로 움직이는 것만큼 쉽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속아서는 안 됩니다.신고 | 수정 | 삭제

      • 그리스도 안에서 2018-02-07 20:25:51

        믿음 이후 성령님을 통한 거룩한 삶과 성화는 이방 종교들의 행위 구원과 다르다(2)

        -아더 핑크

        자연 상태의 인간이 구원 신앙을 가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젊은 관원을 살펴보면 곧 그 대답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재물이 많은 고로”(마 10:22) 슬픈 기색을 띠고 돌아갔습니다. 그는 소유에 집착했습니다. 많은 재산이 그의 우상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세상 것에 단단히 묶여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요구는 너무 가혹했고 혈과 육으로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젊은 관원에게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 가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온 마음을 드리고 그리스도의 명령에 철저히 복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에 세상의 찌꺼기가 가득 차 있으면 하늘의 빛이 임할 여지가 없습니다. 세상의 부에 만족하는 사람은 영혼의 부를 바라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큰 잔치의 비유’도 이와 동일한 진리를 전합니다. 은혜의 잔치가 배설되었고 복음을 통해 모두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눅 14:18) 여러 가지 핑계를 대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땅이나 소, 안락한 가정생활 등 다른 일에 더 큰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18-20절).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더 사랑하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26-27절), 모든 우상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조건이 아니라 자신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테두리 안에서 그분을 영접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가 망대(방금 말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상징하는 표현)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눅 14:28)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곳에서도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라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영광”은 인정이나 칭찬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께 나올 수 없었던 이유는 사람들의 인기와 칭찬을 중시하고 하나님의 인정은 도외시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는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약 4:4)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 나아와 참 마음으로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을 등지고,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의 칭찬을 멀리하고, 멸시와 배척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주권에 복종하며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요 6: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영생을 얻는 것이 단순한 문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영생을 얻기 위해 다른 관심사를 모두 포기하고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 온갖 힘겨운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 것일까요? 대답은 “아니요”와 “예” 둘 다입니다. 먼저 우리의 행위가 구원의 공로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답은 “아니요”입니다. 영생은 값없는 선물입니다. 하지만 전심으로 구원을 추구하고 부지런히 은혜의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예”입니다. 순종하지 않고 머뭇거리는 사람에게 약속이 성취된 사례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11).신고 | 수정 | 삭제

        • 그리스도 안에서 2018-02-07 20:33:22

          믿음 이후 성령님을 통한 거룩한 삶과 성화는 이방 종교들의 행위 구원과 다르다(2)

          -아더 핑크


          사람들은 지옥에서는 구원받고자 하면서도 죄에서 구원받는 것은 싫어합니다. 삶으로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분을 단지 구원자로 영접하고 안심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려면 ‘자신의 길’을 버려야 합니다(사 55:7). 하나님께 돌아오려면 먼저 자신 안에 있는 온갖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높인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오해하도록 만드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희생을 감당하신 목적이 인간으로 하여금 속된 육신의 정욕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대속의 죽음을 믿고 그분을 구원자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삶과 행실이 불신자와 도덕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더라도 어디서나 참 신자로 버젓이 행세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과 같이 들립니다. 마귀는 그런 속임수로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해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주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 6:46)고 물으시면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처음 배우는 것보다 배웠던 것을 고쳐 배우는 것을 더 힘들어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에도 사탄의 달콤한 독주에 깊이 취한 탓에 자신이 구축한 체계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독주에 취해 자신의 총명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들은 내가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속죄 사역에 인간의 노력이 더해져야 함을 주장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내가 마치 그리스도가 이루신 속죄 사역의 완전성을 공격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외에는 그 무엇도 죄인에게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주지 못합니다. 저는 단지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실 때가 언제인가?”를 물을 뿐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동안에는 그런 역사가 분명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에서 거룩한 행함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어떤 목적을 위해 계획되었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한 우리는 그분의 사역을 올바로 받아들이거나 평가할 수 없습니다. 영광의 주님은 세상에 여전히 마음을 두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려고 이곳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사람들에게 천국 가는 길을 열어주시고, 그 길을 걸으라고 부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친히 본을 보이시며 그리스도의 정신과 계명과 약속으로 그들의 영혼을 영광에 합당한 상태로 빚어 그들이 구원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이끄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또 그분이 세상에서 살다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승천하신 이유는 죽은 죄인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셔서 새 생명을 주시고, 그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천국 가기까지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새 생명을 얻은 죄인은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세상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회개와 믿음, 성결한 삶,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복종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혹은 그런 것이 없어도 구원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제 자기 자신에게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구원인가?”라고 정직하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존 번연은 「The Jerusalem Sinner Saved 구원받은 예루살렘의 죄인」(국내 미출간-편집자 주)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신고 | 수정 | 삭제

          바른믿음
          최근 3개월 동안의 중요 기사 10
          후원방법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118 Ann Arbor-Saline rd, Ann Arbor, MI 48108(USA)
          대표(발행,편집):정이철(734 678 7133, cantoncrc@gmail.com)  |  편집자문: 정태윤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이철
          Copyright © 2018 바른믿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