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론 (신론)은 하나님의 인격과 그의 속성과 사역에 대해서 배우는 신학이다.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배우고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하셨는지도 살핀다. 모든 사역에서 작정을 세우셔서 일하심과 그 중심점으로 창조경륜을 가지셨음을 살핀다.하나님론은 이렇게 하나님 자신에 관해서 배우므로 신학의 핵심이다. 그래서 하나님론을 신학정론 (神學正論)이라고 한다. 하나님론은 하나님의 존재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방식과 그의 작정과 사역에 관해서 배우는 신학이다.우리는 먼저 하나님은 어떤 존재이신가에 대해서 배운다. 하나님의 존재라고 할
머리말WCC는 1914년 희랍정교회의 수장인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가 교회연맹을 제안한 후 1948년 암스텔담에서 1차 대회를 열었다. 그 후 WCC는 꾸준히 세력을 확장하여 개신교회 대부분을 회원으로 갖게 되었다.WEA는 1846년 영국 런던의 프리메이슨 홀에서 복음주의 연맹 (Evangelical Alliance) 창립총회를 열었다. 그 후 1951년 세계복음주의 협의회 (WEF) 총회로 네델란드 와우트스호텐 (Woudschoten, the Netherlands)에서 모였다. 2001년 말레이시아 쿠알라 룸푸르 (Kuala
제 2 에베소 공회의(439)는 유티케스의 주장이 우세하여 정통 신앙을 가진 교부들 중 플라비아노스 (Flavianos)를 폭행하고 다른 교부들을 유배시켰다. 또 그 후 제 2 니카야 공회의(787)는 성상숭배를 바른 것으로 정하므로 우상숭배를 교리화하게 되었다. 이에서 나아가 제 2 바티간 공회의 (1962-65)는 종교다원주의를 교리화하였다.공회의가 항상 바른 교리를 세우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 없는 것들을 교리화한 경우가 많다. 가령 연옥 교리, 성도의 중보기도, 입으로 죄를 고백하는 일 등은 공회의에서 정해졌어도 전혀 성경적
믿음과 도덕에 관한 진리에 대해 성경과 교회 어느 쪽이 최종 권위를 갖고 결정하느냐에 대해 로마교회와 종교개혁은 과격한 차이와 대조를 갖는다.로마교회는 어머니 교회로서 교회가 정경을 확정하였으므로 교회가 성경을 지배해야 바른 권위가 행사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경을 해석할 권리를 갖고 바르게 행사한다고 하였다. 교회가 바른 해석을 하므로 공회의의 결정들이 성경의 바른 해석이다. 이에서 나아가 교황이 성경의 해석에 있어서 궁극적인 권위를 행사한다. 교황은 교회의 머리이므로 교회가 구원진리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지 않듯이,
발트의 성경관 비판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포하지만 또한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다. 성경은 인간의 말로써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를 전체로서 증거한다. 그러므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18세기부터 신학계는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분리하였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포되어 있다고 하였다. 성경에 내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내는 것을 신학의 업무로 삼았다. 하나님의 말씀의 범위는 계속 축소되어 산상수훈으로까지 한정되었다.20세기에 이르러 칼 발트 (Karl Barth)는 전통적 자유주의자들
신약과 구약은 함께 읽어야 한다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성립되어 있다. 그러나 둘은 하나의 책 곧 교회의 책이다. 구약이 교회의 책으로 수납된 것은 전체로 그리스도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구약은 그 전체로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하고 가르치고 있다. 전혀 그리스도가 언급되지 않는 부분들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기록되었고 그리스도 때문에 기록되었다. 다 그리스도 출현의 준비이다.신약은 구약에서 기원하였다. 신약이 구약과 무관하게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신약의 부분들도 구약의 빛에서 읽고 이해되어야 한다. 신약의 뿌리가 구약이므로 구약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verbun Dei)이므로 그 전하고자 하는 뜻을 분명히 (listincte) 한다. 따라서 성경은 자명성 (perspicuitas)을 가져 모든 독자들에게 그 전하고자 하는 뜻을 명료하고 (clare) 확실하게 (ceric)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경은 문맥 가운데서 해석되어야 한다. 즉 성경은 성경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 성경은 자기 해석자이프로 (Scripture interpres sui ipsius est), 성경이 성경 해석의 최종 권위 (auctoritas finalis)이다성경의 중심과 목표는 예
그리스도의 구원 후에는 새로운 계시가 진행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으로 말미암아 필요한 진리가 다 성경에 담겨져 있다. 즉 모든 성경계시의 목표가 다 실현되었으므로 더 이상의 계시가 진행되거나 새로 추가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모든 진리를 완전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본질적 완전성은 영원한 구원 얻음에 필요한 모든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을 말한다. 보존의 완전성은 성경이 파괴나 허위화가 결코 이루어지지 않게 보존되었으므로, 어떤 한 책이나 한 부분이 성경 외의 다른 것에 의해 보충될 필요가 전혀 없다. 하나님을 섬김과
성경은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으므로 고유한 특성들을 가진다.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시므로 신적 권위가 성경에 나타나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갖는 권위와 특성을 가리켜 성경의 신성성(神性性)이라고 한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무조건적 믿음과 순종이 요구된다. 인간의 이성이 성경계시에 종속하고 순종해서 그대로 수납해야 한다. 또 성경은 진리의 유일 원천으로서 완전하고 명료하므로 모든 진리를 성경에서 도출한다. 그것은 믿음의 진리뿐 아니라 모든 지식이 성경에서 곧 하나님의 계시에서 와야 하고 또 그 계시에 의해 판단 받아야
그리스도의 부활은 재창조의 시작이다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속이 성취되었음을 하나님이 선포하신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인류 구속을 위해 죽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심을 뜻한다(행 2:36).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가 용서되며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행 2:38). 그의 부활은 타락한 인류가 새 인류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계 1:5-6) 하나님의 거소가 되게 하였다(계 7:15).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처음 창조경륜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부활이 이루어지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구속 사역으로 확정되었다. 그
하나님이 계시를 주실 때 선지자와 사도들을 영감하시고 사용하셨다. 그들의 지각을 조명하사 주신 계시를 바르게 이해하게 하셨다. 또 그들을 깨끗하게 하시므로 받은 계시를 원형대로 보전할 수 있게 하셨다.계시를 문자로 거룩한 책에 기록하게 하실 때도 순수하고 정확하게 기록되도록 하기 위하여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계시 기록자로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기록자들과 그들의 기로겡 호흡하셨다. 하나님이 호흡하셨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뜻한다. 성령의 특별하고 직접적인 역사로 성경이 기록된 역사를 영감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기록되기 때문에
성경은 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계시가 문자로 기록되어 만세에 순전하게 보존되게 하시므로 인류의 구원이 가능하게 하셨다. 따라서 신구약 성경에 특별계시가 다 기록되게 하셨다. 성경은 그리스도교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고 규범이 되어 구원에 기르게 하는 신앙과 생활의 유일규범이다.성경은 신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계시이므로 성경과 계시 간에 아무런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곧 그의 입으로 선포했던 말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계시 자체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가 그리스도의 임재이다. 임재의 체험은 주 예수를 믿는다는 신앙 고백으로 이루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 고백에 성령의 임재를 늘 감지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에 의해 우리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엡 3:17).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함이 바로 성령의 내주이다. 내주하는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주 예수를 계속해서 믿으며, 우리 속 사람이 능력을 입는다.성령을 받음은 능력의 원천을 받음이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힘 입고 행사하는 길은 기도를 통해서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접근하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은 기
계시는 은혜의 방식으로 왔다. 특히 특별계시는 하나님의 호의로 왔다. 그러므로 은혜는 죄의 상해를 치료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왔다. 은혜는 자연의 완성과 양양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그러나 로마교회에 의하면 본래 자연은 고유한 존재로 있고 그 후 은혜가 추가적으로 와서 자연을 보충한다. 처음에 인간이 가졌던 원시의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추가적 은사로서 초자연적이다. 이 추가적 은사에 의해 처음 창조된 인간의 본성이 완전해졌다. 이처럼 은혜는 자연을 보충한다. 그러므로 자연은 처음부터 완전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처음 창
계시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작정을 알리심으로 이해해야 바르다. 하나님의 계시는 자기를 알리심이다. 하나님의 자기 현지로서의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 권능, 지혜, 경륜, 창조사역과 구원계획, 그리고 구원의 완성을 알리심이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계획대로 이루시고 그것을 알리셨다. 그러므로 그 사역이 바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하나님이 알리지 않았으면 알 수 없는 감추어진 신비 곧 하나님의 자기 존재와 뜻을 알리심이 계시이다.하나님은 창조 사역을 통하여 자기의 존재, 권능과 지혜, 또 영광을 계시하셨다. 하나님의 창조로 인
현재 우리의 하나님 지식은 완성으로 가고 있는 신학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하나님 지식이 완전하지 못함을 뜻한다. 그러나 이 신 지식이 참이 아니라거나 거짓이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하나님 지식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서 유래하였으므로 참 지식이다. 그러나 이 지식은 거울을 통하여 보는 것과 같고 부분적으로 아는 것이어서(고전 15:13:12) 완성을 필요로 한다.이 완성은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때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얼굴 앞에 서서 마주 볼 때 우리의 하나님 지식이 완성에 이를 것이다. 인류의 목표는 하나님을 뵈옵는 것이다. 첫 인류가 역사의 시작에서 창조주 하나님 모시기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역사의 끝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난다. 역사의 끝은 허무가 아니고 처음 창조경륜대로
교회의 첫 신앙고백은 주 예수였다(요 20:18.20,28; 21:7,15-16; 행 1:6,21,24; 2:36,16:31). 그리고 모든 사도의 가르침을 믿었다. 그러다가 교회의 진행과 함께 이단의 발생으로 우리의 믿음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바른 믿음이 무엇이며, 유사하면서도 바른 믿음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바른 믿음이 아닌 조항들을 정할 수밖에 없었다.바른 믿음의 조항들을 정하는 과정에서 사도신경과 신앙의 규범이 공식화되어 이단을 식별하고 바른 신앙을 지키며 교회 교육을 위해서
신학은 중생인이 한다. 그러므로 중생한 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한다. 또 중생한 지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고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한 진리를 문장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전체를 조직하고 체계화한다. 이 일이 신학작업이다.하나님이 말씀하시므로 인간은 들어야 한다. 그 들음이 바로 믿음이요, 그 말씀하신 분을 신뢰하는 것이다. 성경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 계시를 들음으로 신학한다. 그러므로 사변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고 듣는 말씀에서 사고한다.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그 믿음에 근거하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사고한다. 그러므로 이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것을 주입하여 사고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듣는다. 내 이성이 신학 구성에 공헌하는 아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므로 듣고 그 말
믿음 = 하나님의 지식 수납의 손하나님을 믿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존재, 사역, 성품, 구원을 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르고 확실하게 안다. 하나님의 계시를 믿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하나님을 아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은 구원이 창조주 자신의 사역임을 아는 것이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임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안다. 또 믿음으로 한 하나님이 세 위격으로 계시고 삼위일체가 한 하나님이심을 확신 있게 안다. 그러므로 하나님 지식은 믿음으로 얻고 믿음으로 확신한다. 믿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믿음의 본성이처럼 하나님 지식에 있어서 믿음이 지식 획득의 길이다. 믿음은 본래 논증
통상 조직신학은 성경계시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통일 종합하는 신학적 작업으로 여긴다. 그러나 교의신학은 성경의 모든 내용들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할 때 교회의 교리들의 안내를 따라 작업을 한다. 이 교리들은 고대교회의 기본 교리들이다. 그러나 체계화 작업을 할 때 종교개혁의 신앙고백서들(credo)을 참조하고 조명을 받는다.종교개혁의 신앙고백서들은 고대교회의 교리들을 수납함과 동시에 구원 얻는 길에 특히 강조를 두었다. 이 신앙고백들은 고대교회의 교리들과 같은 구속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여도 교리적 성격을 갖는다. 루터교회는 이신칭의 교리를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으로 삼았다. 개혁교회는 칭의교리를 근본교리로 받지만 성경의 권위를 더 중시하고 결정적인 것으로 여긴다. 고대교회의 교리들은 보편교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