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때부터 매주 목사님의 설교를 노트에 받아 적기 시작하였다. 성경 말씀은 영의 양식, 생명의 양식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억하고 간직하기 위해서였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설교의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적으면 1년에 3~4권의 노트가 되었다. 고3 때 주일 낮예배를 출석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대학입학 예비고사를 준비해야했기 때문이었다. 50여명 모이는 시골교회 토요 밤 학생 집회에는 담당 장로님이 돌보셨는데 자주 결석을 하였고 목사님은 주일 설교준비로 많이 바쁘신 듯 자주 빠지셨다.거의 반년 이상을 학생회장의 임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설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지난주 목사님 설교 메모 노트를 읽으면서 나름대로 QT 설교를 하였다. 너무 많이 부족했겠지만 후에 안 것은 담임 목사님께서 지
종교개혁 498주년을 지나면서 오늘의 종교개혁의 과제를 다시 떠올린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천주교 성경통신강좌를 통해 천주교 교리를 공부하였다. 보통 교회에서 배운 것과 비슷하였지만,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성경을 전혀 강조하지 않고, 마리아 송, 마리아 기도문, 로사리오 기도, 연옥 등의 내용이 참 특이한 공부라고 생각하면서 지나쳤다.처가 식구들 중에 한 신부와 천주교인들이 있었다. 천주교가 과연 성경이 말하는 그 진리라면 전도할 필요가 없지만 구원의 진리가 아니라면 전도의 대상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천주교 신문을 구독하면서 천주교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였다. 천주교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성경과는 동떨어진 종교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특히 로마 천주교 신부로 있다가 개종한 후 한국을 방문했던
나는 거의 매주일 교파를 가리지 않고 이교회 저 교회 순회 설교를 하면서 우간다 교회의 여러 모습을 보아왔다. 대부분 예배가 찬양 퍼포먼스 일색이었다. 퍼포먼스라고 표현한 것은 귀가 아플 정도의 스피커의 큰 보륨 속에 예배인도자들이나 찬양 인도 팀들이 한 시간 가량 춤을 추며 찬양을 한다. 일반 성도들은 구경꾼처럼 수동적으로 앉아있는 경우를 꼬집는 것이다. 교인들은 한 오육십 명 남짓한데 왜 스피커 볼륨을 그토록 크게 하여 귀청을 망가뜨리는지 도무지 이해가되질 않는다.이곳 굴루시 교회 협의회 회장이라는 사람을 만났었는데 상당히 그럴듯한 차를 타고 나타났다.그는 대뜸 "Are you born again?"하고 질문을 던졌다. "Born again"이라는 말은 이곳에서 성령받은 표적으로 방언기도(babb
예장 합신 이대위가 지난 5월 18일에 진행한 김성곤 목사의 교회성장 프로그램 ‘두날개’의 이단성에 대한 공청회(5월 18일)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김성곤 목사가 소속한 예장 합동이 김성곤 목사를 감싸고 보호하려하므로 복음의 진리의 문제가 세력다툼과 영역싸움의 수준으로 전락되고 있다는 우려가 일어나고 있다.합신 이대위가 ‘두날개의 이단성에 관한 공청회’를 준비하자 김성곤 목사는 자신이 소속한 합동 교단의 서평양노회에다 도움을 요청한 모양이다. 김성곤 목사의 풍성한 교회가 소속한 서평양노회의 노회장이 합신 이대위가 추진하는 김성곤 목사의 두날개 이단성에 대한 공청회를 중지시켜 달라는 내용의 진정문을 합동 총회의 대표에게 보냈다. 이러한 정황이 ‘두날개 이단성에 관한 공청회’ 준비가 진행되고 있을
칼빈은 성경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였다. 그래서 신학할 때 언제나 성경이 가는 데까지만 가야한다고 가르쳤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씀이므로 지금도 하나님의 입에서 직접 나온 것으로 받아야한다고 하였다.그래서 그는 성경전체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신학하였다. 기독교강요도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길잡이로 펴냈다. 성경의 권위와 역사를 강조하면서도 성령은 말씀의 선포에 자동적으로 역사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성경이 직접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어도 말씀선포 때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권적으로 역사하는 것을 바른 신학으로 여겼다.루터는 말씀을 선포하면 성령은 언제든지 역사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 일하신다고 가르쳤다. 기록된
장로교 개혁주의란 제목이 생소한 사항이다. 첫째로 개혁주의란 용어를 서양에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를 보지 못하였다. 개혁주의란 용어는 아마도 ‘개혁주의 신행협회’라는 기독교 출판사로 인해 한국교회에 정착한 것으로 생각된다. 서양에는 ‘칼빈주의’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개혁신학’이라는 개념과 '개혁신앙'이라는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그러나 한국에만 개혁주의란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은 확실하게 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장로회 개혁주의란 용어도 생소하여 무슨 뜻을 전달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개혁주의라는 용어가 칼빈주의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도록 하고, 장로회 개혁주의라고 할 때에는 정치제도와 연관된 칼빈주의를 말하는 것으로 잠정이해하면서 추가적으로 몇 마디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여러 단체에서 세족식을 거행하였습니다. 백석대(총장 최갑종) 교수들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행사를 하며 제자를 섬기는 마음과 사랑을 전하는 마음으로 세족식을 거행했습니다. 명지대(총장 유병진)또한 세족식의 행사는 지난 31일 거행하였습니다. 명지대의 세족식은 15년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4월 2일에 로마 레비비아 교도소로 찾아가 재소자의 발을 씻기고 그들의 발등에 입맞춤을 하였습니다. 한 여성 재소자는 여기에 감동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고 합니다.이들의 공통점은 위에 있는 자가 낮은 자를 향해 낮아지는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는 세족식의 의미를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그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세족식의 의미일까요? 요한복음 12장은 예수님
한국 교회가 두날개를 방치하는 사이에 김성곤 목사는 해외의 여러 나라에 두날개를 수출하였다. 지난해 두날개는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의 주요 4개 지역에서 선교축제를 개최했다. 그때 발간된 홍보책자 안에 '두날개 선교사 현황'이라고 제목이 붙여진 페이지를 보았다. 두날개는 99명의 선교사들을 인도, 필리핀, 태국, 호주 등을 포함한 12개 국가에 파송하였다.“선교지마다 두날개로 날아오르는 건강한 교회가 세워지게 하소서!”“세계두날개 프로세스를 통해 현지인들이 재생산자로 세워지게 하소서!”두날개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을 나누고 소개하는 곳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두날개가 파송한 99명의 선교사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내용이다. 두날개 시스탬을 전 세계에 퍼뜨리기 위해 파송된 선교
인터콥, 신사도 등의 문제들을 다루느라 한국 교회는 많은 시간과 힘을 소모했다. 오순절 운동, 은사운동, 신사도 운동의 거짓 성령운동을 기본기로 깔고 소그룹(셀 운동)을 표방하는 두 날개, G12-셀목회 등의 거짓부흥 프로그램들이 그 동안 너무 오래 방치되었다. 두날개를 만든 김성곤 목사는 두날개에 관해 어떤 시비가 일어나면 재빨리 고친다. 이전에는 신사도 운동의 중보기도가 두날개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나 이제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불순한 내용이 많았던 ‘전인적 치유수양회’도 ‘회복캠프’라는 이름의 새 옷으로 바꾸어 입었다. 새 옷으로 바꾸어 입고 진행되는 회복캠프에서는 다음과 같은 네 번의 강의가 진행된다. 괄호 속에 있는 전인적 치유수양회 당시의 강의 제목과 비교해 보자.1과 - 기회를 붙
두날개로 인해 고통과 혼란을 당하는 교회들이 많다. 두날개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왜 교회에 해를 주는지? 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분들이 많다. 마침 김성곤 목사가 담임하는 부산의 풍성한 교회에서 5년 동안 신앙생활했던 분과 자주 만나면서 성경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김성곤 목사의 두날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리고 다른 경로를 통해 두날개의 모든 자료들을 얻었다. 너무도 많은 문서들이라 다 살펴볼 수가 없어 두날개의 ‘전인적 치유수양회’와 ‘리더수양회’의 강의 내용만을 살펴보고자 한다. 전인적 치유수양회는 총 4회의 교육으로 구성되었다. 본격적인 교육에 들어가기 전 서론 격인 시간에 김성곤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도둑놈을 잡는 것이 수양회의 목적이다. 영,혼 전인적으로 치
몇 달 전 어느 교회의 한 권사님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케냐의 데이빗 오워와 미국에 거주하는 자칭 예언자라 하는 홍혜선 전도사의 2014년 12월 한국전쟁 설이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한국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한국에 전쟁이 발발할 것이고 ‘매우 화가 나신 하나님’은 이 계시를 취소할 마음이 없으시다.”고 합니다.적지 않은 교인들이 이런 저급한 소위 계시와 예언에 미혹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제게 메시지를 보내신 그분은 매우 두렵고 떨린다면서 밤잠조차 자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목사는 교인들과 함께 한국을 떠났으며, 무비자로 미국을 갈수 있는 회원을 모집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을 피해서 말입니다. 참 한심스러운 일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급기야 내일(7일 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므로 조금이라도 깨어서 자기를 살피지 아니하면 신속히 세속적이요, 사탄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목적이 옳으면 그 수단과 방법이 옳은 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목적이 옳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상이 복음전도의 현장에서 빈번히 나타납니다. 이는 치명적이기에 그 결과는 항상 옳지 않는 방법으로 결론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기독교는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만이 아니라, 그 정상을 가기 위한 좁은 문, 좁은 길을 통과해야 합니다. 즉 기독교란 과정조차 성경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 중에 오늘 눈여겨볼 것은 첫 번째 시험입니다.“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세계 인구 12억이 추종하는 교황과 로마 천주교회의 비성경적인 가르침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고, 이제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오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배도운동이 완료되었다. 천주교가 미치는 악 영향으로 인해 온 세계의 참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이미 상당수의 표면적 복음주의 교회들이 로마 천주교회의 배도를 용인하고, 천주교와 더불어서 신앙적 교류를 나누겠다는 협정을 맺으므로 참 교회이기를 스스로 포기하였다.이러한 때에 모든 교회들이 매 주일 예배 때마다 신앙고백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도신경에 대한 작은 논란이 일어났다. 사도신경에 대한 논쟁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미 심각하게 배도한 로마 천주교회의 역사적 정서와 비성경적인 사상이 사도신경에 반영되어 있으므로, 이대로
313년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 핍박받았던 기독교를 지켜온 변증가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오리겐(Origen), 라틴교회의 터툴리안(Tertullian)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이들의 변증사역은 네로의 박해(64년)로부터 거의 300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이방인들이 기독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오해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였습니다.첫째, 황제의 권위와 국가 질서를 파괴하는 불순한 시민들이라는 오해,둘째, 그리스도인 형제와 자매들이 서로를 위하고 봉사하는 것을 그들끼리 먹고 마시며, 극도로 문란한 파티를 즐기며, 어둠 속에서 근친상간까지도 이루어진다는 오해,셋째, 기독교인들이 아기 예수라고 하
전병욱목사의 성추행 사건은 교계의 충격을 넘어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었던 사건입니다. 그에 대한 사건 보도는 일반 목사들의 사건의 보도와는 다르게 매우 방대하게, 그리고 매우 구체적으로 만인들 앞에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이런 까발리기식 개혁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습니다. 모름지기 기독교 전문가(신학교수, 목사)들은 이런 허접한(?) 것에 매달려서는 안됩니다. 이런 일은 구린 것을 찾아 다니는 넷티즌 수사대들이 하게 하고 전문가들은 손을 떼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들은 무엇을 폭로해야할까요? 그렇습니다. '광명한 천사'를 폭로해야 합니다. 광명한 천사가 누구입니까? 여전히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지만 그들의 신학과 설교가 성경을 살짝 살짝 위반하여 결국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해
한국에 있는 어떤 분이 나에게 좀 곤란한 메일을 보냈다. 내가 이전에 쓴 글로 인하여 자신에게 큰 피해가 있었다는 내용이었다.“정이철 목사님이 쓰신 글로 인해서 한국에 부임해왔는데, 청빙이 철회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이후로도 그 글로 인해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정 목사님의 글은 사실과는 너무나 다른 내용입니다. 단순히 ‘두 날개’ 프로그램을 1년 적용했다는 것만으로 이토록 큰 피해를 겪을 줄 몰랐습니다 ... 부디 목사님으로 인해 저와 같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목회자가 다시는 없기를 바랍니다.”이 편지를 보낸 분이 나에게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어떤 과오를 저질렀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증거이다. 만일 깨달았다면 오히려 지금 나에게 고맙다고 말 할 것이다. 이 분이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