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묻는 제자들을 향해서 답하지 않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말씀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18)

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이해하면, 성령이 임하게 되면 제자들(교회)이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를 증인하게 될 것이다. 1) 권능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권능을 받는 것이다. 2) 권능을 받아 행하는 것은 예수를 증인하는 것이다.

‘증인’을 ‘증거’, ‘증언’으로 이해한다. ‘증인’은 ‘마르투스’인데 ‘순교자’로 의미가 전이 되었다. 예수를 증인(마르투스)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이것이 1세기 교회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예수를 증인하는 것은 21세기에도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 함(롬 1:16-17), 전도의 미련한 것(고전 1:21)을 주장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주 하나님의 명령과 인도를 따라 십자가의 길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행 21장).

일반적으로 ‘성령으로 권능을 받아 어떻게 행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는 것 같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는다’를 행 1:8에서 확정하기 어렵고, 좀 더 생각을 해야 한다. 승천하신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셨기 때문에 ‘천지의 대주재이신 주’라고 베드로 사도가 고백했다(행 2:36). 그 성령이 임하면 백성이 권능을 받는다. 행 2장에서 좀 더 구체적인 서정(Ordo)가 등장한다. 베드로 사도는 요엘 선지서와 시편을 인용하여 구약 말씀을 성취하신 분이 십자가에 못 박힌(너희에 의해서) 예수라고 증언했다(행 2장).

그리고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어찌할지 몰라 당황할 때, 사도 베드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고 했다(행 2:38-42). 성령 임함(받음)과 죄사함, 회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동일하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교제와 성찬, 기도에 힘쓰는 모습이다(행 2:42). 성령이 임하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중심으로) 교제, 성찬, 기도에 힘쓰는 모습이 된다. 권능을 행하는 방법이나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 복음이 선포되면 회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 죄사함, 성령 받음이 등장한다. 성령의 권능받음이나 행함 이전에 복음 선포가 강조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다. 성령을 받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성령을 받으면 모두가 권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를 증언하는 일은 특별한 일이다. 순교자가 교회에 많지 않지만 교회는 순교자(Christian martyr)의 피 위에 세워진다.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은 많은 기적을 행했는데, 기적이 일어나면 항상 고난을 받았다. 쫓겨나거나 감옥에 갇혔다. 사도 바울은 기적을 행하려고 의도하지 않았다. 기적은 복음을 전함에 천상의 그리스도께서 활용하시는 것이었고, 사도 바울은 어찌하든지 복음을 전하려고 시도했다. 그럼에도 기적이 일어나면 사도 바울은 반드시 고난을 겪어야만 했다. 바울이 고난을 자랑한 만큼 기적을 많이 행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의 자랑에는 기적 행함에 대한 것은 거의 없다. 유대인 중에 유대인의 자기 위치, 고난으로 진행된 사역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증인하는 것은 곧 순교하는 것이다.

순교는 생명을 걸고 무작정 사지(死地)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많은 기적을 행해서 이루어지는 기적의 나라가 아니다. 기독교는 십자가 구속의 은혜의 종교이며, 죄사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생명을 걸고 예수를 증언하면 된다. 그렇다면 교회의 순교자(증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살아있는 우리는 여호와를 찬양하는 백성(시 150편)이지만,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다(계 2:10). 그 충성은 나에게 생명과 사명을 주신 주 예수를 증인하는 것이고, 결국 죽도록 증인하면 증인자, 순교자가 될 것이다. 예수의 능력은 십자가를 지는 지극한 겸손이고, 자기부정이다. 그 십자가를 그리스도인에게 주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증인한다. 그리스도는 자기 입에 있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등에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한다.  

 

고경태 박사(조직신학) / 주님의 교회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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