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7 01:02 (목)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차등하며 부활을 앞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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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차등하며 부활을 앞세워
  • 정이철
  • 승인 2015.12.08 10:36
  •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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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비성경적인 내용으로 미혹하는 김성로 목사(춘천 한마음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나누고 차등하거나, 무엇을 더 중요시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부활의 이유가 다 포함되었으니, 십자가와 분리하여 부활을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하나님 백성된 모든 신자들에게서 일어날 보편적 부활의 보증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관계, 이유, 의미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부활에 관해 그릇된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하나님의 구원작정, 그리고 그것을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부활의 원인을 찾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삼일 후 스스로 다시 숨 쉬면서 살아나신 것처럼 이야기하는 부활신앙은 기독교의 부활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원숭이 재주꾼 손오공의 도술같이 설명하면 안 된다. 

“악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메달아 죽였으나, 그 분은 결코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나약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시어 사망까지도 정복하시는 진정한 우리의 구주이심을 스스로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목회자들까지도 종종 설교 중에 이런 식으로 부활을 이야기한다. 죽어 무덤에서 삼일 동안 부패가 진행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다시 생명과 생기를 주시어 살게하신 분은 예수님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다. 죽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다시 사셨다는 것은 곧 그의 몸이 다시 지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미 삼일 동안 부패가 진행되었으니 온 몸의 모든 세포들이 다 붕괴되고 해체되는 과정이 깊이 진행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몸을 다시 조성하시어 살게하시므로 부활한 것이다.

단지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하고, 허파가 호흡하게 만드는 치료 수준이 아니었다. 죽었고 삼일 동안 그 몸이 부패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재 창조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자기 백성을 다시 새롭게 조성하여 하나님 백성되게 하시는 재 창조의 시작(이전에 sample이라고 했던 표현을 '시작'으로 수정한다)이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 제사의 은혜를 덧 입은 신자들이 이미 죽었던 상태에서 다시 창조(영적 출생)된 것이라 가르쳤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하나님이 우리의 대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지으신 것이니 결코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 산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다시 조성하시는 사역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스스로 자기 능력을 발휘하여 다시 숨 쉬고 산 것으로 설명하면 기독교는 망한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형벌 받아야 할 우리 모두를 대표하여 죽임당하셨고, 자신의 몸에 대한 이후의 계획을 스스로 만드시지 않고 죽으셨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눅 23:46)

성경은 예수님이 영원히 죽어야 할 우리 죄인들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무참히 죽었고, 결코 죽은 후 스스로 다시 숨 쉬며 살아날 계획을 만드시지 않았다고 말씀한다. 그 분은 영혼과 몸을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 의탁하고 죽으셨다. 그러므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스스로의 힘과 능으로 다시 살아나신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머털도사'처럼 예수님이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 무덤에서 살아나셨다고 성경은 전혀 말씀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성경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그의 몸을 다시 살리셨다고 말씀한다.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라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행 10:40)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행 13:33)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행 13:34)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었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행 13:35)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행 17:31)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예수 그리스도)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행 26:8)

“예수 우리 주를 죽을 자 가운데서 살리진 이를 믿는 자니라”(롬 4:24)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하는 성경의 내용 중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손오공처럼 스스로 살아나셨다는 내용은 없다. 로마서 1: 4절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라고 하는 내용도 예수님이 죽음 상태에서 손오공처럼 스스로 살아나 하나님의 아들의 본래의 위용을 보이셨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도록 하나님이 부여하신 구세주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시었으므로 하나님이 그를 높이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이런 깊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기독교의 영생의 비밀을 알 수가 없다. 자기에게 반역한 백성들을 모조리 죽이고 다른 새 백성을 조성하시는 것이 마땅하나 하나님은 이미 지으시고 자녀삼아 언약을 주신 처음 백성을 긍휼이 여기시고 다시 회복하여 여전히 자녀로 삼고자 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뜻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성취되게 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이 이 사명을 지고 죽어야 할 것임을 다 아시고 십자가를 지셨다. 

“다 이루었다!”(요 19:30)

십자가상에서 죽어가시던 예수 그리스도가 이렇게 말씀하시며 운명하신 이유는 자신의 피 흘림을 통해 하나님 백성의 속죄, 구원, 부활, 영생의 근거가 마련됨을 다 아셨기 때문이다. 자신이 대신 짊어진 십자가를 통해 이미 허물과 죄로 이미 죽은 백성들을 다시 살려 하나님의 ‘친 백성’(딛 2:14)되게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이 이루어지게 됨을 다 아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재주를 잘 부리는 원숭이 손오공이나 머리카락 하나로 온갖 요술을 다 부리는 머털도사 방식으로 풀면 결국 기독교는 망한다. 그것은 어떤 아이가 죽은 개구리가 어쩌다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고 “너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능력을 보였으니 나의 형님이 되기에 합당한 믿을만한 증거를 보였다!”하면서 개구리를 경배하는 종교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기독교의 부활을 이야기할 때에도 언제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부활은 십자가를 통해 이미 죄와 허물로 죽은 자기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조성하여 영구히 자기 백성되게하시는 최고의 사역이다. 부활을 이야기함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시고  대신 십자가에서 사형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다. 예수님의 피의 희생제사를 만족하게 받으신 하나님께서 장차 그를 믿는 우리 모두를 다시 창조하시겠다는 증표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로 가장 먼저 살리셨다.

춘천 한마음침례교회의 김성로 목사와 신자들이 벌이고 있는 부활신앙 간증운동은 이런 기독교 부활 신앙에서 벗어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스스로 손오공처럼 살아나서 자신이 우리 모두의 구주로 등극한 것처럼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동시에 남들이 간과하는 부활의 놀라운 능력을 자신들만이 발견하여 움켜쥔 것처럼 떠든다. 다른 교회들은 모르고 있는 부활에 대한 뭔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러 신문사들, 방송국들, 교회들, 인터넷 싸이트 등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삶이 변했다고 외치고 있다. 이 교회의 이상희 성도가 공개적으로 간증하는 내용을 들어보자!

“청년대학생 수련회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때 목사님이 칠판에다 큰 글씨로 ‘복음은 부활이다!’라고 쓰셨어요. ‘복음은 부활? 아니 왜 복음에 부활만 있어? 얼마나 많은데!’라고 제가 생각했는데, 목사님이 질문을 하셨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그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가 세 개가 꽂혀 있었다. 그 중에 누가 하나님이냐?’, ‘가운데지요!’ ... 근데 또 질문하시는 거예요. ‘이 십자가 세 개를 섞어 놓았다. 누가 하나님이냐?’, ‘가운덴가?’ ... 아! 무조건 가운데가 아니고 부활하신 분이 하나님이신거예요!

그러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로 끝나면 누가 하나님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거예요!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보고 나니까 그 분이 죽으신 십자가가 하나님이 죽은 십자가이구나! 하나님이 죽으신 십자가가 사랑이구나! 이걸 알 수가 있더라구요! 강도가 죽은 십자가가 사랑이 아니잖아요! 아! 누구나 믿을 만한 객관적인 증거는 역시 부활이구나! ...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물증은 부활을 통해서 생기는 거였어요.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저를 만나주셨던 것처럼, 이 말씀들을 통해 여러분들 모두를 만나주실 것을 믿습니다!”(이상희)

이상희 자매의 간증 영상은 김성로 목사가 자신의 부활복음을 다른 교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개최하는 특별세미나에서 자주 사용하는 간증영상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상희 자매의 간증에서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가 보이지 않는다. 위 이상희 성도의 간증에서 발견되는 부활에 관한 비성경적 사실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김성로 목사가 "복음은 부활이다!"라고 가르쳤다는 점
2)부활을 가능하게 하는 십자가의 비밀에 집중하지 않고 단순히 부활을 높이고 위에 두는 자세
3)강도들의 십자가이건, 예수님의 십자가이건 결국 부활로 구주의 십자가를 알 수 있다는 개그콘서트 대사와 같은 부활 강조
4)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점

부활이 복음의 일부이기는 하나, 복음이 곧 부활이라는 김성로 목사의 가르침은 비성경적이다. 정말 그렇게 가르친다면, 부활 하나를 강조하기 위해 기독교 전체는 비트는 죄악이다. 십자가를 설명하고 중시하지 않는 부활 신앙강조는 틀림없이 사이비이다. 십자가의 비밀을 알고 깨닫지 못하면서 부활의 감격을 말하는 것은 개그콘서트에서나 나올 이야기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간들과 동일한 입장으로 성육신하여 우리를 대표하여 죄의 형벌을 홀로 감당하시었다. 그것이 십자가이다.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제사에 만족하신 하나님이 죽여야 할 다수의 자기 백성을 죽이지 않고 신분을 회복하여 다시 영생하는 백성으로 지으신 것이 기독교의 부활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의미와 비밀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는 부활타령은 사이비들의 종교만행이다. 이런 요소가 이상희 성도의 간증에서 두루 나타났다.    

심지어 이상희 자매는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세 개 중에서 어떤 십자가가 하나님이 죽은 십자가인가? 부활이 일어난 십자가가 하나님이 달려 죽은 십자가이다!" ... 이런 애들 장난 같은 소리를 간증이라고 하였다. 너무도 개념이 없으니 우습기만 하다. 그럼 하나 물어보자! 십자가에 달린 분이 하나님이셨는가? 정말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는가? 전혀 우리와는 다른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효력을 줄 수 있을까? 죄는 없으시나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사하졌다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고 간증에서 말하는 것일까? 아무것도 아닌것 같으나, 이것 하나만 보아도 이 교회 신자들의 부활신앙이라는 것이 엉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개념도 잡히지 않은 사람들이 부활에 대해 떠들면서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것처럼 간증한다는 것은 또 다른 개그콘서트이다.

“골고다의 두개의 십자가는 강도가 매달린 십자가이니까 부활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 중의 하나는 하나님이 달려 죽은 십자가니까 부활이 일어났다! 부활하신 그 분을 믿는 믿음이어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믿음이고, 부활이야 말로 확실한 물증이다!”

이상희 자매의 이런 내용의 부활에 대한 간증은 할 소리가 아니다. 우리를 대표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고, 다른 모든 면에서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그에게 전가하시었고, 또한 그의 저주스러운 사형당하심을 우리 모두의 죽음으로 간주하시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심 받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도록 부르심 받은 우리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시면서 만들어 주신 '의'를 전가하셨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에게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장래의 영생과 또한 몸의 부활이 보증되었다.

이런 내용이 조금도 없고 단지 죽었다가 살아난 십자가가 하나님이 죽으신 십자가이고, 그렇게 사신 분을 믿어야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확실한 믿음이라고 떠드는 말은 부활신앙 간증이라 할 수 없다. 부활을 말하기 전에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와 내막이 먼저 자세하게 설명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아담으로 말미암은 인간의 죄가 무엇이고, 그에 따르는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가 무엇인지, 자신과 아담의 죄가 어떤 방식으로 연관되었고, 죄 가운데 태어난 자신이 어떤 운명에 처하여 있었는지, 어떻게 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해졌는지 ... 이러한 내용이 없는 부활간증은 개그콘서트보다 못하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로 끝나면 누가 하나님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거예요!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보고 나니까 그 분이 죽으신 십자가가 하나님이 죽은 십자가이구나! 하나님이 죽으신 십자가가 사랑이구나! 이걸 알 수가 있더라구요!”(이상희)

대체 왜 십자가와 부활을 갈라서 보는 것일까? 십자가로 끝나면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달린 세 사람 중에서) 누가 하나님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뭘까? 참으로 이상한 부활 타령에 중독된 사람들이다. 이게 무슨 기독교인의 부활신앙일까? 신자들이 이런 식으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간증이라며 떠들어도 전혀 문제는 느끼지 못하는 김성로 목사는 정상적인 목사가 아니다. 오히려 김성로 목사는 이 간증 영상을 다른 목회자들과 다른 교회의 신자들에게 자기의 부활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홍보 자료로 활용하고 있으니 기독교 신앙을 아는 사람이라고 볼 숙 없다.

김성로 목사와 그의 가르침을 받고서 부활신앙을 외치는 이 교회의 신자들의 부활에 대한 간증의 수준을 이렇게 말하면 지나친 비약이고 과장일까?

"비록 손오공은 원숭이지만 굉장한 능력을 선보이니 사람의 스승이 될 자격이 있다!"
"비록 개구리이지만 죽었다가 어떤 개구리가 다시 살아나는 특별한 면을 보였으니 형님으로 삼고 따를 만한 합당한 증거를 보여주었다!"

춘천 한마음 교회의 신자들이 이런 내용을 부활신앙 간증이라고 소리내고 다닌다는 것은 그들을 가르친 김성로 목사 같은 그릇된 논리와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김성로 목사가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올바른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현상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부활복음세미나 1'이라는 제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고 있는 김성로 목사의 설교영상을 보았다. 그 일부 내용을 직접 보도록 하자! 

“2001년에 무슨 일이 터졌냐하면, 여태까지 십자가와 부활 중에서 십자가가 위에 있었어요. 십자가의 사랑이 위에 있었어요. 부활이라는것은 힘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 부활절에 죄의 권세 사망권세 마귀권세 깨뜨리고 부활했다! 다 증거하잖아요! 근데 처음으로 십자가에서 부활의 신앙으로, 지식인 부활, 힘도 없는 부활! 십자가의 사랑에만 매여있던 내가 부활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청년대학생들 앞에 증거하도록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2001년도에 일어난 일입니다. 나는 그 동안 복음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복음에는 십자가와 부활이있는데, 어떻게 나는 죽은 예수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을까? 살아계신 예수를 증거해야 하는데,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나의 죄가 사하여졌고 ... 십자가만 바라보고 있었을까? 살아계신 예수를 믿어야 하는데, 왜 죽은 예수를 붙들고서 그 사랑에 감격하고 그 사랑에만 매여있었을까? 2001년도에 이게 벗어진 것입니다.

초대교회와 같은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2006년입니다. 저는 왜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인가? 에 대해 일생을 건 것입니다. 동일하게 사도행전 2장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 2006도입니다. 죄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에서 성령께서 오시면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했습니다. 죄는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다! 이렇게 믿은 겁니다 ... 부활을 알지 못하면 죄를 절대로 알 수가 없더라구요. 성령께서 사도행전 2장이 얘기하고 있는 죄의 무서움, ‘어찌할꼬’ 회개가 나올 수 가 없더라구요. 2006년부터 예수를 믿지 않는 죄에 책망하신다는 요한복음 16장의 죄에 대해 깨달음이 ... 죄관이 바뀌더라구요 ...(중략) 제자들처럼 죽음을 초월하는 신앙으로 바뀌어 지는데, 그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무엇을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초월하는 신앙으로 바뀌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놀라운 겁니다. 부활을 붙들고 나니까 신앙자체가 변하고 물질을 초월하게 되는 겁니다.”(김성로 목사)

위 김성로 목사의 강의 내용에서도 다음과 같은 이상한 소리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1)십자가와 부활 중에서 십자가가 더 위에 있었다는 내용
2)십자가 중심의 신앙은 죽은 예수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는 내용
3)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만을 붙들면 신앙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내용
4
)부활을 증거하고 강조하지 않으면 신앙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내용
5
)부활을 알지 못하면 ‘어찌할꼬’의 진정한 회개가 나올 수 없다는 내용
6
)부활을 알아야 죽음을 초월하는 신앙을 가지게 된다는 내용

위의 이상희 자매의 간증 영상에서 나온 것처럼, 김성로 목사도 십자가 중심의 신앙은 진정한 신앙이 아니고 매우 그릇된 신앙이라고 한다. 또한 그도 역시 십자가와 부활을 구분하고, 부활을 더 주시하며, 십자가에서 부활로 넘어가야 진정한 신앙이라고 한다. 그가 어쩌다가 이런 신앙도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당연히 십자가 안에 이미 부활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야 올바른 성경이해이다. 죄는 없으셨으나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 되어 완전히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를 대표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죄에 대한 희생제물로 죽으신 것이고, 그의 피의 제사로 만족하신 하나님이 다시 영생하면서 자기를 섬기는 백성을 일으키시기 위해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다는 성경적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이해가 없으므로 자꾸 엉뚱한 괴변을 늘어놓고 있다. 십자가의 사랑을 알고, 십자가와 우리 자신을 일치하면 저절로 부활이 따라오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이것을 모르니 자꾸 십자가와 부활을 대치하고 구분하고, 관심이 부활로 넘어가야 능력이 생기고 삶이 변한다는 괴이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 분에게 성령이거하신다면 절대로 이럴수가 없다. 이런 분이 목회자가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불행인 것이다. 

부활을 알아야만 ‘어찌할꼬’(행 2:37)하는 심각한 회개가 터저나온다는 김성로 목사의 말도 우습다. 죄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 자신이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 영원한 하나님 백성 삼으시기 위해 보내주신 구세주까지도 거절하고 살해하는데 가담한 죄악을 깨닫게 해 주신다. 그래서 ‘어찌할꼬’하는 회개도 터지는 것이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는 단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야 그런 회개가 터진다고 하는데, 너무도 자의적인 성경해석이다. 어찌 부활을 알아야만 죄를 깨닫고 진정으로 죄관이 변한다고 하는가? 성령이 임하시고 역사하심으로 인해 죄가 깨달아 지는 것이 올바른 말이다(요 16:8). 김성로 목사의 마음이 부활 하나에 꽂혀 전체 기독교를 비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김성로 목사의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야 죽음을 초월한 믿음이 생긴다는 말고 맞는 것 같으나 틀렸다.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요청하여 자기의 이름으로, 자기를 대신하도록 보내신 성령(요 14:26), 즉 ‘예수의 영’(행 16:7)을 받으므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죽음을 초월하는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지상의 신자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완전하고 신비하게 연합(요 14:20)되므로 예수님처럼 죽음도 초월하는 신앙이 나타나는 것이다. 단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신자들에게 죽음을 초월하는 담대한 신앙을 주는 것이라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서도 무능했던 제자들의 상황은 대체 뭔가? 

부활을 목격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효력을 신자들에게 적용하여 주시는 성령,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오시는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만 죽음도 초월하는 신앙을 가지게 된다. 성경을 보면 제자들이 담대해지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오신 성령의 세례를 받은 후부터였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김성로 목사가 성령의 임하심으로 되어지는 많은 중요한 일들을 ‘부활하신 예수님’ 개념으로 뭉개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김성로 목사는 뭐가 뭔지 잘 모르면서 단지 ‘부활’을 강조하면서 분위기를 선동하고 있다. '부활'이라는 것 하나를 위해 준비된 굴절된 랜즈로 성경을 보면서 매우 많이 자의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 그대로 두면 결국 그는 기독교를 자기식의 부활 종교로 개조하고 말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이고 서로 뗄 수가 없다. 그러나 김성로 목사는 이미 십자가와 부활을 분리하였고, 십자가에서 부활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면서 기독교의 핵심을 많이 비틀었다. 이는 김성로 목사가 이미 이단의 길로 들어섰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물론 김성로 목사는 각종의 신비주의, 은사주의, 시한부 종말론 ... 등의 이단에 비하면 더 안정되어 보이고 덜 심각해 보인다. 그러나 구원의 진리를 변개하고 왜곡하면 누구나 이단이고, 저주받을 자(갈 1:9)라는 성경의 말씀을 누가 고치겠는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현재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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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2016-03-31 12:03:18
균형있는복음님 그건 다른 이단교들에도 있는 흔한 양상입니다. 이단들도 열정이 있고 변화가 있죠~

균형있는복음 2016-03-31 11:58:52
저는 한마음교인은 아니지만 몇몇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증언하자면 실제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성령충만합니다. 다들 교회이름대로 주안에서 한마음되고 예수님이 주인이던데요!! 목회자로써 진짜 부끄럽대요!! 대단합니다. 가보시면 압니다.. 안가보셨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윤영교 2016-03-22 17:03:36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알면서 비방 좀 하세요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사람이지만 또한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
하나이면서 셋이요 셋이면서 하나인 거지요

부활은 표적신앙 2015-12-11 08:48:24
지나가는 객이지만 끼어들어 볼께요. 진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니 나무라지 마시길.
인용글
[역사적 견지에서 말하자면, 교회의 실질적 출발점은 십자가가 아니라 부활이었다. [중략] 당연 초대교회 최대의 화두는 부활이었다. 사도들은 무엇보다도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자들이었고(행 1:22), 이 부활 메시지로 인해 당시의 권력자들로부터 박해를 받았다(행 4).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일종의 신학으로 이해하려 하지만,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행하신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였다(눅 1:1). 그리고 그 사건의 절정은 바로 예수의 부활이었다. “그가 과연 부활하셨다!”는 외침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자신의 사역이나 신자들의 믿음이나 그 모든 것이 허망한 것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한다(고전 15:14).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이든,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신자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15:17).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의 속죄조차도 무의미한 낭설일 수밖에 없다. 복음은 분명 “십자가의 도”로 요약할 수 있지만, 실상 그 십자가의 메시지를 복음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부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입에서도 쉴 새 없이 부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

질문자님께서 인용하신 위 글은 얼핏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부활의 표적을 십자가진리 위에 두려는 궤변입니다.
기독교는 말씀 속에서 십자가의 진리를 깨닫고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 최종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이 없다면 부활의 영광도 없습니다.
단순히 부활을 믿었다하여 구원을 받지는 못합니다.
무식한 사람이 부활을 몰랐다하여 구원에서 제외될 까요? 아닙니다.십자가를 모르면 제외됩니다.
부활은 믿으면서 십자가를 지나친다면 심판의 부활이 기다릴 것입니다.

질문자님의 글
“제가 궁금한 것은 그러면 부활은 우리가 죄사함을 받는데 있어 아무런 역할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장 17절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목사님과 생각이 좀 다르신 것 같아서요.... “

답글
부활은 죄사함과 아무관계가 없습니다. 만약 부활로 죄사함 받는다고 믿는다면 큰일납니다.
구원을 잃게 됩니다. 예수의 십자가가 헛되기 때문입니다. 김성로의 가르침처럼 고전5:17절을 교묘하게 왜곡하여 배우면 부활에서 죄사함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배우게 됩니다. 5;17절은 부활을 믿지 못하는 교인들에게 예수가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메시아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게 헛되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며 예수가 확실하게 부활하셨음을 강조한 구절입니다.
결론 부활을 죄사함과 연계시키는 사람들은 성도들의 관심을 십자가에서 부활로 돌리려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정확히 깨닫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제삼자 2015-12-10 23:13:11
필명 “정이철 목사님께 감사”님께

질문 글이 올라온 지 한참 되어가는 데도 답변 글이 올라오지 않아 제삼자이지만 의견을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부활을 의심하는 자(15:12)들에게 고전15장을 통하여 예수께서 부활하셨으며, 우리도 부활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5:17절은 예수의 부활이 없었으면 믿음도 헛되고 구원도 없을 것이라는 구절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그것으로 끝이라면 모든 게 헛될 것입니다.
이것을 김성로목사는 부활을 믿지 못하면 구원도 믿음도 헛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보는 눈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예수께서 만약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메시아도 하나님도 아니기에 죄사함도 구원도 헛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아마도 기독교 자체가 존립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가 구원자이며 동시에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핵심사건입니다.

부활이 이처럼 중요한 사건이지만 부활에서 죄사함을 얻는다고 주장하거나 부활을 보고 회개할수 있다고 말하는 김성로목사의 주장은 틀린 주장입니다.
그리고 부활을 십자가와 동전의 양면 같다는 주장도 복음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복음의 능력은 십자가에서 나오는 것이지 부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믿고 구원받으면 부활하게 됩니다.
즉 부활은 십자가의 결과물입니다. 예수의 부활체에서 회개가 나오고 죄사함과 구원이 나온다면
예수께서 승천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회개와 믿음과 구원은 부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의에 대하여 증거하시는 성령으로부터 나온다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게서는 우리를 부활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밑으로 인도하십니다.
김성로목사는 부활을 강조하기위해 십자가를 왜곡 축소시키는 분입니다.
외람되지만 부족하나마 저의 의견을 올렸습니다.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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