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의(공덕)를 적용하여 자기 자신과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 가운데 참으로 참담한 것이 하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WCF, 웨신)의 행위언약 이론을 높이고 보존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이론이 반드시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웨신의 행위언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행위계약으로서 한 법을 주셨다. 그 법으로 그와 그의 모든 후손에게 개인적이고 온전하고 정확하게 영구히 순종할 의무를 가지게 하셨다. 그 법을 성취하면 생명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그 법을 위반하면 사망을 내리실 것을 경고하시고 그것을 지킬 힘과 재능을 그에게 부여하셨다” (WCF 19:1).

“이 율법은 아담이 타락한 후에도 계속하여 의에 관한 온전한 법칙으로 남아있게 되었고 하나님에 의해 시내산에서 십계명으로 선포되어 두 돌판에 기록되었으니, 첫 내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다른 여섯 계명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포함하고 있다” (WCF 19:2).

위 웨신의 행위언약의 아담에 대한 내용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첫 아담은 죽음과 함께 창조되었다. 아담은 얼마 후에 저절로 죽음에 지배될 사람으로 창조되었다. 아담은 죄인도 의인도 아닌 중립적 인간으로 창조되었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선(율법)을 택하여 실행하여 그 공덕으로 영생을 얻어야 하는 사람으로 창조되었다.

사실 이 내용은 공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된 펠라기우스와 그의 제자들이 아담에 대해 주장했던 내용이다. 즉, 펠라기안 이단 사상이고 명백히 아담에 대한 잘못된 설정이다. 아담은 하나님이 주신 명령(언약)를 스스로 파괴하지 않는 한 죽음이 없는 몸으로 창조되었다고 설명해야 성경적이다. 아담이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면 잃어버릴 수도 있는 영생을 가진 몸으로 창조되었다고 해야 옳다.

로마서 6:23절은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해 죽음이 왔다고 한다. 하나님에 대한 범죄가 없었다면, 아담은 창조된 그 상태의 몸으로, 즉 똥도 싸고, 매일 밥도 먹고, 부인과 사랑을 나누어 많은 자식을 낳아서 하나님 백성으로 양육하며 지금까지 늙지도 병들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있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이레네우스, 아타나시우스, 어거스틴 등 올바른 교부들은 처음 아담의 상태를 초자연적 축복의 상태 등으로 표현하면서 영생을 잃고 죽을 수도 있으나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으면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을 가진 상태로 아담이 창조되었다고 가르쳤다. 칼빈, 루터 등도 아담이 영생을 가진 상태로 창조되었으나, 영생을 범죄함으로 잃어버릴 수 있는 영생이었다고 설명했다.

혹자는 아담이 결국 죽었으므로 영생의 몸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죽은 사람에게 영생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사변이라고 한다. 결국 아담이 죽었는데 왜 영생을 가진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나에게 설명해 보라고 한다. 영생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의 상태로 이해하지 않고 단순한 ‘불사’(불멸)로 이해하는 심각한 오류이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의 영생은 이미 죄로 죽은 우리의 죗값을 그리스도께서 죽고 갚으심으로 얻어진 부활의 영생이다. 죽었던 우리를 다시 영의 몸으로 살리셨다. 육신과 유혹자와 죄가 없는 천국에서 누리는 영생이므로 다시 죄에 굴복하여 죽을 일이 없는 영생이다. 능동적 순종파들의 죽어야만하는 육체로 창조된 아담이 율법을 잘 지켜서 하늘의 영생, 곧 우리의 부활의 영생 수준으로 변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했다는 주장은 억지이다.   

웨신의 행위언약의 아담론은 공교회가 정죄한 펠라기우스에게서 유래했고, 이후 세미 펠라기우스와 로마교회, 알미니안 신학으로 이어졌다. 1500년대 말, 1600년대 초 알미니안 신학 발상지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사이에는 많은 교류가 있었다. 잉글랜드 국교회는 사실상 알미니안 신학에 점령되었고, 장래의 청교도 지도자들을 배출하는 옥스퍼드 대학 등에도 알미니안 신학이 깊이 침투하였다. 

청교도들이 알미니안 신학이 만연한 상황에서 신학을 배웠다는 사실은 그 동안 간과되었다. 그 사실을 우리는 너무 몰랐고, 청교도들의 신학이 하늘에서 떨어진 신성한 신학인 것으로 우리는 배웠다. 맹목적으로 청교도들을 숭배하도록 세뇌되었다. 그러나 사실  청교도들이 대학에 다닐 때는 알미니안 신학이 범람한 상황이었다. 다음의 보기 바란다.
 

 

1600년 이후 아르미니우스 사상은 영국 신학계를 서서히 장악하게 된 반면, 세인트 루이스 대학은 스코틀랜드 땅에 개혁주의 사상을 전파함에 있어서 마지막 보루로 공헌했다” (개혁신학과 스콜라주의(한병수 역), 172).

“존 오웬은 옥스퍼드 근교의 조그마한 마을 스타담에서 태어났고 거기에서 토마스 발로우 및 다른 선생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오웬이 옥스퍼드에서 공부할 당시 대학의 신학적인 분위기는 아르미니우스주의 사상에 장악되어있었다” (개혁신학과 스콜라주의(한병수 역), 228).

아르미니우스주의 사상은 국교회와 비국교도 모두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다” (개혁신학과 스콜라주의(한병수 역), 228)

이처럼 청교도 신학이 형성될 무렵 잉글랜드의 대학들은 알미니안 신학에 장악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므로 그 속에서 신학을 배운 청교도들에게는 칼빈주의와 알미니안 주의에 대한 선명한 개념 정립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잉글랜드의 청교도들에게는 칼빈의 책보다는 베자에게 나중에 알미니안 신학이라고 불리우는 내용을 가르치거나 또는 함께 즐겁게 토론했던 칼빈의 이상한 후계자 베자의 책들이 더 많이 소개되었다.

청교도들의 주류 신학이 반영된 웨신의 행위언약 이론도 그 이전의 네덜란드 알미니안들이 만들어 낸 신학이다. 그 사실은 도르트총회가 만든 문서 <도르트신조> 속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다음은 <도르트신조>가 이단으로 정죄하기 위해 당시 네덜란드 알미니안들의 신학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항론파의 주장: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목적은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실제로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 언약이든지 행위 언약이든지 사람과 한 번 더 언약을 맺으실 권리만을, 성부 하나님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얻으시는 것이었다” (제2 교리조항의 오류반박 2번).

당시 알미니안들이 행위언약에 성공하지 못하여 영생을 얻지 못하고 죽은 아담과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가 대신 율법을 지켜 행위언약을 완성했고, 또한 그리스도는 행위언약을 완성한 자기의 공로를 믿는 자들에게 전가하여 자기를 믿기만 하면 율법준수 요구가 철회되는 은혜언약으로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수 십년 후 청교도들에 의해 웨신에 삽입된 행위-은혜언약 이론은 이미 그 이전의 네덜란드의 알미니안들이 주장하여 칼빈주의 교회들을 위협하는 중요한 수단이어다는 의미이다. 알미니안들의 신학을 <도르트신조>는 이단으로 정죄하였고, 그것을 앞장서 주장하는 목회자들이 사형, 재산몰수에 처하게 만들었다.

웨신 행위언약 이론의 아담론은 공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받은 펠라기안들의 신학이다. 펠라기안 신학의 아담론이 세미 펠라기안-로마교회 신학으로, 알미니안 신학으로, 그리고 청교도들의 신학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웨신의 행위언약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들의 신앙과 성경-사도들-칼빈주의 신학을 믿는 사람들이 섞이지 못하고 계속 충돌하는 것이다.  

웨신 절대주의자들이 행위언약의 아담론을 옹호하면서 말하는 내용은 너무 비논리적이고 비성경적이다. 그 이유는 웨신 행위언약의 아담론이 펠라기안 신학에서 유래하여 청교도들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성경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못하면서, 웨신의 이 부분이 잘못되었으므로 신앙의 자료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장로교회를 떠나라!”하거나, 목사 면직을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면직이 이루어져야 한다면, 과연 누가 면직되어야 마땅한가?"
 

 

서철원 박사는 최근 <도르트신조> 라틴어 본을 직접 번역하였다. 서철원 박사는 서문에서 “정통교리에 반대되는 오류를 바른 진리로 인정해서 교리로 주장하면 그것은 오류를 진리로 인정하는 것이므로 이단이다”라고 말하였다. 능동적 순종과 회심준비론이 도르트신조가 확립한 칼빈주의 개혁교회의 정통 신학에서 벗어난 이단 사상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도르트신조>가 거부한 행위-은혜 언약 사상도 결국 같은 범주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서철원 박사님의 이 말이 틀리다면, 우리는 칼빈주의 신앙의 기초를 세운 <도르트신조>를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도르트신조>를 거부하면 칼빈주의 장로교회가 되지 못하고, 개혁신학 한다고 말하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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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