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주의자들로 인해서 있었던 교회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에게 분별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도 바울도 바른 분별이 없을 때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을 낸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주님의 자녀들과 주님을 핍박을 하는 일을 하게 되었었다.

십자군 당시, 십자군으로 참여를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으며,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싸우는 자들을 위해서 가톨릭 교회에서는 면죄부를 주었다. 바른 분별이 없을 때,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을 위해서 싸운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혐오하고 칼로 사람들을 죽이는 열심을 내면서 오히려 죄를 쌓는 일을 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기도를 많이 하고, 금식을 많이 하고, 성경을 많이 읽으며, 메시아가 오신다는 희망을 품고 살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일에 관하여서 특심을 내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하는 것이 바른 것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그토록 뜨거운 열심으로 종교 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이 그렇게 고대하던 메시야라는 사실을 분별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결국, 그들에게 바른 분별이 없을 때, 메시야를 죽인 자들이 되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1장 9-10절에서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라는 기도를 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바른 분별을 하여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쓰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그 무엇 보다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로마서 8장 5-8절에서는 분별의 선을 어떻게 그어야 하는 것인지를 선명하게 우리에게 알려준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이 말씀에서는 정확하게 두 부분이 나누어지는 모양의 설명을 해 주신다. 중간이 없다. 한쪽은, ‘육신을 따르는 자’, ‘육신의 일’, ‘육신의 생각’, ‘사망’, ‘하나님과 원수됨’,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이 자리를 한다. 반대쪽은, ‘영을 따르는 자’, ‘영의 일’, ‘영의 생각’, ‘생명’, ‘평안’이 자리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영’에 대한 지식이 없다. ‘영 분별’이라고 하면, 초자연적인 부분이어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아서 우리가 감히 자세히 알고 분별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성경에서 영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우리에게 해 주셨다. 요한복음 4장 24a절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영 분별은 결국 육신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분별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육신에 속한 우리가 하나님의 속하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분별 가운데에는 십자가가 있어야 할 수 밖에 없다. 육신을 따르는 자인 우리가,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영이신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된다.

육신의 일들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영의 일들이 된다. 사망의 이르는 육신의 생각들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생명의 이르는 영의 생각들이 된다. 율법 아래 있던 저주의 삶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복음 아래 있는 은혜의 삶이 된다. 인간적인 선행으로의 사랑의 삶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생을 주고자 하시는 사랑으로의 삶이 된다.

하는 일들 가운데서 나의 의를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매 순간 하나님의 의만을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이 된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는 삶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된다.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이 되려고 하는 노력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택하여 주심에 감격하여 감사함이 된다. 나의 뜻을 이루기 원하는 마음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된다.

현실만 보이던 내 관점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영원한 축복이 보이는 관점이 된다. 무겁고 얽매였던 삶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살아나고 자유하게 된다. 세상적인 축복에 집착하던 삶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영원한 축복을 사모하는 삶이 된다.

머리로 믿던 믿음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 된다. 불안과 초조 가운데 살던 삶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의 삶이 된다. 목마른 삶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생수가 넘치는 삶이 된다.

현세 중심의 삶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부활의 삶이 된다. 주님으로 인해서 내가 흥하려는 마음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주님은 흥하시고 나는 쇠하고자 하는 마음이 된다. 선한 모습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내 힘으로 선함을 이룰수 없는 나의 본전을 깨닫는 마음이 된다.

어두움의 삶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빛 가운데의 삶이 된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나는 할 수 없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만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된다.

인간의 노력을 중요시하는 마음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결국 다 하나님의 손임을 선포하는 마음이 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생각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믿음만이 감천이라는 생각이 된다. 도덕적으로 착한 것이 선이라는 생각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중심적인 것만이 선이라는 생각이 된다.

내 뜻을 하나님이 다 이루실 것이라는 생각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내 뜻을 부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이라는 생각이 된다. 세상에서의 성공을 최고로 알던 마음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최고로 알게 된다.

편안함을 원하는 마음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평안함을 누리게 된다. 마음에 내 중심의 선악과를 만들어 놓고 판단 기준을 삼았던 삶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죄인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중심 안에서만 분별의 기준을 삼는 삶이 된다. 참소자의 삶이, 십자가의 죽음과 주님을 믿음을 통해서, 기도하는 자의 삶이 된다. 

누가복음 17장 33절에서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라고 말씀을 하셨다. 십자가에 죽음을 통하지 않고는 목숨을 보전할 방법이 없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면 생명이 있다. 결국, 십자가 전은 육신이며 사망이고, 십자가 후는 영이고 생명이다. 위의 글들에 있어서, 전자는 육신이며, 어두움이며, 사망이 되는 것이고, 후자는, 영이며, 생명이며, 빛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로 나누고 나면, 빛과 어두움, 육신과 영은 너무나도 확실히 분별이 된다. 하나나님께서는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정확한 영 분별의 기준을 주셨다.

십자가로 인한 영 분별을 통해서, 주님의 자녀들이 생명의 삶, 부활의 삶을 살 때에, 그러한 자녀들로, 하나님의 소원인 부흥의 도구가 되게 하실 것을 확신하며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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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은 현, Stanton University 부총장
Kadesh Inc. (Puriton) 부사장
Talbot School of Theology (Master of Divinity)
Johns Hopkins University (Master’s in Applied Economics)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Master’s in Political Management
University of Phoenix (Doctor of Management in Organizational Leaders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