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서 ‘마르투스’라는 이름의 페이스 북 페이지가 우연히 보였다. 회심준비론 목회를 주장하는 정성우, 이동훈 목사가 자신들의 거짓된 신학 회심준비론을 주장하고 홍보하는 곳이다. 오늘 이분들이 자신들에게 유익이 된다 싶은 내용의 기사 하나를 마르투스라는 페이스 북 페이지에 올렸다.
 


그것은 합동이 23년 총회에서 회심준비론을 주의하여 사용하기로 결의했다는 내용의 기사이다.  지난 해 합동 총회는 정성우 목사와 회심준비론에 대해 ‘교류금지’를 결의하였다. 교류금지는 합동 교단에 소속 교회들과 목회자들과 신자들은 정성우 씨와 그의 회심준비론 사상을 듣지도, 보지도, 접촉하지도, 배우지도 말라는 뜻이다. 표현이 부드러운 이단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단이 아니고서야 교류를 금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최고의 개혁신학이라고 자랑하면서 홍보하면 영혼들을 편하게 사냥해 왔던 정성우 목사 쪽 사람들에게는 초상집이었을 것이다. 2년 전에 ‘기독교진리수호협회’가 주최한 세미나에 김효남 교수와 내가 마주 서서 서로의 신학적 입장을 주장하고 설전을 벌일 때, 정성우와 그 추종자들이 대거 몰려와서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하는 김효남 교수를 응원하던 그 대단한 기세가 기억난다. 그런데 교류금지를 당했으니, 얼마나 황망하였을까? 보지 않아도 생생하다.

그 뒤로 이들은 절치부심하며 재기와 반전을 노렸다. 이들의 입장을 지지해주는 합동의 청교도주의자들이 분연히 일어나 신학부를 점거하고 신학부를 통해 반격을 시도하였다. 신학부는 회심준비론을 옹호하는 학자들만으로 요식적인 공청회를 열었다. 그리고 회심준비론에 대한 자신들의 보고서를 총회에 올렸고, 그대로 통과시켰다.

그 보고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회심준비론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회심은 중생이다. 중생은 죽은 영혼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 사역의 공로가 전가되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심준비론이라는 것은 죽은 영혼을 살리기 위한 준비이다. 회심준비론은 곧 중생준비론이고 또 구원준비론인 셈이다.

대체 어떻게 중생과 구원과 회심을 준비한다는 것일까?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면 성령이 사람의 영혼을 각성시킨다고 한다. 영적 각성이라고 하는데, 영적 각성은 구원이 아니고 죽은 영혼이 스스로 자기의 구원을 추구할 수 있는 상태로 활성화되는 것이다.

회심준비론은 펠라기안-알미니안-웨슬리안-로마교회 신학에서는 인정되는 신앙이다. 이 신학들은 불신자의 영혼을 죽은 상태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신학들은 불신자의 영혼이 '이미 완전히 죽었다'가 아니라, 죽기 싫어하면서 좋은 병원을 찾아 명의에게서 수술이나 약을 처방받으려고 노력하는 환자의 상태와 같이 '병든' 또는 '죽어가는' 상태로 본다.

그래서 율법의 저주나 하나님의 진노를 전하고, 또 성령이 살짝 자극을 주면 그 병들고 죽어가는 영혼이 예배드리고, 회개하고, 기도하면서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스스로 간절하게 찾기 시작한다는 것이 이 신학의 논리이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1).

그러나 성경은 구원받기 이전의 인간의 영혼이 확실하게 죽은 상태라고 한다. 스스로 살아날 생각 조차 못하고, 살려주려는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는 전혀 반응이나 협력을 하지 못하는 죽은 상태라고 한다. 이것이 개혁신학이 말하는 불신자의 전적타락, 완전무능의 상태이다.

그러면 성경과 개혁신학은 불신자의 구원을 어떻게 설명할까? 인간의 편에서 준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고 불가능하다. 구원을 위한 준비라는 것이 있다면, 1)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 2)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자를 위해 대신 죽으심, 3) 하나님의 때에 택하신 자에게 복음이 전해지게 하심, 4) 택하신 자에게 복음이 전해질 때 먼저 하나님이 은혜로 역사하여 죽은 자의 영혼이 복음을 믿을 수있도록 먼저 살려주면서 믿게하시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이런을 가지고 회심준비론이라고 한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청교도 추종자들이 말하는 회심준비론은 인간 자신의 적극적인 구원 준비를 뜻한다.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받을 때, 성령이 영혼을 각성되게 하여, 지옥에 갈 자신의 운명을 슬퍼하면서, 자신의 영혼의 비참을 애통해하면서, 구원을 얻기 위해 기도하고 예배하고 회개하고 헌금도하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자기에게 임하기를 소망하고 고대하게 만드는 것이 회심준비론이다. 어지간히 정신이 강하지 않으면 우울증, 정신박약이 오기 쉽다. 실제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회심준비 목회로 인해 여러 영혼들이 자살로 죽어나간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러므로 회심준비론은 우리 개혁교회들이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 매우 주의하여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는 결론

합동 신학부는 다음과 같이 회심준비론을 매우 주의하여 사용하라고 하였다. 

“성령의 주권적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전개하는 회심을 일컬어 ‘회심준비론’이라 할 때는 개혁주의 전통에서 수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목회 현장에서는 회심준비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교리적 오해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매우 주의'하여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회심준비론에 대한 합동신학부 보고서 결론).

사실상 청교도 회심준비로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청교도 회심준비론은 율법의 저주가 선포될 때 성령이 영혼을 각성시킴으로 그 사람 자신이 스스로 구원을 추구하는 활동(회개, 기도, 예배)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의 회심준비론의 영적 각성은 성령이 일으킨다고 하는데,  그 상태에서 구원으로 가는 과정은 사람의 일이다. 한국의 청교도교회들이 신자들에게 추천하는 회심준비론 교육 책에 나오는 다음의 내용을 보라!
 

 

“자기 영혼의 구원에 관해서 근심하지 않는 사람 중에서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입니다” (존 에인젤 제임스. 구원을 열망하는 자들을 위하여(서문강 역), 29.

회심준비론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애쓰고, 몸부림치게 만드는 목회 방식이다. 영혼이 죽은 상태일 때 스스로 구원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한다는 것은 성경적인 접근이 아니고 개혁신학의 가르침도 아니다. 영안실의 시체는 전적으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요인에 의해 살아나기 전에는 아무런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성도는 언제 자기의 구원에 대한 고민이나 지각을 가지게 될까? 구원을 받는 그 순간부터이다. 기도와 예배와 회개도 마찬가지이다. 구원을 받는 그 순간, 즉 영혼이 살아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구원에 대해, 죄에 대해, 예배에 대해, 기도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시작되고 발전한다.

그렇다면 구원을 어떻게 임할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질 때 그 복음을 믿도록 성령께서 먼저 영혼을 살려주시면서 그리스도를 믿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순간에 구원이 임한다. 바로 그 순간 중생의 순간이고 성령세례를 받는 순간이다.

구원이 일어나기 전에 인간이 스스로 구원을 위해 고만하고 근심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상은 펠라기안, 로마교회, 알미니안, 웨슬리안들의 신앙이다. 정성우, 이동훈 목사가 계속 그 사상을 버리지 않을 것이면 감리교 쪽으로 가는 것이 좋다.

다음의 내용은 회심준비론자들이 영적으로 각성된 사람에게 주는 조언이다. 영적 각성은 구원이 아니고, 단지 구원을 사모하게 만드는 것이고, 또한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므로 영적 각성이 사그러지기 전에 빨리 중생(회심)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의 번역자 서문강 목사(좌), 김효남 목사(우, 회심준비론 전파자).
 '구원을 열망하는 자들을 위하여'의 번역자 서문강 목사(좌), 김효남 목사(우, 회심준비론 전파자).

 

“여러분이 지금 처해 있는 죄에 대한 각성의 상태에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그 죄에 대한 각성이 금방 회심으로 결망 맺든지 아니면 더 큰 냉담으로 변이되든지 둘 중 하나로 진행될 것입니다 ... 구원에 대한 여러분들의 근심이 사그러지면 아마 다시는 복원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첫째, 그것들을 상실할 가능성을 인정하십시오 ... 둘째, 이전의 냉담했던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생각 자체를 무서워하십시오 ... 셋째, 여러분들의 신앙적 인상들이 하나님의 성령님의 유효한 도우심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영구하게 남게하여 주십사고 하나님께 전심으로 간청하십시오 ... 넷째, 계속 구원을 추구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싶거든, 즉시로 자신의 행실 속에 죄가 된다고 여겨지는 것을 대번에 멈추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또는 죄를 짓지 않도록 극히 경계해야 합니다 ... 다섯째, 불신앙적 또는 세상적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을 삼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 여섯째, 생각속에 있는 신앙적 마땅한 지각을 보존할 것을 계산하고 주어진 모든 성경적 방편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이 구원을 받고 싶어 현재 간절한 염려를 하고 있으니 구원 받을 것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천만할 뿐아니라, 그것을 보증해 줄 만한 증거도 없습니다” (앞으책, 35-58).

영적 각성의 상태, 즉 조나단 에드워즈의 대각성의 분위기 같은 것이 지나가기 전에 빨리 중생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심하고서 구원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멸망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대체 인간이 무슨 방법으로 중생의 은혜를 끌고 온다는 것인가?

이래서 회심준비론 목회의 왕자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를 들었던 교인들 가운데,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었던 사례들이 있었다. 영적 각성 단계에서 중생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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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