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순종이 뭔가 하는 것이지요?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제가 신학교에 가서 능동순종에 대해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목사들은 능동순종 단어 조차도 들어보지 못하고 목회를 합니다. 그러면 이 능동순종의 문제를 다루기 전에 먼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뭐냐 하면, 구원과 구속의 개념을 알아야 되요. 이 개념을 모르니까 능동순종이 자꾸 헷갈리는 거예요. 

 구원과 구속의 개념을 말씀드릴께요. 제가 이것을 브니엘 대학교에서 많이 했고, 옛날에 로마서 강해에서도 많이 했는데, 다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릴께요. 우리 나라에서는 구원과 구속을 한꺼번에 섞었어요.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주께서 우리를 구속하였고 ... 이렇게 섞어가지고 구원과 구속이 구별되어 있는 것을 몰라요.

그리고 이 구원과 구속이 구별되어 있는데, 이것을 얼마나 구별을 시켜야 되는 것이 구원의 역사에서 중요한지 몰라요. ㅇ리 나라에서는 보편적으로 구원 그러면 지옥 갈 사람이 천국 가는 것 이거 하나만 가지고 있는 거라구요. 그러면 이 성경책은 무슨 책이냐? 구원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성경책인데, 성경의 이 많은 말씀들에서 그들의 구원의 개념은 딱 하나예요. 예수 믿고 천국에 가는 거예요. 

너무 값싼, 너무 수준이 얄팍한 그런 구원론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성도들의 모습이거든요. 그런대 이 성경책 자체가 뭐예요. 구원으로 이끌어가는 성경인데, 이 두꺼운 신구약 66권에서 겨우 구원은 한줄,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어요. 구원론이 그렇게 형성된 다음부터는 이 성경은 옛날 이야기 아니면 윤리책이 되버리고 맙니다.  구원을 이루어가는 책이 아니예요. 

그것의 시작이 뭐냐 하면 사람들이 구속과 구원의 개념을 몰라서 그래요. 이것이 공교롭게도 한국어로는 구자가 앞에 똑 같아 가지고 비슷하게 보이는데, 저는 이 단어 분명히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단어 때문에 해악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영어로 보십시오. 구원은 salvation이예요. salvation! 즉, 119 대원들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진 것을 구원이라고 해요. salvation! 죽어가는 사람을 건진 것이 구원이예요.

구속은 redemtion이예요. redemtion! 영어로 보면 완전히 달라요. 한글로 보면 비슷해 보여도 영어로 보면 완전히 달라요. redemtion은 뭐냐 하면요,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었잖아요? 내가 누구에게 물건을 사 잖아요? 그러면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라구요.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구속이예요. 그래서 저는 이 구속이라는 단어보다는 속전이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고 봐요. 속전이라는 단어를  써야 이게 헷갈리지 않지, 맨알 구원과 구속, 구원과 구속을 하니까  다 헷갈려가지고 둘다 천국에 가는 것이곘지! 둘다 지옥에 가는 것 아니겠지! ... 이렇게 생각하는데, 구원은 지옥을 면하는 거라구요.

구원은 지옥을 변하는 것이구요. 그다음에 구속은 내가 하나님께 갚을 것을 갚은 거예요. 이해가 되나요? Redemption! 오늘은 제가 구속과 구원을 Redemption과 salvation을 사용하여 더 많이 말할거예요. 왜냐하면 자꾸 습관이 되어서 구원과 구속을 헷갈려하기 때문에 요것을 나누어주는 것이 여러분의 구원론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시 말합니다. 구속은 뭐예요? salvation(앞에서는 redemtion이라고 했음)이예요. 죽어가는 사람을 끄집어 내는 것이 구원(salvation)이예요. 구속은 뭡니까? 속전이예요. redemtiom이예요. 내가 빛진 것을 갚아 내는 것! 내가 빚진 것을 갚아 내는 것이 redemtion! 죽어가는 것을 꺼내는 것이 salvation이예요.

 전혀 다르잖아요. 죽어가는 것은 꺼내는 것은 119 대원이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시장에서 내가 빛진 것을 갚아내는 것은 시장에서 상인들이 하는 행위예요. 전혀 다른 것이잖아요. 이 전혀 다른 것이 구별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예요.

이것은 여러분의 머리에 탑재하고 그 다음으로 가 봅시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아!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이 과일을 먹으면 정녕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잖아요. 하나님이 누구에게 말했냐 하면, 아담에게 말했어요. 니가 이 선악과 먹는 날에는, 먹는다! 행위이죠? 행위! 니가 그것을 행할 때에는 니가 정녕 죽으리라! 그런 거예요.

그러면 그 언약을 지켜내는 것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아담의 책임이예요. 그것을 우리가 조직신학에서 행위언약이라고 해요. 로마서 5장을 봅시다. 12절을 봅시다. 이것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하는 거잖아요. ... 제가 지금부터 능동적 순종이 교리화되어 있는지 성경으로 쭉 풀어드릴 거예요(5분 11초까지)” (정대운 목사).

누군가 정대운 목사의 최근 설교 영상을 들으라고 소개하였다. 앞으론 내용을 녹취하여 주면서 들으라고 하면 좋겠다. 내가 어떻게 정대운 목사의 목사의 설교를 다 듣겠는가? 앞으로 소개할 때에는 녹취까지 하여서 알려주시기 바란다.

처음 몇 분을 들으면서 녹취하였다. 정대운 목사는 구속과 구원을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정대운 목사는 왜 그런 시도를 하였을까?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의 타당성을 교인들에게 설득하려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그런 시도를 할 이유가 없다. 조금 더 들어보니 역시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이야기를 하였다.

더 이상 들어보지 않았으나, 정대운 목사의 논리는 인간이 하나님에게 갚을 것을 그리스도가 대신 갚는 것이 능동적 순종이고,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 수동적 순종이라는 논리를 전개하려는 것 같다. 그런데 뭔가 뒤죽박죽이다. 원래대로 가는 길이 아닌 것 같다. 의심되는 사람을 직접 들어보기 바란다.

속전은 아담의 원죄로 죄의 종으로, 마귀의 종으로 팔린 우리의 몸값을 그리스도께서 대신 자기 몸 값으로 치루시고 자유는 주신 것을 뜻한다. 원래 하나님이 자유자로 창조했으나 아담의 죄로 죄와 마귀의 종으로 팔린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자기 목숨 값으로 다시 자유인으로 회복시켜주신 것이 구속이다. 그때 몸값으로 지불되는 돈을 영어로 ransom이라고 한다. 그리고 돈을 내고 자유인으로 만들어주는 행위를 redemtion이라고 한다.

구원(salvation)이란 무엇일까?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 아담과 우리가 아담의 범죄로 죄와 사탄과 죽음과 지옥으로 떨어진 불행한 상태를 바꾸어 다시 자유자로,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을 누리는 자로 회복되는 것이 구원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과 피로 우리를 구속하심으로 우리가 구원되었다.

정대운 목사는 왜 갑자기 구속과 구원을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일까? 그 중에 하나를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으로 연결시키고, 또 하나를 수동적 순종으로 연결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내용을 설교하려고 시도했다면 엉터리이고 또 심하게는 이단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어주신 방법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다른 구원론은 필히 이단사상으로 귀결되어진다. 안 그럴 수가 없다. 과연 정대운 목사가 그리했는지 아니했는지 독자들이 직접 듣고 확인하기 바란다.

중요한 사실은 성경이 구속과 구원이 무엇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가르치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은 구속과 구원 모두가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죗값을 갚아 우리를 죄에게서 해방시키는 것, 즉 죄용서를 주는 것이 곧 구속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redemption)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 1:7).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redeemed)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밷전 1:18, 19).

동시에 성경은 그리스도가 자기의 피로 우리에게 칭의를 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성경이 이렇게 말하니, 그리스도의 피 외에 다른 무엇으로 구속이 이루어지고 또 그리스도의 피 외에 다른 무엇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면 이단이다. 일반적으로 청교도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능동적 순종)가 우리에게 칭의를 주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수동적 순종)이 구속(속죄, 죄용서)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피 공로 외에 다른 무엇으로 천국과 영생과 죄용서와 칭의를 얻는다고 하면 이단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구원론 분야에서는 성경과 한 점 정도의 차이만 나도 이단이다.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에서 왜 그런 위대한 능력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자기의 의와 거룩을 그대로 가진 죄없는 사람으로 오시어 우리의 죗값으로 흘리신 피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를 없애시고 믿음과 성령 안에서 자기를 우리에게 연합하여 자기의 의가 우리의 것이 되게 하셨다. 우리도 하나님의 의가 되어 영생을 누리게 되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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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