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합신 출신 목회자들에 대한 우려가 많다고 한다. 나도 그런 우려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 내가 직접 경험한 점들을 이야기 하고 싶다. 나는 그것을 알미니안주의적 칼뱅주의를 뜻하는 신조어 '아르뱅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도르트신조가 이단 사상으로 정죄한 알미니아 신학을 복음으로 발전시킨 청교도 개혁주의라고 말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부터 말하는 아르뱅주의에 대한 말들이 모든 합신 출신 목회자들 전부에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다. 내가 접해 본 어떤 합신 목사들에게서 느낀 점들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합신 출신 목회자들 전체에 해당되는 문제들이라고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1)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 아담을 영원한 생명이 없는 상태로 창조하셨다.

내가 접해 본 합신 출신 목사들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자기 백성으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완전히 거룩하게, 하나님을 섬기라는 사명을 버리지 않고 즐거이 하나님을 섬기는 한 죽음이 없는 몸으로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을 때 그에게 영생이 없었다고 보는 것은 성경적이지 못하고, 칼빈이 가르친 내용과 완전히 다르다.
 

2) 아담의 마음에 영생을 얻게하는 십계명을 기록한 상태로 창조하셨다.

내가 접해 본 합신 목사들은 십계명이 태초부터 인간의 영생의 길이고 생명을 얻게하는 하나님의 수단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영생을 얻게 하려고 마음에 영생을 위한 십계명을 기록하여 아담을 창조하셨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십계명은 구원을 받는 것과 전혀 무관하고, 하나님을 믿는 은혜로 구원 받은 백성들의 삶의 가이드였다. 죄를 범하지도 않은 아담의 마음에 십계명을 기록하여 주셨다는 것은 성경적이지 못한 이야기이다.  
 

3) 아담은 완전하게 선하게 지어진 것이 아니고 악과 죄를 향하여 충동하는 내부의 성향을 가진 상태로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 죄와 함께 아담을 창조하셨고 또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적하고 억제시키는 십계명도 아담에게 주셨다. 아담은 십계명의 통제를 받음으로 자기를 구원받게 했어야 했다.

내가 접해 본 합신 목사들은 아담은 죄의 유혹을 강하게 받는 죄인으로 창조되었으므로 하나님이 죄를 지적하는 율법을 함께 주셨고, 아담은 율법을 적극적으로 실행하여 자기를 영생 얻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었어야 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담에게 죄를 지을 수있는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과 악과 죄를 향한 충동이 있도록 창조하셨다는 것은 전혀 다른 내용이다. 하나님이 악과 죄를 아담과 함께 창조하신 것은 아니다.   
 

4) 아담은 하나님께 죄를 짓건 말건 죽어야 하는 사람으로 창조되었다.

내가 접해 본 합신 목사들은 아담이 영생을 위해 십계명 율법을 완전하게 실천하여야 하는 시험 기간 안에서 창조되었으니, 죽음은 아담에게 죄의 열매가 아니고 율법준수 시험에 통과하여 생명을 얻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죽어야 하는 사람이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죄를 범하지 않아도 아담이 죽어야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에 죽음이 함께 있었다는 것이니 올바른 성경 해석이 아니다. 
 

5) 아담의 원죄는 하나님 백성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아니고, 피조물의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과 권위에 대한 불순종(비협조)이었다. 

내가 접해 본 합신 목사들은 아담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죄가 하나님 백성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었다고 보지 않았다. 하나님이 흙으로 지어진 피조물에게 십계명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라고 명령했는데, 피조물 아담은 창조주의 명령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았고, 자기 자유의지의 욕망을 따라 불순종을 택하여 행하여 생명을 얻지 못하고 죽었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담의 원죄를 피조물의 창조주에 대한 불성실도 보는 것은 아담이 영원한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된 원죄의 실상을 오도하는 것이다. 
 

6) 하나님의 성육신의 근본적인 목적은 영생의 길, 생명의 길되는 율법준수를 완전하게 이행할 사람이 필요해서 였다. 

내가 접해 본 합신 목사들은 하나님의 성육신의 근본 목적이 자기를 배반한 죄로 죽은 자기 백성의 죄를 친히 대신 갚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접해 본 합신 출신 목사들은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기 위해 반드시 완전한 율법준수를 실행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완전한 율법준수자(인간)가 필요해서 하나님의 성육신이 일어났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이 율법준수를 통해 영생을 얻어야 할 사람으로 창조하신 적이 없고, 율법준수가 영생의 조건이라는 성경의 가르침도 없다. 
 

7) 칭의의 핵심 원리는 하나님과의 화해, 즉 하나님께서 죄인의 죄를 용서하여 죄인을 자기에게로 받아주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명의 길, 영생의 길로 정한 ‘율법준수의 의’를 획득하는 것이다.

내가 접해 본 합신 목사들은 칭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이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죄인의 죄를 용서하여 화해하시고 죄인을 자기에게로 받아주심이 곧 칭의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접해 본 합신 목사들은 사람이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함으로 얻어지는 율법의 의를 획득하여 가지는 것이 칭의의 근본 원리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의 의를 영생의 자격으로 말하지 않는다. 성경에 의하면 율법의 의는 영생을 이미 얻은 사람을 더욱 복 받게 하는 것이니,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다. 
 

8) 그리스도는 십계명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하심으로 율법의 의를 획득하신 우리의 구세주이다.

내가 접해 본 합신 목사들은 그리스도의 구세주되심의 근거를 그리스도의 완전한 율법준수로 보았다. 하나님 자신이 친히 우리의 의가 되어주심으로 구원을 주시는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자기의 완전한 거룩을 담지하시는 사람으로 성육신하시어 우리를 죄를 대속하라는 성부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시어 죽기까지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순전하게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율법의 의를 얻으셔야만 했다는 말씀,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십계명을 힘써 지켰다는 말씀이 없다. 
 

9) 그리스도를 믿고 율법에 순종하려는 자세를 가지면 생명의 길, 영생의 길로 정해신 완전한 율법준수 조건이 철회된다.

내가 접해 본 합신 목사들은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생명의 길, 영생의 길로 정한 완전한 율법준수를 하지 않아도 구원을 얻는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완전한 율법준수를 하시었고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공의를 대신 만족시켰으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는 영생을 위한 율법준수가 이중으로 요구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율법준수가 영생의 조건이라는 말씀이 없고,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위한 율법준수 조건이 철회된다는 말씀도 없다. 
 

10)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스도의 완전한 율법준수 공덕이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도 완전히 율법준수한 것이 되어 율법의 의를 얻는다고 믿는다. 

내가 접해 본 합신 출신 목사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행하신 완전한 율법준수의 공덕을 전가 받았다고 자부하였다. 그리스도가 직접 율법준수하여 얻으신 율법의 의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신들에게 전가되어 하나님께서 완전한 율법준수자에게 주시는 영생의 자격을 얻었다고 자부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를 말하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율법의 의를 말하지 않는다. 
 

11)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율법준수하신 그리스도께서 얻어서 전가하시는 ‘율법의 의’이다.

내가 접해 본 합신 출신 목사들은 하나님의 거룩과 의를 완전하게 가지신 상태로 성육신하여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들은 착하고 선하신 그리스도가 완전하게 율법준수하시어 얻으신 율법의 의가 자신들에게 전가되었다는 사실을 더욱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의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는 이론은 돌트신조가 이미 지적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인성만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 소시누스 유형의 이단사상이다.  
 

12)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완전한 구원을 얻지 못한다.

내가 접해 본 합신 출신 목사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특이한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으로는 우리가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합신 출신 목사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는 우리를 단지 무죄상태가 되게 한다고 강조하였다. 무죄 상태는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한 소극적인 의이고 천국에 입성하여 행복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적극적인 의가 아니라고 했다. 영생을 위한 적극적인 의는 그리스도가 완전하게 율법준수하여 얻으신 율법의 의를 믿음으로 전가 받아서 덧입는 것이라고 했다. 율법준수에서 오는 율법의 의는 영생을 위한 적극적 의이고, 십자가의 속죄를 덧입어서 얻는 의는 의는 소극적 의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의지하라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영생을 위한 소극적 의라고 말하는 것은 심각한 이단사상이다.
 

13) 오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만이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오직 웨신서에 의해 감독되고 통제받아야 한다.

내가 접해 본 합신 출신 목사들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대한 특별한 자세가 있었다. 웨신서에는 아무런 오류가 없고, 웨신서에는 신적인 권위가 있고, 웨신서는 성령의 감동을 받는 무오류 상태의 사람들이 작성했고, 웨신서는 하나님이 친히 사람들의 손을 빌어서 기록하여 주신 신성한 문서라는 괴상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웨신서와 모든 다른 신앙 문서들을 인간의 작품들이고 항상 성경의 빛 아래 검증되어야 한다. 
 

14) 돌트 신조가 이단으로 정죄한 내용이라도 청교도들과 웨신서가 지지하고 믿었으면, 청교도와 웨신서의 권위에 의해 돌트신조가 이단으로 정죄한 내용은 무효화된다.

내가 접해 본 합신 출신 목사들은 칼빈주의 신학과 개혁교회 신앙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을 설명한 돌트 신조가 이단으로 정죄한 내용, 즉 알미니안들의 신앙을 이단시하지 않는 자세를 보였다. 청교도들과 웨신서가 그것을 지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돌트 신조가 이단사상으로 규정한 내용일지라도 청교도들이 좋아했고, 그리고 청교도 혁명 시대에 작성된 웨신서가 지지하면 그 자체로서 정당한 기독교 신앙이 된다는 이상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돌트 신조의 내용은 개혁교회(칼빈주의)의 신앙을 설명하고 수호하기 쓰여진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돌르 신조가 이단으로 규정한 내용을 무시하면서 칼빈주의 신앙을 주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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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