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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절대진리, 칼빈 하교리 웨신서 바빙크 벌코프 박형룡은 사람의 성경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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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절대진리, 칼빈 하교리 웨신서 바빙크 벌코프 박형룡은 사람의 성경 해설
  • 정이철
  • 승인 2022.05.23 0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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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원 교수(총신 신대원장)
정승원 교수(총신 신대원장)

 

지난 번에 총신 신대원장 정승원 교수(이후 정승원)의 논문 “죽산 박형룡의 온전한 순종”‘1. 서론’‘2. 언약적 차원의 순종’에서 발견되는 주요 내용을 살펴보았다. 관심있는 분들은 다음의 글을 보기바란다. 

"정승원 교수(총신 신대원장)의 박형룡의 능동순종에 대한 연구 발표"(크릭)

오늘은 ‘3.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의 유기적 관계’에서 발견되는 주요 내용을 살펴보는 첫번째 시간이다. 

정승원의 주요 논지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 상호 침투적이고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율법에의 순종을 통한 의를 능동적 순종을 통한 의라고 한다면 율법의 공의에 만족한 형벌을 대신 받으신 의는 수동적 순종을 통한 의라고 하겠다. 그러나 둘 다 율법의 성취임을 강조하고 있다. 구분되지만 분리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승원).

“전반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구별되거나 차별화된 것으로 보기보다는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정승원).

“박형룡 역시 능동적 순종을 따로 주장하기보다는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의 불가분의 관계를 강조하며 온전한 순종을 주장한다” (정승원).

정승원의 이 말은 능동순종 논쟁의 실제와 다르고 능동순종 교리의 심각한 이단성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말이다. 농동순종 주장자들이 이단으로 규정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효력을 멸시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십자가는 단지 우리에게 죄용서만 주었고, 그것으로는 우리가 완전한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십자가의 능력 외에 다른 무엇을 그리스도께서 더 가지셨어야 우리 믿는 자들에게 천국 영생의 자격이 주어진다고 주장한다.
 

먼저 칭의-구원의 원리에 대해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을 보자.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0)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게 하셨느니라.” (히 10:14)

“예수도 자기 피로서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 13:12)

성경은 거룩한 사람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죄로 죽은 자기 백성들의 죗값으로 자기의 거룩한 인격과 목숨을 하나님께 배상으로 드리셨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속죄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가 완전히 만족되었고,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모두 배상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시게 되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하나님이 그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 3: 25,26)
 

그런데 성경을 멸시하는 능동순종 이단들이 칭의의 원리에 대해 어떻게 주장하는지 보라.

“그리스도의 율법의 순종과 관련하여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의 율법의 순종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순종으로 얻으신 율법의 의와 영생의 권리가 죄인들에게 전가하여 주시는 데에 그 의미가 있음을 기억해 두는 일입니다. 죄인들의 보증인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속한 죄인들을 위하여, 율법을 완전히 순종을 하시어 율법의 의를 이루심으로써 영생의 권리를 획득하시고, 그 권리를 행사하십니다.” (김병훈,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 <8장 5항>”, 기독교개혁신보, 2016.4.12.)

그리스도가 율법 순종으로 얻은 의가 그리스도 자신과 우리의 영생의 권리, 즉 칭의의 근거라고 한다. 이 분의 말 속에 우리의 칭의에 영향 미치는 십자가의 효력에 대한 이해가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고자 자기의 거룩한 목숨과 인격을 대신 희생했다는 말이 있는가?

그리스도가 율법 순종으로 얻은 의가 그리스도 자신에게도 효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그렇다' 하는 사람,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되게 한 원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율법 준수에 있다고 주장하는 점에서는 저들은 모두 같은 이단이다.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형벌을 다 받으신 것, 그것을 수동적 순종이라고 하고 그리스도가 그의 생애 전체에 있어서 하나님께 우리가 바쳐야 할 모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신 측면에서 생각할 때, 그것을 능동적 순종이라고 합니다. 나누어 놓고 보니까 수동적 순종을 통하여서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다 받은 것이 되고, 그리고 능동적 순종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그가 본래에 가졌던 의에 더하여 이 세상에 계실 때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다 이루신 그 의에 적극적 순종에 플러스 된 요인이 있으니까, 그 의를 우리에게 주실 수가 있게 되었어요.” (이승구)

이승구도 우리를 지옥 형벌에서 면제되게 하려고 그리스도가 대신 형벌을 받으신 것을 수종적 순종,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스도가 율법을 준수하여 의를 얻으신 것을 능동적 순종이라고 했다. 죄용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칭의는 그리스도의 성실한 율법준수에서 왔다고 했다.

정승원은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저 이단들의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속죄와 율법준수 사역은 개구리 가랑이처럼 찢어져 있다.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믿음으로 전가 받는다는 교리를 세우고자 한다면,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에 대해 완벽한 순종을 하였음을 의존하지 않는다면 결코 불가능하다” (김재성 2021, 75)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말하려고 하면, 반드시 어떤 기준에 근거해서 옳다고 인정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가 의로운 삶을 살았다는 선언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율법이다” (김재성 2021, 91).

김재성도 그리스도 자신이 모세의 율법을 다 지켜 천국 영생을 누릴 자격이 있는 의인으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도가 율법 준수로 얻으신 그것이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도 의인되었다고 주장한다. 김재성의 말 어디에 거룩하신 그리스도가 자기를 우리의 죗값으로 아버지께 드리심으로 우리가 의인이 되었다는 말이 있는가?

정승원의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말은 그냥 이론이다. 실제로 저들의 이단적 신앙 속에서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의 잘 훈련된 기계체조 선수의 가랑이처럼 서로 떨어져 쭉 뻗어있다.

“칭의와 죄 용서는 동일하지 않다 ... 나의 죄가 용서받은 것 외에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적극적인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고 우리의 것으로 인정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준행하고 높이셨으며, 그 결과 율법의 모든 요구에 직면하신 의로운 분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런 그리스도의 의가 나의 것이 되게 하였다.” (로이드 존스의 말/ 신호섭 2016, 130)

능동순종 주장자들은 로이드 존스처럼 성경적 칭의신학을 떠나있다. 그러나 성경과 칼빈주의자들에게는 칭의와 죄용서는 동일하다.
 

"이것은 바울이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4)고 한 것과 똑같은 뜻이다. 그뿐 아니라, 로마서 4장에서 그는 처음으로 칭의를 의의 전가라고 부르며 칭의를 죄의 용서에 포함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4:6-7, 32:1)고 말하였다" (기독교강요, 3.11.4).
 

"의롭다 하심은 예수 믿음에 근거해서 죄를 용서하여 무죄하다고 선언하심이다. 믿음고백에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이 온다. 칭의는 단지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에 대한 하나님의 무죄 선언이다. 따라서 법정적 선언이지 도덕적 칭의일 수 없다" (서철원 2018, 29)

 
능동순종 주의자들은 죄용서가 곧 칭의라는 성경의 진리를 부정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는 죄용서되어 지옥에 빠져나왔고, 율법에 복종하신 그리스도의 공로를 전가받아 우리가 의인으로 인정되었다고 한다. 정승원은 눈을 다시 뜨고 보기 바란다. 지금 누구를 옹호하려고 의례히 잘못 가르치고도 하나님의 은혜로 안식을 누리는 옛날에 죽은 무덤 속의 사람을 흔들어 깨우는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고난을 통해 확보하신 소극적 의의 목적은 죄책과 형벌로부터 구원하는 것일뿐, 죄인에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 그리스도의 수난은 의무로부터 구원하고 죄인을 무관심의 상태로 남겨 두지만, 그리스도의 적극적 의는 죄인에게 천국과 영생을 확보해 준다.” (에드워즈의 말/ 신호섭 2016, 123)

능동수종 추종자 조나단 에드워즈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지옥의 형벌만 제거했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주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율법준수가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천국을 확보해 주었다고 했다. 정승원에게는 이런 저명한 사람들의 그리스도를 둘로 쪼개는 칭의신학이 왜 보이지 않는가?

“소요리 문답의 ‘율법 아래 복종하시고’라는 표현은 능동적 순종이고,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을 받으시고 묻히셔서...’라는 내용은 수동적 순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 문답』만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고백서』에서도 ‘능동적 순종’ 혹은 ‘수동적 순종’이라는 용어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쉽게 내용들을 추론할 수 있다” (정승원)

소용리 문답의 ‘율법 아래 복종하시고’가 그리스도께서 율법 조항들을 모두 하나씩 완전하게 지켜서 얻의신 ‘율법의 의’ 즉 영생의 공덕으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천국 영생에 들어가게 했다는 뜻일까? 능동순종 주장자들은 언제나 그런 뜻으로 웨신서-소요리문답-대요리문답을 억지로 인용하고 있다.

정승원도 지금 같은 방식으로 거룩한 진리를 훼방하고 있다. 겸손하게 감히 정승원에게 부탁한다. 성경 외에 모든 신앙문건들을 100% 진리로 무조건 받지 말고 신학자답게 판단하라! 그리스도가 율법에 복종하셨다는 말이 죄에 사로잡힌 자기 백성들에 대한 율법의 요구를 자기 백성들에게 돌리지 않고 스스로 대신 받으심으로 율법으로부터 해방시켰다는 뜻 아닐까?

그렇지 않고 율법 조항들을 다 지켜서 율법의 의(영생의 공덕)을 획득하셨다는 뜻인가? 만일 소요리문답이 그리스도가 율법조항들을 모두 이수하여 영생의 공덕을 우리 대신 획득하셨다는 의미로 저렇게 말했다면, 총신신대원장까지 된 신학 교수의 소임이 무엇일까? 자신과 시대를 달리하였던 선배 죄인들이 만든 문건이 성경에 합당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는지 검증하는 것이다.

나 같은 천한 사람도 그런 생각을 가지는데, 총신 신대원장까지 된 교수님이 그런 생각을 못한다면, 총신의 신학은 어찌되는 것인가? 어떻게 웨신서와 소요리문답이 능동적 순종을 말하지 않았을지라도 사실상 가르쳤다고 함부로 예단하고 맘대로 인용하 것인가?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60문은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가?’ 이에 대답은 다음과 같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 비록 나는 슬프게도 모든 하나님의 율법(commandments)에 거슬러 죄를 지었고 그 중 어떤 것도 지키지 못했고 여전히 죄를 지으려 한다고 내 양심이 나를 정죄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공로는 하나 없이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의 완벽한 만족과 의와 거룩을 내게 전가시키신다’” (정승원).

정승원은 하교리의 그 말 속에 문제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체 인간의 죄는 누구에 대한 죄인가? 오직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죄이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사랑과 은혜를 배반한 것이 인간의 죄이다. 아담이 하나님께 반역죄를 범할 때, 모세의 율법이 그곳에 있었던가? 우르시누스(하교리 저자)가 “나는 슬프게도 모든 하나님의 율법(commandments)에 거슬러 죄를 지었고 그 중 어떤 것도 지키지 못했고 여전히 죄를 지으려 한다”라고 말하는 내용의 문제를 왜 정승원은 보지 못할까?

우리는 아담과 함께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사랑과 은혜를 배반하는 죄를 범했다. 그때 그곳에 아담과 우리를 지배하고 판단하는 율법이라는 것은 없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롬 5:13)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롬 5:20)

성경은 아담이 율법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저주받았다고 말한다. 칼빈도 “아브라함이 죽은 후 약 400년이 지난 후에 율법이 첨가되었다”라고 말했다 (기독교강요, 1.7.1). 우리가 태어나서 범하는 모든 죄는 처음 아담과 함께 지은 죄에 따라오는 죄들이다. 우리가 태어나서 범하는 많은 죄들도 오직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사랑과 은혜에 대한 죄이다. 

율법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죄(원죄)를 따라 일어나는 무수한 죄들(자범죄)이 하나님 앞에 정상 질서가 아님을 지적하기 위해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도입도었다. 율법은 죄가 피가 되고 살이 되어버린 우리의 실상을 지적하고 사형을 선고하고자 왔다. 율법은 사람이 스스로 노력해도 그 죄에서 놓어날 수 없음을 알게 만들고자 나중에 와서 끝없이 지적해댔다. 율법은 율법의 요구대로 대신 사형당하여 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계시하고자 암담 안에서 우리의 처음 죄가 있은 후 ‘나중에’ ‘나중에’ ‘나중에’ 왔다.

총신 신대원장이신 정승원 교수에게 부탁한다. 우르시누스나, 정승원이나, 정이철이나 웨신총회의 신학자들이나 ... 다 우리와 같은 죄인들이다. 그들이 몇 글자 썼다고 그것을 성경처럼 맹종하면서 신학을 논하는 교수 생활에 만족하지 않아야 한다.

아담 창조와 동시에 율법이 도입되었고, 처음부터 하나님이 아담을 율법에 지배되어 살게했다는 신학은 이단신학이다. 오늘 날의 복음에 대한 이 엄청난 혼란은 하나님이 율법 안에서 죄인도 아니고, 의인도 아니고, 하나님 백성도 아닌 ‘변종의 아담’, ‘보호관찰 대상 아담’을 창조하셨다는 창조론 이단상이 종교개혁 교회에 침투하여 주류 신학이 되면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아담을 어정쩡하게 만들어 놓고, “율법을 잘 지키는 공덕을 쌓으면 영생을 주고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어 주마!”라고 언약(창조언약, 자연언약, 율법언약, 행위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이론인가? 나는 슬프게도 모든 하나님의 율법(commandments)에 거슬러 죄를 지었고 그 중 어떤 것도 지키지 못했고 여전히 죄를 지으려 한다”라고 하교리 저자 우르시누스가 말한 이유는 바로 그 잘못된 창조신학 풍토에 살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우리 개혁교회의 선배들이 태초에 아담이 율법과 함께 창조되어 율법의 지배를 받으면 생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태초부터 율법주의가 하나님 백성의 신앙이었다고 보았고 율법을 하나님과 동격을 만들었다. 그래서 우루시누스는 자신이 율법을 지키지 않은 죄를 지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우리의 모든 죄들은 율법이 오기 전에 일어났고, 본질적으로 율법에 대해 지은 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지은 죄들이다. 나중에 도입된 율법은 그 죄를 지적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게 만들었다. 태초부터 율법이 하나님 옆 자리에 있었다는 이단사상이 교정되지 않고, 오히려 정통 개혁주의라고 홍보되었다. 인간이 율법과 함께, 율법 안에서 창조되어, 율법을 지킴으로 영생을 얻어야 하는 빙신으로 태어났다고 가르치는 것을 내가 400년 더 일찍 태어나 막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다 (ㅋㅋㅋ).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그것은 율법이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코르넬리스 프롱크 2012, 257)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율법을 마음에 새겨주셨습니다.” (코르넬리스 프롱크 2012, 257)

이런 그릇된 창조론-율법론 이단사상을 무비판적으로 우리가 배우고 믿은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어이없게도 우리의 죄가 율법을 지키지 못한 죄라고 말하는 것이다. 총신 신대원장 정승원 교수는 왜 이런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가? 

다음에 계속 살펴보도록 하자.
 

<참고문헌>
신호섭. 2016. 개혁주의 전가교리. 지평서원
김재성. 2021.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언약
이승구. 강의영상.
       Accessed: https://www.youtube.com/watch?v=ecoDVBEluHg&t=2s
존 칼빈. 기독교강요
코르넬리스 프롱크. 2012. 도르트신조 강해(황준호 역). 그 책의 사람들
김병훈. 2016.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8장 5항>”.
      기독교개혁신보. 2016. 4.12 
서철원 2018, 구원론. 쿰란. I⁸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현재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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