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 교단의 정태홍 목사의 영상 “자유의지를 가르치는 정동수 목사와 사랑제일교회를 떠나라(2)”를 들었다. 다 듣고 보니 같은 제목의 첫 번째 영상도 보였다. 첫번째 영상의 30초 가량 듣고 나중에 들으려고 미루어두었다. 정태홍 목사는 첫 번째 영상을 “오늘은 정동수 목사가 가르치는 자유의지가 성경적인가라는 주제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하였다.

정동수 목사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고 그것이 인간의 구원에 관하여 크게 작용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정동수 목사에게 좋은 감정이 있다. 오순절 은사주의 폐해를 설명하는 외국의 좋은 책을 번역하여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필자도 초기에 절판된 정동수 목사가 번역한 그 책의 PDF 파일을 통해 큰 도움을 얻었다.

그런데 이후 킹제임스 번역본 절대주의를 주장하여 합동 이대위에 이단성 조사를 받기도 했는데,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정동수 목사는 미국에서 유래한 어떤 행위구원 노선의 침례교회 쪽이라고 들었다. 그 침례교회 계통의 사람들이 한국에 약간 있는 것 같은데, 매우 열성적으로 칼빈과 어거스틴이 이단이라고 강조하는것 같았다.

어거스틴은 기독교 신학이 갖추어지는 때에 활동했던 분이므로 신학이 많이 완성된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점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그의 나쁜 점들은 로마교회가 가져가서 로마교회의 중요한 신학으로 삼았고 그의 좋은 점들은 종교개혁 교회들이 취하여 올바른 신학을 세우는데 사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칼빈에 대해 이단이라는 말을 쉽게 입에 담는 것은 곧 그 자신들이 이단이라는 뜻이다. 칼빈이라고 완전하지는 않으나 이단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심각한 실수와 오류를 범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칼빈은 이신칭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주권, 은혜, 택하심에 성경적으로 바르게 신학을 세운 신학자이다. 칼빈을 이단이라고 쉽게 조롱한다는 것은 그 자신들이 행위구원 신학을 신봉한다는 증거이다. 그렇지 않으면 칼빈을 이단이라고 조롱하는 현상이 나올 수가 없다.

행위구원 신학을 신봉한다는 것은 것은 구원에 대해 작용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타락 후에도 여전히 정상 작동하는 자유의지를 통해 스스로 그리스도를 믿어 자기를 구원한다는 신학을 신봉하지 않으면 칼빈을 이단이라고 조롱하는 현상은 나올 수가 없다.

정태홍 목사의 영상을 보니 정동수 목사도 사람이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그리스도를 찾아 믿어서 자기를 구원한다는 행위구원론 신학을 신자들에게 가르친 모양이다. 정동수 목사가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면, 독자들은 이 글을 단지 사람에게 여전히 정상작동하는 자유의지가 있어서 스스로 자기의 구원을 위해 일한다고 가르치는 다음과 같은 신학들에 대한 일반적 비판의 글로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펠리기안기주의
로마교회구원론
알미니안주의
웨슬리안주의

위의 신학들은 사람이 자기의 자유의지로서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기에 합당한 행위와 삶을 보임으로, 즉 '믿음' + '완전성화' or '율법준수' or '완전한 회개' 등으로 자기의 구원을 완성한다고 가르치니 다음과 같이 불리우기도 한다.

율법주의 구원론
성화주의 구원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위의 모든 구원론들은 이단사상이거나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거짓 신학이다. 구원을 얻는 과정에서 사람의 자유의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담 안에서 타락했을 때, 즉 하나님께 반역하는 죄를 범하기 전에는 자유의지가 있었고 정상적으로 작용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뜻에 합당하게 행동하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졌다. 그때 우리는 완전히 순전한 상태였고, 하나님과 아무 간격이나 막힘이 없는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상태였다. 그때 우리는 순전한 하나님의 형상(하나님을 닮은 인격)을 따라 창조된 상태 그대로였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그 고귀한 자유와 능력을 하나님께 반역하고 하나님과 같은 신이 되려는 망상을 위해 사용했다. 즉시 죄가 침투하여 우리의 인격과 마음이 죄에 오염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상실했다. 그때부터 우리의 자유의지는 오직 죄를 짓는 방향으로만 작동하는 자유의지이다. 우리의 모든 죄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따라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의 자범죄에 대한 책임이 언제나 우리 자신에게 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하나님께 반역한 죄인으로 출생한다. 단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빼고 나머지 모든 사람은 죄의 종으로 태어난다. 구제, 선행 등의 윤리적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올바른 일을 할 수 있기를 하나, 구원과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죽은 상태로 태어난다.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지 못하는 정도를 넘어 악의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회피하고 더 나아가 대항하는 죄악된 인격와 마음으로 태어난다.

이 말이 이해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교회에 나와 그리스도를 믿게 된 과정을 돌아보기 바란다.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권하는 사람을 통한 성령의 전도의 말이 너무도 좋아서 두 손을 들고 기뻐하면서 스스로 교회로 달려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나의 구원의 여정을 돌아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죄의 종으로 태어나서 흑암의 권세 아래 살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죄의 오염된 상태로 태어났고, 우리의 지성과 인격의 모든 영역이 죄의 지배를 받는 전적타락의 상태로, 그리고 구원과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없는 전적무능의 무능의 상태로 태어났다. 우리들의 그 상태를 성경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 50: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아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성경은 거짓 말하는 책이 아니다. 성경은 인간이 태어날 때 자기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분명히 가르친다. 그러므로 자연적 인간이 구원과 영생에 대한 권면을 듣고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스스로 그리스도를 믿어 자기를 구원받게 한다는 모든 신학은 이단사상이거나 거짓 신학이다.

구원 받기 이전의 인간의 자유의지는 오직 하나님께 범죄하고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대적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방향으로만 작동하는 자유의지이다. 구원에 대해 조금이라도 바르게 작동하는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말하는 목사는 거짓 선생이다.

문론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스스로 그리스도를 믿은 것처럼 보이는 사례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이미 성령이 은혜로 역사하여 그 사람의 마음에 구원의 빛을 조명하여 먼저 그 사람이 어둠에서 벗어나고 즐거이 구원의 진리를 수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일 성령이 먼저 은혜를 부어주시지 않았다면, 모든 사람의 의지는 끝까지 구원을 거절하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방향으로만 작동하게 된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벧전 1:2)

성경은 구원 받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기 위해 예수 믿도록 택하심을 받았다고 말한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성경은 사람이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그리스도를 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죄의 종이된 사람들을 택하여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게 했다고 한다.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 6:45)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게 나온 모든 성도들이 그 전에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바울의 선교를 통해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미 택하신 자들이고 성령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믿게 하심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한다.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롬 9:10-11)

리브가의 태중에 야곱과에서 두 쌍둥이가 잉태되었는데, 그들이 태어나서 아무런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하나는 하나님 백성으로 또 하나는 버려진 자가 되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구원은 사람의 의지와 전적으로 무관하고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혜를 따라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미리 택하시고, 택하신 자를 구원 얻도록 그리스도 앞으로 부르시고, 부르신 자에게 은혜로 역사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믿음에 근거하여 의롭다고 선언하신다고 말한다. 구원에 대해 인간의 자유의지와 행동하는 능력이 작용한다고 전혀 말하지 않는다.

사람이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자기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일한다고 가르치는 모든 설교와 신학은 우리들을 기독교 밖으로 몰고 가는 거짓 교훈이다. 만일 정동수 목사가 이와 같은 악을 범했다면, 속히 회개해야 한다. 지난번 킹 제임스 번역본 절대주의로 인해 합동 이대위로 불려간 것은 이 문제에 비하면 약과일 것이다. 이 점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구원을 위해 작용한다고 주장하는 다른 교묘한 신학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 사람의 회심준비를 가르치는 청교도주의는 사람에게 율법의 저주를 선포하여 두렵게 하면 성령이 역사하여 그 사람에게 ‘영적각성’이 일어난다고 한다. 청교도 신학이 말하는 영적각성은 구원이 아니다. 사람이 자신의 불쌍한 영적상태, 죄악됨, 지옥에 가야만 하는 운명에 대해 자각하게 되어 슬퍼하면서 구원받는 길을 스스로 찾기 시작하게 되는 상태라고 가르친다.

청교도 신학은 이 상태를 다른 말로 ‘율법적 겸비’라고도 하는데, 사람이 구원을 위해 자기의 자유의지와 능력을 사용한다고 하니 매우 거짓되고 이단적인 가르침이다. 에드워즈의 대각성은 사람들을 이와 같은 상태로 이끌어가는 매우 거짓된 부흥이었다. 이단적이고 거짓된 가르침이었으므로 마귀가 크게 역사하여 귀신의 추잡스러운 신체적 현상들이 많이 나타났다.

구원을 받기 전까지 우리의 자유의지는 오직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을 행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회피하도록 만드는 자유의지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의 중생(거듭남)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구원받는 순간부터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와 싸울 수도 있는 달라진 자유의지를 가지게 된다.


구원과 자유의지에 대한 결론을 맺어보자.

구원 이전에 인간이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구원의 길을 찾고 선택한다는 모든 가르침은 거짓 신학이고 이단 사상이다. 율법선포와 성령의 역사(청교도), 모두에게 공히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도움의 은총(로마교회), 모두에게 공히 부어주시는 선행은혜(웨슬리안)로 사람이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구원의 길을 스스로 찾고 선택한다는 가르침은 성경과 다른 가르침이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구원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가르치는 펠라기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도 거짓 신학이고 이단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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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