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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개혁주의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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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개혁주의란 무엇인가요?
  • 정이철
  • 승인 2020.12.16 0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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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이란?(2회)

 

최근 심각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개혁신학의 내용, 기준, 그리고 개혁신학의 근본적 권위에 대한 혼선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개혁신학은 오직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는 신학이다. 그리고 보편교회가 결정한 교리들과 신학과 함께 칼빈의 성경 해석을 매우 중시하는 신학이다. 이와 같은 개혁신학의 근본적 원리를 파괴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오랜 동안 미국 미시간 주의 칼빈신학원의 교회사 교수를 했던 리차드 멀러이다. 멀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칼빈은 자신의 시대의 신앙고백적 개혁주의 전통의 유일한 표준이 아니다. 또한 칼빈은 그의 죽음 이후의 세대들 안에서 무엇이 개혁주의적인지를 가늠하는 잣대로서 유일한 인물로 거론되어서도 안 된다.”(리차드 멀러, 칼빈 이후의 개혁신학, 한병수 역, 32)

멀러는 칼빈이 개혁신학의 유일한 표준이 아니라고 한다. 문자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오직 성경이 개혁신학의 유일한 표준이지 칼빈이 개혁신학의 표준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칼빈의 성경해석과 신학을 중시하는 이유는 칼빈이 누구보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였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빈이 개혁신학을 결정하는 유일한 인물로 거론되어서는 안 된다는 멀러의 말의 매우 꺼림직하다. 문자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이런 말을 하려면 그 자신이 칼빈 이상으로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멀러는 그런 정도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는 개혁신학과는 거리가 먼 동네에서 성장한 사람이다. 리차드 멀러가 신학자이니, 그가 신학을 공부한 신학교들의 노선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뉴욕의 자유주의 신학교(유니온 신학교, M. Div)와 감리교 신학교(듀크 대학, Ph.D)에서 개혁신학이 아닌 다른 신학을 공부했다. 그가 졸업한 신학교들은 개혁신학과 거리가 매우 멀다. 유니온 신학교가 인간의 천부적인 죄와 죄를 해결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방법에 대해 바르게 믿고 가르치는 학교인가? 나는 멀러처럼 듀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본 적이 없으나, 그 학교의 신학이 인간의 행위를 칭의와 연관시키는 신학이라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학교에서 신학을 배운 사람이 미시간의 칼빈신학원의 대표적인 교수가 되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칼빈신학원이 칼빈의 개혁신학을 계승하던 옛날의 그 학교가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이다. 칼빈신학원이 개혁신학을 바르게 계승하고 있다면 멀러 같은 인물을 교수도 영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칼빈신학원을 운영하는 교단(CRC)이 2012년에 천주교와 세례협정문을 맺었다는 사실 하나만 보아도 그 교단과 그 교단의 신학교가 어찌되어 가는지 알 수 있다. 칼빈신학원과 CRC 교단은 여성안수, 오순절-신사도주의, WCC 등에 대해서도 개혁신학의 범주에서 벗어난지 오래이다.

칼빈의 신학이 개혁신학의 근본적 기초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리차드 멀러가 더 중시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개신교 스콜라주의’
‘개신교 정통주의’
‘후기 개혁주의’

‘개신교 스콜라주의’(Protestant Scholasticism)라는 것은 중세천주교의 신학 방법이었던 스콜라주의가 유럽의 개신교들의 신학방법이 되었고, 그래서 종교개혁 이후 유럽의 개신교 신학자들이 칼빈의 신학을 스콜라적 방법으로 발전시켰다 것을 의미한다. 칼빈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방법으로 신학을 전개한 천주교의 방식을 매우 경계하였다. 그러나 칼빈이 죽은 후 유럽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크게 유행하였고, 칼빈의 신학을 연구하는 후배들이 천주교의 방식을 다시 수용하였다.

개신교 스콜라주의 특징은 철학적 추론 및 논증이다. 성경에서 단 한 줄의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자신의 영생의 권리를 취득했고, 그것이 믿는 자들에게 물려진다는 청교도들의 능동순종 교리가 개신교 스콜라 신학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개신교 정통주의’(Protestant Orthodoxy)는 칼빈의 종교개혁 신학이 유럽 교회에 정착되던 시기의 신학을 뜻한다. 대략 칼빈이 죽은 후(1564)부터 시작되어 1640년대에 들어 그 절정기를 맞았는데, 그때 영국에서 청교도들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탄생되었다. 개신교 정통주의의 대표적인 특징은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이다. '후기 개혁주의'(Post Reformed)라는 말도 칼빈의 신학이 이후 유럽 개혁교회에 정착되던 때의 개혁신학을 뜻한다.

문제는 이 세 가지 말로 표현되는 같은 사상 속에는 칼빈의 개혁신학과 심히 모순되는 내용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개혁신학 속으로 들어온 스파이 사상, 즉 이단사상이라도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자리하고 있다. 리차드 멀러는 그것이 더 중시하고 그것이 더 올바른 신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개신교 정통주의, 후기 개혁주의, 개신교 스콜라주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와 있을까? 바로 그것을 지금 한국 교회에서는 ‘청교도 개혁주의’(Puritan Reformed Theology)라고 부르고 있다. 개혁신학 속으로 들어와서 자리잡은 이단 사상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것인데, 아무도 분별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확실하게 분별하고 경계해야 한다. 개혁신학으로 포장되어 버린 청교도 개혁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 주변에 다가와 있는 이단 사상들은 관연 무엇인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태초의 아담의 상태

개혁신학은 스스로 계시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아담이 영생과 모든 은혜를 받았고,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성이었다고 가르친다. 칼빈과 서철원 박사의 가르침을 보자.

“아담에게서 영생의 은사를 빼앗고 주지 않으셨을 때에 주께서는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고 하셨다(창 3:22).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아담이 잃어버린 불멸성을 그 과실이 회복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이 말씀을 다른 말로 옮긴다면, ‘나의 약속의 상징에 집착해서 헛된 확신을 즐기지 못하도록 불멸에 대한 소망을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그에게서 빼앗으리라’는 말이 될 것이다.”(기독교강요, 4.14.12)

“물체는 해체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육체 자체로는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영혼을 담고 하나님의 형상의 그릇이 되게 하셨으므로 죄가 개입되지 않는 한 죽지 않게 지으셨다. 육체는 일면 죽을 수 있지만 또 일면 불가사적으로 창조되었다. 죄에 의해 상해가 가해지지 않으면 불사하도록 창조되었다. 물질로 지어졌으므로 그 자체로 불사할 수 없지만 죄의 상해가 하해지지 않는 한 하나님의 은혜로 불사하도록 조성되었다. 따라서 죄의 도입만 없었으면 죽지 않고 영생에 이를 수 있었다. 죽음은 완전히 죄의 결과이고 죄에 대한 책임으로 부과되었다.”(서철원, 인간론, 71)

그러나 청교도 개혁주의는 아담이 범죄하지 않으면 그 상태로 영생할 수 있도록 창조되어졌음을 부정한다. 대신 아담이 하나님께 영생을 청구할 수 있는 자격을 구비하여 하나님께 요청하였어야 했고, 그러면 하나님이 그에게 영생을 주었을 것이라고 가르친다. 영생을 청구할 수 있는 자격이 마음에 새겨진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2. 아담의 원죄

개혁신학은 처음부터 하나님 백성으로 창조되어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남기로 하나님과 언약한 아담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괴하였다고 한다. 아담이 언약 파괴의 표시로서 선악과를 범한 것이 아담의 원죄라고 가르친다. 칼빈과 서철원 박사의 말을 보자.

“그러나 그 후로 야심과 교만이 배은망덕과 함께 생겨났으니, 아담은 받은 것 이상을 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신 그 위대하고 풍성한 은혜를 파렴치하게 경멸했기 때문이다. 흙의 아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도 또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지 않는 것을 사소한 일로 보았으니 이 얼마나 해괴하고 흉악한 태도였는가!”(기독교강요, 2.1.4)
 

“그리고 언약을 체결하시어 사람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 창조 주 하나님만을 섬기게 정하셨다 ... 이렇게 큰 호의를 입어 하나님의 백성 된 자가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였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의 인격과 엄위와 영광을 짓밟힘 당하고 무시당하셨다. 사람이 반역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않기로 결행하므로 그의 인격과 엄위를 무시하였다. 하나님 섬김의 명령을 어기어 창조주 하나님의 위엄과 엄위를 무시하였다. 언약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주자가 되기로 하였다.”(서철원, 그리스도론, 195)

그러나 청교도 개혁주의는 아담의 원죄를 전혀 다르게 가르친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영생의 조건을 충족하여 영생을 청구할 수 있는 기회(은혜), 즉 율법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으나, 아담이 하나님의 호의를 멸시하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여 율법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 원죄라고 가르친다.
 

3. 그리스도의 구원의 방식

개혁신학은 하나님과의 첫 언약을 파기한 아담의 죄를 속하려고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시었고 십자가에 달려 아담의 죗값으로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만 강조한다. 우리의 죗값으로 피 흘리심으로 이루어진 죄용서로 인하여 칭의와 구원이 구원이 일어났다고 가르친다. 칼빈과 서철원 박사의 가르침을 보자.

“그래서 사도행전 13장에 있는 바울의 설교에 이런 말이 있다. ‘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여기에 보면 죄의 용서를 말한 후에, 그에 대한 해석으로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말을 한다.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을 분명히 죄의 사면으로 해석하며, 의롭다함을 율법의 행위에서 분리시키고 있다.(기독교강요, 3.11.3)

“의롭다 하심은 예수 믿음에 근거해서 죄를 용서하여 무죄하다고 선언하심이다. 믿음고백에 죄용서와 의롭다하심이 온다. 칭의는 단지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에 대한 하나님의 무죄 선언이다. 따라서 법정적 선언이지 도덕적 칭의일 수 없다.”(서철원, 구원론, 29)

그러나 청교도 개혁주의는 그리스도의 속죄만으로 우리의 구원이 일어나기에는 부족했다고 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무엇이 그리스도에게 필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율법에 순종하여 먼저 자신의 영생을 위한 의(권리, 자격)를 얻으셨고, 그것이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적극적 의로 작용하여 칭의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순종과 피로 말미암는 죄 용서가 아닌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를 통한 의의 획득으로 우리의 칭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4. 율법의 목적

개혁신학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이 자기 백성의 구원이 아니라 이미 은혜로 구원 받은 자기 백성의 삶과 규범, 그리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고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칼빈과 서철원 박사의 말을 보자.

"율법은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 논하게 될 때 더 명백하게 볼 수 있겠지만 그 유용성이 다양할지라도 특별히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목의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에게 맡겨진 것이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율법의 마침’(롬 10:4)이라고 부른 것은 여기서 기인된 것이다."(기독교강요, 1.6.2.)

"율법은 구원의 방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으로 역사한다. 본래 율법은 언약 백성들의 생활규범이기 때문이다. 율법은 구원의 성취를 위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율법은 생활규범이고 구원의 길은 전혀 아니다."(서철원, 신학서론, 202)

그러나 청교도 개혁주의는 율법에 대해 전혀 다르게 가르친다. 율법이 처음부터 구원의 수단으로 왔고, 아담이 율법을 준수하지 못하여 그리스도가 오시어 대신 율법을 준수했다고 한다. 또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이후 신자는 율법의 정죄에서는 벗어났을지라도 여전히 율법준수의 요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5. 복음전파 방식

개혁신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을 고백하는 순간 죄용서와 칭의가 일어나고, 이후 성령의 역사로 회개와 성화가 일평생 이어진다고 가르친다. 개혁신학은 인간이 먼저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믿음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칼빈과 서철원 박사의 말을 보자.

“이 일을 근거로 바울은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 만한 가치가 없다고 단언한다(고전 2:2).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은…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21절) 증거했노라고 말하였다. 또 다른 구절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전했다.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 26:17-18).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리스도에게서 우리에게 나타나 보인다고 증언한다.”(기독교강요, 3.2.1)

“사람으로 회개하게 하려면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복음을 선포하므로 자기가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인 줄을 깨닫고 회개하여 믿고 의에 이른다 (롬 4:13-16). 율법은 이미 믿는 자들에게 죄를 알게 하고 피하게 하기 위해서 선포된다.”(서철원, 교회론, 98)

“복음선포를 들은 사람들에게 성령이 역사하셔서 거듭나게 하신다. 거듭남과 동시적으로 성령의 권면을 따라 주 예수를 믿는다는 믿음고백을 하게 된다. 믿음고백과 함께 회개한다. 믿음고백과 회개는 언제든지 같이 가기 때문이다.” (서철원, 구원론, 66)

그러나 청교도 개혁주의는 믿음을 위한 인간의 준비를 가르친다. 구원을 위해서는 먼저 아담에게 부과되었던 행위언약이 지금 현재에도 선포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 자신이 아담 안에서 하나님의 영생의 조건이었던 율법준수에 이르지 못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한다. 절망 가운데서 우리 대신 율법을 준수해 주신 그리스도의 공로를 스스로 사모하여 한다고 한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사모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을 따라 임하는 이신칭의 은혜를 체험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청교도 개혁주의의 회심준비론인데, 그들은 단순한 복음전파를 통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비성경적인 구원 신념에 사로잡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최근 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Ph.D)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가 있고,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2021년 5월 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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