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전도했던 지인은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나오고 있지만, 믿음은 전혀 없다. 몇 년 동안 교회에 다녀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질문에 묶여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왜 악한 자들이 잘살고 선한 자들이 고통 받는가? 하나님이 정말 계시고 능력이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신다면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예수님을 잘 믿고 선한 자들을 복주고 믿지 않고 악한 자들을 벌주면 된다. 그렇게 간단한 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예수가 정말 하나님이라면 왜 그의 백성인 유대인들이 배척했겠는가? 예수에 대한 것은 기독교가 만들어낸 자신들만의 이론이다.”

그는 모든 기독교인에게 이렇게 도전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답변하지 못했다며, 기독교는 세뇌종교라고 주장한다. 이런 믿음을 갖고도 그는 교회봉사에 열심이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 출석하고 직분을 받아도 믿음 없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도 아주 많겠구나 하는 것을 그를 보면서 분명히 알게 되었다.

사실 이런 질문 때문에 하나님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가져봤던 질문들이고 이런 주제로 수많은 책도 출간되었다. 나도 질문해봤고 스스로 답변도 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과 미워하는 자들에게 왜 복과 화로써 분명히 표현하시지 않을까? 그렇게 하신다면 우리가 훨씬 더 잘 믿을 텐데…

구약의 이스라엘은 그랬다. 이스라엘이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주고 불순종하면 벌을 주시겠다고 언약하셨다. 하나님이 이렇게 선포하셨을 때 이스라엘은 아멘하며 답변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계속 죄를 지었다. 가장 큰 죄악은 하나님 이외에 이방신을 섬긴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탐욕 때문에, 이웃 나라의 바알신, 아세라신, 몰렉신 등을 우상숭배하면서 비가 많이 내려 풍년이 되고 가축이 번성하기를 기원했다.
 


우상숭배에 대한 결과는 분명하게 나타났다. 하나님은 전쟁이나 가뭄이나 전염병으로 고통주시면서 그들이 죄를 깨닫기를 기다리셨다. 이스라엘은 고통 중에서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문제에서 구원하셨다. 모든 것이 평안해지면 이스라엘은 다시 우상숭배하며 범죄했다. 죄된 본성은 끊임없이 탐욕하며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을 찾았다. 하나님은 영락없이 심판하셨다. 이스라엘은 고통 중에서 회개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며 구원하셨다 … 이스라엘의 천년 역사는 죄와 심판과 고통과 회개와 구원이 반복되는 역사다.

결국 이스라엘은 많은 경고를 들으며 멸망했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소망이었다. 하나님이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따를 능력이 없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인류의 문제였다. 모두 죄인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인류는 죄에서 구원해 줄 메시야가 필요했다.

하나님이 보내주실 메시야는 임마누엘이라 불릴 것이라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곁으로 오신다는 의미였지만, 전혀 상상할 수도 없고 납득할 수도 없는 말이었다.

이후 많은 ‘메시야’들이 나타났다. 이스라엘은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로부터 침략을 받았고 당시는 로마의 압제 아래 있었는데 많은 애국 영웅들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힘을 썼다. 저가 바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시야라고 기대했지만 얼마 후에는 그런 명칭이 취소되었다. 이스라엘을 압제에서 해방시켜준 ‘메시야’는 아무도 없었다.

이천 년 전에 이스라엘의 유대 땅에 예수라고 불리는 한 아기가 태어났다. 평범한 목수의 삶을 살던 예수는 30살이 되었을 때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는 자신이 메시야라고 선포하셨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적 가르침과 기적들을 보이셨다. 기적은 귀신들도 흉내낼 수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메시야라는 증거가 될 수 없었지만 그의 가르침은 인간의 것들과 전혀 달랐다. 또한 그는 구약에서 많이 예언되었던 메시야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그가 메시야라는 결정적 증거는 그의 죽음과 부활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정치적 메시야를 기다렸던 이스라엘은 예수를 부인했다. 뿐만 아니라 죽이기까지 했다.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구약시대 모세가 하나님께 누구시냐고 질문했을 때 하나님은 “I am”이라고 답변하셨다. 스스로 계신자 즉 창조주라는 의미였다. 예수도 자신을 “I am”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다. 구약을 잘 알고 있던 종교지도자들은 이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분명히 한분이신데 자기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형에 처해질 참혹한 죄였다. 그는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그것도 이미 예언된 것이었다.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대신 심판받기 위해서는 죽음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일생과 가르침과 예언은 신약에 잘 기록되었는데,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믿을 때 형통케하고 잘 살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이 없다. 오히려 고난 받고 미움 받고 애통한다는 말씀이 반복된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핍박받으며 순교했다. 죄악된 세상에서 예수 믿는 자들은 이리 떼 가운데 사는 양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하나님은 잘 믿고 안 믿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화와 복을 약속하셨다. 당시 사람들은 성경이 없었으므로 하나님에 대해 희미했다. 하나님이 계시지만 그가 어떤 분인지 잘 몰랐고 또 다른 민족이 섬기는 다른 신들과 비교할 때 누가 더 크고 위대한 진짜 신인지를 몰랐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치 어린아이를 훈련하시듯이 분명하게 상과 벌을 주시면서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능력을 알게 하셨다.

이제는 우리가 성경을 갖고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이지만 인간이 되어 내 죄를 대신 지고 심판받아 죽으신 분이다. 이젠 복을 받고 화를 피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구원주 예수님이심 때문에 따르게 되었다. 신부가 신랑의 돈이나 권력을 보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의 사람됨을 보고 사랑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직도 구약적 관점에서 번영신학과 형통신학을 가르치는 교회들은 예수님이 아니라 복을 우선시한다. 그런 교회의 교인들은 다른 신들이 복 준다고 하면 또 그 신들을 따라갈 것이다. 복을 따라다니며 우상숭배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번영과 형통 속에 있지 못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미움 받고 배척당한다는 죄책감으로 이중의 고통을 당한다. 힘들고 외롭고 아프다.

모든 것에 부요하신 하나님은 자녀들이 잘살고 행복하기 원하실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세상의 복을 주시는데 매우 조심스러우신 것 같다. 우리는 늘 죄지을 준비가 된 사람들처럼 조금 잘 나가면 교만함이 들어오면서 마구 빗나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천년 역사를 성경을 통해 한눈에 보면서 우리는 그들의 어리석음에 한숨짓지만, 지금의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요즘 잘나가는 대형교회 유력 목사님들을 보면서 특히 그런 생각이 든다. 헌금횡령, 성폭행, 교회세습, 학력조작과 같은 드러난 범죄보다도 더 심각한 죄는 우상을 인정하는 죄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숭배하면서 양쪽에서 좋은 것을 다 취하겠다고 착각했던 것처럼, 지금도 유력 목사들이 모든 종교들에 유사한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자신만 우상숭배로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배도하고 멸망케 하고 있다.

그들도 처음에는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주라는 신앙으로 신실하게 목회하면서 잘 성장했을 것이다. 그런데 커지고 유명해지면서 교만함으로 변질된 것이 아닐까? 저들이 그냥 작고 미약한 채로 남아있었다면 남들에게 부러움받지 못하고 자랑할 것이 없어도 겸손하게 기도하며 바른 신앙으로 남아있었을텐데, 복이 저주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죄인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인간이 되어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이루 표현할 수 없이 감격하게 된다. 잘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아도 그분을 믿고 사랑하고 따라갈 충분한 이유가 있다. 도무지 받을 자격없는 그 은혜 때문에 우리는 고난이나 죽음조차도 감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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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옥 선교사는 서강대에서 신문방송학, 산호제바이블컬리지에서 신학, 산호제주립대대학원에서 소셜웤을 전공했다. 서울과 산호제에서 다년간 직장을 다녔고 산호제에서는 교회에서 전도사로도 일했다. 현재는 예수님과 성경과 기독교에 대해 세상이 갖는 수많은 오해들에 대해 답변하며 인터넷을 통해 전도하고 있다.
저서 <예수신화?예수실화!>는 성경은 신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안목에서 기록된 역사서며, 예수님은 성인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변증한다. <시대읽기>는 기독교를 왜곡하거나 혼합해서 파괴하려는 반기독교적 세상의 정체와 그것의 반인륜적인 역사를 폭로한다. 이들 내용을 요약하고 추가해서 <예수는 실화다>와 <성경적 시대읽기>를 다시 출간했다. 최근 출간된 <다시살다>에서는 그리스도인이 된 개인 이야기를 간증한다. 번역서로는 <당신은 괜찮습니까?>와 <회복프라소>가 있는데 성경적 회개와 용서와 예수 안에서의 치유와 회복을 주제로 한다. joookkim@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