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의 함정 4

성도들은 성경에 대한 호기심이 상당히 많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성경 공부를 하다보면 많은 질문을 받는다. 때론 호기심 때문에 성경을 사변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목사)들은 모든 성경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간혹 어떤 교사는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식으로 성도들에게 믿음을 강조한다. 어떻게 보면 의심하는 성도들 보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믿음으로 믿는 성도가 더 훌륭한 신앙인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 기독교를 아주 미신적이고 비도덕적인 종교로 타락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과 성경은 아주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이성적이다. 또한 논리적이다. 쉐런 키에로케고르가 “신앙의 도약”을 주장하면서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단지 믿으면 된다고 하는 것을 주장하였다. 키에르케고르의 이 철학적 사유가 현대 기독교의 모토가 되면서 모든 기독교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논리적인 가르침이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이런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이 기독교 신앙을 거의 미신적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것을 깊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통 교회가 성도들에게 가르쳤던 신앙의 체계에서 요구되는 것은 바로 지식이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 이것이 가장 중요한 신학의 출발이라고 하는 것을 종교개혁자 칼빈도 지적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논리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지식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믿고 신앙의 도약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맹목적인 비신앙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성경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 대한 바른 지식이 있어야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거룩을 요구하신다. 신구약 성경에서 동일하게 이 거룩에 대한 요구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명령이다. 성도가 거룩하게 되는 길은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에서 일어난다고 우리 조상들은 가르쳐 왔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배움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배웠다고 해서 바른 신앙을 전부다 소유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참된 신앙은 지식에서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성경과 교리를 가르쳤다. 그러나 이제 현대교회 안에서 이러한 가르침을 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보기 드물다.

덴마크의 기독교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동상((1813-1865)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교회와 성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도 어떻게 해야 나타나는가에 대한 배움도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것은 가장 먼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사는지를 알게 된다.

이러한 전반적인 기독교의 신앙을 바르게 알려고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여기에 우리 기독교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이라고 하는 것이 성립된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믿음으로 믿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을 믿는다. 이것이 바른 기독교의 모습이다. 계시된 하나님, 계신 된 하나님의 의지(뜻)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기독교이다. 맹목적인 믿음이란 없다. 그저 믿기만 하면 복을 받고, 능력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무속종교에서나 가르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이러한 일들이 교회 가운데 일어났다. 중세시대에 로마교회가(로마카톨릭) 일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았다. 단지 사제들이 말하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면서 성화와 성상까지 만들어 성도들에게 거짓 복음을 전했다. 그 결과 그 시대 교회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이방종교와 같은 집단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반복이 오늘날에도 계속 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반문할 수 있다. 오늘날처럼 이렇게 말씀을 많이 가르치는 시대가 어디 있었는지? 많이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참된 신앙과 삶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와 가르침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기독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오늘날에도 역사한다. 기독교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이성적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지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도의 신앙과 삶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잘못된 신학의 한계에서 벗어나 바른 신앙의 길로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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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