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교 이석민 목사의 '구원론의 혼선을 진단한다'(1)

이석민 목사(대민교회, 성결교단)

항간에 구원에 관한 많은 글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많은 성도들이 구원관에 있어 흔들림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잘못된 구원론 때문이다. 즉 구원에 대하여 믿음만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주장들이다. 사실 구원은 믿음 외에 다른 것을 더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아더 핑크에 의하면 “믿기만 하면 구원이란 말은 마귀의 듣기 좋은 자장가다”하였다.

또한 적지 않은 사람들에 의하면 “더 이상 믿음만으로는 안 된다”는 식의 발언을 종종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그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주장들의 요지는 구원은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행함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온갖 행위와 의식(儀式)들을 이 단순한 복음에 더해보려고 갖은 애를 써오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덧붙여본들 결국 구원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요 아무것도 더할 것이 없다는 사실만 부각될 뿐이다(엡2:8). 구원은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러한 현상이 왜 나타나는지에 대하여 이선희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의 시대는 하늘로부터 임하는 진정한 부흥이 소멸되고 많은 시간이 흐른 시대, 영적으로 지극히 메마른 시대,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시대,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서서히 상실하고 있는 시대, 그래서 과거에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도 믿음을 상실하고 죄 가운데로 우수수 떨어지고 있는 시대, 그래서 결국 ‘정직합시다’ 같은 인간의 자구노력에 눈을 돌려보며 기대를 걸어보는 불쌍한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사람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진정한 믿음을 갈수록 보기 어려운 것과 믿음이 없으므로 행함이 없는 것과 그래서 믿음의 능력에 대한 오해와 기대 상실이 ...

즉, 이선희 교수는 "믿음의 능력“ 에 대한 오해를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을 그냥 입으로만 ‘나 예수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믿음은 확신이다. 무엇을 확신하는 것인가 그것은 곧 온 인류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하여 대신 죽음을 맞이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사실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 것은 부족하므로 어떤 형태로든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 외에 덧붙이려는 움직임은 기독교 이천 년 역사에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다.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엄밀히 말해 사단에게 속고 있는 증거일 뿐이다. 형식적인 믿음이 아닌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당연이 실천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냥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주님이시다. 마음으로만 느끼고 시인한 다음에 아무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게 진짜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거꾸로 생각해보자.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과연 그 행함은 어느 정도 선까지 가야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것인지를 이야기 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인간 중에 의를 행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무리 의로운 행위라고 생각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기준에서 의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의’로 인정해주시는 것이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을 보고 구원해 주시는 것이며 그 믿음조차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엡2:8) 만약 인간의 행위가 개입된다면 천국 가는 것이 각 사람의 능력에도 달려 있다는 말이 된다. 전적으로 타락해서 한 치의 희망조차 없는 인간 본연의 행위에서 선한 것은 나올 수 없다. 

우리는 이신 칭의 에 대한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한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이신 칭의의 원리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위해 만들어낸 이론이 아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갑자기 만들어낸 이론도 아니다. 신구약 구속사 전체에 걸쳐서 변함없이 적용된 원리이다. 아브라함은 결코 할례나 율법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의롭다함을 받지 않았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았다. 혈통적으로 아브라함과 관련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그의 후세대들 역시 아브라함과 동일한 방식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다. 이신 칭의 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이 바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고, 루터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통해 변화 된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만 가지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쓸데없는 자기주장 일 뿐이다. 성경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다는 말씀과 행위와 열매가 없는 신앙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함께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믿음이 있는 자는 삶 속에 그 믿음의 행위와 열매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사실 구원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다량으로 사용된 용어이다. 다른 종교에서 혹은 경전에서 구원이라는 단어는 성경만큼 흔하게 쓰지 않는다. 성경은 구원을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구원을 기록한 문서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곧 영생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생이 영생으로 가는 것이 곧 구원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구원은 그 이상으로 기대할 다른 것이 없다. 영생은 곧 사망을 이기는 것이며 구원의 내용을 모두 담은 소망이다. 인생이 바라는 환상과 같은 꿈이요 인생들이 스스로 길을 알지 못하는 꿈속의 미련이기도 하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 사실로 증명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의 진실이며 기독교의 본질적인 내용이다.

결국 구원받은 자는 천국에 갈 것이며 구원받지 못 한자는 지옥에 갈 것이다. 과연 어떤 것을 믿을 것인가? 그 믿음의 결과는 확연하게 다를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것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믿음만으로 안 된다는 것을 믿을 것인지는 본인의 결정이다. 하지만 그 결과의 차이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1.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조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조건은 불가능한 조건도 아니고 어렵지도 않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된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된다. 다른 것은 아무 필요 없다. 한평생 세상을 거꾸로 살고 세상에서 악한 일만 하다가도 마지막에 ‘이제부터 예수님을 믿겠다’ 이 말만 하면 된다. 이것이 기독교이다.(행16:31) 하나님께서 법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 만약 이렇게 만들지 않았다면 구원받을 자는 한 사람도 없다

하지만 구원이 그저 공짜로 주어진다는 사실 앞에서 사람들은 잘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그 좋은 천국에 들어가는데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공짜로 값없이 간다는 사실이 이해되지가 않는다. 그래서 선한 일을 많이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예수님을 믿되 선한 일도 많이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 아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은혜란 공짜로 받은 선물이란 말과 같다. 무엇인가를 해서 구원받으려고 한다면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유대인과 다를 바가 없다. 구원은 은혜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것이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께서는 다행히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너희는 내가 준 율법을 지켜라. 그래야만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나가게 할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애굽 땅을 나갈 수 있었다면 율법은 구원의 조건이 되었을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누구도 애굽에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대로 완전하게 행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있은 다음 율법이 주어졌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십계명은 구원의 조건(條件)이 아닌 결과(結果)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중심으로 살아가야 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먼저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1)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이 구원의 조건이다.

하나님이 인간 구원의 조건을 예수님의 이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게 하셨다. 이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만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종교도 하나님 나라에 인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 때 하나님의 형상과 모형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셨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기를 원하셨다. 우리를 만들어 주셨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등지고 타락한 인간이 다시 회복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이다. 

어느 종교에서 하나님의 자식이 된다는 말 들어본 적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을 가르치고 있는가? 성경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 천하인간에게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하였다.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 번도 주신 적이 없다. 인류의 역사에 그리스도 예수 이외에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이것은 반드시 믿고 그 말씀대로 따라야 될 절대적 조건이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미안하지만 구원과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유일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하나님은 배워야 된다든지, 가져야 된다든지, 무슨 고행을 해야 된다든지, 적선을 해야 된다든지 하는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다. 배운 사람만 천국 간다면 못 배운 사람은 어떻게 하겠는가? 가진 사람만 천국 간다면 못 가진 사람은 어떻게 하겠는가?? 또한 성지순례를 한번 갔다 와야 꼭 구원을 받는다든지 다른 조건을 말한 이야기가 성경에 쓰여 있다면 이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하지만 그러한 조건 하나 없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해서 독생자 예수를 주시고 그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고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고 기독교의 구원이다.
 

2)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믿는 것

노아 당시 노아의 여덟 식구보다 잘나고, 똑똑하고, 돈 많고, 잘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방주로 들어간 사람들만 구원 받았다. 구원의 조건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방주를 만들도록 하셨고 그 배안으로 들어간 사람만 구원해 주셨다. 노아가 만든 배 안에는 온갖 짐승이 들끓고 있었다. 오줌냄새, 똥냄새, 맹수소리, 새소리가 얽혀 아수라장이었다. 교회도 비슷하다. 남녀노소, 선인, 악인, 도둑놈, 알콜 중독자, 사기꾼, 정치인, 교육자, 언론인, 기업인, 연예인 등이 뒤엉켜 있다. 시끄럽고 냄새가 나는 곳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주 안에 있는 사람만 구원 받았다. 오늘도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구원을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밝히신다. 교회가 시끄럽고 냄새난다고 해서 교회를 불 질러 버리겠다든지 없애버려야 한다고 떠드는 것은 방주 안이 시끄럽고 냄새 난다고해서 방주를 폭파해 버리겠다는 것과 같다. 방주 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단 한 생명도 구원받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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