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신대 임성모 교수(조직신학)

장기영 교수님께,

감리교 신학대학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임성모 목사입니다. 제 글에 “두가지 오류”가 있다고 하셔서 답변드립니다.

첫째, 제 글에 “웨슬리가 특별한 은사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는 주장”이 있다며 틀렸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제 말이 아니고 웨슬리의 말입니다. 웨슬리는 특이한 은사 (“extraordinary gifts")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특이하지 않은 은사는 나타나고).

교수님이 인용하신 원문은 웨슬리 설교 “The More Excellent Way" 인듯한데, 바로 거기서 웨슬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It does not appear that these extraordinary gifts of the Holy Ghost were common in the church for more than two or three centuries ... From this time they almost totally ceased; very few instances of the kind were found.” 웨슬리가 보기에 그런 특별한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하거나 사랑이 식어졌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이 주장하신 것처럼 그것은 “은사중지론”이 아니고, 앞에서 열거한 이유 때문에 현상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혹시 나타난다하더라도 웨슬리는 그것이 인간의 상상에 의한 것이 아닌지 성경에 비추어봐서 분별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웨슬리나 제 글에서나 은사중지론은 주장된 바가 없습니다. 교수님은 제가 하지 않은 은사중지론을 제가 했다며 반박하시는 겁니다. 웨슬리는 특이한 은사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았다는 것이 제 글의 내용입니다.

둘째, “웨슬리는 Second Blessing을 단지 성화에서의 점진적 성장으로 본 것이 아니라, 완전성화로 보았습니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즉 the second blessing을 완전성화로 보지 않은 제 입장을 틀렸다고 하십니다. 제 글에서 주장한 대로, the second blessing을 완전성화 (entire sanctification)와 일치시키는 것은 holiness movement에서 비롯됩니다. 감리교회의 해석은 다릅니다. 성결교회의 해석으로 감리교회 해석을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웨슬리가 the second blessing을 완전성화와 일치시킨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해석하는 것 뿐입니다. 교수님이 인용하신 Kenneth J. Collins도 웨슬리가 the second blessing을 말했다 ... 라는 정도로 언급하는데 그치지, 그것을 entire sanctification과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참조. 『The Theology of John Wesley: Holy Love and the Shape of Grace』 Nashville, TN: Abingdon Press, 2007, p. 281).

감사합니다. 

 

장기영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

(이 글은 <바른믿음>에 게시된 감신대 임성모 박사의 "웨슬리 관점에서 신사도 운동 비판"에 대해 서울신대 장기영 박사께서 두 가지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 글 "장기영 교수, 은사에 대한 웨슬리의 입장은 은사지속주의"에 대한 임성모 박사의 설명입니다. 웨슬리 신학에 대한 더 알게 해 주는 웨슬리 학자들의 글을 환영합니다. <바른믿음> 대표 정이철 목사는 임성모 교수의 "웨슬리 관점에서 신사도 운동 비판"이 웨슬리 신학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라면 웨슬리를 존경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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