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 신앙과 현대교회 신앙의 차이(62)

예수님은 2000년 전 유대사회에서 태어나셨다. 이 때문에 많은 신학자들과 목사들은 성경을 당시 유대인의 관점에서 또는 유대사회에 대한 문화적 배경에서 성경을 이해하고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해야 한다고 그렇게 주장한다. 사실 이러한 주장에는 아주 심각한 독소가 숨어 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으로 오셨고 그 나라와 그 사회속에서 사역을 하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대사회를 근거로 해서 사셨던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유대사회를 매개체로 사용하신 것이다. 이 개념에 대한 바른 인식이 어느 정도 가르쳐지느냐에 따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다. 만약 예수님께서 유대사회를 근거로 해서 사역을 하셨다면 예수님은 그 당시 사회와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래서 성경의 계시는 유대사회와 문화를 그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복음을 이해하는데 있어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가 가지는 독특성이 강조된다. 또한 복음이 유대사회에서 주장된 것이므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결국 복음은 시대마다 바뀐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바뀔 수 있다는 전제가 여기에 숨어 있다. 아주 강력한 실례가 바로 여성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직분을 가지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당시 예수님의 시대의 산물, 유대 사회의 문화로 한정한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결국 성경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간의 주장이 정당성을 가지게 하였다. 결국 현대교회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면 예수님은 유대사회를 매개로해서 자신을 계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든 시대에 자신을 동일하게 계시하신다. 이것이 복음이다. 여전히 예수님은 모든 시대를 통치하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왕이시다. 단지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유대사회라고 하는 곳에 오셨기 때문에 그 시대가 중요할 수 있지만 예수님의 성육신은 그 시대를 변화시키고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오고가는 모든 세대를 다 통치하시고 계시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2000년 전의 유대사회의 문화와 신학은 중요할 수 있지만 그것이 복음의 기준이 될 수 없다.

현대신학이 계속 인간예수를 주장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심을 부인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구원은 이미 창조경륜 가운데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때가 차매”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고 하는 그 의미가 역사의 시간속에서 이루어진 구원경륜임을 바르게 증거한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음 가운데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의 목적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시대와 문화와 상황을 더 중요하게 만든 것이다. 오늘날 거짓 교사들과 목사들은 마치 예수님께서 유대인으로 유대 사회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였기 때문에 유대문화를 아는 것을 중요하게 가르친다. 하지만 예수님의 성육신은 유대사회와 문화를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매개로 삼고 자신을 성자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이다. 시간과 장소와 문화를 매개체로, 하나의 도구로 삼으셨다.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탐구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연구한 것이 전부라고 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겸허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른 신학의 표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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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