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 목사의 책 <세상을 끌어안는 중보기도>를 계속 읽어보니 심각한 내용들이 많이 보였다. 이동원 목사는 신사도 운동가들의 중보기도에서 나타나는 '명령하고 선포하는 기도'까지 수용하여 따라하였음이 바견되었다. 기독교의 기도는 구원얻은 신자가 창조주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하는 수단이며, 또한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최고의 믿음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올바로 배워 성경적으로 잘 해야 한다.

그러나 사탄은 기도를 변질시켜서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지 못하게 만들고자 늘 고도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신사도 운동가들이 창안한 중보기도 사상 그 자체는 기독교의 기도를 변질시키는 마귀의 작품이다. 또한 더 효과있는 중보기도를 실행하기 위해 저들이 종종 동원하는 재미있는 기술들은 기독교의 기도를 더욱 더 심각하게 변질시키는 못된 것이다. 신사도 운동가들은 중보기도의 파워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 명령하는 기도를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명령하는 기도라고도 하고 선포하는 기도라고 하는 그것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이제는 그것을 한번 해 보라고 권해도 부끄러워서 더 이상 이전처럼 폼을 재면서 "~할 지어다"라고 하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명령하고 선포한다는 그런 웃기는 기도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를 비롯한 몇 사람들이 실날하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일반 피조물들과 악한 영들을 향하여 명령한는 형태의 기도는 우스꽝스러운 장난이다. 결코 그런 우스운 짓들을 성경적인 기도일 수가 없다.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근거하여 겸손하고 예의바른 자세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간구하는 형식이어야만 한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청하는 형식이어야 성경적인 기도이다. 마치 용돈과 등록금이 필요한 어린 자녀가 아버지에게 “아버지, 등록금을 내야합니다.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머니, 용돈이 필요합니다.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형식으로 겸손하게 요청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 

그런데 신사도 운동가들은 더 효력있는 중보기도를 올려 더 빠르고 강력한 응답을 받기 위해 선포하는 형식으로 기도의 내용을 쏘아부치라고 가르쳤다.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특별한 기도의 권세를 가진 중보기도자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은사와 권세가 있다고 했다. 그들의 궤변과 선동이 매우 그럴싸하여 다수의 사람들이 미혹되고 속았다. 갑자기 이전에 보지 못했던 일들, 기도한다면서 '~할 지어다'라고 명령하고 '~이 이루어졌음을 선포합니다'하는 기도도 아니고 뭣도 아닌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웃기는 행동을 비전스쿨이라는 곳에 와서 강의하는 인터콥의 이상한 간사들을 통해 처음 경험했었다. 그들은 강의를 마치고 기도하는 시간에 통성기도를 시키고 난 후 자신이 이런 식으로 기도를 마무리했다.

"중동의 ooo의 복음의 문을 가로막는 어둠의 영들은 물러갈지어다!”
“~에서 복음을 대적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갈지어다!”

그리고 "엘렐렐레 우알라스데 오오요세 신노리세" ... 이런 소리를 썩어가면서 그리하니 아주 그럴싸하였다. 그들의 모습이 마치 영적 특전사나 되는 것 같았고 그들의 그런 짓거리를 따라하는 것이 새로운 첨단 신앙기술을 배우는 것 같아 보였다. 아무 개념이 없는 평신도들이 인터콥의 간사 직분을 받아서 부지런을 떨면서 그런 짓들을 따라하였다. 참 재미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도 명령하는 형태는 기독교의 기도가 아니다. 피조물들에 대한 명령은 피조물들을 만드시고 그 뜻대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이만이 하시는 일이다. 또한 초개교회 당시의 특별한 사람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도록 사명을 받은 사도들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었다. 그들이 특히 귀신들을 향하여 명령하여 이적을 일으켰던 것은 그들이 전파하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특별계시과 관련된 행위였다. 결코 오늘 날의 모든 신자들이 그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악한 영들과 피조물에게 명령할 수 있는 권세가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깊은 신학적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혹시 우리에게 그러한 권세가 있어서 그 권세를 시행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영들과 피조물에게 명령하는 것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섞여지면 안되고, 혼동되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 하나는 귀신에게 명령하여 무슨 이적처럼 보이는 일을 일으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은 귀신과 짝하는 가증한 거짓 영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당장은 귀신이 그들을 통해 미혹을 일으키려고 꿍짝을 맞추어서 그럴싸한 일을 벌이지만, 시간이 흐려면 그들이 귀신에게 포로된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성경에서 영들과 피조물을 향하여 명령하는 모습이 종종 나타나기는 해도 오늘 날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특별한 영적싸움을 수행하였던 성경의 특별한 사람들이 귀신에게 명령하기도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결코 그것을 기도라고 가치지는 않았다. 성경적 기도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예의바르게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하고 요청하는 형식이어야 한다. 누가 성경의 특별한 사람의 명령을 따라해 보고 싶어 재량껏 용기를 내어 귀신을 향해 명령도 해보고 선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옳고 틀리고를 떠나 그리한다고 누가 잡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하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짓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귀신에게 미혹된다는 것도 기억하고 가급적 쓸모없는 그런 일을 안하는 것이 좋다.  

 

명령기도는 하나님을 수하에 두고 부리는 형식의 망조

'명령기도', 또는 '선포기도'는 하나님을 자기 수하에 두고 부리는 교만한 형태의 거짓 기도이다. 자녀는 용돈이나 등록금이 필요할 때, 부모님에게 겸손하고 예의바르게 사정을 설명하면서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부모님 앞에서 아무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고 생각해 보라!

“나에게 용돈이 생길지어다!”
“나에게 등록금이 있올 지어다”

이렇게 선포한다는 것은 결국 부모님에게 용돈과 등록금을 내 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이다. 용돈과 등록금을 주실 부모님 앞에서 다짜고짜 선포하는 것은 쉽게 말해서 싸가지 없는 후레자식이 하는 개망나니 행실이다. 그렇게 무례하게 우회적으로 돈 내놓으라고 윽박하고 생떼를 부리면 어느 부모의 마음이 즐거울까?

신사도 운동가들에게서 창안된 '명령기도', 또는 '선포기도'는 이와 같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거짓 기도이다. 마귀가 하나님을 모욕하기 위해 자기에게 미혹된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하였다. 그런데 그것을 분간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동원 목사와 같은 사람들이 동조하고 더 나아가 앞장서 그 짓을 하며 사람들에게 따라해 보라고 가르쳤으니 이제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할까?

마귀의 종들, 신사도 운동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권세를 받은 자들을 그렇게 명령하고 선포하는 기도를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렇게 기도하라는 내용이 없다. 이동원 목사의 책을 보니 그는 당시 서서히 떠오르던 그런 풍조에 영향을 받아 그런 이론들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책 205페이지의 소제목이 “적의 본부를 덮치는 명령기도”이다. 명령하는 기도를 통해 원수 마귀의 본부를 강하게 공격하여 파괴한다는 발상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과연 지금 누가 마귀와 피조물들을 향하여 명령하는 기도를 하여 뜻하는 바를 이룰 수가 있을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시는 일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망령된 궤변일 뿐이다. 이동원 목사는 어디에서 이런 것을 배웠을까요? 이동원 목사는 오순절 교회들을 통해 명령하는 기도를 배웠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특별히 영적 전쟁에서 이런 경험을 한 선배들의 권면에서는 영적 전쟁에서는 유용한 두 가지 기도 형태가 있는데 바로 명령기도와 금식기도입니다. 사실 제 자신의 이러한 기도의 형태들에 대해서는 오순절계 교회의 신앙의 실천에서 배운 것입니다.”

이동원 목사는 오순절 교회들의 신앙을 공부하다가 이런 것을 배웠다고 하는데, 그의 책이 나온 때가 2005년이었다. 아직까지 신사도 운동의 모습과 정체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못했던 때이다. 2,000년대에 피터 와그너가 거짓 사도들의 연맹을 발족함으로 신사도 운동을 출범했으나, 일반에게 신사도 운동의 특징이 피부로 느껴진 것은 2010년이 넘어서였다. 그래서 이동원 목사는 신사도 운동가들의 초기의 활동을 기존의 오순절 운동가들의 활동과 같은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랬다고 해서 큰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오순절운동과 신사도운동의 차이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동원 목사가 명령하는 기도의 성경적 근거로 제시하는 내용들 모두가 예수님이 악한 영들과 피조물들을 향하여 명령하는 성경의 말씀들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니 피조세계를 향하여 마땅히 명령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기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예수님께서 자신의 하나님되심을 드러내신 이적이었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을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셨을 뿐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처럼 귀신을 향하여 명령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았고, 그것이 탁월한 기도의 형태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았다. 성경에 귀신을 대적하라는 말씀이 있으나, 귀신에게 명령하는 것을 귀신대적의 핵심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면 이동원 목사는 대체 무엇을 근거로 피조물을 향한 명령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 이동원 목사는 우리가 그 예수님의 권세를 의지하여 명령할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기도를 명령기도 또는 권위의 기도라 합니다. 이 기도를 하는 우리에게 어떤 권세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세,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 그 분의 권세를 의지하고 귀신들과 대결하는 것입니다.”

이동원 목사가 예수님의 권세를 의지하여 귀신을 대적하라는 말은 맞는 내용이다. 물론 귀신을 대적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세를 의지하여 명령기도를 하라는 이동원 목사의 가르침은 매우 비성경적이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되건 안되건 간에 누구나 예수님의 권세를 의지하고서 귀신에게 명령해 볼 수는 있다. 그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왜 하나님께 간구하고 요청하는 형태의 기도를 제 멋대로 변경하여 명령하고 선포하는 형식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인가? 이것이다. 선포하는 모습으로 쏘아 올리면 더욱 응답이 강하게 이루어진다는 기도이론은 궤변이다. 

다시 말하지만, 누구든지 원하면 귀신과 피조물들에게 명령하고 선포하고 싶으면 그리할 수 있다. 그리하다가 귀신들려서 폭망하게 되면 그 사람책임이다. 문제는 그것을 기도라고는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기도는 그런 이상한 짓거리가 아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하나님께 예의바르고 겸손하게 사정을 설명하면서 도우심과 은혜를 간구하는 형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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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