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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방언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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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방언의 특징
  • 정이철
  • 승인 2014.09.26 0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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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현상인가? 성경의 방언인가?(2)

요즘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방언이라고 칭하는 소리현상은 성경의 방언과 너무나도 다르다. 오늘 날의 정체불명의 소리현상을 천사의 언어, 기도의 언어, 영혼의 언어, 영적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예찬하는 주장을 지지해주는 성경의 말씀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 명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는 난해구절들이 도용되고 있을 뿐이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동일한 현상이 타종교인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 다니면서 그런 소리를 지속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그 소리현상과 타종교에서 나타나는 그것의 차이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소리는 성령의 방언이고 이상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소리는 귀신의 장난이라고 막연하게 여길 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나쁜 불륜’이라는 우스운 말이 지금 교회를 혼란하게 하는 이 정체불명의 소리의 세계를 대변해주고 있다. 성경에 나타난 방언의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방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 복음의 표적

신약성경에서 방언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마가복음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자신의 새 십자가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할 것은 부탁하시는 내용에서 방언이 최초로 언급되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7,18)

오늘날의 방언이 성경의 이 부분에서 언급된 방언이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여기의 방언이 지금의 방언이라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믿음 좋은 성도들이 맹독을 품은 뱀을 다루다 물려도 죽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농약 등의 맹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는 기적들이 지금 함께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이 말슴은 오늘날의 소리현상이 성경의 방언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가 없다. 이 말씀을 문자대로 믿고 성도들 앞에서 뱀을 다루다가 죽은 목사가 있었다. 수 년 후 목사가 된 그 아들도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고서 성도들 앞에서 뱀을 다루다가 또 물려 죽었다는 기사가 2012년 6월 2일 한국의 뉴스파워라는 신문에 나왔다.

여기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죽음과 사탄의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는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계시라는 뜻이다. 여기의 뱀은 실제의 동물이 아니고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인간을 속이고 훼방하는 사탄을 의미한다.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는 새 생명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새 복음을 통하여 나타날 것이라는 의미이다. 예수의 새 생명의 복음이 출범함을 증거하는 특별한 표적으로서 방언이 나타날 것임을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우주를 향하여 출발하는 거대한 우주선이 이륙할 때에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주선의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지된 우주선을 이륙시키기 위해 1초에 약 5,000톤의 연료를 폭팔시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새 복음이 온 세상을 향하여 힘 있게 출발하도록 특별한 이적을 베푸셨다. 세례요한이 감옥에서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과연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이신지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5)

태어나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맹인,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앉은뱅이, 천형이라고 여겨졌던 문둥병,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이적 등은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세상에 보냄 받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계시를 전하는 사도들이 이러한 일을 행하면서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다.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제자들의 전도사역에 특이한 이적이 나타난 것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확증하여 주신 것이다. 초대교회의 방언도 이 차원에서 나타났다. 일반적인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새로운 계시의 시작을 증거하는 초대교회의 이적이었던 것이다.

오늘 날 계속해서 이러한 초자연적 이적들이 지속되는지가 중요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고침을 받거나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이적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비슷한 이야기들이 들려오지만 모두 과장되었거나 크게 와전된 내용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 복음이 하나님의 복음임을 드러내기 위한 이적이었고, 지금은 이미 다 드러나고 확증되었으므로 이러한 이적이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 초대교회의 방언도 그러한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부어졌을 때 성경을 통하여 검증받기를 구하였고 그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것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을)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오직 충성’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방언이 취향이든 그것에 어떤 체험과 이해가 있든지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 말씀입니다. 마가는 누가가 말하는 ‘성령의 권능’을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약속하신 성령님이 부어졌고 모든 제자들이 방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행2:4). 마가는 그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으로 ‘확실히 복음을 증거했다(막16:20)고 기록했습니다. 그 ‘표적’(권능)가운데는 ‘예수님의 이름’, ‘새 방언’, ‘치유’가 들어 있습니다.”(김우현)

김우현 PD는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소리현상 이적을 성경을 통하여 검증받고자 원했고, 마가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검증될 수 있다고 하였다. 예수께서 믿는자에게 나타난다고 하신 ‘새 방언’이 지금 자신을 통하여 나타나는 방언의 은사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뱀을 집어올리고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김우현 PD에게 묻고 싶다. 김우현 PD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기원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계시적인 이적을 일반적인 성령의 은사로 이해하였고, 그리고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소리현상에다가 연결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2. 방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한 심판의 이적

방언은 새로운 계시가 하나님에게서 유래하였음을 증거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의 완고함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담긴 이적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방언이 나타날 것임을 최초로 예언한 선지자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늘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른 언어로 복음을 설명하는 언어의 이적이 나타날 것임을 예언하였다.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사 28:11)

놀라운 사실은 고린도전서에서 방언에 대하여 가르친 사도 바울이 이사야의 이 예언을 인용하였다는 것이다.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고전 14:21,22)

율법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내용이라는 뜻이다. 오늘 날의 소리현상이 성경의 방언과 같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방언이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표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 사도가 말하는 요지는 그것이 아니다. 먼저 택하심을 입은 이스라엘이 완고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에 대해 책망하는 차원에서 이방인들의 언어로 복음이 설명되어지는 방언 이적이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 자부하는 유대인들의 하나님의 자녀 됨의 은혜가 이방인들에게 옮겨졌음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메시지였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방언에 대한 언급,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그리고 바울의 설명을 종합하여 보면 초대교회의 방언은 새 복음의 기원이 하나님이며, 먼저 택하심을 받고서도 완악하게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한 심판과 책망의 메시지가 담긴 표적이었다.

실제로 방언이 나타났던 초대교회의 상황을 보면 이러한 이해가 단순한 가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방언이 나타난 곳에는 꼭 유대인들이 있었다. 방언이 풍성하게 나타났던 고린도에도 유대인들의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바울의 전도로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즉시로 방언이 나타났던 에베소(행 19:6)에도 복음을 핍박하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다. 베드로의 전도를 받은 고넬료 가정의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방언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현상(행 10:46)이 나타남을 베드로와 동행한 유대인 신자들이 보았다. 그리고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에게 개최된 지도자들의 회의에서 예수를 믿는 이방인도 하나님의 자녀되었음을 증거하는 현상으로 이해되어 이방인 선교가 공식화되었다. 최초로 성령이 임하여 방언이 나타난 사도행전 2장에서도 사도들과 제자이 배우지 않은 외국어로 복음을 설명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지켜보았던 사람들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을지라도 그 주변에 유대인이 없을 때에는 방언이 나타나지 않았다. 사도행전 8장에서 사마리아 지역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전도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성령을 받았지만, 방언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없다. 또한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고국 에디오피아로 돌아가는 노중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며 복음을 상고하고 있던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에게 빌립이 찾아가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세례를 주었으나 그에게서 방언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방언에 함축된 자신들을 향한 책망의 메시지를 들어야 할 유대인들이 근처에 없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과연 이 방언은 초대교회 시대에만 국한되었던 것일까? 이후의 시대에도 계속 이어지는 것일까? 성경어디에도 이 표적이 언제부터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내용이 없다. 그러나 새로운 복음이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음을 드러내는 표적이었으므로, 더욱이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책망의 메지지가 되었던 표적이었으므로 교회가 출범할 당시에 국한되는 표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특히 유대인들이 새 복음을 핍박하는 것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내포되었으므로 유대인들이 복음을 강력하게 대적하던 때에 국한되었던 표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이 표적을 받아야 할 유대인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의 복음이 하나님과 무관하다고 박해하는 불신자들도 우리 주변에 없다. 그러므로 성경의 방언이 지금도 나타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 도 어떤 상황에서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듣는 다른 언어로 복음을 전하고 설명할 수 있는 권능을 행하실 수도 있음을 믿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3. 배우지 않은 외국어로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 성경의 방언

성경의 방언은 아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 당시에 통용되고 있었던 다른 나라의 실제 언어였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방언이라고 하는 소리현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특히 오늘 날의 방언이 영혼의 언어, 천사의 언어, 기도를 위한 특별한 하늘의 언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사 28:11)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초대교회에 나타난 방언을 설명할 때에 인용하였던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서 등장하는 ‘더듬는 입술’이란 낮선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모습을 묘사하는 표현이고, ‘다른 방언’란 모르는 신비한 외계의 언어를 뜻하지 않고 그 시대의 외국 언어를 의미한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예언의 말씀을 기록할 당시에는 천사의 언어, 영혼의 언어, 기도의 언어라는 개념으로 방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사야가 말한 방언은 그 시대에 통용되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의미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사야의 이 예언을 인용하여 초대교회의 방언을 설명하였다는 사실 그 자체가 신약 성경의 방언은 배우지 않은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고린도교회의 방언은 흔히 짐작하는 것처럼 모르는 외계의 언어가 아니라 당시 세상에서 통용되고 있었던 외국인들의 언어였다고 보아야 한다.

최초로 방언이 나타난 2장의 방언이 다양한 외국어였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성령이 최초로 강림하던 오순절 날에 사도들과 제자들의 입에서 한번 도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순절을 맞아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외국의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이 사도들과 제자들의 자신들의 현지 외국어를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랬다.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행 2:8)라고 기이하게 여겼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갈릴리 출신 사도들과 제자들에게서 나타난 성령의 초자연적인 외국어 방언은 그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실제 언어였음을 성경이 명백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방언에 대한 신비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성경에 두 종류의 방언이 나타나 있다고 한다. 하나는 ‘디알렉토스’라는 헬라어로 표기된 그 당시의 실제 외국어를 의미하는 방언이고, 또 하나는 ‘글롯사’라는 헬라어로 표기된 그 당시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외계어를 의미하는 방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사도행전의 방언은 외국어였고 고린도전도의 방언은 외계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전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최초의 방언인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을 성경에 기록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글롯사’(4절, 11절)라는 단어와 ‘디알렉토스’(6절, 8절)라는 두 단어를 모두 동원하여 방언을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의 어떤 방언은 외국어였고 또 어떤 방언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외계어였다는 이론은 방언에 대해 그릇된 신비주의를 조장하는 사람들의 공상에 불과한 것이다.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모두 ‘글롯사’라는 헬라어로 표기되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의 방언은 외국어였고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외계어, 또는 천사의 언어라 주장도 근거가 없는 공상이다. 방언에 대해서 그릇된 말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하나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외계어에 능통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성경 구절을 이 말씀이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헬라어 ‘글롯사’)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18절)

이 말씀은 바울이 다양한 외국어를 통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뜻으로 보아야 더 자연스러운 해석이 된다. 바울은 적어도 그 당시에 지중해 세계에서 통용되었던 대표적인 다섯 개의 언어에 능통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바울은 성경을 기록 할 때에는 헬라어를 구사하였다. 유대인들을 만나면 유대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했다. 사도행전 21장 40절과 22장 2절을 보면 바울이 ‘히브리어 방언’으로 유대인들에게 직접 설교하였다고 한다. 여기의 방언이라는 단어도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을 묘사한 단어 ‘디알렉토스’이다. 로마에서 감옥생활 할 때에도 언어의 막힘이 없이 자신을 변호하며 복음을 전했다. 바울은 기회가 되기만 하면 서바나(스페인, 롬 15:23,28))에 가서 복음전하기를 소원하였으므로 스페인어도 구사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바울은 터어키에서 출생하고 자랐으므로 터어키의 언어를 구사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방언을 표기하는 헬라어 단어가 외국어를 의미하는 말이었다는 점, 그리고 바울이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바울이 방언을 더 말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씀은 천사의 말이나 외계어에 능통했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외국어로 다양한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어서 감사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방언으로 표기된 또 다른 헬라어 단어 ‘디알렉토스’도 마찬가지이다. 다메섹 도상의 청년 사울에게 찾아오신 예수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26:14)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에게 말씀하시기 위해 다메섹 도상까지 찾아오신 예수께서 사용하신 언어는 이스라엘 말이었다. 예수게서 ‘히브리 방언(말)’(‘디알렉토스’, 행 26:14))로 바울에게 말씀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여기의 ‘방언’(말)이라는 단어가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을 표기하는데 사용된 ‘디알렉토스’이다. 방언을 의미하는 헬라어 ‘디알렉토스’ 역시 그 당시에 통용되었던 다른 나라의 언어를 의미하는 말이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지구상의 민족들의 언어를 의미하는 방언이라는 단어가 수 없이 등장하는데, 모두 사도행정 2장의 방언을 표기하는데 활용된 ‘글롯사’라는 단어가 활용되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성경의 방언이 지구상의 다른 나라의 언어가 아니고 천상의 외계어였기 때문에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지구상에는 없다고 볼 근거가 전혀 없다. 성경의 방언은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외국어를 성령의 역사로 구사하면서 복음을 설명하는 초자연적인 이적이었다. 그러나 오늘 날 여러 종교에서 나타나는 소리현상은 전혀 언어적인 구조가 결여되어 있고, 또한 그 내용을 알아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어떤 나라의 언어와 유사한 사운드를 내는 경우도 많지만, 그 나라의 사람들 앞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실험해 보면 아무도 알아듣는 못한다. 그 나라의 실제 언어와 유사한 단어들이 일부 나열되기도 하지만, 그곳의 현지인들에게 아무런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어떻게 현지의 언어와 너무나도 유사한 사운드를 내게 되는 것일까? 가장 유력한 대답은 성령의 진짜 방언을 모조하여 영혼들을 미혹하는 사탄의 장난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배우지 않은 언어를 구사하게 하는 하나님의 참 방언을 사탄도 어느 정도 모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이 하나님처럼 하지는 못한다.

수년 전 내가 사는 도시의 한 교회에서 외부 강사를 모시고 특별집회를 했다. 그 분이 우리 도시의 연합집회의 강사로 거론되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적합한 분인지 알아보고 싶어 참석하여 그 분의 설교를 들었다. 설교 중에 자신의 완고했던 친척이 예수님을 믿게 된 과정을 잠시 이야기하였는데, 너무나도 그 내용이 이상했다. 불신자였던 그 친척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사워를 마치고 발가벗은 상태로 방으로 들어섰는데, 예수님(?)이 침대에 걸터 그 여인에게 전도하기 위해 기다리고 계셨다고 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친척이 왜 자신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지에 대하여 그녀가 이전에 했던 말들을 다 알고서 언급하셨다고 했다. 이후 그 분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하였다.

과연 예수께서 그런 분일까? 샤워를 마치고 들어오는 여인의 침대에 앉아서 발가벗고 들어오는 여인을 맞이하시는 그런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인가? 그런 자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이해하고 믿는 신앙구조를 가진 그 분도 제법 이름 난 목사였는데, 정말 뭐가 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떻게 남의 교회에 와서 다른 성도들에게 그러한 설교를 할 수가 있을까? 결코 정상적인 목사라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을 연합집회의 강사가 되는 것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에 그 목사가 또 한 번 그 교회에 와서 집회를 인도하였다. 그 목사는 집회를 인도하는 동안 그 교회의 성도에게서 외국어 방언이 터졌다고 하였다. 그 말을 전해주었던 사람에게 나는 그 방언이 외국어와 유사하게 들릴지라도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들은 외국인은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여자의 빈 방에서 여인의 침대에 걸터앉아 샤워를 마치고 발가벗고 들어오는 여인을 맞이하고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존재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고, 그런 가증한 거짓 예수와 동행하는 사람에게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리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에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그 성도에게서 그 외국어 방언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사탄의 장난이다.

▲ 어떤 교회가 알파코스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지금은 한국에 가 있는 우리 교회의 한 성도는 서울의 오륜교회에서 알파코스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는데, 그때 금이빨과 방언을 경험했다고 했다. 그런데 금이빨이 삼일 후에 본래의 이빨로 돌아가 버렸다고 했다. 이런 것이 사탄의 장난이다. 사탄의 장난을 간단히 구별하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구별하지 못하고 가당치 않게 성경을 대입하여 설명하려 시도하기 때문에 계속 말려드는 것이다.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현재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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