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후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권세를 이양하고 사십 일이 지난 뒤에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다(행 1:6-11). 이 사건 이후로 이제 그 누구도 사도들과 같은 지위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부활 후 사십일 동안 경험한 일들을 그 누구도 다시 경험하지 못한다.

이제는 간접적으로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경험할 수 있다. 스데반이 환상 중에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을 본 것과 바울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있었지만, 그러한 일은 매우 독특한 경우였고, 다른 사도들의 직접적 경험과는 다르다. 오직 제자들만이 예수님의 전 생애를 알고 있었으며, 직접 들은 것을 증언할 수 있었으며, 죽었다가 완전히 육체로 부활하시어 함께 계셨다는 것을 증언할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이제 누구도 사도직을 계승할 수 없다. 사도직은 제자들과 바울을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사도의 독특한 위치 때문에 사도직은 계속 이어질 수 없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것과 동일하다. 사도의 조건이 무엇인지는 새로운 사도, 즉, 맛디아를 충원할 때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러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행 1:21-22)

사도들의 임무는 그리스도의 삶과 부활에 관한 것을 전하는 것이고, 이런 사역은 오직 사도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이 사도직은 곧 사라지고 사도가 아닌 디모데부터는 성령께서 직접 하달하신 무엇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사도로부터 전달 받은 교훈과 교리들을 전달해 줄 뿐이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내가 좆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딤전 4:6)

이런 임무 이상을 넘어서는 것은 월권행위이다. 디모데의 사역은 무엇인가 할 말을 하기 위해 성령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가르쳐 준 교훈들을 읽고 공부하여 사도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른 것과 섞지 말고 순수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제 디모데부터는 이 일을 해야 하므로 공부에 열중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인 것이다. 교회 지도자는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인다거나(월권행위) '명상의 길'로 들어서지 말고, 열심히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한다.

"누구든지 내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딤전 4:12-13)

디모데는 사도들로부터 배운 것을 가르치며 되풀이 하고 또 그 지식을 전수하면 영적인 존재와 교접하여 비밀의 어떤 지식을 마는 것이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 속에서 구원의 도를 찾을 수 있다.

"네가 내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4)

무엇보다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경건에 이르는 훈련이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딤전 4:7)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여 사도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을 선명히 알아가는 것이 경건에 이르는 길이다. 경건에 이르러야 하는 이유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노라고 말하는 미혹케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딤전 4:1). 정통 교회는 누구도 사도들의 권위와 동일할 수 없으며, 단지 사도의 가르침과 경험한 것을 전달하는 자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노시스파는 이것을 부정한다. 부활은 과거의 특이한 하나의 사건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임재를 현재에도 경험할 수 있다고 하였고, 성경을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영지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지주의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그함마디(Nag Hammadi) 문헌보다 먼저 발견된 ‘마리아의 복음’에서 부활의 사건들을 꿈 속에서나 입신 상태에서 얻은 환상이라고 해석하였다.

영지주의 가짜 성경 <마리아 복음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환상 중에서 주님을 보았을 때 “환상 중에 사람은 어떻게 보는 것입니까. 마음을 통하여 보나요, 영을 통하여 보나요”라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환상을 보는 사람은 마음을 통하여 인지한다고 대답하였다. 나그함마디(Nag Hammadi)에서 발견된 '베드로의 계시록'은 베드로가 깊은 환각 상태에서 그리스도를 보았으며 그때에 그는 베드로에게 “나는 찬란한 빛이 충만한 지성적 영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의 관심은 정통 교회와 달리 “역사적 예수의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살아난 그리스도를 현재에 만날 가능성”에 있었다. '마리아 복음서'에서 정통주의와 영지주의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이 대목은 당시 정통 기독교가 무엇을 표방하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마리아 복음서’ 첫 부분에는 제자들이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며 자신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음을 근심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때 막달라 마리아는 일어나 그리스도가 그들과 계속하여 함께 계심을 상기시키며 그들을 다음과 같이 격려한다.

“당신들은 울거나 근심하거나 의심하지도 마십시오. 그의 완벽한 은총은 당신들에게 임할 것이며 당신들을 보호할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대의 기억에 있는 구주님의 말씀들을 우리에게 말해 주세요”라고 마리아에게 부탁하였다. 그러나 베드로가 놀란 것은 마리아는 과거의 일화 따위를 말하지 아니했다는 점이다. 예상 밖으로 그녀는 마음을 통하여 금방 환상 중에 주님을 보았다고 말했으며 그녀는 계속해서 그가 자기에게 계시한 바를 일러주었다. 마리아는 이야기를 마치고 구세주가 자기에게 말씀한 것이 그것뿐이라고 하며 침묵에 잠겼다. 그러자 안드레는 다른 형제들에게 “그녀가 말한 것에 관하여 당신들도 원하는 대로 말하세요. 적어도 나는 구세주께서 그 같은 것을 말씀했다고 믿지 않아요...그것은 너무도 낯선 사상이니까요”

베드로도 안드레와 동감하며 마리아가 환상 중에 실제로 주님을 보았다는 생각을 비웃었다. 마리아는 울면서 “나의 형제 베드로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내가 구세주에 관하여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하세요?”고 물었다. 레위가 베드로에게 대답하기를 “베드로야 너는 언제나 성급한 사람이었지, 만일 구세주께서 그녀를 값지게 보셨다면 당신이 누구이기에 그녀를 물리치겠소”

《마리아 복음서》는 다분히 의심스러운 책이다. 많은 여성 영지주의자들이 막달라 마리아를 자신들의 시조쯤으로 여기며 영지주의의 정당성을 알리고자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도용한 것으로 보인다. 《마리아 복음서》에서 눈여겨 볼 것은 당시 영지주의자들의 눈에 비친 정통 기독교이다. 정통 기독교를 대표하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등장시켜 그들이 영지주의에 비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를 보여줄 의도를 가지고 있다. 사도들이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대면한 것조차 매우 이상히 여겼다. 영지주의자들은 결국 마리아(즉, 영지주의)가 옳고, 베드로(즉, 정통 기독교)가 어리석은 것이라 말하고자 하였다.

영지주의 선생들은 바로 이런 점을 통해서 정통 교회에 도전했다. 그들의 말로는 정통파는 그리스도나 그의 제자들이 “많은 사람”에게 제공한 비밀의 교훈에 국한하여 신뢰하는데 반하여 영지파 기독교인들은 거기에 더하여 몇 사람만이 알고 있는 자기들의 비밀 교훈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레네우스를 비롯한 정통파 지도자들은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을 기만이라고 비난하였다. 이레네우스에 따르면, 도마복음서, 빌립의 복음서, 베드로가 빌립에게 보낸 서신 및 요한의 위경 등을 통하여 자신들이 조작한 내용을 ‘사도의 근거’가 있는 것 같이 꾸며 대려고 노력한다고 하였다. 자기들이 저작한 책을 갖고서 사실보다 더 많은 복음이 들어 있다고 자랑한다.

사실 그들이 갖고 있는 복음서들은 신성 모독으로 충만하다. 그들이 출판한 것들은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것과 전적으로 다르다. 이레네우스가 주장하는 복음서 저자들의 자격은 예수의 제자들로서 그들이 저술한 사실들을 몸소 목격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레네우스는 이에 반해 영지주의자들은 매일 허구를 꾸며 내는 사람들이라 하였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날마다 어떤 새로운 것을 지어낸다. 그들 중의 누구도 어떤 엄청난 이야기를 꾸며내지 아니하면 성숙한 입교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레네우스가 가장 불쾌하게 여겼던 것은 영지주의자들이 그들 자신의 직관 외에는 그들의 주장을 지지해 주는 자료가 없음을 공공연히 인정한다는 점이다. 이레네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은 단순히 인간적 느낌을 언급하거나 창조계에서 발견되는 조화성을 참고 자료로 제시할 뿐이다.”

교부 이레네우스는 영지주의자들이 사기꾼이라 하였다. 《도마복음서》, 《빌립복음서》, 《빌립에게 보내는 베드로의 서한》, 《요한 외경》과 같은 문헌은 꾸며낸 내용을 “사도들이 쓴 글”로 둔갑시키려던 이단자들의 책략이라 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왜 이런 책들을 썼을까? 예를 들어 《요한 외경》의 저자를 한번 생각해보자. 예수의 죽으심을 심하게 애통하는 한 그리스도인 이 예수의 사명과 운명에 대해 묵상하고 생각에 빠졌을 수 있다. 그러는 과정에 해답이 자연적으로 떠오를 수 있고, 그리스도와 영적소통을 했다고 생각할 만큼 강한 종교적 체험을 했을 수 있다. 자신의 이 경험이 예수의 제자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그는, 그가 듣고 본 바를 기록했을 수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원본에서 배웠던 내용들을 기초로 하여 각자 깨달은 바를 계속 확장하여 기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오로지 직관에만 의지하여 저술했다는 것이다. 이제 역사적 예수는 없어지고 오직 직관에만 의존하는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게 되고, 누구도 그의 직관이 틀렸다고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이레네우스가 말하길 ‘인간의 감정, 열정, 그리고 정신적 성향을 묘사함에 있어...인간에게 발생하는 일 및 그 외 무엇이건 자신들이 경험하고 인식하는 바를 모두 복음으로 간주하는 그들의 행위는...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한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직관을 기초삼아 새 신화, 종교의식, 그리스도와의 대화, 계시, 자신들이 본 환상에 관한 설명을 창조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그노시스, 곧 그들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발표했다. 지금도 오순절과 은사주의의 많은 사람들은 누구나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교제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우리에게 객관적인 것과 동떨어져 있는 주관적인 측면을 지지하지 않는다.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 이후의 감독과 목사들에게 사도들로부터 받은 것만 가르치고 다른 것은 가르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딤전 1:3)

목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일일 것이며, 이 일을 방해할 방해자들이 계속적으로 나타날 것도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흑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딤전 4:1)

특별히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의 특징은 영지주의적이다. 물질이 악하므로 육신의 생활을 지나치게 금욕하거나 죄악시한다. 결혼을 금하고, 특정한 음식만을 먹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을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딤전 4:3)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반대하고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영적 부활을 강조하는 사람들이었다.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딤후 2:18)

이런 허탄한 가르침들이 많이 일어나게 될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디모데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바울의 가장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후서에서 밝히고 있다. 악한 자들이 와서 계속 속일 것이니(딤후 3:13), 배워야 한다(14절). 구원에 이르는 길은 성경에서 찾아야 하므로 성경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

"...성경은 능히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구원 받기 위해 무언가 큰 경험을 할 필요가 없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기 위해 색다른 체험을 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나는 그날 주께서 나를 구원하심을 확실히 깨달았어요’가 아니라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면 그 속에 구원의 길이 있다.

성도들의 최대 소망은 거듭나 구원 얻는 것이다. 그 길이 성경을 연구하는 곳에서만 이루어지니 성도들은 구원을 확인 받기 위해, 들로 산으로 뛰어다닐 필요가 없다. “구원 얻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더 경건하고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뭔가의 체험을 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 역시 성경 연구를 통해서 해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바울은 책 읽기를 사모하고 연구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기록한 곳이 로마의 감옥이었고 그의 사역이 마지막을 향하던 때였다. 이제 복음을 전파할 소망도 사라지고 있었다. 감옥 주변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려면 그동안의 경험과 축적된 말씀만으로도 충분하고 남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죽을 때까지 책을 읽고 싶어한 것 같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 마지막에 부탁을 두 가지 한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딤후 4:13)

추위를 피하기 위한 겉옷과 책을 가져오길 부탁했다. 이 책이 성경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마지막까지 책을 읽길 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모데서와 디도서는 목회 서신이다. 목사가 해야 할 것을 사도가 직접 가르쳐 준 것이다. 성령님과 직통하는 영험한 목사가 아니라 성경 지식에 충만한 목사가 되어야 한다.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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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운 목사는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들을 중심으로 탁월하게 가르치는 뛰어난 교육목회 전문가이다. 정대운 목사는 “객관화(진리)의 주관화(신앙)를 추구합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교육목회 철학을 표현하기 좋아한다. 세종대, 개신대학원대학교(M.Div),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에서 공부했고, 현재 계속해서 국제신학대학원대학(석,박사 통합과정)에서 연구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원 교수(교회사)로 사역하고 있고, 고양시의 삼송제일교회의 담임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