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옥 선교사의 <시대읽기> 4

성경은 모든 인류의 기원이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이라고 밝힌다.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이스라엘은 황인종인 셈의 후손이다. 그런데 또 다른 유대인들이 있다. 후에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로서 백인종인 야벳의 후손이다. 둘을 분류해서 전자는 '세파라딤', 후자는 '아슈케나지' 유대인이라고 한다. 성경에 아슈케나지에 대한 언급이 있다. "야벳의 아들은 고멜… 고멜의 아들은 아슈케나지(Ashkenaz) … 였다." (창 10:2-3)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로 세계에 흩어졌지만 강한 민족주의 때문에 단일민족인 것처럼 우리에게 알려졌다. 그러나 8세기 이전까지 세계에는 아주 소수의 혼혈 유대인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그런데 돌연 수많은 백인 유대인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백인 유대인의 뿌리에 대한 수수께끼는 세계사에서 금기사항이 되어 비밀에 붙여 있었다.

그러던 중 1977년 유대인 역사작가인 아서 쾨슬러(Arthur Koestler)가 <제 13지파>(The Thirteenth Tribe)를 통해서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뿌리가 카자르(Khazars)민족이라고 주장했다. 카자르는 한때 왕성하다가 역사 속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려서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나라다. 갑자기 사라진 카자르와 갑자가 등장한 백인 유대인이 동일인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1869년에도있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한편 자신이 백인 유대인으로 자신의 뿌리를 성실하게 찾아가며 탄탄한 증거로 제시한 <제 13지파>는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다. 역사학자 케빈 부룩(Kevin Brook)이나보리스 지브코브(Boris Zhivkov)등도 저서를 통해 카자르에 대해 증언하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카자르 제국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제 13지파 카자르

7세기경 코카서스에서 카스피해 북쪽 중앙아시아에 인구 약 100만 명 규모의 카자르라는 나라가 존재했다. 투르크계에 속하는 카자르족은 중국 북부로부터 흑해까지 펼쳐진 광대한 초원을 방랑하던 유목민족으로, 7-10세기에는 러시아 남부와 우크라이나, 카프카즈 산맥, 중앙아시아를 망라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카자르 왕국은 동로마 제국과 사라센 제국으로부터 계속되는 종교적 압박으로 생존의 위협을 당한다. 두 종교의 공통분모가 유대교라고 생각한 카자르의 불란 왕은 740년 유대교를 국교로 선포한다. 샤머니즘을 숭배하던 카자르왕국이 여호와를 숭배하는 유대교로 개종한 것은 종교적 목적이 아니라 생존전략이었다. 역사상 유대인이 아니면서도 유대교를 국교로 삼은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카자르 제국의 지배계층은 8-9세기에 모두 유대교로 개종하여 강대한 유대제국을 세워나갔다.

그후 카자르는 몽고제국의 공격으로 12세기경 멸망하고 이후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 연구가들에 의해서 그들의 역사가 추적되었다. 카자르 왕국이 망한 후 이산민들은 가까운 우크라이나 러시아를 비롯해 헝가리, 폴란드, 보헤미아, 모라비아(오늘날의 체코),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지로 흩어졌다. 그들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표방하며 각지에 회당을 세워 유대신앙의 공동체를 유지해 갔다. 정통인 세파라딤 유대인보다 더 철저하게 유대교의 신앙을 지켜왔다. 이들이 2차대전 때 미국과 서방세계로 많이 넘어온 백인 유대인들의 뿌리다.

1984년 밀로라드 파비치(Milorad Pavic)는 소설 <카자르 사전>을 통해서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전설 속의 카자르 제국을 재현했다. ‘십만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사전소설' 이란 부제가 붙은 <카자르 사전>에는 이런 광고 문구가 있다.

“역사속에서 사라진 한 제국의 역사가 종교적 논쟁을 통해 다시 쓰여진다. 7~10세기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서 크게 세력을 떨쳤던 카자르인들에 관한 역사 미스터리 소설이다. 마치 경전 읽기와 낱말맞히기 게임 사이를 오락가락하는듯 신비하고 환상적인 형식으로 전개된다 … 스핑크스의 수수께끼가 모험가들을 매혹시켰듯이 이 정체불명의 책은 그 난해함으로 전설이되었다.”

2008년 <연합뉴스>에는 ‘전설 속 유대왕국, 카자르 제국 수도 발견’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서 다시 한번 관심을 끌었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바실리예프 교수 팀이 9년간의 발굴 끝에 카스피해 아스트라 한 항구 서남쪽 습지에서 구운 벽돌로 지어진 삼각형 성채의 기초를 찾았다. 그것은 1천 여년전 카프카스 지역에서 세력을 떨치다 홀연히 사라진 고대 카자르 제국의 수도 이틸(Itil)로 추정된다. 인구 6만의 대도시였던 이틸은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유적에서는 8~9세기경 유럽과 비잔틴제국, 북아프리카 등으로부터 전래된 도자기와 갑옷, 목제식기, 유리램프, 컵, 보석류, 약품그릇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됐다."
 

진실 또는 거짓

몇 년 전 이스라엘에서 두 부류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었을 때 세파라딤이 붙인 포스터에는 “아슈케나지는 카자르로 돌아가라”라고 써있었다. 자신들이 정통 유대인으로 이 땅의 주인이니까 저들은 자신의 고향인 카자르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슈케나지 유대인이 정통이 되어버렸다. 숫적으로도 압도적 다수고, 세력 면에서도 절대적으로 우위며, 유대교 신앙에 더 철저하기 때문이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어버린 격이다. 두 부류 간의 갈등을 다룬 <타임>지 2010년 6월 17일 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태는 유럽계 유대교 부모 40쌍이 자신의 딸이 중동·아프리카계 유대교 딸들과 한 학교에 다니는 것을 거부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들의 갈등은 유대교의 교리 해석과 유대인의 역사적 이주 과정에서 생긴 차이 때문이었다. 유대인은 이주 지역에 따라 크게 세파라딤 (북아프리카·중동계)과 아슈케나지 (유럽·미국)로 구분된다.

아슈케나지는 부유한 국가에서 유대교 교리를 철저히 지키며 극우 성향을 유지해 ‘초정통파’ 성향을 갖게 된 데 비해, 세파라딤은 생존을 위해 교리가 비교적 개방적으로 유화됐고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아슈케나지 측 랍비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인종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파라딤의 신앙심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학급을 분리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슈케나지는 철저한 유대교 신앙으로 자신들이 진짜 유대인이라고 주장하지만, 혈통상 아브라함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카자르의 후손이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이런 주장에 대해 대답하기를 피한다. 만약 자신들이 카자르 족의 후손임을 인정한다면, 셈족과 가나안에 근거를 둔 유대인의 정통정체성과 시온주의를주장할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쾨슬러가 그들을 '제 13지파’라고 부른 이유도, 원래 이스라엘에는 12지파가 있는데 아슈케나지는 새롭게 추가된 지파라는 의미였다. 이런 사실을 자세하게 밝힌 그의 저서는 엄청난 충격과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어느 나라에서는 출간이 금지되기도 했다. 그는 큰 위협을 받으며 1983년 결국 자살한다.

물론 그의 이론에 반대하는 주장들도 있다. 1997년 <Journal Nature>에 세파라딤과 아슈케나지 유대인에 대한 유전자 검사의 결과가 실렸는데, 그들이 로마에 의해 유대 디아스포라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공통의 조상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쾨슬러의 글을 계기로 현재까지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당시의 서한이나 기록에 근거한 학술연구가 대부분 사실로 판명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제기된다.

쾨슬러 자신은 반유대주의자가아니라 오히려 유대인의 국가 건설을 지지했던 아슈케나지 유대인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아슈케나지와 시오니즘을 반대할 목적으로 거짓 증거할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되므로 그의 주장은 더 신빙성을 갖는다.

어쨋든 유대인이 지배하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유대인 문제를 공개적으로 떠들고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관련 서적도 구하기 어렵다. 트라이앵글, 바이킹 프레스, 하퍼 콜린즈, 사이먼 앤 슈스터, 랜덤 하우스 등 미국 내 주요 출판사나 대형 서점망은 대부분 유대인 소유이기 때문에 비유대인이 반유대적으로 쓴 책은 출판되거나 유통될 수 없다. 유대인 관련 서적이나 자료들은 대부분 유대인에 의해 직접 쓰여진 것이다.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들은 바로 반박하는 저서를 출간하곤 했다.

그런중에<시온의정서>(The Protocols of the Learned Elders of Zion)는 유대인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반유대주의의 고전으로꼽힌다. 유대인의 세계지배를 위해 세계정복을 모의하며 유대인 지도자 장로들 이 작성한 책으로 알려진 이책은, 지난 100년 넘게 유대인 문제가 나올 때마다 첨예한 대립을 불러일으켰다.

스티븐레너드 제이콥스와 마크바이츠만 등을 비롯해 유대인 또는 친유대주의자들은 이것이 위조 내지는 사기라고 주장한다. 일반인들도 그 내용이 너무터무니 없고 황당하다는 이유로 부정하려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의 명분으로 사용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문서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그들을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겠다고 하신 말씀을 내세우며 유대인의 편에 서려는것이다.

하지만 그많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신빙성을 갖는 이유는 현재 벌어지는 일들이 그 내용과일치하기 때문이라고한다. 시온의정서를 꼼꼼히 읽고 난 후 현재 벌어지는 일들과 비교해 본다면 그사실을 발견할수 있을 것이다. 1976년 헤롤드로 젠탈(Harold Wallace Rosenthal)은 월터 화이트(Walter White)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속한 유대 사회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밝혔는데, 그 내용은 시온의정서의 것과 완전히 일치했다. 그의 증언이 공개된 직후 그는 비행기 사고로 죽임당했다. 그것이사실인지 거짓인지 논란의 중심에선 시온의정서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진 <시온의정서>


시온의정서

이스라엘은 AD 70년 로마에게 패하고 세계로 흩어져 살면서 크게 미움을 받았다. 그 절정이 히틀러의 600만 유대인 학살로 나타난다. 흔히들 알고 있기로, 인류의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동족인 유대인들이 죽였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러나 예수의 피값으로 유대인이 핍박받는다는 이야기는 13세기 이후에 고착화된 것이다.

중세 초기에 유대인이 박해받았던 이유는 더 심각한데 있다.  유대인들이 기독교 소년 소녀들을 납치해서 소위 '피의 의식'(Blood Libel)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의식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최초의 피의 의식에 대한 재판은 영국 노어위치에서 행해지고, 이후 나폴리, 사라고사, 다마스커스, 키시니에프 등 전 유럽과 중동에서 이런 재판이 행해졌다. 마법의 카발라 의식을 행하는 유대인들이 서구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잔인한 인상이 심어졌다.

또 포주나 고리대금업자로서의 이미지도 유대인에게 나쁜 작용을 했다. 유대인에 의해 세워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들은 돈을 빌리는데 이자를 내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이전에는 그것을 매우 부정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유대인들은 세계에서 미움과 핍박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유대인들은 뛰어난 머리와 상술로 유럽의 금융과 산업을 장악하며 복수의 칼날을 세워갔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 민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나라를 세우자는 시온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7-18세기부터다. 유대인 최고 장로들은 모여서 이를 위한 논의를 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뿐만 아니라 세계를 정복해 모든 사람을 유대인의 노예로 만들고 기독교인은 다 죽여 없애자는 결의를 했다. 유대인의 세계 정복 계획을 문서화한 것이 '시온의정서'(The Protocols of the Learned Elders of Zion)이다.

'시온 의정서'는 1884년 애굽의 미즈라임 랏지에 소속된 한 프리메이슨이 러시아 정보원에게 2,500프랑에 팔아 1897년 러시아에서 출판되며 세계에 공개되었다. 그 중 한 권이 영국으로 흘러가서 현재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것은1920년 경 유럽에서도 출판되었다. 훗날 히틀러는 600만의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하였는데, 그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 '시온 의정서'를 언급하며 대학살의 명분을 주장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랍비 모세 헤스(Moses Hess)는 “신은 자신의 민족이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땅에 정착하면서 메시아를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온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의 이스라엘 귀환을 촉구했다. 그의 시오니즘 주장에 따라서 이스라엘 땅에 오게 될 ‘메시야’를 기다리기 위한 알리야(Aliyah, 이스라엘로 역 이주)의 행렬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시온의정서는 점차 수정되고 현대화되어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제1차 시오니스트의 회의록이다. 시오니즘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오도르 헤르쩰(Theodor Herzl)의 지도 하에 시오니스트들은 유대민족기금을 조성하고 아랍인들로부터 팔레스타인의 불모지를 구입하면서 이스라엘 국가 건설의 꿈을 키워갔다.

나치에 의해 유대인 대학살이 자행되면서 국제사회에서 동정을 얻은 그들은 국가재건을 승인받을 수 있었다. 시오니스트의 오랜 염원대로 1948년 결국 이스라엘 공화국은 건국되었다. 그런데 동정과 특혜를 받은 자들은 시오니스트/카발리스트/아슈케나지 유대인인데, 정작 죽은 자들의 대부분은 정통 유대인이었다고 한다.

홀로코스트와 반유대주의가 진행될 때 시오니즘의 지도자들은 죽어가는 유대인들의 적극적 구출 노력에 반대했었다는 증언도 많다. 예를들어 1943년말 유럽에서 대학살이 자행되고 있을 때, 미국에서시오니즘의 주요 대변자로 활동하던 랍비스테판 와이즈(Stephen Wise)는 유대인 구조법안에 반대하는 증언을 했는데, 구조 법안이 팔레스타인의 식민지화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킬수 있다는 이유에서 였다.

또 파리스글럽(Faris Glubb)은 저서<시오니스트와 독일나찌와의 관계>(Zionist Relations With Nazi Germany)에서 이렇게 증언한다. 1944년 유대인 구조위원회(The Jewish Agency Rescue Committee)의 루돌프 카스트너(Rudolf Kastner)박사와 나치인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이헝가리의 유대인 문제 해결을 위한 비밀 협약을 맺었는데, 600명의 저명한 유대인을 살려주는 대신 80만 유대인의 학살에 침묵하기로 한다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시오니스트들에게는 동족의 구출보다도 시오니즘에 기반한 유대인 국가건설이 더 중요한 이슈였다.

시오니즘의 최고 원조자는 단연코 유대인 대부호 로스차일드다. 믿기 힘든 얘기지만, 스탠포드 대학 후버 연구소의 안토니 서튼(Antony Sutton)박사는 로스차일드가 히틀러에게 막대한 자금을 원조했다고 주장한다. 로스차일드 뿐만 아니라 J. P. 모건, 록펠러 등의 은행가와 산업가들이 세계 대전 중에 나치 독일과 소련 공산주의에게 자금을 대주었다고 한다.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유대인

모든 유대인이 시오니즘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유대국가 재건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의 손으로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1979년 당대 최고의 랍비였던 요엘 테이텔바움(Joel Teitelbaum)이 뉴욕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정치적 시오니즘으로 세워진 이스라엘 국가는 사탄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며 아슈케나지에 정면으로 맞서다가 결국 그들의 표적이 되어 살해된 것이다.

추모 인파가 몰리지 않게 하기 위해 장례식은 당일에 치뤄졌다. 그러나 소문에 소문을 듣고 무려 10만이 넘는 유대인들이 장례식에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뉴욕 타임스>에는 그를 위한 조사가 실렸는데, 그 내용은 아슈케나지 유대인에 대해 반감을 품고있던 많은 유대인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이었다.

"그는 세계 도처에 있는 유대인들 가운데 결단코 시오니즘에 물들지 않은 모든 유대인의 진정한 지도자였다. 그는 이 시대에 참으로 발휘하기 힘든 용기를 갖고 ‘시오니스트 국가는 사탄의 작품이자 신성모독이며 불경한 처사다’라고 외쳤다."(세레스 하톤(Ceres Hatonn), <계획 2000을 지나며 환희에서 고뇌로>(Ecstasy to Agony Through the Plan 2000))

자신이 아슈케나지 유대인인 벤자민 프리드먼도 시오니즘에 반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미국 사람들은 유대인이 ‘신이 선택한 민족’ 이라고 믿게끔 세뇌되었다. 이러한 신화는 소수 유대인 그룹이 만든 것이다. 몇몇 유대인 지도자들이 성경에서 몇 가지 문구를 발췌해서 이것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된 민족’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신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들은 사실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신이 선택한 민족’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시오니스트/ 막시스트/ 아슈게나지/ 카발리스트 유대인들인데, 이들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유대교를 선택한 자들이지 성경에 나오는 실제 유대인과는 아무런 혈연적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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