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금)에 정이철 목사가 김성로 목사의 사상이 부활주의라는 것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것을 인터넷신문 기독교포탈뉴스(http://www.kportalnews.co.kr/)이 “김성로 목사, 기독교 복음의 핵심 파괴한다”로 게재했다. 그리고 첨가해서 “김성로 목사의 '십자가 폄훼'와 '하늘 제사' 주장 녹취록”도 보도했다. 이에 대해서 김성로 목사 측에서 반론보도를 제시했다. 제목은 “[반론]춘천 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의 입장”이고, 부제(“'이중 제사' 악의적 표현... "영원한 제사는 십자가에서 드렸다"”)는 비판의 요지인 두 사상에 대해서 부정과 수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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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로 목사의 글을 보면서 먼저 안타까운 심정이 있다. 인터넷 신문 대표 정이철 목사와 기독교진리수호연구협회(대표 림헌원 목사, 이하 기진협)는 꾸준히 김성로 목사의 사상에 비판했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는 직접 소통의 창구에 나서지 않고, 기독교이단대책협회(사무총장 이인규, 이하 기이협)과 미주 한인 남침례교 등의 삼자들이 논객으로 나선 것이다.

이번 성명서에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이단대책위원회(위원장 한명국 목사)까지 등장시켰다. 그리고 이승구 교수, 박형용 교수, 한천설 교수 까지 거론시킨다. 김성로 목사는 자기 사상을 말할 때 자기 주장으로 임해야 바르고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자기 주장을 타인의 권위를 빌려서 입증하려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방법이다. 이번 [반론보도]에서 더 김성로의 우군?들을 확보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독자로서 실명이 거론된 교수님들은 자기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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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김성로 목사가 장로교와 침례교의 갈등 양상까지 촉발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로교와 침례교는 복음 이해에서 전혀 차이가 없다. 복음 이해를 놓고 시비를 가르는 것인데, 장로교 목사가 침례교 목사에게 ‘조사심판교리’를 평가한다고 한다면 매우 안타깝다. 그렇다면 김성로 목사 세미나에 장로교 목사를 전혀 받지 않아야 한다. 초교파로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문제가 촉발되자 침례교를 부각시키는 것은 일관성이 결여된 조급한 판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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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로 목사는 기이협과 박형용 교수님의 제언을 받아 ‘십자가에서 영원한 제사를 드렸다’고 수정했다고 제시했다. 수정했다면 이전 가르침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립서비스로 수정을 인정하는 것은 수정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립서비스로 단정하는 것은 문제점을 지적했던 당사자에게 수정했음을 통보해야 하는데, 당사자에게는 통보하지 않고 기이협이나 기독교포탈뉴스에 보도를 시도하고 있다. 형식적으로 바른믿음이나 기이협에 수정보도가 게재되어야 합당하게 수정했다고 볼 수 있다. 내용적인 판단은 오직 주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

그리고 김성로 목사는 그 수정 발언이 얼마나 크고 심각하고 위험한지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복음의 한 부분을 폄훼한 것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춘천한마음교회에 공식적인 발표를 하고 이후부터 동일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세미나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형식적으로 공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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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로 목사는 “3. 구속의 완성으로서의 부활에 대한 입장”에서 부활 강조를 계속하겠다고 한다. 일차적으로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를 빼고 부활만을 강조해서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수정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수정은 십자가의 완전한 속죄를 인정한다고 한 것이며, 뒤의 내용에 대해서는 수정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로 보인다. 문제가 없었을 때는 십자가와 부활을 공히 말하는 것이 바르겠지만, 문제가 발생한 뒤에는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는 것은 수정의 모습을 분별하기 어렵다. 우리 속담에 “오얏나무(자두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쓰지 말고, 오이밭에서 신발끈 고쳐 매지 말라(瓜田李下)”는 속담이 있다. 수정을 했는데 동일행동을 반복한다면 누가 수정했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최소한 몇 년 동안 십자가 구속 복음만 전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진정성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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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복음의 핵심 요소이다. 그 핵심을 말하지 않는 목사와 신학자가 어디 있을까? 필자는 ‘적’을 신학 검증 장소에서 표현하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적(的, ~tic)’은 명료한 표현이 아니라 애매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신학 검증의 장애서 ‘적’을 사용하면 검증할 수 없다. 예) 내가 그 ‘사건적인’ 것을 보았어요. 바른 문장인가? ‘객관적 사건’과 ‘객관 사건’은 다르다.

역사에는 ‘객관’은 없고 ‘객관적’만 있다. 학자들은 부활을 ‘객관 사건’이라 하지 않고 ‘객관적 사건’이란 표현을 학문적으로 한다. 지금은 학문성을 검토하는 자리가 아니고 영생 구원에 대한 검증 자리에 있다. 구원은 역사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하늘에서 이루어진다. 목사는 오직 성경 계시에 입각해서 십자가와 부활을 인식 방법(객관, 객관적)이 아닌 믿음 방식으로 선언해야 한다. 십자가도 믿고, 부활도 믿는다. 부활이 객관적 구속이기 때문에 믿는다면 인식 수단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성로 목사는 다시 웨인 그루뎀과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 리차드 개핀 등을 빌려 ‘부활 칭의론’을 주장했다. 부활칭의론은 결국 죄를 사하는 십자가에 대한 부정으로 다시 복귀한 것이다. 왜 웨인 그루뎀과 로이드 존스가 부활칭의를 말했는지는 그 문맥에서 확인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김성로 목사가 강의한 여러 증거해서 십자가를 뺀 부활주의를 강조한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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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피’는 사도행전 20장 28절에 있는 표현이다. 성경에 ‘하나님의 피’가 없다고 목사가 생각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피가 어디에서 흘린 피인지가 논쟁의 초점이다. 갈보리(골고다)의 피인지, 하늘성소의 피인지가 논쟁의 초점이다. 그것에 대해서 명료하게 밝히지 않았다. 이전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의 피를 부활해서 하늘성소에서 제사를 함으로 죄가 완전히 사한다는 도식을 개진했다고 이해하고 있다. 수정했다고 하면서 ‘성경에 하나님의 피가 있다’고 하면서 정당하다면, 논의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얼버무리는 자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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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로 목사는 자기 신학이 정통신학임을 밝혔다. “본인은 26여년 목회하면서 침례교 신학과 신앙에 기초한 목회를 하였다고 자부합니다” 전에 언급한 것처럼, 26년 동안 바른 신학에 근거했다면 수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수정했다고 주장하는 분”이 동시에 “26년 사역” 기간 동안의 사역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자부’하는데 ‘사과’하고, ‘추후에 신학 자문’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자부’라는 단어는 ‘사과문’에는 부당한 표현이다. 참 아쉬운 것, 반복하지만, 장로교 목사가 침례교 목사를 평가하는 갈등 요소로 생각하면 매우 부적절하다. 복음이 동일한데(강단교류가 허용) 어떻게 그런 발상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 김성로 목사의 사안은 정이철 목사가 인터넷 신문 운영자로서 한 제보자의 제보를 신문에 게재하면서 촉발된 것이다. 어떻게 미국에 있는 사역자가 한국 춘천에 있는 사안을 알 수 있겠는가? 제보가 들어오고 정황이 명확하면 신문은 밝힐 수 있고 밝혀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바른 내용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많은 옹호자에도 불구하고 김성로 목사는 기이협과 침례회 이단대책위원회에 공식 입장 표명까지 하지 않았는가?

이전에 했던 것을 반복해서 기독교포털뉴스에 반론보도로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보도가 [반론보도]인지, [해명보도]인지, [사과보도]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형식적으로는 [반론]보도이다. 정이철 목사가 10월 28일에 했던 것에 대해서 김성로 목사는 ‘사과(해명)?’이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반론]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논쟁 당사자가 합의하지 않은 종결이 없다. 김성로 목사는 논쟁 당사자에게 정정당당하게 반론을 하든지 해명을 하든지 사과를 하든지 해야 명료한 과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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