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 같은 어이없는 시비

글을 시작하며

필자는 김성로 목사의 이단적 부활사상을 비판해 온 정이철 목사에 대해, 미 남침례교 긴급 이단대책 위원장이라고 하는 이재위목사가 쓴 “정이철 목사 5가지 핵심적 이단사상들”을 읽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름대로 수준 있게 보이기 위해 멋을 부리며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만, 수준 이하의 글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아예 아무 것도 모르고 휘갈긴 낙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재위 목사가 이제 겨우 2년차 목사이기 때문에, 신학적인 내공이 어린아이 수준인 것은 이해가 가지만,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고수 같은 오만함을 염두에 둔다면 아마 이재위 목사는 어린아이 같은 자신의 내공 수준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먼저 산전수전 다 겪은 선배로서 한 마디 충고한다면, 이재위 목사는 아직은 정이철 목사나 림헌원 목사 같은 이를 비판할 군번이 아님을 깨닫고, 공부에 더욱 진력할 것을 부탁하고 싶다. 그럼에도 굳이 정이철 목사를 비판하고 싶다면, 최소한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을 비판한 정이철 목사의 글들 중 하나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비판의 글을 썼으면 한다. 그랬다면 필자가 이재위 목사의 글을 읽기가 조금은 덜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재위 목사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이나 정이철 목사의 부활복음 비판의 핵심 사항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만약 알고 있다면, 결코 “정이철 목사 5가지 핵심적 이단사상들”과 같은 허접할 글은 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같은 어이없는 시비

이재위 목사는 전후문맥을 무시한 채 아무런 맥락도 없이 “부활이 없어도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만 믿으면 구원이 있다. (반구속적 이단사상)”이라고 용감하게 정이철 목사를 비판하고 있다. 이 비판은 마치 이인규 씨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앞뒤를 다 잘라 버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몇 문장으로 정이철 목사는 이단성이 있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과 너무나도 유사하다. 그래서 이재위 목사의 글을 읽노라면, 마치 이인규 씨가 정이철 목사를 비판하는 글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유유상종이라는 사자성어가 무색할 지경이다.

이재위 목사가 “부활이 없어도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만 믿으면 구원이 있다”는 정 목사의 말을 놓고 ‘반구속적 이단사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마치 사도요한이 쓴 요일5:12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고”를 놓고, ‘이 말은 딸만 있는 자나 자녀가 없는 자나 아예 미혼인 자들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쓴 사도요한은 반구속적 이단사상을 가지고 있다.’라고 비판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전후문맥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그 문장만 보기 때문이다. 설령 광의적 맥락은 놓쳤다 할지라도, 요일5:12, 이 한 절만이라도 제대로 읽일 수 있어도,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고”를 놓고, ‘이 말은 딸만 있는 자나 자녀가 없는 자나 아예 미혼인 자들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쓴 사도요한은 반구속적 이단사상을 가지고 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비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일5:12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에 뒤이어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가 있다. 그러므로 요일5:12 전체를 들여다 볼 수 있으면, 사도요한이 말한 ‘아들’이 생물학적인 ‘아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재위 목사가 정이철 목사가 말한 “부활이 없어도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만 믿으면 구원이 있다”를 읽고, 막무가내로 ‘정이철 목사는 부활을 부인하고 있으므로, 반구속적 이단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전후문맥을 놓친, 어린아이의 글 읽기 수준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재위 목사가 정이철 목사를 제대로 비판하려면, 적어도 “부활이 없어도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만 믿으면 구원이 있다”는 정 목사의 말이 어떤 맥락 속에서 나온 말이며, 이 표현으로 무엇을 나타내려고 했는지 정도는 파악할 능력이 그에게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능력이 없음에도 정이철 목사를 비판하려고 덤비는 이재위 목사의 투정은 어린아이의 귀여운 낙서 정도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다른 4가지 이단 시비도 이런 유치한 수준에 불과한 것들이어서 더 이상 논할 가치조차 없다).
 

부활을 몰라도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만 믿으면 구원이 있다”의 참 의미

“부활이 없어도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만 믿으면 구원이 있다”는 말은, 정이철 목사가 부활을 무시하거나 부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정 목사의 글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정이철 목사의 이 말은, 십자가의 능력을 폄하, 또는 무시하는 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에 대해, 십자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정 목사의 이 표현은 부활 이전에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이다.

일반적으로도 부활을 십자가보다 더 강조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여기에 대해서는 다시 신학적인 논리로 글을 쓸 예정이다), 김성로 목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자신이 말하는 부활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십자가를 멸시하는 자이다. 김성로 목사는 바울이 유일하게 자랑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단지 부활을 위해 설정된 과정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시 말하면 김성로 목사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면서, 우리의 구속을 완성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심각하게 훼손시켜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정이철 목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선포하신 “다 이루었다”는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부활 이전에 십자가에서 인간의 구속이 완성되었음을, 그래서 부활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완성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음을, 무지한 김성로 목사와 그 무리들이 깨닫도록, “부활이 없어도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만 믿으면 구원이 있다”는 극약 처방의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재위 목사는 ‘2년차’ 목사답게 “부활이 없어도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만 믿으면 구원이 있다”는 정이철 목사의 주장을 놓고, ‘정이철 목사는 부활을 부인하고 있으므로, 반구속적 이단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유치한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글을 마치며

아마도 “미 남침례교 긴급 이단대책위”는 ‘긴급’이라는 말 그대로, 정이철 목사를 이단으로 몰기 위해 급조된 단체인 것 같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 이단 대책위’라는 이름이 가벼운 이름이 아닐진대, 그럼에도 이 단체의 위원장이 2014년에 목사 안수를 받은 초년병 목사라는 사실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젊다고 책임자 자리에 앉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구린내가 나는 것 같다. 마치 책임지지 않으려는 노련한 자들이 뒤에 숨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젊은 사람을 앞장 세워 총알받이로 삼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젊은 후배 목사에 대한 필자의 지나친 걱정일까?

아무튼 이재위 목사의 “정이철 목사 이단 만들기”는 마치 초등학생이 멋있는 운동복을 입고, 축구화를 신고, 마음껏 멋을 내며, 축구공 없는 허공에다 헛 발길질을 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이인규, 김한길 등이 주장하는 정이철 목사의 이단성은 실체가 없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단성의 실체가 없는 허구를 공격하는 이재위 목사의 발길질은 허공을 찰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라도 이재위 목사는 정신을 차리고, 정이철 목사를 향한 헛 발길질을 멈추고, 김성로 목사의 하수인 노릇을 그만 두는 것이 모두에게 바람직할 것이다. 왜냐하면 선무당의 칼춤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까지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자 보충설명>

이창모 목사님의 글과 이재위 목사의 글에서 정이철 목사가 ‘부활이 없어도’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사실을 말하자면, 정이철 목사는 그런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오래 전 ‘오직 십자가’님의 글 중에서 “글을 몰라 성경을 읽지 못하는 무식한 할머니일지라도 성령에 의해 십자가복음을 확실히 믿는다면 혹 부활을 몰라도 구원 받는다"라는 표현을 김성로 옹호자 이인규 씨가 정이철 목사를 이단으로 몰고자 문제 삼으면서 시작된 일입니다. 문론 십자가상에서 완전한 구원이 이미 완성되었으므로, 이론상으로 글을 모르는 어떤 할머니가 십자가 복음을 믿었으나 부활을 모르고 죽었다고 해도 훗날 부활하게 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는 사실입니다. 이재위 목사도 이 사실을 알고 다음과 같은 메일을 정이철 목사에게 이미 보내고 사과하였습니다. 

"정이철 목사님께! 뉴에덴교회 이재위목사입니다. 제가 쓴 글들 중에 ‘부활이 없어도’ 가 아니라 ‘부활을 몰라도’로 시정 하겠습니다. 약간의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을 거짓모함을 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의미상에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저 때문에 마음 상했다면 용서하시길 바랍니다."(이재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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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모 목사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한국 교회를 신물 나게 체험하며 갈등하다 하나님을 향해 살아 있는 교회를 꿈꾸며 1999년 김천에서 ‘제자들 경배와 찬양교회’를 개척하였다. 이창모 목사는 한국교회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이 단지 성공주의, 황금만능주의, 도덕적 윤리적 타락 등이 아니고 이미 한국교회에 만연된 잘못된 신학에 있음을 확신하고서 무엇이 바른믿음인지 신학적으로 깊이 고민하는 목사이다. 이창모 목사는 자신이 중2때 수련회에서 방언을 받았고, 대부분의 목사들이 그것을 ‘영의 기도의 언어’라고 가르치므로 의심없이 수 십년 동안 옹알거리는 방언현상으로 기도(?)하였던 대표적인 방언기도자였다. 김우현, 김동수 등이 저술한 거짓 방언을 미화하는 한심한 서적들을 접한 후 방언에 관한 깊은 신학적인 성찰을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오늘 날 방언이라고 알려진 소리현상과 성경의 참된 방언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되었다. 이전의 자신처럼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다른 목회자들과 신자들을 진정한 복음으로 돌이키기 위해 <방언, 그 불편한 진실>(밴드오부퓨리탄,2014)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