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창원 교수(총신신대원)

1. 이끄는 말

시편 찬송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 이 질문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성도들에게는 불필요하다. 정작 필요한 질문은 개혁교회에 찬송가가 필요한가? 일 것이다. 이것이 20세기 직전까지 무려 40년 동안 스코틀랜드 개혁장로교회 안에서 다루어졌던 논제였다.

그들에게 아주 당연시했던 시편 찬송가, 개혁교회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는 개혁교단에서 시편찬송가가 필요한가? 라는 제하의 공청회를 가진다는 것이 참으로 어색한 일이다. 이 일은 한국교회 앞에 없었던 새것을 내놓는 일이라기보다는 한국교회가 잊고 있었던 개혁교회의 중요한 유산을 되찾는다는 의미에서 역사적인 일이라고 본다.

2. 초대교회 예배음악‘시편찬송’

일반적으로 구약 시대에서부터 신약의 예수님 당시와 사도들 및 그 이후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예배 음악은 설교와 더불어 예배의 중심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제도에 등장하는 웅장한 찬양대의 역할에 대하여 신약 성경에서는 이상하게도 단 한 마디도 언급이 없다. 천상에서 있는 찬양 외에(계시록)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서로 화답할 것을 언급한 것이 전부이다.

혹자는 그것이 신약교회 예배에 있어서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특별하게 언급할 필요가 없어서 그렇다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구약의 찬양대 문제는 당연한 것이 아니어서 특별하게 언급한 것인가? 그것이 반드시 있어야 할 일이라면 신약의 교회 예배 문제를 다루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언급되었어야만 했다. 없다는 것은 그것이 교회에 반드시 있어야 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더구나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화답하라고 한 본문의 문맥을 보면 교회 예배를 언급하면서 한 내용이 아니라 성도들의 삶 속에서 있어야 신앙생활을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엡 5:18-20; 골3:15-17).

그렇다면 삶 속에서 드려져야 할 노래가 그러해야 한다고 한다면 교회 예배 음악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였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본다. 예배 음악은 특별한 찬양대 중심의 음악이 아닌 온 회중 중심의 음악이요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요 찬양하라고 주신 시편 찬송가였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편 자체가 찬양대를 위하여 주신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은 구속의 은혜를 입은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주님의 은혜를 인한 감사와 경배의 표시로 하나님의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찬양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 찬송하고 있는 이유가 그러하듯 말이다.

따라서 개혁교회는 비록 역사적으로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의 산물일지라도 성경에 기초한 교회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성경적 교회 예배 음악을 찾아 예배 모범을 제시했다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3. 개혁교회 예배음악의 정의

일반적으로 교회 음악이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 안에서 사용되어지는 모든 음악을’ 뜻한다. 그러나 개혁교회 예배 음악은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으로 간주하는 성경을 근거로 하는 교회의 공적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을 말한다. 적어도 이 정의는 예배 요소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배의 요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1항의 기록에 보면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꺼이 수납될 방법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제정되었고, 그 자신의 계시하신 뜻에 의해 제한되어서 사람의 상상이나 고안이나 사단의 시사(示唆, suggestions of Satan)에 따라, 어떤 유형한 표현이나 기타 성경에 규정되지 않은 방법으로 예배 받지 않게 하셨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배에 있어서 회중이 다 함께 부르는 노래는 성경에 근거하고 있는가? 예배 자체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경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예배의 모든 요소도 반드시 하나님이 정하신 규정대로 하나님에게 합당한 것이어야 한다(웨신 21장 5항). 성경에 규정되어 있지 않고 인간의 상상이나 고안에 의하여 사용되는 것들은 철저하게 배격되어야 함을 개혁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가르쳐 왔다.

예배에 있어서 찬양을 하는 행위는 아주 독특하다. 이 행위는 성경 읽기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도 구분되는 독특한 행위이다. 특히 일부 지도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가르치고 있는 ‘곡조 있는 기도’라는 정의는 정확하지 않다. 물론 찬송에는 기도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실지로 시편의 상당수가 하나님과 교통함에 있어서 즐겨 사용되는 기도문구들이다.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에 찬양과 감사의 내용들이 풍요롭게 들어간다.

그러나 노래의 내용과 관련하여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기도가 예배의 한 요소이듯이 찬양도 예배의 또 다른 요소라는 점이다. 내용에 있어서 기도를 포함하고 있다고 해서 찬송을 곡조있는 기도로 단언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노래하는 찬송으로 구분해야 한다. 그렇다면 종교개혁자들은 어떻게 가르쳤는가?

칼빈은 교회 음악 혹은 예배 음악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에 대한 그의 철저한 순종에서 비롯된 것’ 임을 밝히고 있다. 특히 그가 음악에 대한 신학적 관점이 성경에 근거하고 있는 것인지를 가장 중요시하면서 ‘허영심과 욕심에 차 있는 인간의 음악에 대한 오용의 위험성과 가능성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칼빈의 이 사상은 다음과 같은 성 어거스틴의 주장과 일치하고 있다:

“그 누구도 하나님께 받은 것 외에로는 주님께 합당한 것으로 노래할 수 없다.”
“음악은 가볍거나 경박해서는 안되며 권위와 위엄을 지녀야 하고 온건한 것으로 절제되어야 한다”
“교회 음악은 단지 듣기에 감미롭게만 작곡되어서는 안 되고 ...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 사람의 마음에서 최상의 것은 음악이 아니라 무엇이 노래되어지는가 하는 가사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이처럼 개혁교회 전통에 있어서 예배 음악은 반드시 그 내용에 있어서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야 함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인간을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놀랍고 기이한 은총을 기리기 위함이다. 인간이 부여받은 재질의 우수함을 과시함이 아니다. 이것 때문에 초대교회는 시편을 찬양하였으며 중세교회가 사장시킨 시편 찬송을 종교개혁자들은 회중 찬송으로 자리 잡게 하였다.

4. 종교개혁자들의 견해

1) ‘오직 성경’이라는 슬로건 아래 교회를 개혁한 개혁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최고의 창송은 시편이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직접 작곡하셨기 때문이다. 시편을 노래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케 하며 그의 행하신 일들을 묵상케 하는 시금석과 같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존경하고 영광을 그에게 돌리게 한다. 칼빈이 직접 제작한 제네바 시편송가 서문에서 칼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성령께서 만드시고 다윗이 노래한 시편 이상으로 좋은 노래나 찬송의 목적에 부합한 노래를 찾을 수 없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가 시편을 노래할 때는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 입에 친히 이 시편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토록 노래하게 하시는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2) 칼빈은 시편을 가리켜 ‘영혼의 해부학’(An anatomy of all the parts of the soul)이라고 하면서 시편을 통해서 성령 하나님은 성도들의 모든 경험들, 슬픔, 두려움, 의심, 소망, 기쁨, 걱정 및 혼동 등을 끄집어내어 치유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시편에 사람이 의식할 수 없는 어떤 감정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마치 우리의 양심을 낱낱이 비추어주는 거울과 같다고 했다.

다른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일군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선언하라고 주신 명령들이지만 시편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아뢰는 것으로 주셨으며, 이 시편은 성도들의 내적 생각들과 감정들을 들춰내며 우리들 각자의 상태를 점검하도록 촉구한다고 했다.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는 연약한 부분들에게 사로잡히거나 수많은 악에 잠식되지 않도록 주의하게 한다고 했다.

3) 김은주는 자신의 논문에서 칼빈의 예배 음악에 대한 연구 조사 결과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하였다:

① 음악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용력이 있다.
② 성경으로부터 비롯된 가사만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고, 시편이야말로 교회에서 부르기에 가장 합당하다.
③ 예배 시에 사용되어지는 음악은 말씀과 결합되어 있는 성악 음악이어야 하며 다성 음악은 가사의 의미를 혼란시킬 위험이 있기에 제창으로 부르는 단선율 시편가인 제네바 시편을 채택하였다.
④ 교회 음악에서의 악기 사용을 구약 시대의 그림자를 모방하는 것에 불과하다 하여 폐지하였다.
⑤ 교회 음악은 선교적 임무와 교육적 임무를 지닌다고 보았다.

이러한 음악적 역할을 최대한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노래는 시편뿐이다. 칼빈이 예배 요소로 시편 찬양을 포함시킨 것은 성경에 없는 것을 추가한 것이 아니라 중세교회가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찾은 성경적 가르침 때문이었다.

4) 코터링 목사가 지적한 것처럼 ‘배교한 로마 카톨릭은 일반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였고 회중의 노래를 사제들과 훈련받은 찬양대, 즉 전문적인 사람들만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회중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찬양대인 것을 개혁자들은 분명히 선언했다. 칼빈 이후 성경에 신실하기를 원하는 모든 개혁교회들이 시편 찬송을 하나의 중요한 영적 유산으로 간주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5. 예배찬송으로서 ‘시편찬송’

스코틀랜드 개혁자요 장로교의 창시자인 존 낙스 역시 칼빈과 같은 견해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칼빈과는 달리 낙스는 종교개혁 초기에 시편찬송을 예배의 본질적인 요소로는 보지 않았을지라도 시편찬송을 신앙생활에 아주 유용한 힘을 주는 것으로서 성도들, 특히 아이들에게 가르쳐 부르도록 권장하였다.

1556년 낙스가 만든 제네바 예배 모범에 보면 운율적 시편(Metrical Psalms)을 개혁교회 예배에 있어서 회중들이 해야 할 의무조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존 낙스가 아직 살아 있을 때 1564-65년도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공예배 지침서(Book of Common Order)에 들어가 있는 찬송 편에 다윗의 노래인 시편 외에 다른 언급이 전혀 없다. (스코틀랜드에서 시편찬송가는 잉글랜드에서 1561년에 만들어진 앵글로 제네바 시편가 중 87곡을 받아 사용하였다. 대부분의 곡조는 불란서 곡조들이었다. 그러다가 1564년에 성 앤드류 시편가로 알려진 시편찬송가가 공예배 지침서에 처음으로 수록되었다. 여기엔 엥글로 제네바 시편에서 추가로 42곡을 삽입하였고 로버트 폰트와 존 크레이그가 작곡한 21개 시편곡이 더 들어 있었다.)

이것은 공 예배에서 회중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시편찬송을 사용했다는 증거이다. 이것이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5항에서 성경봉독과 말씀강론 및 마음에 감사함으로 부르는 시편가에 대하여 명시함으로써 시편찬송이 장로교 전통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문제는 예배모범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예배당에서 공동으로나 혹 한 가족끼리나 시와 찬미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모든 신자의 마땅한 본문이니 성경에 합한 말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언사를 사용하라”(4장 1항).

6. 나가는 말

존 낙스의 가르침은 20세기 자유주의 신학이 스코틀랜드를 휩쓸면서 일반 찬송가가 공 예배 용 음악으로 채택이 되기까지 예배음악의 유일한 찬송으로 간주되었다. 칼빈이 주장한 것처럼 누구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제외하고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께 찬송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교회들은 그리 많지 않을지라도 장로교 전통은 시편 찬송을 공 예배 음악에서 제외시킨 적은 없었다.

이 외에 종교개혁자들의 견해에 대한 글은 최근 <진리의 깃발>지 통권 84호에 기고된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의 Reimer A. Faber교수의 글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서창원 목사 / 총신대학원 교수, 한국개혁주의 설교연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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