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대학교 신학과 김동수 교수는 나에게 특별하게 기억되고 있는 분이다. 나의 부족한 책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출간되었을 때, 가장 먼저 비판의 글을 언론에 올리신 분이기 때문이다. 당시 김동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나의 책의 내용을 비판하였다.

“그는 방언은 주장하는 김우현, 치유를 주장하는 손기철, 예언을 주장하는 김하중을 비판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사실 이들 각각이 이러한 은사가 지금도 존재한다고 믿고 그러한 신앙 행동을 한다는데 있다. 내가 볼 때 그가 비판한 많은 내용은 그가 오순절적 신앙 행습에 익숙하지 않고, 그러한 신앙 형태를 부정하는 것에서 온 것이다. 그는 치유는 인정하지만, 방언과 예언이 현재에 지속된다고 믿지 않는다. 이러한 은사들이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그에게는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김동수 교수)

나는 실력이 미약하여 김동수 교수처럼 많은 책을 출판하지 못했고 지금까지 불과 세권의 책을 출간했다. 김동수 교수가 비판하였던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는 나의 첫 번째 책이었으므로 기대와 흥분, 그리고 독자들의 반응과 평가에 대한 두려움도 매우 컸다. 그러한 때에 평택대학교 신학과 교수직함을 가진 김동수 씨의 비판의 글이 언론에 올라오니 약간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김 교수의 글을 읽어보니 주목할만한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오순절 신학에 물든 사람들이 보통 하는 말들이었다. 오순절 운동에 빠진 사람들이 매우 집착하는 현대의 방언과 예언에 대한 이론은 결국 이것이다. 

“지금 방언, 예언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으므로 성경의 방언, 예언이 지금 있는 것이다

철저하게 오순절 운동신학에 물들어 있는 김동수 교수의 나의 책에 대한 비판의 글도 위와 같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못했다. 당시 김동수 교수가 나를 비판하는 글을 보니 “나도 교수하면 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후에 김동수 교수는 김하중 장로의 책 <하나님의 대사>에 대한 서평을 써서 언론에다 올렸다. 온누리교회의 장로 김하중 씨는 서울대 졸업이라는 학력과 김대중 정부에서 장관직을 지냈다는 화려한 세상 경력으로 사람들의 큰 관심과 인기를 누린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부채도사, 박수무당 수준의 우습고도 창피한 내용들이고, 그가 성령의 역사라면서 자랑하고 떠드는 이야기들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가증한 내용들이다. 김동수 교수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가 쓰여진 책을 다음과 같이 극찬하였다.

“김하중 장로의 『하나님의 대사』를 다시 읽었다. 재차 읽는 것인 대도 처음 읽을 때의 감동이 그대로 몰려 왔다. 이 책은 2011년도에 국내에서 발간된 기독교 서적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이 책에 보면 김 장로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분별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그를 통해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방언도 있고 통역도 있고 예언도 있고 지식의 말씀과 지혜의 말씀이 있다. 참으로 감동적인 “사도행전 29장”이 아닐 수 없다.”(김동수 교수)

김동수 교수가 김하중 장로의 책을 극찬하면서 서평하는 것을 보니, 그의 말에는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앞으로도 나에 대해서 무슨 말을 더 할지라도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한국에 사시는 이창모 목사님이 자신의 책 <방언, 그 불편한 진실>이라는 책을 미국의 우리 집으로 보내주심으로 친분과 교제가 시작되었다. 이창모 목사님은 <바른믿음>에 방언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글을 연재하였고, 동시에 이미 김동수 교수의 비성경적인 방언, 예언 이론들을 눈여겨보고 계셨다면서 김동수 교수의 이론에 대해서도 매우 성경적으로 비판하는 글들을 함께 연재하였다.

이창모 목사님이 연재하신 글들로 인해 김동수 교수의 거짓된 방언에 대한 이론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비성경적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하게 드러났다. 이창모 목사님의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상대해야 할 사람들과 단체들이 너무도 많은데 굳이 김동수 교수의 허무맹랑한 방언 이론까지 직접 다루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안심하였다.

약 1년 전의 일이다. 김동수 교수가 미국의 어느 도시에서 신자들에게 방언을 가르치다면서 이상한 일을 하는 영상을 누가 알려주어서 보았다. 김동수 교수는 방언으로 노래하는 것도 가르친다면서 참으로 해괴한 짓을 하였는데, 그 내용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나는 저 영상을 보면서 김동수 교수가 해도 해도 너무하고, 거짓 방언에 미쳐가다가 거반 ‘방언 또라이’ 수준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했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방언을 배우려고 저렇게 연습시키고, 사람들이 방언을 경험하도록 저렇게 분위기를 조장하면서 노래를 불러서 방언이 나오게 한다는 내용이 없다. 저 영상에서 김동수 교수가 하는 짓의 일부를 녹취해 보았다. 

“우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니 내가 방언합니다
 
우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니 내가 방언합니다
 
방언합니다 방언합니다 내가 방언합니다
 
방언합니다 방언합니다 내가 방언합니다

 얄랄랄라야따따 얄라따따따 얄랄랄라랄라 얄라따따다
 얄랄랄라라라라 얄랄라라라 얄랄떼떼떼 왔따끼꼬끼꼬끽께게
 
얄랄랄라랄라 얄랄랄라라라 얏따빠빠 얏따띠띠디
 
야라로로소 왜빼빼빼빼 앨랠레레렐 옛때띠뚜두두 ...”

대체 이게 무슨 짓일까? 김동수 교수는 이런 우스운 방언 노래를 뒤의 악단의 연주에 맞추어서 부르는 생쇼를 보이더니 다음과 같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방언받고 싶은 사람은 앞으로 나오세요!”
“입술을 맡기세요!”

그리고 본격적로 방언기도를 이렇게 우렁차게 시작했다.

“와다다다다다다 우디디디디디디 기기기기기기 와바바바바바 ...”

이것이 한국의 한 신학교 교수의 신앙의 실상이다. 이런 분이 한국에서는 신학교 교수라며 존경받고 있다. 이런 사람의 강의와 가르침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적으로 올바른 신앙으로 존경받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선배들 가운데 그 누구도 이렇게 방언을 가르치지 않았고, 이런 모양새의 방언을 하지도 않았다.

성경적 진실은 언제나 바로 이것이다. 누가 뭐래도 성경의 방언은 외국어이다. 택한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부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죽인 유대인들이 배우지도 않았고,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던 천한 이방인들이 실제로 사용하던 그 당시의 언어가 성경의 방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을 자기의 백성으로 택하셨고,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음을 하나님이 친히 이방인들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선포하시는 것이 방언 은사(이적)였다(고전 14:21).

그래서 성경의 방언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그것을 목격하는 유대인들이 많았고, 방언 은사(이적)를 보는 유대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을 두려워하며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들이 많았다. 또한 하나님이 이방인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방언을 보이심으로 믿는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아 하나님 백성되었고 교회의 정식 멤버가 되었음이 인정되는 교회사의 중대결정이 이루어졌다. 방언에 대한 이러한 중요한 연구의 언저리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저 입에서 나온다고 “이것이 성경의 방언이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김동수 교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다루고 있는 이상한 종류의 방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아무도 모르는 하늘의 언어라는 주장도 마귀의 거짓 방언공작에 이미 속은 사람들의 거짓 주장이다. 당시 고린도교회에 '거짓 사도들', '광명의 천사들', '궤휼의 역군들', 즉 이단들이 들어와서 교회를 휘저어 놓았다는 것은 성경이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는 내용이다(고전 11:13).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다루고 있는 이상한 방언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으나, 이단들에 의해 들어온 거짓 방언, 즉 방언으로 기도한다는 비성경적인 이단현상을 몰리치기 위해 논하였던 말씀들이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전 14:14)

거짓 방언기도의 영에 빠진 사람들은 위 구절이 방언기도의 근거라고 한다. 그러면 조금 더 생각해 보자! 방언기도가 하나님의 역사라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방언으로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우스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나님이 왜 자기에게 방언으로 기도를 한다는 것인가?

또한 거짓 방언기도의 영에 잡힌 사람들은 위 구절을 제시하면서 방언기도는 영혼의 기도, 즉 사람과 마귀는 모르고 오직 영혼과 하나님만이 아는 비밀의 기도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말 기도는 누구나 다 아는 마음의 기도라고 한다.

그러나 바울의 사상과 성경의 인간론에서는 영혼과 마음이 분리된다고 가르치는 내용을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사람은 하나님이 영혼과 육체를 친히 만드시어 완전하게 연합시키심으로 나타나는 인격의 존재이다. 영혼과 마음이 따로따로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사상은 이방종교인들과 비성경적 신비주의자들의 사상이다. 절대로 바울이 가르치는 사상이 아니다.

위 구절을 이해하는 방식으로는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1)정확한 뜻을 알 수 없는 난해구절로 간주하고 뒤로 물려두고 다른 명확한 말씀들을 우선하여 방언을 이해하는 방법,
2)바울이 가르친 사상이라기 보다 고린도교회에 침투한 이단들의 거짓 방언에 대한 이론을 바울이 소개하면서 반박하는 내용인데, 2,000년 전의 고대헬라어 문장을 정확하게 번역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해하는 방식이 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고전 14:4)

거짓 방언기도에 속은 많은 사람들이 위 구절을 제시하면서 방언기도는 개인의 영적 유익을 위해 주신 은사이고, 예언은 교회의 영적유익을 위해 주신 은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도 바울의 사상이 아니다. 모든 성령의 은사들은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한 은사들이다. 개인의 유익을 위해 주어지는 은사는 성경에 없고, 그것은 바울의 가르침도 아니다.

위 내용도 바울의 방언에 대한 신학이라기보다 당시 이단들이 거짓 방언기도를 전파하면서 내세운 거짓 이론을 바울이 소개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반박하는 내용으로 보아야 한다. 방언은 반드시 통변과 함께 교회에서 시행되었으므로(고전 14:13) 정상적이고 성경적인 방언은 통역과 동시에 예언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방언은사를 통하여 주신 말씀도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주시는 예언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

또한 많은 거짓 방언 기도자들이 위 구절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방언기도는 하나님께 직통으로 비밀을 말하는 은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다음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대답해 주기를 바란다.

1)왜 바울은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표현하지 않았고 방언을 (사람에게) 말한다고 하였는가? 
2)영으로 비밀을 말한다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모르시므로 알려드려야 할 사람의 비밀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참고로 다수의 성경학자들이 위 구절을 해석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1)방언은 사람을 상대로 실제 언어를 성령의 역사로 구사하는 은사이므로 성경은 기도한다고 표현하지 않고 말한다고 표현한다.
2)이 구절의 ‘비밀’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하나님 편에 감추어져 있는 복음의 비밀을 뜻하는 단어이지, 하나님이 모르시는 사람의 비밀을 뜻하는 말로 쓰여지는 단어가 아니다.
3)위 구절도 당시 거짓 방언기도 이단들이 주장하는 이론을 바울이 소개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반박하는 내용으로 보아야 하고, 또한 고대 헬라어 문서를 정확하게 번역하지 못함으로 그 뜻이 모호해졌다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수 교수와 비이성적인 거짓 방언기도 중독자들은 이와 같은 정당한 성경 연구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하고 부족하다. 솔직히 자신들이 성경연구를 깊이 해 보기 전에 이미 거짓 방언 현상이 자기의 것이 되었으므로, 자기의 체험에 맞게 성경을 억지로 짜 맞추기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늦게라고 깨닫고 돌아서고 버리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인데, 끝까지 거짓을 섬기고 복음을 훼방하고 거짓의 왕 마귀를 추앙하니 때가 이르러 하나님께서 큰 망신과 수치를 안겨주신다.

지금 그런 일이 김동수 교수에게 정확하게 임하였다. 나의 신학과 사상을 비판하였던 김동수 교수가 해과한 짓을 벌이는 위 영상을 일찍 보았으나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저 해괴한 김동수 교수의 방언 영상을 인터넷에서 전파하면서 가차없이 질타하고 비판하고 있다. 김동수 교수의 저 영상을 보면서 사람들이 뭐라고 김동수 교수에게 말하고 있는지 여기에 일부를 옮기도록 하겠다.

“어! ... 이 이름(김동수 교수)을 여기서 또 듣네요. 대학원에서 몇 년째 수강생이 없어서 강의 개설을 못하시는 분! 적어도 제가 있던 2년 동안은 수강생이 없었어요. 학부는 필수라 어쩔수 없지만, 대학원에서는 아무도 신청하지 않고 있어요. 다른 교수님들께 솔직히 이 교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다른 교수님들은 ‘많이 배운 분인데!’ ... 라고 하셔서 학생들이 좀 허탈해했어요.”

“신사도,오순절 운동의 영향으로 장로교회에도 방언이 흘러들어 왔습니다. 타 교단은 모르겠고 장로교단은 통역이 안 되는 방언은 그냥 쉰 소리로 흘려버렸습니다. 내 방언을 듣고 타인이 통역하고 언어로서 일관성도 있어야 합니다. 빠르게 반복적으로 말을 빠르게 하다보면 대뇌중추가 흥분하여 생각과 달리 이상한 소리가 입에서 납니다.

한 번 흥분되고, 반복된 리듬이 있는 경험은 다음에도 뇌에서 기억하고, 같은 상태의 요상한 소리를 내게 됩니다. 흥분이나 긴장할 때 다리를 달달 떠는 것과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의사로서의 판단이면서 신도로써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간단한 실험으로 방언하는 사람의 곁에서 리듬감있게 엇박자 추임새를 넣으면 방언이 흐트러지거나 주춤합니다. 한마디로 99%의 방언은 헛짓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뇌중추 흥분 훈련을 방언받는 것으로 착각하는 겁니다. 은밀한 중에 골방에서 만날 수 있는 하나님께서 허탄해하실 것입니다”

“방언은 은사라고 성경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석해주는 사람도 있어야한다는데, 은사를 저렇게 가르치면 안 되지 않아요?”

“요즘은 별 교수가 다 있네요”

“성경적 방언에 대해 너무 무지하네요. 영상보니 참 안타깝습니다”

“정말 악한 사람이네요. 어찌 이걸 방언이라고 하라고 하는지 차라리 방언대학교를 해야겠네요. 때려주고 싶네요”

“정말 어이가 없네요. 이런분에게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 걱정되네요”

“웃찾사 프로그램에 나가면 되겠습니다. 정말 신학교수는 아니겠죠?”

“진짜 또라이네! 통역이 되는지 안 되는지 보면, 가짜 쌩쑈인지 진짜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인지 알 수 있는 겁니다”

“개가 짖는 소리가 더 뜻과 의미가 있어 보이네요. 멍멍! ... 경고의 의미라도 있다. 저게 뭔지! 김동수 이놈! 악에 받쳐 있구나! ㅉ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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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