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택 목사(예장합신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식상한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오늘의 교회가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분쟁이나 분열, 대교회주의와 물량주의, 기복적인 신앙과 신비주의, 독선적인 신앙과 배타적인 태도 등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일부 빗나간 사역자들이나 교인들이 저지른 비리와 악행들을 보고 그러한 태도를 가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긴 나라 안에 여러 가지 사건이 발생했을 때 거기는 당연히 기독교인이 끼어있었고 자연히 사람들의 뇌리에는 기독교인도 범죄에는 예외가 아니라는 의식이 심겨질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인인 우리 자신도 어느새 우리 나라 인구의 1/4이 기독인들이라고 하는데 범죄사건에도 1/4, 교도소에도 1/4, 각종 공직자비리사건에도 1/4 이 될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종교에 대하여는 왈가왈부를 할 필요가 없다. 다만 우리 기독교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생각하고 가슴아파하며 슬퍼할 뿐이다. 특히 기독교회가 세상의 빛이요 소금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있는 존재보다는 비난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또 하나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섬기며 유일하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가 인간이 만든 종교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슬퍼한다.

우리 스스로야 기독교는 타종교와 다르다고 인정을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다른 종교가 그것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기독교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가 나타나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천상천하에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능력의 하나님의 현현(顯現/Theophany)도 있어야 하지만 거룩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의 삶을 통하여서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이 보여져야 된다고 믿는다.

어느 목사님의 엣세이집에 나와 있는 에피소드를 잠깐 인용한다(십자가에서 떨어진 목사/정명철) "나는 일본 사람들에게 목사로서 예수 믿으라고 선교하기 위하여 일본에 간 적이 있다. 그리고 일본사람들에게 예수를 증거했다. 또 일본 목사들에게 한국교회를 본받으라고 했다. 너희는 왜 그렇게도 기독교가 맥을 못추는가? 왜 교회가 부흥이 안 되는가?

한국에는 밤에 나가보면 온 천지가 십자가의 물결로 뒤덮여 있다. 너희는 전도하지 않고 게으름만 핀 것이 아닌가? 한국보다 100년이나 먼저 복음이 전파되었는데도 이제 겨우 몇십만 명이 뭔가? 한국에 가봐라 지금 한국에는 기독교인이 1200만 명이다. 세계 10대 교회들 중에 한국교회가 줄줄이다. 한국은 지금 할렐루야다. 서울에 있는 삼각산이란 산에는 밤에 가보면 밤새도록 기도소리가 끊어지지를 않는다.

그러니 너희 일본 목사들은 한국에서 온 한국 목사에게 배워야 한다. 그랬더니 그 일본 목사가 나를 가만히 보며 웃으며 하는 말이 '그러면 지금 한국은 천국이 다 됐겠군요? 참 좋은 일이네요' 라고 말했다. '.....?!'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그 말은 비웃음이었다. 그 며칠전 성수대교가 무너졌었다. 허 허 허 "

사실 우리 나라에는 많은 종교가 있다. 그중에 대중적인 큰 종교는 유교와 불교와 기독교인데 국민 거의가 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그 신앙심이 각자의 삶에는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탈종교화가 나오고 종교 불필요성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가 종교의 구실을 하지 못하며 그 힘을 잃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틈을 타서 각종 이단과 사이비종교가 판을 치게 된 것이다. 각 종교마다 그 종교에서 규정하는 이단들이 있고 사이비가 있는데 요즈음은 특별한 이단과 사이비종교가 등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영생교의 조희성이는 본래 기독교 이단이다. 그는 전도관에서 전도사를 하던 사람인데 그는 자신을 구세주, 미륵불, 정도령 등 각 종교의 구세주를 자칭하고 모든 종교의 통합을 시도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에 서로 맞보증을 서게 하는 방법으로 신도들에게서 은행대출을 받게 하여 천억원대의 돈을 갈취한 천존회의 모행룡 부부도 그들의 주장하는 것을 보면 유교와 불교, 기독교의 통합을 시도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생각컨대 유교신자들의 요구와 불교신자들의 요구 기독교인들의 요구를 자신이 채워줄 수 있는 것처럼 구세주로 내세운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삼문일도(三門一道)"라는 종교 아닌 종교가 있어 잠깐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이 삼문일도의 배경이 "올바른 신앙 갖기 운동모임(정신회/)正信會" 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취지문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잇는 다종교 국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외래종교와 국내 자생종교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면서 이단시비와 교리분쟁으로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신앙현실입니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자비(慈悲)와 인애(仁愛) 그리고 사랑 아닌 종교가 없음에도 그들 일부 종교인들은 종교 본연의 교리를 벗어나서 불신과 증오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사교집단들은 구원과 성령을 가장하여 시한부종말론과 빗나간 믿음으로 신도들을 맹신의 구렁텅이에 빠뜨려 패가망신을 시키면서 그네들은 온갖 사회악을 저지르며 그 맹종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본인은 올바른 신앙 갖기 운동을 위한 일환으로 올바른 신앙갖기 모임(正信會)을 만들고 신앙생활에 있어 가족간의 갈등이나 종교문제등으로 고심하시는 분께 도움을 들이고자 올바른 신앙갖기 모임"에 대한 취지의 말씀과 비교종교,이단논쟁등 신앙생활에 대한 논술문을 적고 다섯가지 사업목표의 달성을 위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밑거름이 되고자 하오니 신앙인 여러분의 많은 성원이 있기를 바랍니다."

5대 사업목표 1) '삼문일도론'을 홍보하여 올바른 신앙의 길로 인도한다.

2) 올바른 신앙 갖기 운동을 위한 강좌를 수시 개최한다.

3) 반윤리적인 사교집단을 색출고발하고 올바른 믿음으로 인도한다.

4) 빗나간 맹신자 또는 광신자를 교정 선도한다.

5) 올바른 신앙 갖기 운동 토착화를 위한 사회봉사단을 조직한다.

이 삼문일도를 시작한 사람은 자신을 삼공(三空) 권태호(權泰鎬)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 사람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없다. 그런데 그가 삼문일도를 시작하는 것이 바로 각 종교 특히 불교나 유교나 기독교의 잘못된 문제 때문에 바로 믿어보자는 것인데 그는 이 세종교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인용하면 "천학비재인 필자가 감히 팬을 들어 시공(時空)의 삼단계와 그 시공을 초월하였을 때 모든 종교가 가야하는 길을 삼문일도(三門一道)라는 원리에 입각하여 논술하였다. 이 삼문일도의 원리를 해득함으로서 독자 여러분의 종교개념이 정립되고 인류사회에 올바른 종교생활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고 말하고 있다.

삼문이란 무엇이며 일도란 무엇인가? 삼문이라는 것은 불교 유교 기독교를 말함이요 일도라는 것은 사실은 이 세 종교가 하나의 도라는 뜻이다.

제 1문은 과거와 원인 그리고 전생을 말하며 곧 불교요 제 2문은 현재와 과정 그리고 금생인데 곧 유교요 제 3문은 미래와 결과 그리고 내생인데 곧 기독교이다.

불교는 전생의 문제를 유교는 현재의 문제를 기독교는 내세의 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셋을 하나로 묶어 통합을 해야 진정한 종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 종교를 같은 선상에 놓고 전생과 현세와 내세의 문제를 바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시공속에 끊임없이 흐르고 반복되는 변성의 진리를 규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한번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아니면 영혼이란 것이 있어서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되는 것인가?' 하고 모든 태어남과 삶과 죽음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인생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과정을 겪게된다. 이것은 인간의 통과의례 과정중 시작과 끝에 해당한다. 그러다 보면 한 해 두 해가 흘러가고 우리가 현재하고 생각했던 시각은 과거가 되고 현재를 살며 다가올 미래를 기다리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경험하면서 이 세상에 사는 인간은 시공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변성의 진리를 규명하고자 하는데 이것을 종교라 한다" 고 정의한다.

삼문일도는 과거 현재 미래를 원인 과정 결과로 인과응보의 법칙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전생의 결과는 현재요 현재의 결과는 내세라는 원칙을 고수한다. 어떤 사물이라도 그 사물이 형성되고 회육이 되는데는 반드시 공간적인 원인과 과정 결과가 있기 마련이며 이와 같이 이루어진 사물은 반드시 과거의 존재원인과 현재의 존재과정 그리고 미래의 존재결과가 있게 마련인데 우리 인간도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전생과 금생 그리고 내생이라는 과거 현재 미래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과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생이나 해탈을 유상(有相)적 존재가 시공을 초월하였을 때 과거 현재 미래 또는 원인과 결과도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 영생이나 해탈의 길은 즉 입문(入門=시작)은 각문(各門)=삼문)이며 그리로 가는 길(시공을 초월함)은 일도(一道=한길)로 귀착된다는 것이다.

불교에 대한 글을 보자

"불교는 과거의 원인인 전생과 현재의 과정인 금생 그리고 미래의 결과인 내생이라는 이 삼문중에 그 첫관문인 과거의 원인을 청산하고 미래의 결과인 내생에 이르기 전에 해탈하라고 설법하는데 이것이 바로 석가여래의 근본사상이다. 이 점 때문에 불교가 삼문 중 첫째 문인 제 일문을 설파한 대표적 종교가 되는 것이다"

유교에 대한 글을 보자

"공자는 현실 진행과정에서 선근(善根)을 배양하고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이룸으로서 인간을 완성하려 하였다. 이와 같이 유교는 제 2문인 현재의 과정에 처해 있는 금생에 대하여 인간완성(人間完成)을 이루고자 하는 대표적인 종교라 할 수 있다."

기독교에 대한 글을 보자

"예수는 인간의 원죄에서 탈피하여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미래 결과에서 영생을 구하고자 하였다. 기독교는 미래의 결과에 대한 내생을 부활로서 영생을 얻는 제 3문의 종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불교는 주로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하는 것을 본질로 삼고 과거를 돌아보며 자아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는데 있고 유교는 "인간을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하는 것을 질문을 본질로 삼고 과거보다 미래보다도 당장 오늘에 이루어지는 과정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금생에 인간으로서 해야할 일을 다 이루어 놓으면 천당이든 극락이든 그것은 다 보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는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천국인가 지옥인가를 궁구하며 절대자이신 하나님 즉 타자에 대한 믿음으로 모든 죄악을 회개하고 용서를 빌며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

또한 불교는 모든 것을 참회하고 과거의 원인을 각성한다. 자의식에서 보시심(普施心)을 향하여 발심한다 거기서 해탈이 이루어진다. 유교는 충서(忠恕)로서 수도를 하고 현세를 수행의 장으로 삼아 성심으로 정심수신해서 치국평천하로 천인 합일을 이루려 한다.

기독교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현재에 안주하지 아니하고 내세를 향하여 구원을 얻고자 신심(信心)에서 성령으로 거듭나려 한다. 불교의 발심(發心)과 유교의 성심(誠心) 그리고 기독교의 신심(信心)은 그 어느 것도 종교인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으로서는 없어서는 안될 기본 마음이다. 발심이 없으면 성심이 없고 성심이 없으면 신심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원인 과정 결과 역시 과거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 없는 미래가 없다. 또한 원인 없는 과정이 없고 과정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전생 없는 금생이 없고 금생 없는 내생은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공도 그 한계를 초월하였을 때는 시간도 공간도 생사도 오직 하나일 뿐이다. 이것이 삼문(三門)이요 그 길은 한길(一道)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말하고 있는 이 삼문일도는 상당히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이 글을 읽고 어떤 불신자는 참으로 놀랍고 신선한 충격을 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삼문일도는 참되시고 유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독교가 마치 인간의 종교활동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기독교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인간을 부르신 계시종교임과 기독교가 그저 천국 가기 위하여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리고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 이 땅위에서 어떻게 사느냐 행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는 윤회적 사상을 거부한다. 그런데 전생이 금생이 되고 금생이 내생이 되며 다시 내생이 곧 전생으로 자로 윤회되는 사상은 성경에는 없는 사상이다.

필자가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왜 이러한 신흥종교와 이단과 사이비종교가 출현하는가 생각할 때 기독교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점점 세속화되며 그 경건의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현실의 교회 상황에 대하여 우리 모두 우려를 가지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믿는 신자로서 하나님의 사심을 증거하기 위하여 먼저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는 신앙으로 회복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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