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신도이단연구가 이인규 선생(기독교이단대핵협회 사무총장)

"정이철 목사와 임헌원 목사는 특별계시를 오직 성경 외에는 없다고 모두 부정한다. 물론 정이철 목사에 국한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성경 외에는 계시가 더 이상 없다”고 말한다. 그러한 주장에 대해서 조직신학적 의미는 다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많은 조직신학자들이 이단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가 사용하는 특별계시라는 용어도 조직신학자들과 전혀 다르다. 필자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나지만, 객관적인 특별계시는 성경이 유일하며, 성경으로 그 사실성과 진리적 기준이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신을 계시하는 방법은 지금도 존재한다는 뜻이며, 그러한 계시를 성경과 다른 계시의 방법으로 인정하고 믿어야 한다는 주장을 말한 적이 없다. 오직 성경만이 객관적인 진리의 기준이며, 완전한 계시이다. 특히 필자는 하나님의 현현이나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서는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음과 같이 확실하게 말하였다.

오늘날도 기적이 있다(0)
오늘날도 하나님의 계시가 있다(0)
성경은 특별계시이다(0)
성경만 특별계시이다(X)
성경은 가장 권위있으며 기준이 되는 특별계시이다.(0)
오늘날 직통계시가 있다(X)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0)
성경만이 유일한 객관적인 계시이며, 완전한 계시이고, 신앙적인 기준이 된다(0)"(이인규 선생)


위 내용은 이인규 선생이 세이연에 기고한 것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1) 교회에서 발생한 갈등이란 위기에서 진리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한국 교회는 계시에 대해서 매우 모호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성로 목사(춘천한마음교회)와 정이철/림헌원 목사의 부활에 대한 갈등에서, 이인규 선생과 계시 이해 갈등으로 전환하고 있다. 어쩌면 김성로(부활)/이인규(계시) VS 정이철/림헌원의 대결 구도로 까지 보인다.

두 진영을 보면 좀 독특한 것은 있다. 전자는 침례교 목사이고 감리교 권사였다. 이인규 선생은 약 20년 동안 감리교 권사였는데 지금은 장로교 교회로 옮겼다고 한다. 후자는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한 합동 측 목사이고 미주 한인 교회 목사이다.

위에 파란색 글은 이인규 선생이 세이연에 게재한 글을 부분 발췌한 것이다. 정이철/림헌원의 계시 이해에 대해서 명확하게 자기가 주장하는 계시 이해를 ○, ×로 밝힌 것으로 생각한다. 8개의 문장 중에서 나의 생각과 일치되는 내용을 선택해 보았다.  

성경은 특별계시이다(0)
성경은 가장 권위있으며 기준이 되는 특별계시이다.(0)
오늘날 직통계시가 있다(X)
성경만이 유일한 객관적인 계시이며, 완전한 계시이고, 신앙적인 기준이 된다(0)

보수신학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4개 문장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진보신학을 하는 분들은 4 문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다른 4개 문장은 판단하기 애매한(함축적) 문장이라 생각한다. 함축적 문장은 판단할 수 없고 명료한 문장을 만들어서 판단해야 한다.

1. 오늘날도 기적이 있다(0)

오늘날에 기적이 있다? 없다? 한국 초기 교회에도 많은 기적이 있었고, 현재 선교 현장에서도 많은 기적이 있다. 있다? 없다? 그러면 모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신학에서 말하는 기적과 사역 현장에서 말하는 기적이 분별해야 한다. 신학에서 말하는 기적은 계시 성격을 갖는 것이고, 사역 현장에서 기적은 특별한 현상으로 기적이지 계시 성격이 없다. 다시 질문하면 된다. 오늘날도 ‘계시를 가진’ 기적이 있다(X). 그러나 기도의 응답 등으로 예외적인 특별한 기적이 발생한다. 특별한 현상에 대해서 정확한 언어 사용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전자에는 계시적 필연성이 있는 것이고, 후자는 사역에 긍휼을 베푼 ‘하나님의 호의’로 생각한 것이다.

2.오늘날도 하나님의 계시가 있다(0)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0)과 동일한 문장이다. 그리고 성경만 특별계시이다(X)과 연관된다. 먼저 이인규 선생은 재미있는 언어유희를 사용했다. “성경은 특별계시이다(0)”와 성경만 특별계시이다(X)이다. 국어의 조사 ‘~은’과 ‘~만’을 예리하게 사용한 것이다. 두 문장은 조사 하나가 다르지만 사상은 전혀 다르다. 한 사상 체계에 이런 두 문장이 존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성경은 특별계시이다’은 ‘성경이 특별계시이다’도 의미가 다르다.

이 선생은 좀 쉽게 의미 구분을 시켜준 것이다. 주격 조사 ‘이/가’와 보조사(특수 조사) ‘은/는’의 쓰임은 문맥이나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경우가 있다. ‘~만’이란 조사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두 문장을 한 신학체계에서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일단 문법적으로만 해도 그렇다. 만약 ‘성경이 특별계시이다’와 ‘성경만 특별계시이다’라고 했다면 더 명확하게 구분되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계시가 있다’와 ‘성경만 특별계시가 아니다’라는 사상은 동일한 흐름이다. 이 선생은 성경만 특별계시이다(X)로 사용했다. ‘성경만 특별계시가 아니다’라고 했다면 좀 더 구분도 쉬웠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여기에서 답을 해야 한다. 기독교는 성경 계시에 의한 종교이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정경 범위가 다르다. 그 이유는 딱 하나이다. 지금도 계시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천주교가 통상 ‘성경과 전통’의 두 권위라고 한다. 전통이 성경보다 우선하는 것도 인지해야 한다. ‘전통’이 옛날 결정을 말하는 것도 되지만, 현재 교황에 의해서 계속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철저하게 성경 66권으로 한정하는 경건의 모습을 주장했다. 종교개혁 당시에 유럽 교회에서 정경은 66권이 아니었다. 교회는 명확한 정경 범위 개념이 약했다. 그러나 칼빈의 후예들은(벨직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정경 범위를 66권으로 목록을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처럼 확정했다.

성경 66권의 가르침 외에 다른 내용의 계시가 있다는 주장이 ‘특별계시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다른 내용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성자숭배 등이 정경권위에 의해서 가능하다. 마리아 숭배, 교황무오는 전통의 결정에 의해서 가능하다. 지금도 특별계시가 가능하다면 천주교의 주장이 틀렸다고 반박할 수 없다. 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 66권의 가르침은 창조주 하나님, 반역한 죄인과 구원, 구속주 하나님, 영생이 명료하게 계시되어 있다. 성경 66권 외에 다른 계시가 없이 완전하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특별계시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특별계시가 있고 계속된다는 주장은 성경 66권으로 구원을 얻기에 부족한 것이라는 사상이다. 그러한 생각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속죄제사, 부활, 승천하여 성령을 보내셔 내주를 실현시켰는데(렘 31:31-33, 행 2장, 요 2:28) 더 이상 어떤 계시가 필요한지 알 수 없다. 현재 성경 66권 밖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떤 지식을 구하려하는지 알 수 없다.

▲ 고경태 박사(조직신학)


3. 이인규 선생이 많은 조직신학자들의 개념을 제시한 것은 성경 66권이 완성되기 전에 일어난 계시의 모습들이다. 성경 66권이 완성된 후에도 그러한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학에 대한 미숙함이다. 그리스도 도래 이전에 신의 현현, 기적 등으로 선지자가 전하는 여호와의 권위를 보여주어 믿도록 한 것이다. 사도들은 사역에서 기적을 동반했지만 그 기적으로 사역의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았다. 사역의 정당성은 오직 전한 복음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지금도 기적은 있는데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이름은 있는데 생명이 없다면 그것이 다른 복음이다. 갈라디아 교회가 예수를 더 잘 믿기 위해서 할례 주장에 대해서 시행하려고 했던 것과 차이가 없다. 바울은 믿음에 할례를 더하는 것은 다른 복음으로 저주를 선언했다.

‘성경의 충족성’과 ‘특별계시의 가능성’은 전혀 함께 갈 수 없는 사상이다. 그러나 ‘성경의 유일성’과 ‘특별계시의 가능성’이 가능한 길을 칼 바르트가 만들었다. 그 때 바르트는 성경의 권위가 계시가 될 때만 발휘된다고 했고, 성경 외에도 다른 곳에서 교회 밖에서도 특별계시가 가능하다고 가르쳤다. 한국 교회는 바르트가 주장한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홍길동은(는) 대한민국 사람이다’ / ‘홍길동이(가) 대한민국 사람이다’ 의미가 같은가? 나는 대한민국이다. 내가 대한민국이다. 의미가 같지 않다. 의미가 같지 않는 사상을 한 체계에 놓은 것은 불합리한 사상 구조이다. 불합리한 사상 구조가 포스트모던에는 가능하다. 포스트모던은 탈권위, 해체 시대이다. 진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예리한 성령의 검이 필요하지 다양한 어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 각주 ---

1) http://ikccah.org/news_korea/4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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