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 교수의 칭의와 성화 2

강의에서 ‘독단’은 용납되지만, 학술지에서 ‘독단’은 합당하지 않다. 김세윤 교수의 <칭의와 성화>는 강의를 저술로 만든 형태이다. 그렇지만 신학 저술로 베스트셀러의 위용을 자랑한다. ‘명쾌한 신학 강의’라고 홍보한다. 학문은 명쾌할 수 없다. 명쾌한 것은 연설에서 가능하다.

<칭의와 성화>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전개하며 독단이 허용한 강의를 출판한 학술 저술이다. 저자의 독단을 기쁘게 수용하면 명쾌한 내용이 될 것이고, 저자의 독단에 의심과 거부가 발생하면 답답하고 무서운 저술이 될 것이다. 학문의 설득은 웅변에 있지 않고 논리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합리적으로 설득을 줄 수 있는 논리는 없다.

김세윤의 견해도 새관점학파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우수 신학자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러나 젊은 그리스도인 지성들에게는 새관점의 견해로 많이 옮겼을 것이다. 한국에서 김세윤의 신학과 새관점학파의 견해를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먼저 자기 신학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세윤의 신학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후대에 나온 새관점 학파 진술은 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세 표준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이해하거나 좋다는 평가는 허구에 불과하다.

필자는 가장 중요한 ‘자기 신학의 확립’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시작하였고 세워지고 있는 신학이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두 신학이 격돌하는 것이 아니라, 정통 신학1)에 다양한 다른 신학이 격돌하고 있다. ‘다른 신학’과 ‘또 다른 신학’도 변호와 논쟁을 한다. 정통 신학을 확립하지 않은 다양한 견해는 더 발전된 신학 개념이 아니라 ‘또 또 다른 신학’의 지류를 만들어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칭의와 성화> 3장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구원론적 표현으로서의 칭의론”에서는 저자의 명료한 단어 개념이 등장한다. 처녀작인 <구원이란 무엇인가?>의 내용을 변함없이 반복한다. 30년 전 내용을 반복하기 때문에 독자의 귀에 너무나 익숙할 것이다. ‘익숙함’에서는 ‘지루함’과 ‘편안함’ 둘 중 하나의 방향으로 간다. 저자의 오랜 경험에서 확실한 도는 더 깊어졌을 것이다.

김세윤이 제시한 개념은 “바울의 칭의의 복음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구원론적 표현”이다(94쪽). “주(主), 하나님의 주권을 대행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다(98쪽). “땅 위에서의 역사적 예수는 자신의 하나님의 아들 됨을 간접적으로 은근히 시사했지만, 부활하신 예수하신 예수는 이제 당당히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된 것입니다”(102-103쪽)2) 예수의 죽음은 D-Day(노르망디 상륙)이고, 예수의 부활은 V-Day(독일 항복)이다(106쪽).

김세윤에게 칭의와 성화는 동의어이다. 전자는 기독론적 복음이고 후자는 구원론적 복음으로 동의어이다(125쪽).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하나님의 왕국과 사탄의 세력과의 우주적 영역에서의 투쟁이라는 묵시적 틀”3)이고, “바울의 칭의의 복음은 하나님 나라와 사탄 나라의 대결인 묵시문학적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에 관한 것으로서, 하나님 나라 복음의 한 구원론적 표현”이다(111쪽).4)

김세윤은 구원이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의 전이인데, 그것을 성경에서 구속, 죄사함, 칭의 등으로 표현하였다고 제시한다(112쪽). 죄사함은 칭의 부정적 표현이고(112쪽), 통치를 받는 삶은 긍정적 표현이다(113쪽).


--- 미주 ---

1) ‘정통 신학’은 5세기까지 신학이고, ‘개혁 신학’은 16세기에 정통 신학을 부흥시킨 신학이다. 개혁신학이란 곧 새로운 신학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정통 신학, 예수께서 예루살렘 교회에 맡긴 복음을 확립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정통신학은 바른 믿음의 대상을 확립한 것이었다면, 개혁신학은 바른 믿음의 대상을 선포하는 것까지 체계화하였다(목사 제도 확립).

2) 이 문장은 국어 문법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주어는 ‘역사적 예수’이고, 중간에 (,)로 분리하면서 ‘부활하신 예수’가 주어로 사용하는 중문인데, 수동형 문장이다. 수동을 시킨 주체를 제시해주어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하는’ 역할은 제자들이기 때문에 ‘제자들에 의해서’라는 것이 삽입되어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는 제자들에 의해서 당당히 하나님의 아들들로 선포된 것입니다’라고 해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3) 김세윤과 새관점학파의 동일한 것은 중간기에 기독교의 기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점은 김세윤은 중간기 유대인의 묵시문학에서 기원을 찾고, 새관점학파는 유대교 본류가 언약적 신율주의로 재해석하였고, 기독교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4) 김세윤은 복음이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 나라의 대결 구도에서 승리로 본다. 패배의 원인은 아담의 실존을 반복하기 때문으로 제시한다. 승리하는 방법으로는 아담의 실존(자력으로 살려는 것)을 버리고 무한한 자원인 하나님의 자원을 사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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