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역사는 피의 역사,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와 무관한 전쟁

▲ 이슬람 테러리스트가 인질들의 목에 폭탄줄을 감고 폭사시켜 죽이는 모습

영국의 허핑턴 포스트 지 2016년 2월 9일자는 “성경과 쿠란의 분석 결과; 성경이 더 폭력적이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성경이 쿠란보다 더 폭력적이라는 사실이 과학적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고 했다. 이 “분석”은 탐 엔더슨 이라는 분이 실시했고, 그 내용을 영국, 허핑턴 포스트 지에 조지 보우덴이 보도했다. 탐 앤더슨은 이 분석 작업의 목적을 “이슬람 근본주의와 연관된 테러리즘이 다른 종교와 비교해서 이슬람이 특별히 그리고 근본적으로 폭력적임을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한 최근 토론”에 조명(照明)을 제공하고자 하는 뜻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앤더슨은 “이슬람이 다른 종교들 보다 더 폭력적이거나, 덜 폭력적인 가를 입증하고자 하는 뜻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으나, 야후 뉴스에서는 신속하게 Mic 의 탐 메케이의 이상 내용의 기사를 같은 날자에 보도했다. 그 제목은 “Here's What Happens When You Compare Violence in the Quran to Violence in the Bible” 이다.

소위 “과학적인 분석”이란 이러한 내용이다. “세 권이 책들 중에서 구약이 가장 폭력적이다: 본문의 약 5.3%가 “파괴와 살육”에 관한 것이고, 쿠란은 2.1%, 신약은 2.8%가 폭력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분석은 과학적인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것도 아니다.

서방의 학자들

최근의 “분석”중 하나는 2007년 케런 암스트롱 이 한 인터뷰에서 발언한 내용이 이상의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2009년 “중동 계간지(季刊誌, The Middle East Quarterly)”에 실린 기사에서 레이몬드 이브라힘은 암스트롱의 인터뷰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쿠란에서 보다는 성경 안에 훨씬 많은 폭력이 있습니다. 이슬람은 칼에 의해서 전파되었다는 것은 서방(西方)이 꾸며낸 소설입니다. 십자군 전쟁 때에 조작된 허구입니다. 사실은 서방의 크리스천들이 이슬람에 대하여 야수적인 성전을 행한 것이지요.”

그러면 최근 10년 이상의 무슬림 테러 사건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의 (무슬림들과 소위 서방의 학자들의) 답변은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서방의 식민주의 착취에 대한 분노와 서구인의 억압으로 인한 자신의 낙후성에 대한좌절감에서 온 것이지, 종교적 특유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을 펜스테이트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의 필립 젠킨스 교수가 쓴 “암흑의 구절들” (Dark Passages) 이라는 글이 잘 반영되고 있다.

“폭력과 유혈을 명령하고 있는 점에 있어서 성경이 쿠란보다 더 우월 [평화적]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오류이다. 사실, 성경은 “테러 구절 들”로 넘쳐나고 있다. (“테러 구절”이라는 말은 미국 신학자 필리스 트리블의 작품이다). 성경은 쿠란보다 훨씬 많은 구절에서 유혈을 찬양하고 촉구하고 있으며, 성경의 폭행은 훨씬 더 극단적이며, 무차별한 야 만성을 띠고 있다 ...(중략) 만약 본문 (성경)들에 의해서 전 종교가 형성된 것이라면, 유대교와 기독교야 말로 야만적 종교들로서 절대 정죄 대상 들이다.”

이것이 최근 서구학자들의 경향이다. 이러한 사상에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던 케런 암스트롱의 저서 “이슬람”에서 그녀 자신이 수록한 회교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암스트롱은 장장 20쪽에 걸쳐서 주후 610년부터 1998년 까지 이슬람 역사의 “년대”를 소개하고 있다. 각 연대에 발생한 사건들에 언급된 “단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624년 - 바드르 전투: 메카군에 대한 결정적 타격을 가함 
625년 - 우후드 전투. 유대인 축출 
627년 - 참호 전투. 쿠라이자 지역 유대인 대학살 
630년 - 무함마드 대군, 메카군 격파 
632년 - 무함마드 사망 
632-34년 - 제 2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 연맹 탈퇴 반군에 대한 일련의 전쟁들 
634-44년 - 무슬림 군, 이락, 시리아 애굽 침략 정복 
638년 - 무슬림, 예루살렘 정복 
641년 - 바사군 격파 
644년 - 우마르 칼리프 암살 
644-50년 - 무슬림, 시프러스, 트리폴리 정복 
656년 - 우트만 칼리프 암살 
656-60년 - 제 1차 내전 
656년 - ‘낙타’ 전투 
661년 - 알리, 제 4대 칼리프, 암살 
680-92년 - 제 2차 내란 
680년 - 시아 파 칼리프 후세인 전사 
684년 -
반란과 내란들 
691년 - 우마이야드, 시야 반군 격파. Dome of Rock 
705-
17년 - 북 아프리카, 스페인 정복 
732년 - 찰스 마텔, 유명한 ‘Tours' 혹은 ‘Poitiers’ 전투에서 무슬림 격퇴. 암스트롱은 이 부분에서 찰스 마텔이 “소규모의 침략군”을 격파했다고 기록한 것을 잊지 않음 
743-44년 - 압바시드와 우마이야드 간의 이란 전투 
744-49년 - 마르완 2세, 시야 반군 진압 
749년 - 압바시드, 우마이야드 격파 
750-54년 - 제 1대 압바시드 칼리프, 우마이야드 전 가족을 몰살 
755-75년 - 칼리프 아부 자파르, 시아파 지도자 살해 
809-13년 - 내란

814년 - 바스라에서 시아 반란, 카라자이트 반란 
818년 - 알 리다, 칼리프, 암살당
한 것으로 추측 
922년 - ‘술취한’ 수피 처형(수피의 ‘신비주의’를 뜻하는 듯함)

(이슬람의 긴 유혈의 역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를 원하는 독자가 있으면, 대영백과사전, “Islam”에서 “Razzia”를 검토하면 윤곽이 분명해 질 것 같습니다)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난 지 약 330년이 지났다. 유혈의 역사이다. 나머지 약 900년의 역사도 마찬가지, 유혈의 역사이다. 어떻게 서구 “학자”들은 성경속에 더 많은 “유혈과 폭력”을 발견하고 있는가?

가나안 정복

유대교와 기독교를 유혈의 종교로 보는 무슬림들과 일부 서구학자들은 예외 없이 신명기와 여호수아서의 가나안 정복을 예로 든다. 신 7:1-5; 20:16-18; 수 10:40 절 등이다. 성경은 분명하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나안 7족을 진멸할 것을 명령하셨다. 무슬림들과 소위 학자들은 왜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 때, 전 인류를 멸하신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이 많지 않은가? 그들에게는 아마 노아 때의 홍수가 “신화”나 “설화”로 여겨지기 때문인 듯하다.

이처럼 역사적 사건을 보는 “시각”이 문제이다. 가나안 정복의 “진멸” 내용에 대해서는 장황한 역사적, 신학적 해설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첫 째는 성경 자체에서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흐르는 땅으로 약속하셨다 (출 3:8).

그러나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의 땅이 아니라 “더러운 땅”이었다 (에스라 9:11-12). 어느 정도로 “더러운” 땅이었는가? 레위기 18장과 20장을 보면 그 때의 상태를 알게 된다. 만약 그러한 상태의 땅을 하나님께서 그의 선민들에게 선물로 주신다면, 상식에도 합당하지 않다. 신학적인 문제는 차치해 두고라도.

레이몬드 이브라힘은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본다. “근본적인 문제는 유대교-기독교의 역사와 이슬람의 신학”을 혼돈(混沌)하여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나안 7족의 진멸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기록은 역사이다. “역사”란 “일정한 때”에 “일정한 사람”에게 “일정한 사건”에 국한 된 “기록”이다. 그러나 이슬람의 “신학”은 모든 신도에게, 모든 경우에, 모든 때에 교조적으로 적용되어야하는 신의 명령이며, 이는 “역사적 기술(記述)”과 (이는 되풀이하지 않는다) 는 달리 항구적 구속력을 갖는 점이 신학과 다르다.

이 관찰은 쿠란과 하딧드 등의 문서에서 넘치게 입증된다.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으라 ...” (쿠란 9:5). “... 하나님과 선지자가 금기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에게는 비록 그들이 성서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항복하여 인두세를 지불할 때까지 성전하라 ...” (쿠란 9:29).

“실로 하나님과 선지자에 대항하여 지상에서 부패가 도래하도록 하려하는 그들은 사형이나 십자가에 못박히거나 그들의 손발이 서로 다르게 잘려우거나 또는 추방을 당하리라 ...” (쿠란 5:33).

참고로, 쿠란의 “알라”를 한글 번역본에서 “하나님”으로 번역한 것은 정직하지도 아니할 뿐 아니라, 이슬람 학자들이 세운 원리에도 맞지 않다. 쿠란의 영어번역 본 중에 아마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알려진 “The Koran”의 번역자 Marmaduke Pickthall 은 ‘수라 1’의 footnote에서 알라를 번역할 영어 단어가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너희가 전쟁에서 불신자를 만났을 때 그들의 목을 때리라 (smiting of the necks) ... ” 쿠란의 한글 번역본 footnote에서 “...불신자에 대한 전쟁선포”라고 해설하고 있다. 이슬람의 근본주의자들이 “불신자들” (infidel)의 목을 자르는 것이 외부 사람들에게는 참혹한 잔인행위이지만, 그들에게는 성전이다.

이와 같이 이슬람은 전 인류를 향하여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이것이 곧 이슬람의 “전쟁의 집”(Dar al-Harb)과 “이슬람의 집”(Dar al-Islam)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가 한 “움마”(umma, a community)가 되어 “이슬람의 집”이 되어 샤리아 법아래 들어올 때까지 “전쟁”은 계속된다. 이 전쟁은(Razzia) 무함마드가 시작하여 줄기차게 진행되어오고 있다. “전쟁”에 대한 무함마드의 어록이라고 할 수 있는 하딧드 내용의 일부를 보면 (무함마드 자신의 말):

“파라다이스는 칼의 그림자이다.”

“지하드는 어떠한 통치자이든지 간에, 경건한 통치자이거나 폭군이거나 간에, 그 통치자 아래서 사는 너희들의 의무이다.”

“하루나 일주일간의 지하드는 한 달간의 기도와 금식보다 더 선하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죽는 자는 불신자의 죽음이다.”

“정조준을 배우라. 왜냐하면 표적과 활 쏘는 자와 간격이 곧 파라다이스의 정원 중 하나이다.” (버나드 루이스, ‘이슬람’ p. 144).

무함마드가 끼친 “영향”은 거의 신적 위치를 갖는다. 쿠란이 이를 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에 대해서 쿠란은 수라 33:21 에 “진실로 너희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의 훌륭한 모범”이라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은 비록 쿠란에 기록되어 있지 않을 지라도, 하딧드에 기록된 모든 그의 언행이 본받아야할 법적 권위를 갖는다.

이런 무함마드에 대해서, 1,400년 후 그의 충실한 신자였으며 미군에 의해 이미 사망한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우리의 선지자께서는 메디나에 있는 동안 (직접) 불신자들을 약탈하거나, 혹은 약탈군을 보내서 그들의 진지를 파괴하고, 그들의 소유물과, 생명과, 그들의 여자들을 탈취하지 않은 채 3개월 이상을 보낸 적이 없었다.” (레이몬드 이브라힘의 기사 “유대교와 기독교는 이슬람만큼 폭력적인가?”에서 빈 라덴이 전 세계 무슬림의 49%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알 자시라 보도 (2006년) 내용을 인용)

이처럼 현재 이슬람주의자들의 테러, 참수, 십자가 처형, 마을의 약탈, 여자들의 성 노예 등은 무함마드까지 올라가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음 내용은 2010년 2월 호 World 주간지에 실린 Wafa Sultan (“증오하는 신”의 저자) 인터뷰 내용의 일부이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한 미국 여자에 대한 언급하면서 그 여자는 회교국가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술탄은 시리아 출신 정신과 의사임). 그 여자는 무함마드가 어떻게 여자들을 대한 것을 알고 있나요? 무함마드가 54 세 때 아홉 살 된 여자 아이와 결혼한 사건을 그 여자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요? 또 무함마드가 자기가 입양한 아들의 아내를 강제로 취하였으며, 하루 전투에서 800명의 머리를 참수한 바로 그날 밤 한 여자와 동침한 사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또 무함마드가 유대인 여자 소피아의 남편과 그녀의 아버지와 남동생을 살해한 바로 그 날 밤 그 여자를 대리고 동침한 사건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요? ... 쿠란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무함마드는 다른 모든 무슬림의 본이 되어야할 인물입니다. 그의 행실은 오늘 날도 적용되고 있으며, 오늘 날도 용인되고 있습니다.”

이슬람이 무함마드의 언행을 반영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을 반영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삶에 대해서는 “그가 죄 없는 분”이라는 성경의 증언들 뿐 아니라, 예수님 자신도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라고 답변을 요구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질문은 전 역사를 통하여, 전 세계에 향한 도전이다.

“너희 중 누가 나를 책잡겠느냐?”

온 인류는 이 질문 앞에 “주여, 없나이다” (요 8:11) 라고 대답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고 다 물러가버린 유대인들과 같지 않고, 그 발아래 엎드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자가 되어야할 것이다.

이슬람의 전쟁은 이와 같이 무함마드의 본을 받아 항구적이다. 이스라엘 나라도 전쟁의 역사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 (Kingdom of God) 와 하나님께서 출애굽 이후에 세우신 “이스라엘 나라”(Kingdom of Israel)의 다른 점을 구별해야한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전쟁이 없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게 전쟁이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세우셨기 때문이다 .

“밭은 세상이요.”(마 13:38)

신구약 성경에서 이 두 나라의 관계를 알지 못하면, 그들은 당연히 기독교를 “유혈”의 범주 안에 포함할 것이다. 그러면, 소위 “과학적 분석”을 시도한 학자라는 분들은 신약에서 2.8%의 “폭력”을 어디에서 발견한 것인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칼”에 있는 것이다.

검을 가진 자

“검”을 컴퓨터에서 검색하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라는 말씀과 함께,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 26:52)는 말씀을 보게된다.

마 10:34 절 말씀과 같은 내용을 기록한 눅 12:51 절에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분쟁”은 문맥을 보면 그 의미가 금방 선명해 진다.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한 자를 나누어 구별하게 한다는 뜻이다. 눅 12:53 절 말씀이 이를 밝히 설명한다. 요 1:13 절 말씀이 좋은 해설이 된다.

그러나 “평강의 왕”으로 오신 이가 왜 “화평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시는가? 모든 인간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데, 세상에 무슨 평강이 있을 것인가? 그가 와서 먼데 있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 (유대인과, 이방인들) 간에 있는 담을 헐고 십자가로 하나 되게 하여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일을 하시지 않으면 어디에 평강이 있을 것인가? 신약 성경에서 “기독교의 2.8%의 폭력성”을 감지한 컴퓨터는 컴퓨팅하는 기계이지 신학(神學)을 하는 인격체는 아니다.

요한 계시록

계시록에 기록된 “폭력”들에 대한 고려는 이슬람의 폭력과 기독교의 폭력을 비교하는 기준으로 사용할 자료가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의 위치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죽도록 충성하라”이며, “이기는 자”란 시험과 환난에서 이지 “칼”을 사용한 신체적 전투가 아니다. 많은 “전쟁”들에 관한 기술들이 있지만 성도가 무력으로 참전하는 장면은 없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평화의 종교이다.

십자군 전쟁

무슬림들과 소위 일부 서방 학자들이 기독교도 “전쟁의 종교”라고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는 십자군 전쟁이다. 십자군 전쟁은 결코 “기독교” 전쟁은 아니다.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의 전쟁”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선 “십자군 전쟁”에 관해서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타머스 메든 교수의 말 안에 들어 있는 내용으로 보아 분명해 진다.

“십자군 전쟁의 일반적 인상은 (대중의 이해는) 권력에 미친 교황들의 인도를 받아, 종교적 광신자들이 이슬람에 대하여 싸운 일련의 성전들이다.”

메든 교수의 의미는, 결론적으로, 십자군 전쟁은 “방어전”이지 공격전이 아니다는 것이고, 무슬림들에 의하여 탈취당하여 상실한 고토의 회복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피력한 “대중의 견해”가 더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권력에 미친자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 광신자들”이 아니다. 결론은 십자군 정쟁은 결코 중생한 그리스도인 전쟁은 아니다. “십자군 전쟁은 자기 의와 비관용의 축도(縮圖)판이며, 로마 가톨릭교회 역사의 검은 점이다” 는 메든 교수의 평이 옳다.

십자군 전쟁이 기독교가 폭력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역사적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전혀 무리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수님의 가르침

십자군 전쟁이 “기독교인의 전쟁”이 될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은 원수와의 대결에서 칼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볼 수 있다. 마치 이슬람의 모습을 무함마드에게서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쿠란은 원수를 만나면 “목을 치라”고 했으며, 무함마드는 “목을 치는” 라찌아 (raids)의 창시자였다. 무함마드는 원수를 만나면 상대방의 목숨을 취했고, 예수님은 원수를 만나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셨다.

그리스도는 “칼”에 대해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라고 하셨다 (마 26:52). 그리스도인의 전신갑주는 “진리”이고, “의의 흉패”이고, “평안의 복음”이고,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등이다. 그리스도인이 원수를 만나서, 원수가 주리면 먹이고, 목마르면 마시운다. 성서적 그리스도인은 그들을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지 않는다(롬 12:14).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 5:39)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7-28).

그리스도인에게는 테러나, 약탈이나, 살육이나, 겁탈이나, 침략이 가능하지 않다. 만약 어떤 자가 테러나, 약탈이나, 살육이나, 겁탈이나, 침략을 자행하면서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말 하는 자이고, 모든 거짓말하는 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는 자들이다 (계 21:8).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십자군들이 자행한 일들의 일부 기록을 보자.

“그들이 통과한 지역의 주민들 가슴 속에 공포로 가득 채웠다. 그들은 약탈과, 탈취, 강탈과 강간을 자행했다. 일단 전투에 임하면, 자비가 잔인보다 이익이 되기 전에는 철저히 무자비했다. 십자군의 칼날에 희생된 첫 번째의 희생자들은 그리스의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고문과 대량학살을 당하였다.

이것이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에서 니케아에 이르는 노정의 지역 주민들이 당한 운명이었다. 십자군에 의해서 처음 점령당한 회교도의 성이 니케아 성 근방에 있던 세리골든 성이었다. 얼마 후 터키군에 의해서 빼앗겼다가 십자군이 다시 탈환했을 때, 성내 주민들 중 기독교로 개종을 거부한 모든 주민들이 학살되었다 ... 1099년 7월 15일, 십자군의 목표였던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 ... 보수의 날이 드디어 이르렀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격파한 불신자들보다 더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 아퀼러스 레이몬드는 기록하기를 다음 날 아침 성전 지역을 향하여 갈 때, 쌓인 시체들을 피해서 무릎까지 이른 피를 휘젓고 건너가야 했다고 한다” (윌리엄 R. 이스텝, 문예부흥과 종교개혁, p. 9)

“기독교의 폭력”을 정당화 하려는 서구 일부 학자들이 즐겨 예로 드는 십자군 전쟁은 성서적 기독교 전쟁이 결코 아니다. 성서적 기독교는 절대 평화의 종교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평강의 왕이기 때문이다.

 

정태윤목사 / 복음주의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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