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신사도운동의 사도는 인격을 가진 인간이다. 그러나 이제 인간사도에 대해서 말하는 곳은 신사도 그룹이라는 사실이 잘 알려졌다. 이제 그런 곳은 곧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좀 수위가 낮아진 부드러운 모습으로 신사도 사상을 확산하는 그룹이 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 신사도 운동은 인격과 생명을 가진 사도를 말하지 않고, 그 대신에 “사도적”이라는 형용사를 내세운다. 그래서 여간 혼란스럽지가 않다. “사도적 목회”, “사도적 리더쉽”, “사도적 교회”, “사도권 회복” ... 이런 용어들이 요즘 급속히 퍼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그런 단어를 자주 쓰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어쩌지 뭔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딱히 무엇이 그릇되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국제기도의 집(IHOP)도 그렇다. 이전에는 그곳에서도 “사도”라는 명사형의 단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곳의 선지자들의 입이 예언을 받으러 간 어떤 사람에게 사도의 소명이 임했다고 했었다. 분명히 “사도”였지 “사도적”이 아니었다. 사실 이러한 일은 이미 80년대 초에 밥 존스와 마이크 비클 사이에 계시와 환상을 통하여 이미 학습되고 준비되어진 일이다. 그냥 갑자기 등장한 일이 아니다. 다음은 당시에 마이크 비클이 사도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어니 그루엔 문서의 내용이다. 다음은 마이크 비클과 밥 존스와 그리고 그 당시 캔자스시티 선지자들의 세계에서 있었던 일들을 폭로한 미국인 어니 그루엔 목사의 문서에 담긴 내용의 일부이다.

“4. "최고위 사도"에 관한 마이크 비클의 교설은 성경에서 매우 벗어난다.

마이크 비클은 그들의 "운동"으로부터 수 백 명의 사도들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35명은 최고위급(사도)이 될 것이다. 그들은 육체 가운데 (신적 강림을 통해 가능한) 예수를 보아야만 하며, 그들 세대의 고난의 대부분을 겪어야만 한다고 그는 또한 주장한다.

▲ 마이크 비클, google images에서 캡쳐

이 세대에서는, 사도 사역의 최고위급이 될 사람들로는, 이 운동을 위해 나타날 사람들 중의 35명이 있을 것이다. 이 운동에서는 수 백 명의 사도들이 생긴다고 믿지만, 사도바울과 같은 수준에 이르는 사람은 35명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운동이 가는 모든 곳에서의 최고위급에서의 모든 통치 속에, 주께서 지고의 방법으로 갈라놓은 35명이 있을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통치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의지한다. 하지만, 그분은 35명의 특정 사도들이 있어서, 그들이 그분의 임재를 말해주는 언약궤를 나른다고 말씀하셨다...(F88, p. 78).

우선 사도는 예수를 육체 가운데 보아야만 했다. 사도는 그저 부름받은 사람(즉 일종의, 그 사실을 알아차렸고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사도는 예수를 개인적으로 육체 가운데 보았다. 그 예수는 그의 손을 사도의 머리에 얹고 이적과 기사의 권능을 분여(임파테이션)한다. 고린도후서 12:12에서 사도는 사도의 이적과 기사를 베풀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예수의 표적과 기사를 행하지 않는 사람을 사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셋째로, 신약 사도들은, 그들 세대의 고난의 대부분으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그들의 몸속에 겪었다. 넷째로, 도시 교회들을 세우기 위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여행하는 모든 불편을 해쳐나가야 했다. 내 생각으로는, 사도는 성숙한 방법으로 교회 속에 풀어진 것이 아니다.(P.His 3, p. 2).

이것은 비록 초대장에 불과했지만, 나는 직관적으로 이것이 사도 사역임을 알았다. 이것은 위임은 아니었다. 주는 나를 사도로 부르고 계시지 않았다. 그분은 고려중이라고 하셨다. '앞으로 네가 충실하다면, 너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도적 소명을 채울 기회를 가질 것이다. 만약 네가 충분히 충실하다면."(F88, p. 82).

만약 사람들이 중보(도고) 속에 살며 그들(사도들)의 도래를 (기도로)요청한다면, 내가 사도들(챔피언들)을 낳을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F88, p. 84).”

위 내용을 보면 마이크 비클이 이미 살아있는 인격을 가진 사도에 대해서 당시에 경험한 계시와 환상을 통하여 이미 학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장래에 수 백 명의 사도들이 탄생할 것이고, 그 중의 35명은 더욱 더 수준이 뛰어난 정상급 사도들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친히 사도의 권능을 부여받아 사도가 된 그들은 교회에서 각종의 이적을 일으키면서 사도로 드러날 것이고, 또한 고난을 당하면서 각 도시에서 교회를 세우는 사도들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 모든 내용은 밥 존스와 마이크 비클 자신에게 임한 환상과 계시였다.

그러므로 이후 한 동안 IHOP에서 훈련되는 사람들 중에 사도직의 소명이 그곳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임하였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때부터인가 조금 변형된 것이다. IHOP에서는 명사로서의 “사도”가 아니고 형용사로서의 “사도적”인 신앙훈련을 통하여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양육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도적이라는 말이 더욱 선호된다

신사도운동 그룹 안에는 비둘기파와 매파가 있는 것 같다. 매파는 사도라는 명사를 고수한다. 피터 와그너, 릭 조이너, 밥 존스, 폴 케인 ... 이런 사람들은 항상 매파 일 것이다. 그러나 비둘기파는 사도적이라는 말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아이합과 마이크 비클도 여기에 해당되고, 그 외의 사도적이라는 말을 염려스럽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피터 와그너는 사도의 주된 기능과 사명은 영적전쟁을 지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도들은 탁월한 용사이고, 또한 핍박에 전혀 굴하지 않고 끝내 사명을 완수하면 영적인 장군들이다. 사도들은 앞장서 원수(?)들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전쟁을 효과적으로 지휘하기 위해 교회들을 연합시키는 자들이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직통으로 받은 말씀으로 교회들을 그 전투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전투에 능한 군대로 조련한다. 그 사도들의 교회와 집회를 통하여 일어나는 일의 결국은 다 그런 것이다. 감동받고 빠져드는 사람들을 전투적인 군사로 만들어 간다. 그들을 더욱 결집시켜서 그들의 운동을 확산하는 탁월한 군대가 되게 한다. 그리고 자신들도 그러한 삶을 살면서 다른 건전한 교회들과 성도들로부터 당하는 반대와 비판을 일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당하는 핍박과 비판이 어디로부터, 무엇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가? 이것이다. 그들이 당하는 핍박과 비판은 기존의 다른 성경적인 교회들로부터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들의 운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과 그 복음으로 인해 탄생된 교회를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늘 자신들의 입장에서 멋대로 해석한다. 사탄의 영에 결박된 죽은 바리새 교회들의 새로운 하나님의 사역에 저항한다고 하며 자기들끼리 더욱 결속을 다지고 있다. 우리가 보면 너무나도 한심한 짓인데, 그들은 너무나도 위대하고 의미있는 성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 상황에서 영적전쟁, 핍박, 불굴의 의지 ... 이런 말들이 그들에게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고, 또한 그것들이 사도와 선지자로서 자신의 진정한 identity로 여겨지고 있다.

신사도운동 분위기를 풍기는 어떤 선교사의 강의를 들었다. 그도 역시 사도는 핍박을 받아도 굴하지 않는 진취적이고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 순간 당장 “바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면 바로 가장 먼저 저 분이 바로 사도이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왜냐하면 그 분도 선교사로서 여기저기의 많은 건강한 교회들과 목회자들과 다른 선교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이나 타 종교인들로부터 발생하는 압박보다는 다른 선교그룹들과 교회의 목회자들로부터 당하는 압박을 그 분에게는 더 심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그 분도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사도에 관한 설명을 하셨다. 이상하게도 신사도운동과 연관이 있는 분들은 영적전쟁, 핍박, 진취적인 기상과 불굴의 의지 ... 이런 것을 사도의 특징으로 가장 강조한다.

바로 이 점이 그들의 빗나간 사도관이다. 사실 초대교회의 진짜 사도들도 아무리 무서운 핍박을 받아도 전혀 굴하지 않았다. 온 세계를 거침없이 누비면서 영적인 싸움을 싸웠다. 정말 그러하였다. 예수님이 직접 임명하신 사도들은 죽을지라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다.

단순히 그 사실만 비교하면 요즘의 거짓 사도들과 그때의 진짜 사도들의 모습이 참 닮았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진짜 사도들이 과연 무엇을 위하여 그런 고난과 위대한 불굴의 영적전투를 수행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 부분에 있어서 요즘 사이비 사도들과 사도행전의 진짜 사도들은 판이하게 다르다.


십자가와 부활이 사도적 리더쉬의 핵심이다

진짜 사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위해서 그랬다. 그들의 삶과 믿음과 복음선포의 중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 그리고 그 복음으로 인해 탄생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온전하게 세우고, 마귀의 가라지들이 전하는 거짓복음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핍박받고, 인내하고, 귀신들과 싸웠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지중해를 몇 번씩 돌며 고생했고, 자주 매를 맞았고, 자주 투옥되었다.

그렇다면 신사도운동가들이 말하는 사도는 어떤 사람일까? 효과적인 영적전쟁 수행, 핍박을 이김, 어떤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 직통의 예언과 계시가 동반됨 ... 이런 특징이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IHOP의 마이크 비클도 그렇게 설명했다.

다음은 사도적 리더쉽에 대한 마이크 비클이 한인 신문의 기자에게 직접 한 말이다.

“<기자> 아이합에서 이야기하는 '사도적 리더십'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는가?

<마이크 비클> ‘사도적’이라는 단어를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 사용한다. 사도 교회 또는 신약 교회의 교리, 삶의 방식을 닮고자 하는 리더십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부지런하고, 헌신적이고, 핍박을 견디고자 하며, 전도와 세계 선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며, 산상수훈의 삶의 방식을 따르고자 하는 리더십을 말한다. 이것이 나의 사도적 리더십에 대한 견해다. 나는 그리스도 지체의 모든 리더들이 예수를 향한 진심어린 헌신, 따라서 사도적 리더십에 속해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도적 리더쉽에 대한 마이크 비클의 정의에서도 사도적이라는 말을 써야할 성경적인 핵심이 없다. 그가 사도적 리더쉽의 특징이라고 언급한 내용들은 가장 중요한 중심적인 개념이 아니고 중심에 따라오는 일종의 가지들이다. 사도들이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함으로 구원받는 하나님의 새 인류인 교회를 세우고자는 지고의 목적을 수행하였던 사도들의 사역의 자세를 그는 사도적이라는 말의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다.

기차로 비유하자면 앞에서 목적지를 향하여 끄는 기관차와 뒤에서 끌려가는 객차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는 이 차이를 구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신사도운동가들의 사도적이라는 말에 대한 정의와 이해는 그럴싸하지만 중요한 포인트가 상실되었다.

바로 그것이 그들의 최악의 문제이다. 신사도운동에 물들었거나 동조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사도의 특징은 실제로 사이비 사도들의 사역의 현장에서 나타난다. 핍박을 당하고 있다. 매일 거짓 사도라고 조롱을 받는다. 자신의 믿음을 굽히지 않고 주장하다가 소속 교단에서 제명당하고 심지어 사탄의 자식으로 규정되는 출교의 처분도 받는다. 섬기는 교회에서 사도직 소명을 운운하다가 강력한 저항을 받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여전히 환상, 계시, 예언, 입신, 천사출몰, 온갖 해괴한 광경들, 그리고 급격한 부흥(?) 등의 놀라운 현상이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을 결코 인정 할 수 없다. 그들의 활동을 “사도”로서의, 또는 “사도적인 리더쉽”으로서의 사역이라고 여길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너무 단순하다. 초대교회의 진짜 사도들처럼 예수의 피 묻은 십자가와 그의 부활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이 전파하는 것은 다른 것들이다. 정체불명의 새로운 기름부음, 그것으로 인한 일련의 신비와 영적쾌감, 그리고 함께 즐기는 영적개그들이다. 그들이 전하면 강조하는 것은 사실 이런 웃기는 것들이다.

그것들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죽으심과 부활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만일 초대교회의 진짜 사도들 중 바울과 베드로 두 사람이 그들 앞에 단 10분만 나타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이크를 잡고 이상한 일들을 일으키면서 요란하게 설교하는 그들의 눈에 번쩍하며 번개가 스칠 것 같다. 그리고 (사도들이 오른 손잡이들이라면) 왼쪽 뺨에 다섯 손가락 자국이 벌겋게 도장처럼 남을 것 같다.

그들이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에 영혼을 바치는 참 교회의 목회자들과 성도들로부터 경계를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의 싸움은 사도적인 교회들과 유사 사도적인 교회들의 싸움이다. 처음부터 유사 사도적 교회를 개척하여 성공하신 사람들은 당분간 자리를 보존하면서 계속 영적인 사기를 치면서 사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사도적인 교회에 청빙을 받아서 유사 사도적 교회로 체질을 바꾸려고 하는 신사도운동에 물든 사람들은 결코 앞 깊이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당연히 그램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분명히 자신들이 당하는 고생이야 말로 자신들의 사도됨의 진정한 증거이고, 바울과 베드로에게 있었던 예수의 흔적이라고 할 것이다. 과연 언제까지 이런 말장난이 이어져야 할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이런 싸움은 계속 될 것이다.


사도적 사역의 근본은 성경이다!

“사도”나 “사도적”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우리가 가 먼저 떠올려야 할 단어는 항상 성경이다. 성경은 사도들이 핍박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매질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전파한 사도들의 복음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다. 그래서 성경은 가장 사도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 복음으로 인하여 탄생하는 하나님의 교회에 관한 기록이다. 성경에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진짜 사도들의 정신과 믿음이 담겨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신앙의 영원한 교과서인 것이다. 사도적이라는 말은 항상 성경적이라는 말의 동의어이어야 한다. 사도적 교회는 곧 성경적 교회이고, 사도적 사역은 곧 성경적 사역이고, 사도적 리더쉽은 곧 성경적 리더쉽을 이르는 말들이다.

오늘 날 교회에서 사도권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자신도 뭔 뜻인지도 모르면서 멋있어 보이고 더 신령해 질 것 같으니까 그런 말을 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도권 회복”이라는 말의 의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하고 얼버무린다.

사도권 회복이라는 말은 함부로 써서는 안 될 말이다. 생존해 있는 어떤 사람을 염두하고서 사도권의 회복을 말하면 필연적으로 이단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왜냐하면 결국 그 사람이 과거의 사도들과 같은 계시의 통로이거나, 그를 통하여 나타나는 계시의 정확무오성의 입증하기 위해 동반되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거나,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일어서거나,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이었던 사람의 눈이 뜨이는 등의 성령의 사도적 권능이 나타난다는 쪽으로 전개되어지지 때문이다.

선지자적인 사역 또는 선지자의 은사라는 말도 우리가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저 멋있어 보여서 인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말을 하는 어떤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선지자적인 사역이 무엇입니까?”

“이 시대에 선지자적인 사역이 어떻게 누구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현대 교회에 선지자의 은사는 어떻게 나타날 수 있습니까?”

“만일 선지자적인 은사가 이 시대의 교회에 실제로 나타난다면, 성경과 목사, 장로, 집사 등의 직분체계로 운영되고 있는 현대 교회의 시스탬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어야 합니까?”

시원스럽게 대답을 못하셨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돌려서 말해도 선지자적이라는 말은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직통의 예언을 받는 사람으로 귀결되어지고, 그러면 이미 기록된 성경의 완정성과 부딪힌다.

사도적이라고 표현해야 할 모든 중요한 것들과 선지자적이라고 표현될 모든 중요한 것들의 핵심은 성경이다. 그러므로 사도권 회복, 사도적 교회의 회복, 선지자적 영성 회복 ... 등의 구호는 결국 가장 성경에 충실한 믿음과 삶과 교회로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신이 성경계시에 비교될 수 있는 신통함이라도 있는 것처럼 과장하면서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경계되어야 한다. 그들은 한때 큰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맞는 예언도 하는 경향이 있지만, 반드시 자신을 수치스럽게 하고 교회를 부끄럽게하는 어이없는 예언을 하거나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사도적, 선지자적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 예언운동, 은사운동, 성령의 이적을 추구하였던 많은 유명한 사람들의 생애를 연구하면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사도직의 회복은 영적으로 뛰어난 어떤 사람이나, 특별한 어떤 은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도들의 정신과 혼이 담긴 성경의 진리가 성령의 능력 속에서 권세있게 되는 것이 곧 사도권의 회복이다. 왜 오직 성경인가? 그 옛날 사도들의 그리스도께 받아 증거한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들의 활동과 사상이 문자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이 성령 안에서 바로 교육되고, 선포되면 그 사도들을 죽었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그들의 정신과 가르침이 그대로 현재에도 지속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도적 사역이고, 사도적 교회의 모습이다. 그래서 성경을 힘써 연구하고, 힘을 다해 바르게 전파하는 모든 목사, 선교사, 평신도는 사도적인 사역자들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고후 13:13).

오늘 날에도 예배를 마칠 때에 목사들은 성도들을 향하여 복을 선언한다. 이것도 대표적인 사도적인 사역이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고서, 그 복음을 받은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복을 선언하였다. 만일 우리 목사들도 동일하게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동일하게 바르게 선포하고서 그렇게 축도한다면, 그것은 사도적인 복의 선포이다. 사도들이 그 당시에 전하였던 복음을 아멘으로 받았던 성도들을 위해 선포하였던 복이 오늘 날 모든 참된 복음의 사역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곳에 그대로 임함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도가 전하였던 복음을 그대로 계승하였기 때문이다.

요즘 사도적 교회에 대한 세미나와 article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사도적 교회의 특징을 평신도 훈련에 둔다. 평신도들을 훈련하여 사역의 주체가 되게 하는 것이 사도적 교회의 모습이라고 한다. 틀린 내용은 아니지만 지엽적인 것이다. 무엇을 위한 평신도 훈련인지가 더 중요하다. 반드시 사도들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계승하고, 사도들이 세웠던 교회를 계승하기 위한 평신도 훈련이어야 한다. 하물며 신사도운동 요소가 다분한 프로그램으로 성도들을 들뜨게하고 신기한 일을 경험하게 해 주면서 그런 말을 쓰다면 더욱 안 될 일이다.

어떤 이는 성령 중심의 교회가 사도적인 교회라고 한다. “성령이 드라이브하는 교회”, “성령이 주도하는 목회”, “성령이 이끄는 선교” ... 성령이 사도적이라는 말의 중심이라고 한다.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은 “인간의 리더쉽과 어떠한 목회기법으로 아무리 용을 써도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다. 오직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성령의 나타나심이다. 다만 성령이 일하시는데 인간은 성령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이것이야 말로 “사도적”이라는 말을 왜곡하는 가장 위험스러운 시도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묘하게도 교리와 신학이 성령을 훼방한다는 말을 함께 하는 경향이 있다. 성경에 기반을 둔 교리와 신학으로 인하여 훼방을 받은 성령(?)은 성령이 아니다. 성령을 가장하여 침추해 오는 마귀의 거짓의 영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를 둔 교리와 신학은 절대로 성령 하나님과 부딪히지 않는다. 그런데 불건전한 자들은 항상 성령만을 무한히 강조하고 성경과 교리와 신학을 껄끄럽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존 윔버였다. 그는 자신의 집회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성령의 역사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아니고)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면서 조롱했다. 그러면서 교리와 신학과 성경에 얽매이지 말고 성령의 나타나심을 무엇으로도 제한하지 말자고 했다. 그래서 뛰고, 히죽거리고, 뒹굴고, 온갖 짐승들의 모양들 ... 이런 성령의 역사(?)가 그들의 집회에서 많이 나타났다. 성령중심의 교회가 사도적 교회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이런 양상이 나타난다 싶으면 바로 그런 부류인 것이다. 더 들을 것도 없다.

“사도권 회복”, “사도적 사역”, “사도적 목회”, “사도적 교회”라는 말은 반드시 가장 먼저 성경과 연관되어야 한다. 사도들의 가르침과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성경의 가르침과 정신과 원리가 생생히 살아있는 사역, 성경의 진리의 말씀이 온전하게 선포되어지는 설교 ... 이렇게 연결되어져야 한다. 그런 와중에서 더욱 그 사역을 돕기 위하여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신다. 그러한 역사로 인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성경의 위치가 더욱 튼튼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도적 사역의 모습이고 열매이다.

그런데 신사도운동 교회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들은 사도들의 흔적이 베인 성경을 제치고 직통으로 메시지를 받는 것을 중시하는 그것부터가 사도적이지 못하다. 심지어는 방언이 흔히 터지고, 진동하고, 금이빨이 생기고, 길이가 다른 팔이나 다리를 교정하고, 그래서 교인이 급격히 늘고, 환상을 보는 사람이 생기고, 천사도 자주 출몰하고, 사람들이 드러누워 떨고 히죽거리고 ... 이런 것까지 사도적 사역의 모습이라고 한다.


마이크 비클은 사도적 사역은 어떤 것일까?

IHOP에서는 사도적인 신앙을 확산하고, 사도적인 리더들을 양산한다고 천명하였다. 과연 IHOP에서 추구하는 사도적 사역이란 무엇일까? 2010년에 뉴욕의 한 교회의 담임목사가 그곳에서 사도의 소명을 받았다고 간증하여 큰 소동이 일어났을 때에 어떤 신문사가 마이크 비클과 인터뷰를 했다. 기자의 질문에 대해 마이크 비클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도적’이라는 단어를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 사용한다. 사도 교회 또는 신약 교회의 교리, 삶의 방식을 닮고자 하는 리더십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부지런하고, 헌신적이고, 핍박을 견디고자 하며, 전도와 세계 선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며, 산상수훈의 삶의 방식을 따르고자 하는 리더십을 말한다. 이것이 나의 사도적 리더십에 대한 견해다. 나는 그리스도 지체의 모든 리더들이 예수를 향한 진심어린 헌신, 따라서 사도적 리더십에 속해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합의 원장 마이크 비클과 다른 신사도운동가들의 사이의 동일함이 발견된다. 물론 초대교회의 진짜 사도들은 부지런했고, 헌신적이었고, 핍박을 견디었고, 전도와 세계선교에 초점을 맞추었고, 산상수훈의 삶을 실천했다. 그래서 현대교회의 일꾼을 그렇게 닮아가게 만드는 것이 사도적 리더쉽 육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선명하게 있어야 할 핵심이 분명한지가 의문이다. 그것이 빠지면 “사도적”이건 그냥 “사도”건 ... 아무것도 안 된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세상에 선포함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던 사람들이다. 사도들은 그것만을 위해 핍박을 받았고, 부지런했고, 산상수훈적인 삶을 살며 세계를 고생하면서 떠돌았다.

중요한 것은 몇 가지 행동이나 삶의 양식이 아니다. 신앙과 삶의 DNA이다. 정말 사도적이라면 그들이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같은 목적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같은 영적인 DNA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크 비클 목사의 사도적이라는 개념에서 중요한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 다른 전형적 매파 신사도 운동가들처럼 비둘기파 신사도 운동가 마이크 비클도 사도적이라는 말의 당연한 핵심에 대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다만 부지런함, 핍박을 극복함, 뜨거운 헌신, 산상수훈적인 삶, 전도와 선교에 초점이 모아진 ... 이런 내용을 강조한다. 그것이 사도적이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에게 사도들의 정신과 신앙이 담긴 성경의 말씀을 바르게 교육하고 선포함으로 더 이상 세상에 없는 사도들이 현재 살아서 다시 목회를 이어가고 있는 것처럼 되게 하는 것이 오늘 날의 사도적 사역이라는 의식이 있는 것일까?

만일 마이크 비클의 평소의 모습에서 성경에 관한 철저한 자세가 있었다면 걱정이 안 된다. 그의 설교에서 사도들의 신앙과 가르침이 바르게 선포되어 있었다면 너무나도 기본이 되는 내용이므로 당연시하고 그냥 넘어갔으려니 ...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 관한 평소의 그의 모습은 그게 아니었다.

아이합이 정말 사도적 기관인지를 검증하기 위해 가정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이크 비클이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야 한다. 그가 바른 사람이고, 말씀위에 바로 선 건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이합도 건강한 사도적 훈련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가 그렇지 못하다면 아이합도 그렇지 못할 것이다.


마이크 비클은 매력이 있는 사람이다!

마이크 비클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를 살피면서 가장 먼저 느낀 사실이 있다. 그것은 마이크 비클이 많은 신사도 운동가들 중에서 가장 신사적인 모습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표독하거나 공경적인 성향이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여러 군데에서 유순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래서 그를 나는 비둘기파라고 한다. 신사도 운동에 헌신된 다른 어떤 지도자들은 매우 표독스럽고 사납다. 그래서 그들은 매파이다. 그들은 자신을 반대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사납게 응대한다. 직설적으로 저주하는 말를 내 뱉기도 한다. “죽은 바리새인들의 교회”, “바리새 영에 포로된 불쌍한 O!” ... 라고도 한다.

그러나 마이크 비클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닌 것 같다. 한 쪽 뺨을 때리면 넉넉히 웃으면서 다른 쪽 뺨을 돌려대 주는 그런 유형의 사람인 것 같다. 한 번도 자신의 대적에게 화를 내고 저주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항상 점잖고 인격적이고 온유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받았다. 그를 가까이 대하여 본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성품에 대해서 칭찬하는 말도 자주 들었다.

다음은 IHOP을 매우 좋아하시고, 또한 마이크 비클을 존경하시는 분이 나에게 읽으라고 쓰신 항의하는 댓들에 들어있었던 내용이다.

“IHOP에 가서 만난 그 곳의 사역자 한 분(미국사람)이 말씀 하시기를 그 곳에서 사역을 시작하기 전 Mike Bickle의 집에 초대 되어 갔다고 합니다. 큰 교회를 사임하시고 기도 모임에만 전념하시기로 한 분의 집이 너무 검소해서 놀랐다고 합니다. 보통 집에 있는 소파가 그 집에는 변변한 것이 없는 것에 놀랐고 가구가 너무 없는 것에 놀랐다고 합니다. 있는 것은 모두 오래된 것, 낡은 것들인데 너무 떳떳하고 자유한 것에 놀랐다고 합니다. 헌데 그곳에서 부동산 하시는 한국 분의 이야기는 MIke Bickle의 부인이 작년 1년에 헌금을 그곳에서 제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 내용으로 마이크 비클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는 없다. 또한 그의 신앙이 과연 건강한 노선에 서 있는지에 대해서도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스타일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다소 발견된다. 신앙을 떠나 단순한 교제를 나눈다면 마이크 비클을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를 가진 사람인 모양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점들이 무섭다. 인간적으로 거부감이 생기는 스타일이라면 이 게임은 쉽다. 그러나 그는 반대이다. 인간적으로 매력이 많은 사람이다. 인간적으로 더욱 흠모할만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가르치는 내용도 잘 먹혀들게 하는 스타일이다. 나와 우리 목회자들이 바로 이런 점에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바른 복음을 주장하는 것만큼, 그것이 세상에 잘 스미도록 돕는 바른 행실과 삶을 가지기 위해 애써야 한다.

마이크 비클에게 바른 복음과 영성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에게 매력적인 성품은 있어 보인다. 그것이 강한 매력 포인트가 되고 있고, 그 점도 그의 큰 무기이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의 탁월한 인간적인 매력이나 장점이 사도적 사역의 중심요소는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좋아 보이는 그가 반드시 사도적인 사역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마이크 비클은 사도, 선지자들과 교분이 깊다!

마이크 비클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그가 신사도운동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과 교분이 깊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대략 윤관이 나온다. 정이철이란 이름을 검색하면 보수적인 사상을 가진 목사이고, 특히 신사도 운동을 대적하는 목사라는 사실이 금새 드러난다. 인터넷은 이처럼 무서운 곳이다. 그렇다면 yahoo.com에서 Mike Bickle이라는 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어떤 정보들이 뜰까?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는 당연히 IHOP이다. 그리고 IHOP이라는 단어는 Cult 또는 False prophet이라는 단어와 많이 연결된다. 그리고 아이합을 비판하고 그곳과 관련된 부정적인 피해사실들에 기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물론 지지하고 칭찬하는 기사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나와 같은 사람 몇 명이 IHOP에서 나타나는 성령을 대적하는 죄를 짓고 있으므로 기어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염려(?)하시는 분들은 집에 컴퓨터가 없는 모양이다.

인터넷에서 조금만 수고하면 마이크 비클이 우리가 염려하는 전통적 매파 신사도 운동가들과 얼마나 가깝게 활동해 왔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그가 깊이 교제를 나눈 신사도 운동권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밥 존스와 폴 케인이다. 이 두 사람과 멘토링의 관계를 형성했다는 것은 그를 이해하는데 있어 너무나도 중요한 사실이다. 그들은 신사도 운동의 좌청룡 우백호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영적으로 친했으면서도 그릇된 명사로서의 사도 개념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 외에도 마이크 비클은 그쪽 계열의 쟁쟁한 많은 유명한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활동했었다.

다음은 Mike Bickle이라는 이름으로 검색하여 내용이다. 그가 얼마나 신사도운동과 관련된 일들을 많이 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The National School of Prophets has become a regular meeting in January 28 -30, 1999 (Colorado Springs, Colorado) the Speakers were: C. Peter Wagner, Paul Cain, Chuck Pierce, Cindy Jacobs, Bill Hamon, Dutch Sheets, Rick Joyner, Kingsley Fletcher, Mike Bickle, Jim Laffoon, Barbara Wentroble and Ted Haggard. Jim Goll.

The National School of Prophets May, 2000 the speakers were: C. Peter Wagner, Jack Deere, Chuck Pierce, Jim Laffoon, Mary Crum, Cindy Jacobs, Kingsly Fletcher, Barbara Yoder, Dutch Sheets, Mike Bickle, Bill Hamon, John Eckhardt, Ted Haggard.”

1999년에 콜로라도 중의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있었던 예언자 학교(The National School of Prophets)와 2000년의 예언자 학교의 수많은 강사들 중에 마이크 비클이 있었다. 당시에 강사로 나선 사람들은 모두 유명한 신사도 운동가들이고 우리가 익히 이름을 아는 유명한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 마이크 비클의 이름이 보인다. 신사도 운동의 사상적 설립자 피터 와그너, 그 유명한 전설의 대 선지자 폴 케인, 예언사역지 모닝스타의 편집자이고 현재 절치부심하며 재기를 기다리는 사도 타드 밴틀리를 멘토링하고 있는 릭 조이너 선지자, 빌 해몬, 사도 신디 제이콥스, 선지자들의 아버지 밥 존스 ... 마이크 비클은 이러한 사람들과 함께 그런 집회의 강사로 참여하였었다.

이랬던 사람이 사용하는 사도적이라는 말을 과연 무슨 뜻일까? 그가 아이합에서는 사도를 배출하지 않고 사도적인 리더들을 배출한다는 주장한다. 과연 그가 추구하는 사도적 사역은 초대교회의 진짜 사도들의 사역과 얼마나 닮았을까?


신학교에 다닌 적이 없으나 신학교를 세우고 학장이 되었다!

아이합이 정말 사도적 리더쉽을 배출하는 곳인지에 대해서 살피기 위해서 또 한 가지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마이크 비클이 단 1년도 정규신학교에서 신학을 교육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일반 대학도 불과 1년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의 IHOP 인근의 어떤 지역 신문은 “Mike Bickle skipped college and seminary, so God taught him personally in heaven”라고 그가 소개된 적도 있다.

나사렛의 예수처럼 보이지 않은 어느 곳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교육받고 훈련받은 인물인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IHOP을 세우셨으니 정말 대단하시다. 그뿐이 아니다. IHOP안에 “Forerunner School of Prayer”라는 신학교를 세우고 직접 학장이 되셨고, 또한 음악 아카데미도 세우시고 학장이 되셨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자연스럽다 하겠는가? “보통으로 잉태되셨지만 성령으로 양육되고 교육받으셨으니” ... 이렇게 고백해야만 할까?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큰 사이비났네!” ... 하며 떠들썩할 일이다. 그러나 이곳 미국에서는 아무렇지가 않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이 그곳에서는 늘 벌어진다. 그까짓 정규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그는 성경에 관한 최고의 천재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IHOP에 빠진 사람들은 그를 성경에 관해서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없는 최고의 천재라며 추앙한다. 다음은 신사도 운동에 대한 나의 글이 올라간 싸이트에 들어와서 강력하게 IHOP의 신실성을 변호하시는 어떤 분이 남기신 글의 일부이다.

“그 분(마이크 비클)을 욕하시면 반드시 나중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실 것입니다. 참으로 귀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달라스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로 역임하기도 하였고 천재로 소문난 잭 디어 목사는 자기보다 성경에 더 뛰어난 사람을 아직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던 분입니다. 그분이 마이클 비클을 만나고서 한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나보다 성경에 있어 더 뛰어난 내가 만난 최초의 사람입니다.

그는 정말 믿음의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이 오해를 하고 비난을 해도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자기 변명을 하거나 반박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누구나 억울하고 분한 일에 묵묵히 주님만 의지하고 십자가를 지는 자아의 죽음을 겪어야만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는 이미 그런 일에 믿음의 챔피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도 마이크 비클의 인격을 신뢰하고 칭송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는 틀림없이 어떤 강력한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지지자들에게서 성경에 관한 매우 심오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 유명한 잭 디어가 성경에 관하여서는 그가 최고의 천재라고 칭찬을 했다고 하니, 마이크 비클은 정말 성경에 관하여 깊은 조예를 가진 사람인 모양이다.

그러나 마이크 비클을 성경에 관한 최고의 천재라고 극찬한 Jack Deere가 그 유명한 달라스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였다는 것만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지만, 그가 후에 어떻게 변해버리고 말았는지를 알고 나면 그가 마이크 비클을 칭찬하였다는 것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잭 디어의 책 <Surprised by The Power of The Spirit>을 보면 그가 후에 어떻게 신앙이 변질되고 말았는지 스스로 설명해 주고 있다. 그는 신사도 운동에 빠져서 인생의 막판을 망친 사람이다. 신사도 사상에 빠짐으로 달라스 신학교의 교수로서 쌓았던 오랜 명성을 일순간에 다 잃어버리고서도 그 상황을 바로 보지 못하는 전형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자신이 참 된 믿음의 길을 발견하여 더욱 진보하고 성장했다고 자부하고 있는 마귀의 거짓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비운의 인생이다.

그 책에서 그 자신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그를 변하게 한 두 사람들은 바로 빈야드 운동의 기수 존 윔버와 신사도 운동의 고전적 선지자 폴 케인이다. 잭 디어는 1986년경에 존 윔버를 처음 만났고, 빈야드 컨퍼런스를 통하여 서로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존 윔버의 위험스러운 영성에 매료되었으므로 결국 달라스 신학교의 교수직을 사임해야만 했고 또한 담임목사로 섬기던 교회도 떠나야 했다. 그리고 존 윔버의 교회가 있었던 캘리포니아의 에너하임으로 이사하여 존 윔버와 협동사역을 시작했다. 매우 탁월한 달라스 신학교의 구약학자의 인생이 이렇게 돌변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1987년에 캔자스시티에 방문하여 당시 KCF의 목사였던 마이크 비클을 통하여 폴 케인을 알게 되었고, 폴 케인과도 매우 친한 친구가 되어서 폴 케인이 이전에 직접 경험한 윌리엄 브랜험의 늦은 비 운동으로부터 시작하여 신사도 운동에 관한 많은 것을 듣고 배웠다. 빈야드 기름부음 운동의 최고 리더 존 윔버, 가장 고전적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예언자 폴 케인, 그리고 또 마이크 비클, 잭 디어는 이렇게 정상급 신사도 운동가를 친구로 사귀게 되면서 마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정통신학자였으나 갑자기 신비주의 몬타누스파에 빠지고만 초대교회의 터툴리안과 같은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가 마이크 비클을 최고의 성경천재라고 칭찬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함께 깊은 수렁에 빠졌다는 것 을 의미할 뿐이다.


마이크 비클은 성경을 맘대로 해석하고 적용한다!

요즘 IHOP에서 매우 강조하는 것이 바로 “친밀한 신부의 정체성을 가진 교회”, “신랑되신 예수님과 신부된 성도의 열정”, “신랑 하나님의 계시” ... 이러한 운동이다. 마이크 비클은 특별한 신부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일반 교회들과 특별히 친밀한 정체성을 가지고서 재림을 준비 앞당기는 특별한 교회를 구분한다. 결국 이것도 쉽게 말하면, 신사와 운동하는 교회와 신사도 운동을 하지 않는 교회, 이 간단한 구도인데 그는 늘 이렇게 멋지게 돌려서 말하여 우리를 혼동시킨다.

양쪽 진영의 차이는 특별한 기름부음의 유무이다. 기름부음을 받으면 신부의 열정과 정체성을 가진 성도가 되고, 그것을 못 받고 신앙생활하면 종교인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교회에서 사역을 한다고 한다. 결코 건전한 가르침이 아니다. 모든 성도와 교회들은 이미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성령의 내주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친백성이 되었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친밀한 신부가 되었다. 그런데 더 특별한 종말의 기름부음을 받아 더 친밀한 신부가 되라고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의 내용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러므로 불건전한 것이다.

여기저기를 뒤지고 돌아다니다가 온누리 교회의 CGNTV 싸이트에서 그의 설교를 발견했다.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를 가지고 정말 엉터리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 비유를 바르게 해석하는 성경학자들은 모두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다섯 처녀는 불신자를 상징하고, 혼인잔치에 들어간 다섯 처녀는 결국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성도를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등불의 기름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이고, 기름이 다하지 않은 다섯 처녀는 준비하고 깨어있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마이크 비클은 열 처녀를 모두 기존 교회의 성도로 보았다. 그리고 다만 한쪽은 기름부음이 끊어진 성도이고 한쪽은 지속적으로 기름부음이 이어지는 성도라고 하였다. 그리고 밤중에 신랑이 오는 것을 마지막 시대의 부흥이라고 해석했다. 즉, 기름부음 받은 성도들만 마지막 때의 대부흥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혼의 에너지가 되는 기름(oil)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정말 제 멋대로 였고, 제 맘대로 였다. 이런 것이 바로 신학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이 스스로 터득한 사람의 모습이다. 한국에서는 사이비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서는 천재로 통하고 있다.

마이크 비클의 성경해석이 참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은 그뿐이 아니다. “한국인을 위한 예수님을 향한 열정 컨퍼런스 2010”에서 마이크 비클이 강의한 내용을 보게 되었다. 그에 관하여 가진 정보들이 많지 않았는데, 참 감사하게도 그를 지지하는 어떤 분이 친절하게 댓글로 올려주셔서 보게 되었다. 그 속에서도 일반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불건전한 성경해석의 실례들이 적지 않게 발견되었다. 그 강의에서 마이크 비클이 가장 강조한 내용은 성령의 역사를 이성으로 제한하지 말고 모두 수용하자! 라는 것이었다.

요약하면 IHOP의 집회, 빈야드 운동 집회들, 다른 신사도 운동 교회들에서 나타난 이전에 못 보았던 성령의 역사들을 정죄하지 말자! 라는 것이었다. 다양한 성경구절들을 인용하고, 조나단 에드워도 목사의 책의 내용까지 인용하였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성경을 대범하게 그리고 멋대로 적용하고 있다.

그 중에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빈야드 운동 집회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 중의 하나가 주체하지 못하고 보기 흉하게 계속 히죽거리는 웃음현상이다. 80년대에 마이크 비클 그 자신이 대 예언자 폴 케인의 예언을 따라서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에 합류하여 수 년 동안 함께 하였으므로 그도 직접 자주 보았던 현상들이다. 그는 주체할 수 없는 히죽거리는 웃음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히 언급하였다. 마이크 비클은 당연히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근거가 되는 성경구절도 명시하였는데, 그것이 너무 웃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갈 5:2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시 126:2.3)

어떻게 예배 중에 하나님을 모욕하는 히죽거리는 행동을 이러한 성경구절을 들먹이며 정당화하고 조장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이것이 바로 신학교에 가지 않고 알아서 스스로 목사가 된 사이비의 모습이 아니면 무엇일까? 이것은 성경인용이 아니고 성경도용이다. 더 말할 것이 없다. 보기에는 참 스마트하고 깔끔한 신사인데, 이런 점을 알고 나니 정말 한심해 보였다.

그 외에도 몸을 떠는 현상, 영혼이 육체를 빠져 나와서 공간을 이동하는 현상, 쓰러지고 고꾸라지는 현상 ... 신사도운동 집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그런 모든 염려스런 현상들이 다 성령의 역사라고 가르쳤고, 모두 그럴싸하게 성경구절들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람에게 큰 무리가 따르고 있으니 더 염려된다.

사도들이 전파하고, 사도들 스스로 믿고 본을 보였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 그 복음으로 인하여 탄생하고 세워지는 교회! 이것이 사도적 신앙과 사역의 불변의 목적이다. 이것을 위한 평신도 동원, 은사운동, 중보기도 전쟁이어야 한다. 모든 것의 동기, 과정, 목적은 오직 성경이어야 한다. 성경을 떠나면 사도적 사역에 대해서 아무 말할 것이 없다. 시대를 초월하여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성경의 가르침과 정신에 따라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양육하고 더불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곳이라면, 지금 그곳에서 죽어 천국에 가 있는 사도들의 사역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바로 그런 곳에서 사도적 지도자들이 배출된다.

그러므로 마이크 비클도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선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마이크 비클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도 못하고, 바르게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무슨 사도적 리더쉽을 양육하여 낸다는 것인가? 그곳에서 어떻게 사도적인 리더들이 생산될 수 있다는 말인가? 사도적 신앙의 근본인 성경을 그렇게 제 멋대로 해석하고 가르치는 분이 어떻게 사도적인 일꾼들을 양육할 수 있을까?

어떤 article을 보니까 그는 또 마태복음 24장을 가지고 종말의 대 부흥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고도 했다. 그의 설교를 직접 듣고 본 내용이 아니지만, 거기에서는 종말에 등장할 거짓선지자와 배교에 대한 가르침이 주된 내용이다. 솔직히 말해 바로 자신과 같은 사람에 대해서 경고하신 내용이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가지고 종말의 부흥을 논하다니! 정말 모르겠다. 고개를 흔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분이 운영하는 국제기도의 집을 찾아가는 성도들이 과연 사도적인 신앙을 훈련받을 수 있을까? 과연 그것에서 건강한 사도적 리더들이 탄생될 수 있을까?

여러모로 보아 마이크 비클이 생각하는 사도적 리더쉽이란 결국 거짓 계시을 받는 사이비를 의미하는 것 가다. 하나님으로부터 직통으로 지시하심을 받고, 또한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한 메시지를 성경을 넘어서서 직접 받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가 말하는 사도적 리더쉽이란 성경을 절대적 교본으로 삼고 일하는 사역자가 아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성경에서 벗어나 있는 마이크 비클이 성경을 교본으로 삼아 일하는 건강한 사도적 리더쉽을 키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사도적 리더쉽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신사도 운동가들이 말하는 대로 성경을 뛰어 넘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지시와 말씀을 받는 리더들을 키우자는 것 그것이다.

그리고 이제 IHOP에서 배출되는 그 사도적 리더들은 자기의 지역으로 돌아가서 그 지역의 많은 일반 교회의 목사들과 사역자들에게 사도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문론 그들 맘대로 다 된다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 목숨을 거는 진짜 사도적인 교회들이 그들을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아이합에서 말하는 사도적 리더쉽의 음모이고 실상이다. IHOP은 그렇게 배출한 사도적 리더들이 각 지역에서 영적판세를 주도하는 주요 인물들이 큰 일을 도모할 것을 꿈꾸고 있다. 이것이 바로 마이크 비클이 가지고 있는 사도적 리더쉽에 관한 진짜 비젼이고, 이것이 바로 그곳을 조종하는 그곳의 신의 최종적인 목표일 것이다.

어떤 교회의 담임목사에게 그곳의 선지자들로부터 “이제 사도가 되어서 새로운 Movement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라는 예언이 떨어졌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사도의 위치에서 지역의 다른 많은 교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뜻이다. 그간 IHOP에서 그런 예언들은 수 없이 많았을 것인데, 어쩌다 그 한 case가 알려졌을 것이다. IHOP이 그간 얼마나 줄기차게 그 일을 해 왔는지 우리는 다 모른다. 이러한 의혹을 받지 않으려면, 이러한 의심으로 경계를 당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IHOP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분간 24시간 기도와 찬양을 멈춘다고 하나님이 떠나시겠는가? 그곳의 선지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일단 먼저 성경부터 다시 바로 읽고 배우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사도적인 리더쉽을 그곳에서 보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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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