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릇된 부활복음을 전하며 복음을 파괴하는 김성로 목사가 침신대의 신학생들을 위해 거액을 기부하였다.

제가 바른믿음 사이트에서 있는 분석들을 많이 참조해서 나름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김성로 목사의 주장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김성로 목사의 성령행전으로 나온 글을 참조했습니다. 이번에 저희 교회에서 한마음교회의 문제점에 대해 토의하게 되는데 제가 정리를 맡아서 한번 해보았습니다.

김성로 목사의 문제1> 
부활의 표적을 통해서만 믿음을 가지게 된다고 함

김성로 목사의 주된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17장 31절에서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라고 선포하고 있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믿을 만한 증거’이며 가장 확실한 ‘표적’이다.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표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이렇게 부활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확증이 되는 순간,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 진리이며 그 모든 말씀들이 실제임이 증명된다. 따라서 성경 말씀을 하나씩 이해하고 깨달아서 믿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을 부활로 단번에 믿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표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였을 때 “요나의 표적(부활) 밖에는” 없다고 하신 것이다(마 12:39).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다’는 말씀을 통하여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성령의 권능으로 부활을 선포할 때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말씀은 똑같은데 하나는 능력이 나타나고 또 다른 하나는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요나의 표적(부활) 밖에는 없다는 말씀(마 16:4)을 붙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됐다.(김성로 목사의 주장)


성경적 반박>

거듭난 영혼이 복음의 여러 말씀을 듣고 회심(회개와 믿음)하여 믿음이 생기는 것이지 부활의 표적(증거)를 통해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행17:31절 말씀은 그 당시 아덴에 철학이었던 에피쿠르스학파(신은 존재하지 않고 인간의 삶의 최상은 쾌락과 행복추구이다)와 스토아학파(신은 비인격적인 존재이고 세상에 관여하지 않고 우주적이성, 또는 영으로 만물에 존재할 뿐이다)에 대항하여 하나님이 천지를 주재하시고 마지막 심판의 날에 예수님이 심판자로서 죄에 대해 심판하실 것인데 그것의 증거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요나의 표적을 부활로 바꿔치기 해서 요나의 표적밖에는 없다는 것을 예수님이 부활밖에는 없다고 말한 것으로 호도하고 있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오히려 십자가에서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며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을 꾸짖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눅11:29-30)

표적을 구하며 믿지 않으려는 그들에게 요나가 물고기 배에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도 3일 동안 죽으실 것이 표적이고 요나가 기적없이 말씀만 전파하여 니느웨사람이 회개한 것처럼 예수님의 기적이 아닌 말씀으로 사람들이 회개할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원하는 화끈한 기적을 예수님은 베풀지 않겠고 십자가에 죽는 너희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일(요나의 표적)을 너희에게 보여주겠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 17:31)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 12:38-4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김성로 목사의 문제2>
십자가의 죄사함의 능력을 부정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와 하늘나라에서 두 번 피를 흘리심으로서 우리에게 죄사함이 있다고 함.

김성로 목사의 주된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 있으면 잠도 자지 않고 그 말씀을 연구하고 고민했었다.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중 하나는 “2천년 前,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가 어떻게 2천년이 지난 나의 죄를 사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하는 동시에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인류의 모든 죄를 위해 흠 없는 자신의 피로 하늘나라 참 성막에서 영원한 제사(히 10:12)를 드리심으로 영원한 속죄(히 9:12)를 단번에 이루셨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있는 성막이 아닌 하늘나라 참 성막에서 ‘영원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활, 승천하셔야 한다. 그래서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고 하는 것이다(고전 15:17).(김성로 목사의 주장)


성경적 반박>

고전15:17절은 부활이 없으면 부활이 있다고 기록된 성경말씀이 거짓이고 성경자체가 거짓이면 십자가도 거짓이고 그래서 죄사함도 거짓이라는 의미입니다. 부활이 죄사함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가 다 이룬 것입니다(요19:30절). 십자가라는 한 번의 영원한 제사(히10:12절)를 드린 것입니다. 그 피로 우리의 죄가 사함받는 것이지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나라에서 다시 피흘림의 제사를 드려야 죄를 용서받는다고 하는 것은 십자가의 피가 죄를 사하지 못한다는 다른 복음입니다.

히9장 말씀은 처음부분에 이 땅에 성막의 성소와 지성소를 이야기하면서 지성소에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번 들어갈 때 피를 흘리는 제사를 드린 후에만 들어갔듯이 예수님도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 바로 천국(지성소)에 십자가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단번에 들어가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시며 속죄제물되시고 휘장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도 죄사함받고 하나님과 바로 교제하며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예수님이 죽으시면서 바로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이 찢어진 것이 증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천국의 지성소에 가서 피를 흘리는 제사를 다시 드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30)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마 15:38)


김성로 목사의 문제3>
부활만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과 주로 인정되게 하고, 삶을 변화시킨다고 함

김성로 목사의 주된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증하게 하는 결정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1장 4절 말씀 그대로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인정된 것이다. 부활은 사람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2천년 前 골고다 언덕에서 세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과연 이 세 사람 중 누가 하나님이신가? 그리고 3년 동안 따라다녔던 제자들도 배신한 예수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 또한 이사야 9장 6절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한 아기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는데, 과연 청년 예수가 예언대로 오신 전능하신 하나님인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나 말씀, 선한 인격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서 성경에 예언된 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고전 15:3~4). 이렇게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완벽히 성취하심으로 역사 속에 실존하셨던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이 확증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일어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 예수님을 핍박한 바울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이들 모두가 예수님께 굴복하였던 이유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주인이며 자신의 하나님이심이 확증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활은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Lord)이시고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확증하게 한다.(김성로 목사의 주장)
 

성경적 반박>

부활로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표적으로 보여주셨지만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란 사실을 나타내는 수많은 증거중 하나입니다(가장 큰 증거이지만). 예수님에 대한 예언은 처녀에게서 태어나심,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심, 십자가에 죽으심, 부활하심 등 이외에도 여러 수많은 예언에 합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합니다.

즉, 누군가 부활했지만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분은 그리스도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래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부활하셔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선포되었다는, 즉 더 선명하게 나타내어졌다는 의미입니다. (개역한글은 인정되었다고 표현되었고 개역개정은 선포되었다고 표현되었습니다. 영어로 declare는 선언하다, 분명히 말하다 이기 때문에 개정으로 바뀌면서 더 정확한 표현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인정되었다고 하면 이전에는 인정되지 아니었는데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라는 뉘앙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만 나의 주인이시고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도 이 고백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죽으신 후 믿음이 약해지고 의심가운데 있었던 것이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다시 믿음을 회복한 것입니다. 부활하시기전에 이루어진 베드로의 신앙고백처럼(마16:16),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 마르다의 신앙고백처럼(요11:27),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죄를 사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주님되심을 고백하게 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로 택하신 자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부활은 동일하게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예수님은 태초부터, 성육신하셔서 태어나실 때도, 아이로 자랄 때도, 공생애를 보내실 때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실 때도 항상 예수님은 성자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주님이시며 다시 말하면 아기예수를 보면서도 우리의 주님이시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진정으로 주님을 믿게 되었고 순교신앙을 갖게 된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베드로는 원래의 직업으로 돌아가 고기를 잡으러 갔고 다른 제자들도 따라갔습니다.(요21:2-3). 부활의 표적으로는 온전히 의심을 떨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마28:17). 기적과 표적을 통해 신앙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눅16:31). 성령님이 거듭나게 하심으로 복음의 말씀의 증거를 통해서 신앙이 생기는 것입니다. 오직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심으로 성령충만하여 제자들은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했고 순교적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요 21:2,3)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마 28:17)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 16: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31)


김성로 목사의 문제4> 

부활을 너무 (그릇되게) 강조함으로 복음의 다른 부분들을 흐리게 함.

김성로 목사의 주된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렇게 부활은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며 나의 하나님이심을 확증하게 한다. 그리고 부활은 십자가 사건의 참된 의미와 보혈이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지를 재조명시켜 준다. 또한 성경 전체를 믿을 수 있게 한다. 따라서 부활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을 만한 증거(행 17:31)이며 하나님의 승부수이다. 부활은 성경에 기록된 여러 사건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것의 최고봉이며 기독교의 심장이다.(김성로 목사의 주장)

성경적 반박>

복음은 예수님의 선재하심, 인간으로 태어나심, 십자가에서 죽으심, 부활하심, 승천하심, 하나님우편에 앉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고 이제 다 시 오실 분으로 죄를 회개하고 그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믿음으로 우리의 죄를 사함받고 성화를 통해 죄에 대해 승리해나가고 결국 천국에서 영화의 구원을 누리는 전체가 복음이지 부활이 복음의 최고봉이 아닙니다. 오히려 십자가의 피로인한 죄사함이 믿음으로 이루어짐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다만 복음을 전할 때 십자가를 강조하다보니 부활을 전하는 것을 소홀히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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