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제 유럽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중동과 북 아프리카로부터 유입해 들어오는 “피난민, 이민” 문제가 아니라, “이민” 들 안에 숨어들어온 “제 5열” 곧 이슬람 테러분자들이다. “폭탄(爆彈)”의 위험은 그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수천 평방미터의 큰 지역에 지극히 작은 폭탄 하나는 그 광대한 지역에 있는 시설물과 인명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문제는 그 피해가 폭탄의 크기에 있는 것은 아니고, 그 폭탄의 존재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프론트페이지 메거진 (FrontPage Magazine)에 실린 레이몬드 이브라힘의 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일부 중동부 유럽 국가들은 좀더 “진보주의” 서방 국가들에 의해서 무슬림 피난민들을 받 아 드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있다. 공격의 주 타겟트는 헝가리이며, 특별히 빅토르 오르반 수상에게 향하고 있다. 서방 언론 기관들은 그를 “외국인 혐오 (혹은 공포)자”로 규정하고, “혐오로 가득 찬 언어” 사용자, 혹은 “잠행(潛行)성 독재자”등으로 맹공하고 있다. 마치 좌익의 마피아 두목에게 향한 표현과 같이, 그는 “해결”되어야할 “문제”라고 가디언 (Guardian) 지는 평하고 있다."

오르반 수상의 범죄는 무슬림들로부터 자국의 안전을 지키며, 자기 나라의 기독교 정체성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헝가리 수상은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이 피난민들은 다른 땅에서 성장해 왔으며, 극단적으로 다른 문화를 대표하고 있습니 다. 그들 대부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무슬림들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유럽과 유럽의 정체성은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프랑스나, 벨지움이나 다른 어느 나라도 비판코자 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모든 나라가 자국 내에 많은 무슬림의 존재를 원하느냐하는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들이 그들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그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원치 않으며, 우리나라 안에 많은 무슬림 인구의 존재를 원치 않겠다는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많은 무슬림 인구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겪은 결과를 우리에게도 일어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원치 않은 우리에게 아무도 우리를 강요할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곧 이어서 수상은 역사의 예를 들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을 정죄하고, 무슬림들을 호도(糊塗)하는 태도의 정치적 바른 말로 표현하지 않고, 현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무슬림들과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들만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경험이 있습 니다. 150년의 역사를 또 겪어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르반이 언급하는 내용은 1541년에서 1699년까지 이슬람의 헝가리 정복을 시사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이슬람의 지하드, 테러활동,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등이 전국을 휩쓸었다. 헝가리 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유럽 동남부 국가들, 현제 러시아의 일부가 터키군에 의해서 정복당하였고, 점령되어 테러를 당하였다. 그때의 참상은 현제의 IS 잔악행위는 마치 어린아이 수준으로 여겨지는 정도였다. (그러나 현제 IS의 참수(斬首)형, 십자가 처형, 대량학살, 노예시장, 강간 등을 대규모로 수 세기 동안 자행되어 온 것과 비교해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 진보주의자들에게는 그러한 옛 기억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빅토르 오르반 정부에 의해서 수치를 당한 헝가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가디언 지는 오르반 수상의 정책을 조롱하고 다음과 같이 과소평가하였다. 

"헝가리는 오토만 제국과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오르반은 바쁘게 그것을 되살리고 있다. 오토만이 재공격하고 있다고 그는 경고하고 있다. 그들이 다시 점령해오고 있다. 헝가리는 다시는 현재와 같지 않을 것이다. . . .그러므로 철조망, 군대, 비상사태, 그 다음, 극단적인 혐오 연설 등등. 왜냐하면, 이것이 그가 처음부터 실시해온 것이며, 이것은 완전한, 조잡한 혐오와 중상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워싱턴 포스트 지도 "헝가리가 한 때 오토만 제국에 점령당한 역사를 인정하면서, 어떻게 먼 옛날의 군벌(軍閥)들과 서로 싸우는 제국들의 역사가 현재 난민들의 필요를 충족해야할 21세기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지 생각하면 괴이할 뿐이다"라고 보도하면서, 헝가리가 겪은 참혹한 피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소위 주요 언론매체들은 수천명의 피난민들 가운데 섞여 들어온 IS의 공작원들에 대해서는 무시해 버리고 있다. IS는 현제 이락, 시리아, 리비아 및 여타 지역에서 “오토만의 시대”를 재현하고 있으며, 그들은 헝가리와 기타 유럽 동남부 지역에서 오토만의 시대를 다시 재현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을 언론기관들은 외면해 버리고 있다. 이미 무슬림들은 헝가리에 힘의 세력으로 밀어닥치고 있으며, 무슬림 이민을 저지하고 있는 슬로바키아 나라에도, “알라 악바르”라는 고대 이슬람 전쟁 고함을 지르며 몰려오고 있다.

난민들 중 소위 “정규” 피난민들 대부분은 동화되지 못할 것이며, 일부는 약한 자들, 특히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을 억압하며 그들의 거처 (혹은 자치구역 내)에서 회교법을 시행하러 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르반이 언급한 바, “다른 나라들에서 대규모 무슬림 공동체가 행한 결과들을 우리가 원치 않는다”는 우려를 의미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다른 나라들”은 유럽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미얀마 (버마)에서도 현지민이 아닌 무슬림들이 현주민의 비신도 (비 무슬림) 들에 대한 상해, 폭행, 강간 등을 자행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반 무슬림 정서가 대다수의 불교인들 가운데 발생하고 있다. 예외 없이 서방 언론의 비판이 곧 뒤따르고 있다.

인기있는 불교 지도자 아신 위라두 (Ashin Wirathu) (1968 - )에 대하여 언론은 “버마의 빈 라덴”이라고 혹평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그가 버마 내의 무슬림 거주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사랑과 친절이 넘치는 사람일 수 있지요. 그러나 당신은 미친 개 옆에서 잠잘 수는 없지 않소?” 라고 이 불교 승려는 무슬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문제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소. 왜냐하면, 그들은 문제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헝가리의 오르반을 연상케하는 말로, 위라두는 경고하기를, “우리가 연약해 지면, 우리의 국토는 무슬림이 되는 거요.” 무슬림들에 대한 위라두 당의 주제곡은, “우리들의 국토에 살며, 우리들의 물을 마시며, 감사를 모르는 자들”이라고 표현하며, 그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만약 필요하다면 우리들의 뼈로 울타리를 세울 것이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다시, 헝가리의 오르반을 연상케 하는 말로, 위라두의 선전 인쇄물은, “미얀마는 현제 전 인류의 문화를 말살할 정도의 위험하고 두려운 독약에 직면하고 이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뉴욕 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조소하였다.

“미얀마에서 불교는 확고부동한 지위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 열명 중 아홉 명은 불교도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무슬림은 전 인구의 4 네지 8 퍼센트에 불과하다”

극소수의 무슬림 인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에 근거를 두고 비무슬림 국가에 무슬림의 공존을 정당화 하고 있는 것은 상식이다. 역사를 강조하는 오르반에 대하여 의아심을 표명하고 난 후 워싱턴 포스터 지는 “무슬림 인구는 헝가리 전체 인구의 1 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언론계의 허위보도는 “수의 통치”라는 이슬람의 불굴의 법칙을 무시하고 있다. 어느 때나, 어느 지역에서나, 무슬림의 수가 증가하면, 무슬림 다수 국가에 특유한 “반불신자 폭력”이 동일하게 자행되고 있다.

▲ 인도네시아 무슬림 남성들이 사원에서 기도하는 모습

한 때 비무슬림 국가였으나, 현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무슬림 국가가 된 나라에 무슬림이 잠입해 들어온 내용을 설명하는, 과거 무슬림이었다가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다니엘 비얀토로 (Daniel Byantoro) 사제의 말을 들어보자:

"수천년동안 나의 조국 (인도네시아)는 힌두-불교 왕국이었습니다. 마지막 힌두 왕은 인자한 분이어서 이슬람교 전도자에게 토지세 면제와 포교의 자유를 허락해 주었습니 다. 점진적으로 이 새 종교의 추종자들이 증가해 갔습니다. 그들이 이제 강력해지자 그들은 왕국을 공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슬람으로 개종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목숨을 위해서 피신을 해야했습니다. 점진적으로 인도네시아는 힌두-불교 국가에서 세계에 서 가장 큰 이슬람 국가가 되어갔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배워야할 교훈이 있다면, 그 들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혐오자들이나, 편협한 백성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들은 자유를 사랑하고,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 랑하는 민족입니다. 우리는 다만 이 자유와 민주주의가 우리들의 무지와 잘못된 “정치적 정확성”이라는 것에 의해서, 또한 관용이라는 핑계에 의해서 박탈당하지 않기를 원 할 뿐입니다."

참으로, 헝가리와 미얀마와 같은,  기독교인 오르반과 불교 승려 위란두와 같은 다양한 무리들은 무슬림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의 유입(流入)이 검을 사용해서나 혹은 가장(假裝)한 난민이든지 간에 일어나면, 서방국가들은 이들을 (오르반, 위란두 등을) 비방하기 보다는 이들로부터 바르게 배워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배우게 될 것이며, 이는 고난의 방법이다.

복음주의형제회 / 정태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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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윤 목사는 정태윤 목사는 미국 달라스에 있는 서남침례교회의 목사이다. 정태윤 목사는 현대의 교회들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에서 멀리 벗어났음을 안타까워는 목회자들과 함께 ‘복음주의 형제회’를 조직하여 매년 복음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천주교의 심각한 배도를 설명하는 데이비드 헌트의 책「짐승위에 탄 여자」을 번역하여 국내에 보급하였고, 그 외에도 「진정한 복음」,「참 복음과 거짓복음」, 「로버트 채프만: 사랑의 사도」를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