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철 목사('바른믿음' 운영자, 복음 변증가)

피터 와그너가 주장하는 제3의 물결시대의 예언의 은사에 대한 주장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초대 교회의 예언 은사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다. 성경에 당시 예언했다고 나오는 아볼로, 빌립 집사의 딸들 ... 등의 선지자들이 전했던 예언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면 된다. 그러면 신사도 운동 시대, 즉 제 3의 물결과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직통으로 받아내는 예언의 은사가 다시 나타난다는 피터 와그너의 주장이 허구임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초대 교회의 예언의 은사에 대해 저명한 학자들이 주장하는 다음과 같은 두 가기 관점을 있다.  



초대교회의 예언의 은사가 성경 수준의 계시를 전했다는 주장

첫째, 초대교회 당시의 선지자들의 예언도 성경에 기록된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이 받아서 전한 예언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수준이라고 견해가 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하고 그릇된 관점이다.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구약의 선지자와 신약의 사도들이 받아서 전하였고, 이미 성경에 기록된 계시의 말씀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권위있는 내용을 초대교회의 예언자들이 전했다고 한다.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서 언급하는 초대 교회의 선지자들의 예언이 절대적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그 속에 정확무오한 계시가 내포되어 있었다고 한다. 구약의 선지자들, 신약의 사도들, 그리고 초대교회 당시 잠시간 예언했던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매우 중요하고 정확한 계시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 내용이 성경에 포함되었느냐? 포함되지 못했느냐? 의 문제일 뿐이라고 한다.

아볼로 등의 초대교회의 선지자들이 활동하던 당시는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았던 때였다. 사도들이 저술한 성경의 사본들도 넉넉하게 여러 교회들에게 충분하게 전파되지 못했다. 신약 성경의 목록 조차도 확정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막 탄생한 교회의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말씀을 공급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서는 직통으로 말씀을 주시어 전파하는 선지자들을 세우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신약의 선지자들에게 '성령의 감동'을 통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펼치는 학자들도 초대 교회의 그 선지자들의 은사와 직분이 영구적이지는 않았다고 설명한다. 얼마 후 신.구약 성경이 완성되고, 성경을 중심으로 교회를 인도하는 장로 등이 선출되는 시스탬이 정착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직통으로 말씀을 받아서 전했던 초대교회의 선지자직이 사라졌다고 본다. 초대교회의 예언의 은사를 받아 하나님의 직통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가 직분은 성경과 교회가 완성되기 전까지 존재했던 '임시직'이었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아볼로 등의 초대 교회의 예언자들의 예언의 권위는 신.구약 성경에 비등했으며, 성경의 완성 이후 예언의 은사와 초대 교회의 선지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초대 교회의 예언의 은사가 주어진 계시를 해석, 적용하는 은사였다는 주장

둘째, 초대 교회 선지자들의 예언은 하나님이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 성경을 전해 주었던 방식, 즉 '하나님의 감동'(God-Breathed, 딤후 3:16)이나 '성령의 감동'(inspired by Holy Spirit, 벧후 1:21))하심으로 직접주어진 정확무오하고 절대적 권위를 가진 계시가 아니었다는 관점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하나님의 감동', 또는 '성령의 감동'이란 성경의 원 저자이신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가 이사야, 예례미야, 바울, 베드로 등의 성경 기록자들에게 그대로 전이되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성경기록자들은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대로 성경의 내용을 기록하였다. 하나님의 마음을 마음을 받은 성경의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으므로 신.구약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이 말씀이다.

성경의 내용이 '정확'(inerrancy)하다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경 기록자들에게 감동하심을 주어 하나님이 뜻하시는 내용이 전혀 변경되지 않고 정확하게 기록되게 하였다는 것이고, '무오'(infallible)하다는 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진실하시고 전혀 거짓이 없으시므로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온 성경의 말씀 속에 일체 거짓이나 속임이 없다는 뜻이다.

초대교회의 선지자(예언자)들의 예언의 내용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주어진 정확무오한 절대적 권위를 가지는 계시가 아니었다. 이 관점을 취하는 학자들은 당시 예언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감동'이 임한 것이 아니고 '성령의 조명'(illumination)이 주어졌다고 본다. '성령의 조명'이란 하나님이 신.구약의 성경의 절대적 계시를 주실 때, 성경 기록자들에게 역사하셨던 방식과는 다르다. '성령의 조명'은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 주어진 절대적 계시가 선포될 때 듣는자들이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도록 성령께서 도우시는 사역이다. 성령의 조명으로 말미암아 수 천년 전에 주신 말씀이 이후의 모든 시대의 교회들과 신자들에게 언제나 살아있고 능력이 있는 참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성령의 조명과 계시 해석과 적용

그런데 요즘 성령의 조명을 자의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하면서 무당 비스므레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나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자신에게 감동하심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직접 주셨다고 하였다

"정이철 목사는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유형의 직접 주시는 메시지를 받아내는 현상은 성령의 조명이 아니고 거짓된 계시현상이다. 대게 이런 현상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건 난해한 일이 벌어지면 기도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즉각 얻어내는 일들이 많다. 하나님으로 가장하는 점하는 영의 장난에 일평생 종독된 불행한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과 더 친밀한 은혜와 관계를 누리고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대게 변태적 방언에 중독된 사람들인 경우가 많고, '성령의 조명'이라는 개념도 이런 사람들이 오용하는 경우가 많다. 성령의 조명은 하나님과 직통으로 통하는(점하는 현상)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오래 전에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말씀의 참 뜻을 바르게 해석하여 지금 이 시대의 교회들이 바르게 적용하도록 도우심이다. 

초대 교회의 예언자들이 '성령의 조명'하에 예언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그 당시 이제 막 시작되는 기독교 복음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가르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주어진 구약 성경과 새로 주어지는 신약 성경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이해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해석하여야 하는 난해한 일이었다. 또한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신약 성경이 완성되지도 않았고, 이미 완성된 성경의 필사본이 모든 교회들에게 충분하게 공급되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볼로, 유다, 실라, 또는 바나바와 같은 사람들을 초대교회의 선지자(예언자)로 세우셨다. 그들에게 신.구약 성경을 종합하여 이해하고, 그 내용을 교회들에게 잘 가르치도록 성령의 조명하심을 공급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기회가 닿는대로, 교회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더욱 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구약을 통합하는 탁월한 관점을 동원하여 설명하고 이해시켰다. 이것이 초대 교회의 선지자들의 '예언 사역'이었다. 신자들은 그들의 예언으로 인해 많은 힘과 위로를 얻었다. 

물론 특별하게 초대 교회의 예언자들이 전한 예언 속에 정확무오한 특별계시도 일부 있었다. 그들이 전한 예언들 가운데 성경에 기록된 극히 일부의 내용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주어진 '특별계시'였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가 말하는초대 교회의 선지자들의 예언의 대부분의 내용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못한 기독교 신앙의 이치와 원리를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계시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말씀이었다. 구약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관련성을 잘 모르는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이해하고, 다양한 어려움 속에서도 든든하게 믿음에 서도록 하나님이 먼저복음을 이해하도록 '성령의 조명'을 베푸신 예언자들이 다른 신자들을 가르치고, 권하고, 책망하고, 위로하는 말이었다. 

결코 신약의 예언자들이 사도들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예언 속에 새로운 계시가 없었으므로 그들이 전한 대부분의 예언이 성경에 기록되지 못했다. 신약의 예언자들의 말씀 사역과 성령의 조명에 관한 대표적인 개혁신학자 서철원 교수의 말을 읽어보자!

▲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개혁신학자 서철원 교수(전 총신대 신대원장, 조직신학)

“칼빈의 가르침대로 고린도 전서 12:28-29의 선지자는 미래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아니고 성경을 다루고 성경을 해석할 뿐 아니라 지혜롭게 그 시대의 요구에 맞도록 성경의 가르침을 적용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성경의 탁월한 해석자들이요 교회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탁월한 지혜와 소질을 가지고서 교회의 요구에 응하는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다. 즉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리고 성경의 모든 가르침을 교회의 현재 요구에 바로 적용시키는 능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덕을 세우기 위해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완결 이후의 선지자나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해석하여 교회와 시대의 요구에 적용시키며 교회를 바로 세우는 역사를 하는 사람과 그런 말씀이다. 이 때는 영감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이 적용된다.”(서철원)


신앙의 원리를 설명하고 가르쳤던 초대 교회의 선지자들

초대교회의 선지자의 예언에 대해 말씀하는 다음의 내용은 직통계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신.구약의 계시를 성령의 조명하에 교회와 신자들이 더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말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행 15:32).

초대교회의 선지자였던 유다와 실라가 다른 성도들을 권면하여 믿음을 굳세게 하는 말을 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만일 이들이 사도 바울이 전하였던 예언과 같은 계시의 말씀을 전했다면 권면하였다고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계시는 절대적인 권위로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이고, 신자들에게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앞 뒤 정황을 보면 그 당시의 선지자들의 예언의 성격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행 15:24)

이방인들과 새로 등장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관계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예루살렘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자들이 이방인 교회에 찾아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율법과 관습을 다지켜야 한다고 겁박하였고, 이로 인해 이방인들에게 혼란과 낙심이 일어났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초대교회의 선지자 유다와 실라를 이방인들에게 파송하였다(행 15:27).

유다와 실라를 파송한 주된 목적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은혜에 이르는 신앙의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기독교의 원리를 설명함으로 이방인들의 신앙이 건강해지도록 돕고자 함이었다. 구약 성경과 당시 사도들이 가르치는 말씀에 근거하여 이방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이해시키는 것이 이 두 선지자들의 사명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보면, 초대교회의 선지자는 성경에 기록된 수준의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직통으로 받아서 전하지 않았고, 이미 주어진 계시를 성령의 조명을 입어 잘 깨달았고, 신자들에게 나아가 기독교 신앙의 이치와 원리를 자세하게 가르침으로 교회를 튼튼하게 세우는 말씀의 사역을 감당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롬 12:6)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각 종의 은사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믿음의 분수대로 예언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믿음의 분수대로’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대부분의 성경이 ‘믿음의 정도’, ‘믿음의 분량’ ‘믿음의 균형’이라고 번역한다. 이것은 당시의 예언의 은사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그 사람의 신앙에 대한 이해와 성숙도에 깊은 연관이 있었다는 것이다. 만일 예언의 은사로 말미암은 예언이 하나님이 직접주시는 메시지였다면, 예언 은사자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예언이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과 상관되었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예언의 은사가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 주어진 절대적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깨닫는 그 성도의 믿음의 분량에 근거하였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미 주어진 절대적인 말씀인 성경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성령의 조명'의 도움을 힘입어 신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이 살제 상황에서 적용되어지도록 가르치고, 설명하고, 권면하고, 책망하고, 위로하는 말이 예언의 은사였다. 하나님이 감동하여 주시는 말을 직통으로 전달하는 것이 초대교회의 예언이었다면, 바울은 결코 믿음의 분수대로 예언하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고전 14:3).

고린도전서도 초대교회의 예언의 은사에 대해 같은 내용을 가르친다. 예언의 은사를 가진 선지자의 예언은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고 안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은혜를 더 깊이 깨닫게하여 복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다양한 형편 속에서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이치와 원리를 가르치고 적용함으로서 가능해진다.

교사, 공무원, 군인, 상인 ... 당시 성도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서 다양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었다. 초대교회의 선지자들은 이들이 각자의 상황에서 충실한 기독교인으로 서도록 가르치고, 위로하고, 권하는 말씀을 전파하였던 것이다. 그 근거는 구약 성경과 당시 나타나고 있던 사도들의 가르침이었다. 결코 하나님의 감동으로 새로운 계시가 초대교회의 선지자들에게 직통으로 임한 것이 아니었다. 

초대교회의 이러한 예언의 은사는 성경이 완성되고, 성경을 중심으로 목양하는 장로와 집사가 등장하면서 사라졌다. 디모데전서3장 1-13절과 디도서 1장 5-9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어떤 성경적 원리에 근거하여 장로와 집사를 선출하여 교회를 목양하게 하였는지 나타나 있다. 만일 초대교회의 선지자들의 가르치고 위로하는 말씀 사역이 영구적으로 이어질 것이다면, 사도 바울이 장로와 집사를 별도로 선출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을 것이다. 초대교회의 예언하는 은사를 가진 선지자들은 신약 교회의 과도기에 일했던 임시직분자들이었고, 교회가 태어나고 자리를 잡기까지 하나님이 쓰신 산파들이었다.


예언의 은사가 부활했다는 피터 와그너의 주장은 거짓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선지자들의 예언의 은사가 제3의 물결과 함께 부활하였다고 주장하는 피터 와그너의 이론은 완전히 거짓이다. 그가 말하는 예언은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예언에 대한 이러한 유형의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면서 신령한 듯이 행세하는 사람들의 말을 전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 필요가 없는 정도가 아니다. 귀신과 교제하는 일이므로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배척해야 한다. 그 내용이 맞는 말이건, 틀린 말이건 그러한 시도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그릇된 일이다. 귀신이 하는 일이므로 성도는 절대로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어렵고 괴로운 일이 벌어지면 더욱 하나님을 생각하고 의지하면서 힘써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면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성경의 가르침의 범위 안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깨달음과 확신을 꼭 주신다. 기도에 게으르고, 자신만의 믿음의 확신이 없으므로 사이비들의 예언에 기대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귀신으로부터 나온 그럴싸한 말에 솔깃하여 흥분하고, 녹음했다가 나중에 시간을 내어 다시 듣고 생각하고, 요리조리 궁리하고, 묵상하면 반드시 손해를 본다. 목회자들은 성경에 나타난 예언의 은사에 대해 분명하게 이해하고서 연약한 성도들을 가르쳐야 한다. 거짓된 예언자들로부터 양들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메시지를 받아오는 일들은 언제나 다양한 형태로 우리 주위에 존재한다. 그러한 일들의 결과는 항상 우리의 신앙이 성경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배가 닺을 던져 바다에 고정시키고 안전한 항구에 정박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오직 성경에 매이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가르치는 교회의 품 안에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고리타분하게 보일지라도 영원한 행복의 길이다. 영혼의 어머니인 건강한 교회의 가르침과 영혼의 닻인 성경을 넘어서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을 받으려는 위험한 행위는 결국 우리의 행복을 파괴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즉시 불행이 시작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신령한 엘리트 신자가 되었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어렵다. 

결 론

사도들을 통해 주어진 계시 외에 피터 와그너가 말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직통으로 받아오는 예언의 은사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현대의 모든 예언운동은 거짓이고, 또한 피터 와그너가 말하는 제3의 물결의 예언의 은사 또한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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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