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로 목사의 부활복음에는 십자가를 무너뜨리는 함정이 있어

저는 <바른믿음> 출범이후 줄곧 <바른믿음>에 올라오는 글들을 통하여 저의 신앙을 비추어보며 신앙의 잣대로 삼고 있으며, 어느덧 친숙한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정이철 목사님께서 유독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방언에 대한 글들도 거부감 없이 꾸준히 읽어보고 십 년 이상 고집했던 방언도 버렸으니까요. 현대의 방언이 복음에 배치됨을 깨닫고 저의 고집과 함께 미련 없이 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악은 모양이라도 흉내 내지 않으려 방언하는 교회는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존경하는 정이철 목사님께서 한마음교회에 대한 소감문을 보내주면 신간 책을 보내주신다고 하셔서 조금은 의아했답니다. 한마음교회는 평판이 좋은 교회이고, 저도 몇 년 전 우연히 간증을 듣고 좋은 이미지가 저의 뇌리에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분도 아니고 정이철 목사께서 문제 삼았다면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숨어 있나보다” 라는 짐작이 갔습니다.

그간 제가 본 정이철 목사님은 패기가 넘치는 분이며 그 패기로 골리앗 같은 신사도운동을 날카롭고 예리하게 파헤쳐 복음의 물맷돌로 쳐부수고, 또 많은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초지일관 끈질기게 마귀방언퇴치사역을 하시는 보기 드문 목회자입니다. 저도 방언에 대하여 한 때는 조금 오해하였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때의 오해가 더 깊은 신뢰로 바뀌었답니다.

저는 복음에 정통한 정이철 목사님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기에 목사님의 의중을 따라 그 무언가를 찾으려 저의 시각과 청각을 총동원하여 한마음교회를 탐색했습니다. 그 결과 정이철 목사님의 의중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답니다. 꼬박 이틀 밤을 지새우다시피 살펴본 결과 복음적인 한마음교회 뒤에 숨어있는 이단적인 요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쁨보다 아쉬움과 씁쓸함과 허탈감이 한가득 밀려오는 것은 웬일일까요. 가장 복음적인 교회가 복음으로 포장된 위험요소들이 숨겨있음을 알았을 때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저 뿐만 일까요? 복음의 파수꾼인 정이철 목사님께서는 이미 간파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김성로 목사(춘천, 한마음교회 담임)

한마음교회의 "부활복음"은 제가 배우고 깨닫고 알아왔던 복음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김성로 목사님은 부활을 지나치게 강조하셨습니다. 부활을 “부활의 복음”이라고까지  말씀하시며 “십자가에 머무르지 말고 부활신앙으로 나가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씀이 맞는 것처럼 보이고, 신앙의 성장을 요구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기독교의 기둥인 십자가를 무너뜨리는 무서운 함정이 숨어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부활복음‘을 내세워 십자가복음의 의미를 왜곡. 약화시키고 십자가를 비켜가게 하는 가르침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본 간증 자들의 특징은 십자가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다수 제가 본 간증에서는 십자가의 예수를 만나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는 회개는 없었습니다.(다른 동영상은 혹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간혹 십자가를 말한다 해도 형식을 갖추기 위해 끼워 넣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여겨졌으며 유독 ’부활하신 예수”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간증동영상 참조) 제가 보고 들은 한마음교회의 간증과 설교에서 느낀 점들을 간추려 보겠습니다.

첫째. 김성로 목사님은 부활을 강조하시기 위해 부활을 “부활의 복음”이라 부르며 복음이 가진 의미를 왜곡시켰다고 생각이 듭니다. 복음이란 생명을 얻는 복된 말씀이 복음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듣고 믿고 영생을 얻는 것이 복음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복음을 복음이라 부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엄밀히 말하면 부활을 복음이라고 한 것은 틀린 말씀입니다.

부활을 믿고 죄사함과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십자가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은 성도들에게 뒤따르는 영광이지 그 자체가 복음의 능력이 될 수 없지 않나요? 바리새인들도 부활을 믿었으나 구원받지 못한 것은 부활자체가 무슨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김성로 목사님의 “부활의 복음”은 엄밀하게 다른 복음이라고 단언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둘째. 김성로 목사님은 십자가 죽음에만 머무르지 말고 부활의 신앙으로 나가야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이것은 신앙의 성장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멸망으로 이끄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십자가를 부활로 가기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가볍게 취급하시고 지나쳐가는 과정 정도로 여기시는 것은 십자가의 능력을 축소 및 과소평가하신 것이며 이는 십자가를 온전히 알지 못하시기에 이런 실언을 하신 것이 아닌가 하고 분노마저 일었습니다. 십자가 복음은 지나쳐 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동안 끝까지 붙들고 그 안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성로 목사님의 주장대로 십자가 복음에 머무르지 못하고 지나치면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에 떨어집니다. 성령이 오신 이유도 진리이신 십자가로 이끄시고 끝까지 그 안에 머물게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십자가를 붙들었으며 제자들도 십자가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성경은 십자가로 모아집니다.

창세기의 아벨의 제사를 필두로 모리아산의 이삭과 구약의 모든 제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키듯이 이렇게 성경의 중심과 핵심은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가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십자가는 죄를 사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이며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머무르지 말고 지나치라는 것은 산소호흡기 같은 생명 줄을 제거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복음에 머물러야 성경을 깨달을 수 있는 눈이 열리고 십자가복음 안에서 생명의 떡을 공급 받으며 성령과 하나 되어 성화의 길을 갑니다. 우리의 목표는 오직 십자가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에 머무르지 말고 나아가라는 것은 멸망으로 나가라는 것과 진배없다고 여겨집니다.

셋째. 김성로 목사님은 “부활의 복음”을 십자가보다 우위에 두는 부활신앙을 만들기 위해 예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보고 확실한 믿음을 가졌으며, 이로 인해 순교신앙을 가졌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간증 자들도 이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서수지 자매 부활간증동영상 참조)

이것은 성경의 핵심인 십자가와 성령을 비켜가게 하는 위험하고 왜곡된 성경해석이며 거짓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보고도 결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보고도 베드로는 원래의 직업으로 돌아가 고기를 잡으러 갔고 다른 제자들도 따라갔습니다.(요21:2-3) 그들이 원래의 직업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믿음이 없었다는 확실한 반증입니다.

따라서 부활을 보고 순교신앙을 가졌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없었으며 오순절에 성령이 오신 후에야 비로소 복음과 예수의 실체를 깨닫고 순교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표적을 보고는 순교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메시아의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지만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는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을 보여주신 것은 무덤에 있지 않고 살아나셨음을 알리시려는 표적입니다.

즉 요나의 표적입니다. 이 표적은 유대인들과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이며 이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어주었고 성경에도 기록되었습니다. 부활은 그분이 메시아이며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표적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진실임을 믿어야합니다. 이것이 믿어지면 십자가복음으로 나아가야합니다. 순서를 바꾸면 안 됩니다. 최종목적지는 십자가가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복음외에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십자가없이 부활에 머무르면 멸망합니다 부활을 믿고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부활을 믿으면 영생을 얻고, 부활을 믿으면 죄가 사해지는가요? 부활이 무엇인지 모르는 초 신자도 십자가복음을 믿으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부활이 진실임을 믿는 것은 필요한 것이지만 십자가 복음을 희석시키기 위한 “부활복음”은 다른복음입니다. 결론적으로 김성로 목사님은 송구하지만 다른복음을 가르치는 목사님입니다. 우리는 부활보다 오직 십자가 복음을 끝까지 흔들림 없이 붙들어야 합니다.

넷째. 김성로 목사님은 “부활하신 예수”를 지나치게 강조하셨습니다. 간증 자들은 하나같이 한마음교회에 와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변화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다른 교회와 한마음교회를 차별화하여 한마음교회에만 “부활하신 예수”가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할수 있는 간증이며 이는 지극히 이단적인 주장이라고 보여 집니다.

다른 교회는 무덤에 있는 예수를 가르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주장임을 유심히 새겨듣지 않아도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음교회에만 ‘부활하신 예수“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를 찾아, 심지어 지방의 먼 곳에 사는 사람들도 장시간 운전하여 한마음교회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교회도 예수가 지금도 무덤에 있다고 가르치는 곳은 없습니다. 또 항상 예배 때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도 부활하신 예수를 늘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부를 때 ‘십자가를 지기기 전의 예수’와 ‘십자가를 지신 예수“그리고 무덤속의 예수”“부활하신 예수”를 각각 구분하여 부르지 않고 그냥 예수라는 호칭에 모두 다 포함이 되어 있다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일이 구분하여 부르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가 마치 한마음교회에만 있는 것처럼 간증하는 것은 오도에 가깝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유독“부활하신 예수”라는 호칭에 집착하는 것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차별화를 꾀하는 매우 교묘함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섯째. 일부 사람들이 제기한 다음과 같은 글을 보면 한마음교회는 이단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성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마음교회교인들은 부활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한마음교회의 간증 자들은 하나같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서 변화되었다고 간증한다."

"한마음교회는 타교회에 배타성이 있는 것 같다."

자기교회만이 구원이 있는 것처럼 가르치면 이단이듯 한마음교회만 "부활하신 예수"가 있다고 강조한다면, 이 또한 이단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을까요? 그런 교회 신도들은 그 교회를 떠나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습니다. 외지 사람이 멀리 춘천까지 가야만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는지 묻고 싶습니다.

<
결 론>
한마음교회가 “부활하신 예수”를 강조하는 것은 다른 교회들은 부활하지 못한 예수를 가르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강조하는 것과 같습니다. 간증 자들의 글에도 십자가의 은혜는 찾아볼 수 없고 “부활하신 예수”를 말할 뿐입니다. 혹자는 한마음교회가 균형 잡힌 교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십자가복음만을 강조하지 않고 부활신앙도 강조하여 균형이 잡혔다고 오히려 칭찬합니다. 그러나 사도들도 십자가만을 가르쳤을 뿐 부활과 균형을 잡으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복음을 넘어서는 복음은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복음 안에 부활의 영광도 있다고 믿습니다. 실망과 분노와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감문을 마칩니다.
 

오명숙(mailto:oms1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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