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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교수의 갈팡질팡하는 거짓 방언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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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교수의 갈팡질팡하는 거짓 방언 이론
  • 이창모
  • 승인 2015.10.21 05:56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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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2015-11-17 14:25:53
윗 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론하시는 분들은 은사를 잘못 해석하는 일반 교회의 평범한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은사주의자들이 쉽게 매료되는 이유 또한 바른 해석을 듣지 않으려 고집하고 억지부리는데 있다.
일단 방언을 구사하는 사람들의 오류는 자기들이 좋아하는 은사, 마치 은사를 개개인이 소유하고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말이다.
구약이나 신약에서 성령 하나님의 개입없이 은사를 활용할 수 있었는가?
성령 따로 은사 따로/ 말씀 따로 성령 따로가 아님을 그들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엉터리방언으로 한번 혀가 꼬인 사람들은 여러번의 학습을 통하여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언제든지 혀를 꼬고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은사로 알고 스스로 자아 최면에 들어가는 것이다.
방언을 하고 있지만 스스로 자아 최면에 빠져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방언의 더 큰 위험은 방언을 구사하여 깊은 최면상태에 빠지면 마치 꿈속에서 영이 활동하듯이
영화를 보듯 어떤 사람이나 상황을 보게된다. 그것이 마귀와 접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이 본인에게 말씀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청사진을 통해 자기에게 특별히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이며 계시라고 착각하며 자신과 하나님이 영혼의 교제를 나눈다고 생각한다.

방언하는 동안은 마치 뜬 구름 위에 않아 있는 것처럼 몸도 가볍기도 하고 뜨겁기도 하다.
정신도 깊은 경지에 이르는 기분이다.
뿐만아니라 방언기도를 매일 또는 자주 거듭 번복하고 학습할수록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환상의 세계를
접한다. 그것을 신앙의 경지 내지는 선지자가 경험한 성령체험이라고 오해한다.

그래서 방언기도하는 사람들은 묘한 그 분위기를 만들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 접신을 즐기는 것이다.
눈 뜨고는 볼 수 없어 눈을 감고 입으로 방언이라는 주문을 외워 경지에 이른다.
하나님이라는 '신'을 향해 타인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나의 속에 있는 여러가지 기도제목들(?)이라는 것을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쏟아놓으면 마치 스트레스가 확 풀리고 체기가 내려간 듯 속이 시~원하기도 하다.

방언기도는 물리적인 세상에서 본인만이 구별되고 분별된 경험을 위안삼아 방언기도라는 통로를 통하여
하나님과 가까이 한다는 착각속에 살아가는 위험에 처할 수 밖에 없다.

오늘날 방언이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은 미국사람에게 복음을 말해주기 위해서는 영어를 배워라.
독일사람에게 복음을 들려주고 싶으면 독일어를 공부해라.
그것을 수단으로 오늘날 방언을 잘 활용하는데 도우시는 성령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김한나 2015-11-04 11:49:47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저는 몇년 간 신사도 운동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제 주변의 열심인 사람들이 보통은 3-4시간, 많게는 7-8시간까지 방언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 후에는 말씀과 환상이 떠오른다면 늘 예언을 했지요.

신사도적 목사님으로부터 '예언 훈련'도 받았는데 그때 자주 들은 말이 '직감'이었습니다.
방언기도를 하면 성령이 충만해져서 그때 받는 직감이 바로 성령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언이라는 것이 대부분 막연하거나 옳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때 잘못된 것에 빠졌던 사람으로서 '신사도 운동'이나 '방언기도'나 '직감으로 하는 예언' 등이 옳지 않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물론 방언기도하지 않습니다.
소위 방언기도라는 것이 성령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제가 앞글에서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서 많은 오해가 있으셨네요.

Enoch 2015-11-02 23:06:58
한나님
" 3-4시간 또는 7-8시간 방언기도하는 그 사람들이 부럽네요. 방언은 많이 하지만 그들과 같이 3-4, 7-8 해본 일이 없어서요. 저런 방언을 한다는 한나님의 증언 자체가 낯설기만 합니다. 1일 금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의 금식을 따라 40일 금식하는 사람들도 있다라는 정도의 비유로 하신 말로 듣겠습니다.

한나님이 선택한 "직감"이란 단어 참으로 외식적으로 들립니다. "직감"이라는 단어는 성령, 방언을 설명하기 위한 단어로는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또한 위에서 여러가지로 소개한 실예들이 사실적으로 보이지 않네요

성경적인 예언이란? 말씀 그대로 모든 것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보혜사 성령이 알게 하시는 사실들이 "샛별"같이 마음에 떠 오르는 것 입니다. '사실'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말 합니다.

궁금 합니다. 한나님이 진실로 방언을 하는 분이 사실인지요. "소위 방언기도를 오래 한 후 선포하는 예언들의 많은 경우가 틀렸다는 '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른믿음' 답지않은 방언 경험 이야기이기에 의아할 뿐 입니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방언을 말하는 자로, 방언기도를 하면 알게 하시는 것은 "직감"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 입니다

쪽글의 공간을 2000자까지 대폭 증강한 정이철님, 잘 하셨습니다.

진성택 2015-10-24 12:40:04
순전한 복음을 깨닫는 것이 쉬운 것처럼 보이나 실은 깨닫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은사주의자들로 인해 순전하고 맑은 십자가 복음이 더러운 흙탕물로 변해버린 교계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또는 분노하며 사역자들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격세지감님도 사역자들을 격려하며 힘을 실어주시기 바랍니다. 비판하기에 앞서 충분히 숙고한 후 비판하시면 좋겠습니다.

격세지감님의 글을 살펴보면 상당한 수준의 신학적 소양을 가지신 분으로 보이며 진리의 바로 앞까지 접근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격세지감님이 제기하신 성경구절에 이미 답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의 사랑 장은 고린도전서의 일부가 아니라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장입니다. 바울은 모든 은사는 사랑의 은사로 귀결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은사는 십자가 은혜를 성령에 의해 깨달은 것을 말합니다.

즉 말이나 지식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십자가 은혜에 감동받은 것이 사랑의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랑의 은사를 깨닫게 되면 진리이신 예수를 눈으로 본 것처럼 알게 된다고 말하고, 이렇게 되면 어린아이같이 은사에 매달리지 않고, 표적은사를 버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방언이나 예언 같은 은사는 진리인 사랑의 은사를 가리키는 것이기에 답을 알면 더 이상 문제에 매달리지 않는 이치입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뜻을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창모 2015-10-24 01:10:15
바울이 10절에서 은사의 폐함을 이야기하고, 11절에서 10절의 부분적으로 하던 것을 “버렸다”는 말을 은사의 폐함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어떻게 무슨 근거로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에만 만족하고 자만하지 말고 이것을 통해 참 복음의 진리인 사랑으로의 귀결을 나타내자는 것”이라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이런 성경 해석이 소위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하죠.
어쨌든 고전13:10-11절을 그렇게 이해한다니 더 설명을 해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군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격세지감님께 드린다면, 귀하의 논리대로라면, 요한계시록에는 온통 성령의 은사들로 도배가 되어야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눈 씻고 보아도 성령의 은사는 나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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