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성령세례가 성경적 방언을 동반했다는 증거는 성경에 없어

김종명 선교사(태국)

20세기 초인 1906년 4월 어느 날, 아프리카계 미국인 설교자 윌리암 시머(William J. Seymour, 1870-1922)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가, 312번지의 한 낡은 교회 건물에서 ‘사도적 신앙 선교회’(Apostolic Faith Mission)를 설립하였다. 그는 감리교 감독교회의 목사였던 찰스 폭스 파함(Charles Fox Parham, 1879-1929)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었는데, 그로부터 약 2년이 지나는 사이 그 거리에 큰 부흥이 일어났고, 그 부흥의 특징은 ‘방언’(실재하는 언어, 외국어가 아닌 소위 통역 불가능한 소리로서의 소위 ‘날랄라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이 운동은 ‘오순절주의’(오순절 운동, Pentecostalism)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이 용어는 사도행전 2:1-4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들이 경험한 방언 현상이 결코 사도행전 2장이나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말하는 방언(외국어)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신비해 보이는 경험을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으로 믿어 버린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이 새로운 개신교 안의 운동은 100여 년이 지난 2000년 현재,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약 5억 명의 교세를 이룬 대규모 운동으로 발전하였다.[1] 오순절 주의(Pentecostalism)는 주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도시 빈민들과 사회에서 소외당한 사람들 속에 급속히 전파되고 있고, 이러한 성장 추세는 개신교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술한 것처럼 오순절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경험할 수 있는 성령의 은사, 특히 병 고침과 방언 말함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강조점은 그 운동에 동참하는 구성원들에게 개인적인 은사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경험하게 함으로 신앙의 주관적 확신을 갖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성령강림이라는 위대한 구속사적, 교회사적, 선교사적 사건의 증표인 방언의 의미를, 구원받은 신자가 2차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개인적 덕목으로서의 은사체험이라고 인식하게 하는 이해를 개신교 전체에 확산시키는 영향을 가져왔다.[2]

본 연구에서는 과연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시 나타난 방언이 오순절 은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소위 기도의 능력, 신유의 능력, 성령충만, 능력충만이라는, 신자 개인적 차원의 은사의 덕목으로서의 방언(통역될 수 없는 무의미한 소리들의 모음)인지, 아니면 구속사적, 교회사적, 선교사적으로 광의(폭넓은 의미)를 지닌 성령오심의 표징으로서의 방언(외국어)인지를 연구,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방언에 대한 오순절주의적 이해와 현상, 그리고 그에 대한 비평적 견해들

오순절주의의 시작 전에 있었던 전통적인 개신교 신학은 방언, 예언 같은 몇 은사는 신약 성경이 기록되던 초대교회 시대, 사도시대에만 있었던 독특한 현상으로 이해했고, 그 이후에는 중지되었다는 ‘은사 중지론’(cessationism)을 따라왔다.[3] 그렇지만 예언, 방언, 축귀 등을 통해 성령의 은사의 개인적 체험을 강조한 오순절주의는, 초기에 오순절주의자들의 모임시 나타나는 방언 현상에 대해 기괴하고, 혐오스럽고, 광란, 광신적이다는 경멸적인 인상을 받았으나, 1960년대에 일어난 신은사주의적 갱신운동(neo-charismatic renewal)을 통해 백인 중산층에서도 환영을 받게 되었고, 1960년대 말 미국교회 안의 성공회, 루터교회, 감리교회, 장로교회 안에서도 방언 현상들을 경험하기 시작하자 큰 지지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 남침례교회에 속한 교회들을 제외하고, 심지어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서도 은사주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비교적 개혁신학의 전통 위에 보수적으로 성장하던 한국교회에도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비롯한 여러 오순절주의, 성령주의 교회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성령운동을 표방하는 복음주의적 대형교회들을 통해서도 소위 복음주의적 은사운동이 실천되어서, 오늘날, 개혁주의적 또는 복음주의적 교회들의 신학 노선과는 달리 목회사역과 예배생활, 성도 개인들의 신앙생활에 오순절주의적 은사주의의 영향이 점차 확산되어 보편화되고 있는데, 성령충만한 능력있는 기도생활을 위한 방언 말함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방언의 강조를 위한 가르침의 근거로 사도행전 2장, 오순절 방언 현상이 동일한 성질의 모범적 사건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은사 중지론’의 입장을 따르는 그룹은 크게 개혁주의 신학과 세대주의 신학 노선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개혁주의에 속한 교파는 대부분 장로교에 속한 이들이며, 개혁파 침례교도 소수 있으며, 세대주의 신학은 오늘날 미국 침례교회 안에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하여 ‘은사 지속론’을 따르는 그룹에는 소위 성령운동을 하는 그룹으로 구 오순절 운동, 신 오순절 운동(은사주의), 제3의 물결(빈야드 운동), 신사도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 그룹 안에는 여전히 이 같은 오순절 은사주의에 대한 거부 세력이 있지만, 개신교의 연합을 위해, 그리고 교파를 초월하여 신앙의 개인적 체험이 강조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분위기를 인해 점차 오순절주의를 용납하고 있는 상황이며, 더 나아가 오순절적 은사주의를 각 교파의 상황에 맞게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시켜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경향에 대해 데이비드 웰스는 오늘날 복음주의가 교리를 중시하지 않음으로 인해, 다양한 신학적 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 신학이 실종된 잡종 신학처럼 되어, 복음주의 안에는 복음주의 카톨릭 교도, 카톨릭적 복음주의자, 복음주의 해방 신학자, 복음주의 여성신학자, 복음주의 에큐메니스트, 젊은 복음주의자, 정통 복음주의자, 급진적 복음주의자, 자유주의적 복음주의자, 복음적 자유주의자, 은사주의적 복음주의자 등의 다양한 그룹이 존재하게 되었음을 말한다.[4]

오순절주의자들은 방언의 은사에 대해, 신약성경은 ‘크세노랄리아’(외국어로 말하는 것)와 ‘글로소랄리아’(방언으로 말하는 것)를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희랍어 비평본문을 담은 NA27판은 사도행전 2:4나 고린도 전서 14:2에서 다 같이 말, 언어, 혀의 의미를 지닌 ‘글로싸’라는 단어를 두 경우에 다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오순절 주의자들의 주관적 해석일 뿐 성경적 논거는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5]

사실 방언 현상은 기독교의 오순절주의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교나 이슬람교, 무교 등에서도 방언 현상이 빈번히 관찰, 보고된다. 방언이란 대개 무아지경에 빠져 강렬한 종교적 체험을 말로 표현하는 양상을 띄는데, 아주 사사로운 음성, 소리를 기도 같은 형식으로 나타내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방언 현상의 소리는 보통 지구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가 아니며, 외부 관찰자들은 그 의미를 해석하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보통이다. 옥성호는 그의 책,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에서 말하기를,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은사와 방언, 방언의 가치와 사용에 관한 가르침을 말한 것은 고린도 지방이 이방신을 섬기는 여제사장들과의 성적 접촉시 신탁으로서의 방언 현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이교적 방언 현상과 기독교의 방언을 구분하기 위해 그런 가르침을 준 것이라고 설명한다.[6]

오순절주의자들은 방언을 성령세례의 증표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이전의 전통적 개신교인들은 신자들이 회심할 때, 세례받을 때, 거듭날 때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에 반하여 이런 오순절적 이해는 성결교 신학의 연장선 속에서 방언, 성령 세례가 소위 ‘두 번째 축복’(The second blessing)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축복, 성령 세례가 방언 말함을 동반했다는 증거는 성경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이점은 아주 중요하다).[7] 오순절주의는 모든 믿는 자들의 평등주의, 개인적 성령체험을 통한 능력 강조, 효과적인 언어와 의사소통 형식 사용,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는 기대감 창출 등 많은 대중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때로 성령의 능력을 말씀의 권위보다 앞세우는 경향, 성령 세례에 대한 이해의 상이성, 삼위일체 신앙에 대해 부분적으로 양태론 (modalism)적 이해(사벨리우스(Sabellius)주의적 이해)를 가지고 있는 점, 번영신학적 가르침 등에서 전통적 개신교와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다.[8](다음에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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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명 선교사는 합동신학교에서 공부하였고, OMF를 통해 파송되어 1995년부터 태국 선교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 선교사 훈련원(GMTC), 말레이지아 침례 신학교(MBTS, 선교학 박사)에서 타문화권 선교를 위한 전문적인 연구를 하였으며, 최근 선교지에서도 크게 일어나고 있는 신사도운동 등의 성경을 곡해하는 거짓된 방언 등의 그릇된 성령운동과  은사주의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참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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