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일반 독자분들은 칼빈과 청교도와 알미니안의 칭의에 대한 차이점을 잘 모릅니다. 두 가지를 질문하는데, 첫 번째는 사실상 알미니안으로 취급받는 감리교에도 능동적 순종이 있나요? 두 번째는 알미니안을 해부하는 책까지 쓴 회중주의 청교도인 존 오웬의 칭의와 칼빈의 칭의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일반 독자분들이 알기 쉽게 차이를 설명 부탁드립니다.

 

답변>
귀하고 중요한 질문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1. 알미니안과 능동적 순종

알미니안들의 칭의 신학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의 원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알미니안들이 직접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라는 용어와 개념을 체계적으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가 체계적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이 알미니안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칼빈의 제자(후계자) 베자와 알미니우스는 상당히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베자가 칼빈이 세운 제네바 신학교를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을 때, 알미니우스가 베자에게서 약 1년 동안 신학을 배웠습니다. 알미니우스가 그곳을 떠나 네더란드 본국으로 돌아가서 교수가 되는 과정에 베자의 협력이 있었습니다. 베자가 알미니우스는 추천하는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알미니안주의와 베자의 관련성이 전무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의 초기 모습이 베자에게서 발견됩니다. 베자의 로마서 강해 속에, 그리스도가 모든 율법 조항들을 완전히 지키신 공로에 근거하여 구원을 하나님께 청구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베자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인이 되는 이유를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완전하게 실천하셨기 때문이라는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칼빈의 제자 베자에게서 이미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이 태동되었다는 것은 정말 충격적인 일입니다. 

율법준수를 구원의 요건으로 여기는 거짓 신학이 다음과 같이 역사 속에서 도도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1) 갈라디아 이단들은 '그리스도를 믿음' + '율법의 행위' = '완전한 칭의'(구원)라고 가르쳤고, 그래서 사도 바울에게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2) 펠라기우스에 의해 갈라디아 이단들의 행위 칭의론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 사후에 어거스틴의 신학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받았습니다.

3) 로마교회는 펠라기우스의 신학을 조금 완곡한 형태로 수용하는 거짓 종교입니다. 로마교회는 '그리스도를 믿음' + '신자의 완전한 행위'(율법준수) = '칭의 완성'이라고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4) 로터, 칼빈 등 1세대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완전한 칭의를 얻는다는 성경의 칭의 신앙을 회복하고 떠났습니다.

5) 2세대 종교개혁자들은 1세대 종교개혁자들의 유산 ‘이신칭의’의 세부적인 원리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율법의 행위에서 '영생의 의'가 나온다는 이전 이단들의 칭의 이해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한 율법준수를 신자들의 의무 사항으로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신자들을 구원하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무 사항으로 귀착시켰습니다. 우리 대표이신 그리스도께서 홀로 완전한 율법 실천에 성공하시어 그 공로를 우리에게 전가하심으로 우리가 의인이 되었다는 그리스도 중심의 율법주의를 출발시켰습니다. 베자가 그리스도께서 율법 조항들을 완전하게 실천하신 공로에 근거하여 우리의 영생을 청구했다고 설명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 중심의 율법주의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6) 알미니안들이 등장하여 종교개혁 교회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를 부정하면서 그리스도를 믿고 율법의 행위를 완전하게 수행해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알미니안들도 신자들이 못하는 완전한 율법준수를 그리스도가 대신 하심으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고 이해했습니다. 알미니안들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최선을 다해 율법의 행위에 힘쓰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율법준수의 공로를 우리의 것으로 인정해 주심으로 우리가 의인이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도 개혁교회는 도르트신조를 작성하여 근본적으로 칭의가 율법의 행위에서 나온다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면 그리스도의 완전한 율법준수의 공로가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알미니안들의 주장을 정죄했습니다. 대신에 성경대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고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감리교 신학은 조금 다른 모양입니다. 감리교 신학은 우리 각 사사람이 완전하게 행하고 회개해야 하고,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마지막 순간에 칭의 판정을 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대신 완전하게 율법을 실천하신 공로의 전가로 우리가 의를 얻는다는 것은 감리교 신학에서 인정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성결교 신학자가 바른믿음에 들어와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결교와 감리교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성결교 선생이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감리교도 그렇게 믿는 것 같습니다.

웨슬리에게 완전주의가 강했으므로 감리교 신학에서도 우리 각자의 완전한 행위가 칭의의 근거입니다. 예수님의 완전한 율법준수 행위가 전가되는 것으로 칭의를 얻는다는 신학은 감리교의 칭의 신학일 수 없습니다. 사실 저는 그쪽 전문가가 아닙니다. 또 그들 내부에서 신학이 확실하게 하나로 정립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2. 존 오웬의 칭의론과 칼빈의 칭의론

존 오웬은 청교도 신학의 황태자로 불리웠으니, 그의 신학이 곧 청교도 신학입니다. 존 오웬은 그리스도가 십자가로 우리에게 죄용서를, 모세의 율법들에 대한 완전한 준수로 우리에게 천국 영생에 필요한 의를 가져다 주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오웬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의인이 되는 것은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이신칭의의 원리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으로 들어가면 존 오웬은 성경적 칭의 신학을 멸하는 이단입니다.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의로운 사람으로 성육신하여 자기 목숨으로 우리의 죄값을 갚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과 믿음 안에서 자기를 우리에게 연합시키어 자기의 의와 거룩이 우리의 것이 되게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육신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본질적으로 존재하였던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도 의인이 되었습니다. 결코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얻은 율법의 의가 전가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2).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21).

이와 같이 성경은 죄용서로 말미암은 죄인과 하나님의 연합으로 인해, 하나님의 의가 우리의 의로 인정되어 칭의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또 우리에게 자기 속의 하나님의 의를 나누어 주심으로 우리도 하나님의 의가 되어 칭의를 얻었다는 것이 성경의 칭의 신학입니다.

존 오웨의 칭의신학을 알 수 있는 다음의 글을 보십시오. 성경이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는 칭의를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공덕으로 돌리는 이단사상입니다.
 

 

“완전히 의로운 그리스도는 그의 적극적인 순종이 없어도 죄를 위한 희생 제물과 화목 제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므로 그가 적극적인 순종의 삶을 산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 어떤 이들은 이 순종이 그의 피 흘림과 몸을 드림의 준비였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의 죽음이 오로지 우리의 칭의, 우리에게 전가된 모든 의를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순종은 순수한 순종의 행위로서 우리의 칭의의 원인이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순종으로 간주된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 [적극적]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면,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모든 법에 순종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훨씬 일찍 죽었어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데 충분했다 (John Owen, 성도와 하나님과의 교제 (황을호 역), 151)

위 글에서 나오는 존 오웬의 다음의 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전성을 허무는, 즉 십자가의 공로만으로는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이단사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그 [율법을 지키신 적극적]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면,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모든 법에 순종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훨씬 일찍 죽었어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데 충분했다”

반대로 칼빈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죄용서)만으로 우리의 의가 완성되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칼빈의 때에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개념이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칼빈을 능동적 순종과 연관시키려는 시도는 악의적은 왜곡입니다.
 

 

“그러므로 ‘의롭게 한다.’는 뜻은 고소를 당한 사람에 대해서, 마치 그의 무죄가 확정된 것같이, 그 죄책이 없다고 무죄 석방을 선고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중재로 의롭다고 하시므로 하나님의 이 사면은 우리 자신의 무죄가 확증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셨기 때문이며, 그 결과로 우리 자신은 의로운 사람이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사도행전 13장에 있는 바울의 설교에 이런 말이 있다.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여기에 보면 죄의 용서를 말한 후에, 그에 대한 해석으로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말을 한다.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을 분명히 죄의 사면으로 해석하며, 의롭다함을 율법의 행위에서 분리시키고 있다 (기독교강요, 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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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