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략). 첫째,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고,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가 정말 부활하셨는가에 대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자동적으로 허물어집니다. 그래서 많은 무신론자들과 회의론자들이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것은 하나의 종교적 신화일 뿐이라고 주장했고, 그것을 증명하는 증거를 찾으려고 시도했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시대에 활동했던 루 윌레스(Lew Wallace)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남북전쟁에서 장군으로 참전했고, 후에는 터키대사를 했고, 또 소설을 쓰는 재능있는 작가이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자기의 친구 무신론자 로버트 잉거솔(Robert Ingersoll)이라는 사람과 이상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 땅에서 ‘기독교 신화’를 영원히 없애 버릴 책을 써서 인류를 예수 그리스도라는 미신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목표였습니다. 윌레스는 친구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 아닌 종교적 신화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부지런히 자료들을 수집했고, 여러 곳을 여행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자신의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의 원고 1장을 마치고 2장으로 들어갈 때, 윌레스는 도저히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스스로 포기했습니다. 그는 2장을 조금 쓰다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당신은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울면서 고백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2주 후부터 이전에 계획하지 않았던 전혀 다른 책을 위한 원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설은 또 다른 유명한 기독교 영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소설을 대본으로 영화 ‘벤허’가 탄생했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이런 종류의 유명한 이야기들 속에는 가운데 너무도 많은 것들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과장되었거나,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 ‘벤허’의 원고가 된 소설이 이렇게 탄생했다는 것도 어느 정도 과장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의심하고서 그 허구성을 증명하겠다고 시도한 사람들은 정말 많았고, 그로너 아무도 죽으신 그리스도가 살아나지 못하고 그대로 무덤에서 흙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역사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가 이스라엘을 식민지로 만들어 지배할 때, 이스라엘 땅에서 사람들을 소란하게 만드는 예수라는 종교적인 인물이 있었고, 그가 십자가에 달려 불행한 죽음을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거하는 많은 자료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형을 언도할 권한이 있었던 유일한 인물 본디오 빌라도, 로마가 이스라엘 땅을 통치하도록 보낸 총독이었습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통치하도록 본디오 빌라도라는 인물을 총독으로 파송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 본디오 빌라도의 재판으로 사형에 처해졌다고 기록하고 성경이 계속 존재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평소에 자기가 죽으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구원계시였습니다.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죄로 죽을 자기 백성들을 다시 살리실 것인지를 제자들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최초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라고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라고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이심을 깨닫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깨달은 그 구원지식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늘의 아버지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7).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하는 모든 하나님 지식은 세상에서, 학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신 자들에게 은혜와 선물로 주어집니다. 아버지께서 주시지 아니하면 아무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 지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 6:44). 구원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의 택하신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알려 주심으로 그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일어납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먼저 은혜로 구원지식을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습니다.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요 6:45).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배운 사람이 자기에게 와서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배운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의 택하신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너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음을 믿으면 너의 죄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내가 간주한다!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을 믿으면 나는 너를 이미 그리스도의 몸이 죄에 대해 십자가에서 죽을 때 너의 몸도 죽었던 것으로 간주한다!”라는 구원지식이 주어짐으로 죄인이 구원을 얻고자 그리스도 앞에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구원지식이 임하고 언제 우리가 실제로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 일어난다고 보아야 할까요? 사람의 시간 개념으로는 하나님이 믿도록 구원지식을 심어주시는 일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용서 받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날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그 죄수들을 보십시오. 처음에는 둘 다 자기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게 빈정거렸습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불과 3시간 정도 안에 그 중 하나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원지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눅 23:42)라고 간구했고, 그리스도는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3)라며 구원을 약속했습니다.

베드로에게 최초로 하나님이 주시는 그리스도에 관한 구원지식이 나타나자 그리스도께서는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8)라고 하시면서 그 신앙 위에 자기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더 구체적을 어떻게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계시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마 16:21).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속죄의 제물로서 의로운 죽음을 당하고 3일 후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아담 안에서 죽은 하나님 백성들의 구원이 완성된다는 진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구원이 완성된다는 그리스도의 구원계시는 제자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던 모양입니다. 그리스도를 죽인 원수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날 본디오 빌라도에게 찾아가서 그리스도의 시신을 잘 지켜달라고 부탁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마 27:63, 64)

그리스도의 원수들에게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라 죽이는 일도 중요했고, 죽은 그리스도의 시신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정말 다시 살아나 버리면, 자기들이 그리스도를 죽인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독한 일이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했던 일이 사실은 마귀를 위한 일이었다는 것이 증거되는 것이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시신이 계속 무덤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리스도가 부활했다고 조작할 수 있을까요? 어떤 제자가 그리 간이 크고 용맹하여 로마의 권세로 인봉하여 지고, 로마 군병들이 지키고 있는 그리스도의 무덤에 다가가서 그리스도의 시신을 훔쳐서 딴 곳에 묻고 그리스도가 부활했다고 사기를 칠 수 있었을까요?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안 믿는 것은 각 자의 선택의 문제이나, 의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중요한 몇 가지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1)아담과 우리의 모든 죄가 하나님 앞에서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처리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결코 스스로 살아나시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능력이 많으시니 죽었을지라도 스스로 다시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을 아직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의 신성이 아니고 인성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의 인성은 죄만 빼고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이 죄만 빼고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었다는 진리를 성도님들에게 어떻게 하면 아주 쉽게 이해시켜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설명하고 싶습니다. 조금 민망하고 망령되었다고 할 수도 있으니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게도 우리의 몸처럼 성적인 기관과 기능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 아니고,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 아니면 우리 대신 속죄의 제물이 될 수도 없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와 동일한 몸이 아니었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장차 있을 우리 몸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와 다른 몸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인성의 몸이 죄만 빼고 우리의 몸과 동일한 몸이었다는 것이 진리라면, 우리처럼 성적인 기관과 기능도 그리스도의 인성의 몸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처음부터 죄의 지배를 받는 오염된 마음을 가진 죄인으로 왔습니다. 당연히 우리의 성적인 기능도 죄에 오염되어 하나님의 처음의 의도와 원리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성적인 범죄가 흔한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 받은 자기 백성들에게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에도 성적인 기관이 있었고 기능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도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자기와 싸우시고 갈등하시면서 기어이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셨을까요? 예수님이 자기의 성적인 본성과 싸워서 이기는 그런 방식으로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완전하게 지켰다면, 예수님을 간음이라고 하는 죄성을 우리처럼 타고 나셨다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처럼 죄인으로 태어나신 것이고, 그러면 우리를 대신하는 완전한 속죄의 제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간음이라는 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켜서 그렇게 거룩하고 의롭게 사신 것이라고 설명하면 안 됩니다. 율법을 지켰다고 하면, 그리스도의 인성의 성품 속에 거룩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으나 스스로 싸우고 극복하여, 즉 율법에 자신을 복종시킴으로 거룩하게 사셨다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결국 기독교의 그리스도와 불교의 석가모니가 비슷해 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의 몸은 우리와 동일한 살과 피를 가진 몸이었으나, 아담의 죄와 무관한 몸이었습니다. 성령이 특별한 방식으로 그 몸을 만드시어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거룩한 사람으로 성육신하셨습니다. 그래서 죄 없으신 예수님의 육신의 몸의 성적인 기능은 언제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조금도 위배하지 않으셨으나, 그것은 율법을 지키신 것이라기 보다 그가 처음부터 율법의 모든 정신과 요구가 다 이루어진 거룩하신 하나님이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야 합니다.

죄만 빼고 우리와 동일한 그리스도의 인성이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했습니다. 아무리 죄가 없을지라도 인성의 힘으로만 우리 죄인들을 위해 대신 저주를 받는 일을 끝까지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신성의 능력과 지혜가 함께 하셨으므로 그리스도의 인성이 우리의 속죄를 위한 고난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으로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와 동일하게 만들어진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처참하게 죽으셨습니다.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죄인들의 몸을 그렇게 처절하게 응징하여 죽이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그 저주를 우리 모두에게 쏟으시지 않고 오직 친히 준비하신 한 거룩한 몸에게만 쏟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히 10:5). 하나님께서 완전한 효력이 있는 속죄 제사를 만들기 위해 때가 이르면 자신이 친히 완전한 제물이 될 한 몸을 가지고 세상에 오시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육신자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기의 몸으로 죄인이 받아야 할 모든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대신 받으심으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완전하게 풀어드리고 하나님 자신이 계획하였습니다. 구약에서 수 없이 죽어나간 동물들의 몸으로 드린 제사는 실질적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는데 아무런 효력이 없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진노를 다 풀어드릴 완전한 몸이 온다는 사실을 상징하기만 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완전하게 죽으신 그리스도의 몸은 죄만 빼고 우리와 동일한 피와 살로 이루어진 몸이었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스스로 다시 살지 못하는 것처럼, 죽으신 그리스도의 몸도 한번 죽은 후에 스스로 다시 살지 못하는 몸입니다. 스스로 죽으시고 머리카락으로 도술을 부리는 손오공처럼 스스로 다시 사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우리는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부활이 곧 나의 죄용서의 증거라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실 때,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6)라고 하시며 운명하셨습니다. 우리와 동일한 한 피조된 인간의 입장에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의 몸이 피조된(창조된) 몸이라는 것은 이단적인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인성의 몸은 성령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의 살과 피를 위하여 아담의 죄와 무관하게 피조하신 몸입니다. 그것을 간단하게 말해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시었다’라고 합니다. 성령에 의해 죄와 무관하게 피조된 한 거룩한 인성(인간)에게 성자 하나님이 자기의 인격과 신성을 연합시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격을 가진 거룩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몸을 다 죽이시는 심정으로 스스로 예비하신 한 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처절하게 응징하여 죽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실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 27:46)라고 절규하시면서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예비하신 한 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실 때, 하나님의 마음 속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죽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를 다 죽이면 자기를 찬송하는 한 거룩한 종족을 만들어 내지 못하시므로 우리를 대표하는 예수 그리스도만 죽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를 이미 죽은 자들로 간주하고 다시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실질적으로 실질적으로 거룩하고 순종하고 자기 백성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으신 사건입니다. 성령을 우리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기 아들의 영으로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우리에게 두 가지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몸의 대신 죽으심에 나의 영혼과 삶과 마음과 인격이 연합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죽으심의 효력이 내 마음과 영혼과 인격에 적용됩니다. 죄의 뿌리가 잘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거룩한 사람으로 변하기를 시작합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친아들의 영으로 성령이 내게 오셨음으로 내가 하나님의 양자로 변합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오셨으므로 성령을 받은 나도 하나님의 자식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친아들이고 나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확증하는 사건이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이 모든 은혜와 선물들을 확증하는 차원에서 하나님이 우리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몸을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죄 없으시고 거룩하신 예수님의 몸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니,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완전히 해소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무죄한 자로, 자기의 양자로 인정하신다는 차원에서 우리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몸을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만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의 몸이 부활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이 없다면, 이 기독교의 핵심 신앙은 그저 하나의 종교의 이론일 뿐입니다.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고, 우리는 여전히 율법의 저주 아래 있고,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그 자체가 우리를 바꾼 것이 아니고, 우리의 죄를 대신지고 죽으신 그리스도의 몸을 다시 살게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저주하셨던 우리를 다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다는 보증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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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