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과 종교개혁의 선봉에 선 루터와 칼빈의 롬 5:19 주해 : 능동적 순종 부정

능동순종주의자들이 예수님께서 모세의 모든 율법 조문에 순종하여 율법의 의를 획득하여 영생을 얻었다고 하는 능동적 순종 신학의 성경적 근거를 롬 5:14-19로 삼는다. 특히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9) 이 말씀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학적 교리를 형성하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성경 말씀을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도 바울이 기록하였는지에 대한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의 해석을 살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은 청교도 회중파들보다 더 바른 성경해석적 신학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능동순종주의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지 죄만 용서하여 주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여 의를 획득하여 영생을 준다고 한다. 능동순종 논쟁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먼저, 위대한 성경해석의 교부인 크리소스톰의 해석을 보자.

롬 5:14절에서 교부는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의를 행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의를 가져왔기에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속하고 의롭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단호하게 ‘한 사람’이라는 말을 쓰게 됩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또,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 즉’, 그리고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라고 말하고,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였은즉’,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라고 거듭 말합니다. ‘한 사람’에 대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합니까?

유대인들은 ‘한 사람’, 즉 그리스도의 착한 일로 어떻게 세상이 구원될 수 있는가? 고 말을 수도 있습니다” (크리소스톰 로마서 강해. p188-189. 지평서원).

교부는 한 사람의 순종하심이 바로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의를 가져왔다”고 그렇게 해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십자가의 속죄가 의를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능동순종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모세의 율법의 조문을 지켜 획득한 율법 순종의 의가 아니다.

또한 교부는 롬 4:25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의 죄가 용서 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엄청난 죄에서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주님의 고난을 통해서” 가능해졌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살아나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만드셨다고 해설하여 준다 (Ibid. p174).
 

 

다음으로 루터와 칼빈의 해석을 통해서 이 롬5:19절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자.

루터의 로마서 주석(크리스찬다이제스트. 마르틴 루터, 박문재 역. p122-126.)을 보면 루터는 롬 5:13-21절의 말씀을 “아담이 전가시킨 범죄와 그리스도께서 전가시킨 의”라는 것을 대비하여 주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죄는 자연적인 율법이든 계시된 율법이든 율법으로는 처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율법이 오기 전에는 사람들은 죄를 깨닫지 못했다. 율법이 온 후로 율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알게 하였고, 이를 통해 죄를 생산해 냈다 ...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다 (5:14). 어째서 아담이 그리스도의 모형인가? 아담은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았는데도 자기 자손들에게 임한 사망의 원인자가 되었던 것처럼, 그리스도는 의를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지 않았지만 자기에게 속한 자들에게 의를 나누어 주는 자가 되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통하여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의를 확보하였기 때문입니다 (p123).”

루터는 계속해서 롬5:19을 주해하면서 이렇게 말하여 주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훨씬 강하다. 왜냐하면 은혜의 한 행위(예수 그리스도의 구속)는 원하기만 한다면 많은, 아니 모든 사람을 많은 죄들에서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p 125).

우리는 루터가 쓴 로마서 주석에서 율법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어거스틴의 책을 인용하여 증거해 주는 것을 또한 찾을 수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서에 나오는 명제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을 통해서 그는 어떤 목적으로 율법이 주어졌는지를 유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율법은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 죄인을 살리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은혜뿐이다 – 율법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고 교만하게 주장하는 자들이 얼마나 강력한 죄의 사슬로 결박되어 포로로 잡혀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p 126).

이상과 같이 루터는 율법을 통해서는 아예 구원과 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까지 가르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통해 의가 이루어지고 예수님 또한 “의”를 얻기 위해 그 어떤 노력과 행위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의를 나누어 주기 위해 십자가에서 속죄사역을 이루었고, 이것을 믿는 자들이 죄용서와 구원을 받는 다고 하는 사실을 증거해 준다.
 

다음으로 칼빈의 주석을 보자.

칼빈은 롬 5:18절을 주해하면서 아담이 한 범죄와 그리스도의 의의 한 행동으로 주어지는 심판과 은혜에 대하여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의 죄가 많은 사람들을 정죄에 이르게 한 것 같이, 은혜는 많은 사람들을 의롭다 하는데 유효하다. 나의 판단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는 말씀은 사면을 뜻한다. 이 사면은 우리에게 생명을 회복시켜 준다고 말할 수도 있고, 또는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한 소망은 우리를 대하여 하나님께서 호의를 베푸시는데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용납되는 것은 우리가 의로울 때에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므로 생명은 그것의 기원을 의롭다 하심에 두고 있는 것이다

칼빈은 롬5:19절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하여 계속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진술한 경우, 우리는 이로부터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만족스켜 드림으로 해서 우리를 위하여 의를 획득하셨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의가 그리스도 안에 하나의 속성으로 존재한다는 것과, 그러나 그리스도에게만 고유하게 속해 있는 것이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의를 순종이라고 일컬음으로써 그것의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 ( 칼빈의 로마서 주석. 성서원. p178-179).”

능동순종주의 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먼저 의를 획득하였고 그 획득한 의를 우리에게 전가 시켜 주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켜 의를 획득하였다고 하고 그 율법의 의가 믿을 때 전가되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우리 자신을 위해 위를 획득하여 주기 위해 순종하였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 의는 예수님 자신 안에 있는 하나의 속성이라고 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의는 결국 루터가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 안에 있는 의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칼빈은 아주 더 강력하게 그리스도의 순종이라고 하는 것을 “그리스도의 의”를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의 자체가 순종이고 순종이 결국 그리스도의 의인 것이다. 능동순종주의 자들은 “그리스도의 순종”이라는 이 칼빈의 말을 율법에 순종했다고 하는 식으로 그저 몰아 부친다. 그러나 전후 문맥을 보면 율법 순종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속죄의 사역을 위한 의로운 행동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순종하셨다는 것을 믿는다. 또한 예수님의 모든 공로는 우리의 구원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능동순종주의 자들이 가르치는 율법의 의를 획득하여 예수님 자신도 의로워졌고, 영생을 얻었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능동순종과 수동순종은 회중파 청교도들의 산물이다. 프랑스 개혁교회는 그들의 교회론과 구원론을 이단으로 정죄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동순종과 웨신서의 행위언약은 같은 길을 걷는다. 행위언약을 위해 필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동순종(모세의 율법 순종을 통한 율법의 의의 획득, 율법의 의의전가)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구속, 그리스도의 피는 죄인이 죄만 용서할 뿐 영생을 주지 못한다는 이 사상이 1643년 웨민총회에서 회중파 청교도들에 의해 제기 되었다는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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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남 목사는 임진남 목사는 총신신대원(M.Div)에서 공부한 합동교단 소속 목회자이다. 2012년에 김제예본교회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고, 칼빈주의 개혁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와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인 신앙고백서들 가지고 성도들을 온전하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혁신학 연구에 특별한 관심과 소명이 있어 서철원 박사와 함께 신학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한국개혁신학연구원’의 총무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 설교집 <다니엘이 증거한 복음>, <엘리야가 증거한 복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