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홍 목사(이후 정태홍)는 능동적 순종 교리를 거부하는 서철원 박사와 필자를 논박하려고 <능동적 순종교리: 이단인가?>를 집필하였다. 이 책의 310 페이지에서 정태홍은 "여러 성경 구절은 율법을 완전히 행해야 하나님 앞에 의인이며 그 의인만이 영생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성경 구절들이 그 근거인지에 대해서도 말했다. 정태홍의 주장을 직접보자.

"정이철 목사는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의 근거가 되는 성경의 말씀을 한 절이라도 찾아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정이철 목사의 무기는 ‘성경에서 예수께서 율법을 지켜 하나님 백성의 권리와 자격(의)을 얻었다는 말씀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라는 전제다. 정이철 목사는 이 전제에 기초하여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 곧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율법준수로 얻으신 의를 부정했다. 그렇다면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의 성경적 근거는 무엇인가? IAOC(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를 반대하는 분들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 교리를 말하는 성경 구절이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레 18:5; 겔 18:9; 잠 3:33;, 4:4, 20:7; 눅 10:28; 롬 2:13, 10:5; 갈 3:10, 3:12을 비롯하여 여러 성경 구절은 ‘율법을 완전히 행해야 하나님 앞에 의인이며 그 의인만이 영생을 얻는다’고 말한다. 성경은 면죄 상태가 의로운 상태라고 말하지 않는다" (정태홍, 310 페이지).

정태홍이 제시한 성경 구절들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기준이 정태홍의 말처럼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들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씩 살펴보자.
 

1. 레위기 18:5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 18:5).

이 내용은 율법준수가 구원의 조건이라는 거짓 신학의 근거가 아니다. 이 구절은 이미 모세의 중보 사역을 통해 구원받았고, 가나안 땅을 영토로 분배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하나님의 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원리에 대한 내용이다. 레위기 18장의 내용은 그 이전 가나안 백성들의 죄악들, 즉 동성연애, 친족섹스, 짐승과의 성행위 등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하지 않으면 그들처럼 심판받지 않고 복을 누리면서 살게 하신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잘 섬겨서 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영생을 위한 의에 대한 말씀이 아니고, 이미 은혜로 영생을 얻은 백성들이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게만드는 구원의 열매로서의 의에 대한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준수를 강조하는 다른 하나님의 말씀들을 보면, 그 의미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 (레 20:22).

“너희는 내 법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히 거할 것이라” (레 25:18).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신 5:29).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신 5:32-33).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신 7:12,13)
 

2. 에스겔 18:19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겔 18:19).

에스겔의 이 내용은 영생의 자격과 조건을 논하는 내용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죄에 대한 연대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원칙을 논하는 내용이다. 아비가 죄악된 삶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했다고 하여 그 자식까지도 동일하게 취급하시지 않고, 그 자식의 삶을 보시고 복과 심판을 결정하신다는 하나님의 원리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겔 18장의 시작부분을 보면 명백해진다.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겔 18:2,3).
 

3. 잠언 3:33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잠 3:33).

잠언 3장도 영생의 자격과 조건을 논하는 내용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이, 또는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의 백성된 자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고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게만드는 지혜에 대해 솔로몬이 설명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악을 행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원칙에 대한 내용이다. 잠언 3장을 시작하는 말씀을 보면 전체 내용이 분명해진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잠 3:1,2).

정태홍이 잠언 4:4, 20:7도 제시했으나 율법준수가 하나님의 영생의 조건이라는 내용의 가능성이 전혀 없으므로 지면을 아끼고자 무시한다.
 

4. 누가복음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눅 10:28).

정태홍이 능동적 순종의 근거가 될만한 가장 좋은 구절을 찾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기본 상식으로 생각해 보자. 죄인으로 태어난 자가 죗값을 갚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 길이 있을까? 인간은 그 무슨 행위를 해도 아담 안에서 하나님을 배반(반역)했고, 이후 죄인으로 태어나 살면서 지은 죄들을 만회할 수가 없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 일 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히 9:7).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

성경은 하나님께 반역한 죄인은 죽어야만 하고, 자기 백성의 죗값을 자기 몸과 피로 대신 값아주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골백번이 넘게 선언하였다. 죗값을 대신 갚아주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구원이 일어남을 알리고자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들은 황소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백성들의 죄용서를 빌기를 반복했다. 

이 구원계시를 주시고 기록하신 분이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 분이 이 진리를 부정하고 선한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셨을까? 정태홍이 신학 사고가 부족하여 눅 10:28절을 문자대로 해석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눅 10:30절부터 강도만난 이웃을 위해 자기 물질을 사용하면서 돕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를 하셨다는 것이 예수님의 진의를 알게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그 사마리아 사람이 선행으로 영생을 얻었다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행위를 자랑하려고 예수님께 질문을 한 그 율법사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율법주의자들이 그 사마리아 사람보다도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우회적인 책망이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5. 로마서 2:13, 10:5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 2:13).

이 내용도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율법준수하는 사람에게 영생의 자격(구원을 위한 절대적 의)을 인정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로마서 2장은 율법을 받아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안다고 자부하는 구약의 유대인들의 죄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들은 율법을 알기만 했지, 율법을 바르게 실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 시절이 고통을 당하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을 행하는 자에게 인정되는 의는 영생의 의가 아니고, 은혜로 영생을 얻은 사람이 더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하는 구원의 열매로서의 의를 뜻한다. 반대로 정태홍이 신봉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의 교리는 율법준수로 얻은 율법의 의가 우리에게 영생의 자격이 되어준다는 주장이다. 정태홍은 계속 문자적인 해석으로 스스로 수치를 초래하고 있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롬 10:5)

이 구절도 율법준수가 영생의 의를 준다는 내용이 아니다. 이 구절은 신명기 18:5절에 대한 사도 바울의 인용이니, 이 글의 앞의 1번(게 18:5절)에 대한 나의 설명을 참조하기 바란다. 정태홍의 문자적 해석이 너무 지나치고 심각하다.
 

6. 갈 3:10, 3:12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0).

율법은 오직 하나님께 반역한 죄인들을 정죄하고 저주하려고 왔다. 율법은 구원의 수단이 되기 위해 온 적이 없다. 죄인들을 한없이 정죄하고 저주하기만 했고, 결국 이미 율법의 모든 정신과 요구가 완전하게 이루어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인격을 가진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요구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죄인들 대신 저주받고 죽으심으로 율법이 요구를 충족시켜 구원을 일으키신다는 해석 안에서 이 구절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가혹하고도 무한하게 정죄하는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뜻으로만 해석되어야 할 내용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율법의 의로 우리가 영생을 누리게 되었다는 거짓 신학의 근거는 아니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갈 3:12).

이 구절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즉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의로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받았다는 거짓 교리의 근거가 아니다. 이 구절의 전후를 함께 보자.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1-13).

정태홍은 율법준수로는 영생의 의를 얻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오직 율법의 요구대로 우리 대신 저주받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영생이 가능하다는 사도의 말을 반대로 악용하였다. 여기서도 사도는 레위기 18:5절을 인용하면서 율법준수의 의는 이미 구원받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구원의 열매로서의 의, 즉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게 하는 삶의 의라고 설명하였다. 정태홍의 문자적, 선택적 성경 해석이 너무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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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