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순종에 이단성이 있으냐 없느냐로 접근하면 아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은 갑작스럽게 근래에 들어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 아니라 이미 개혁신학자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받아드려져 온 신학 개념이고, 그것도 칭의 항목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던 주제라는 점입니다. 다른 교단도 아닌 합동측이 이 주제를 이단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관점으로 접근하게 되면, 합동측에서 지금까지 존경해온 신학자들은 스스로 이단시하는 아주 심각한 오류와 모순을 갖게 되는 거예요.

결국 확대해석하면 합동측을 비롯한 개혁신학이 이단적 교리위에 세워졌다는 황당한 자기 자기 모순에 빠질 수 있는 굉장히 심각한 사안이라고 보고 있는 거지요. 그런 점에서 능동순종에 대한 문제는 이단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되고, 신학적으로 유의해서 살펴보는 겸허한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겸허함과 존중이 없이 능동순종을 논의하는 것 자체는 시작부터 어긋나게 되는 겁니다” (정윤석).

정윤석 기자(이후 정윤석)가 능동적 순종 교리 문제를 이단성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신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매우 겸손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논의해야 할 주제라고 강조했다. 정윤석의 이런 내용은 매우 비성경적이고 어설프다. 능동적 순종 교리가 얼마나 심각한 이단성을 가진 이론인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결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오도할 수 없다.

정윤석이 말하는 ‘신학적 접근’이란 무슨 뜻일까? 이미 성경의 가르침 안에 있는 것으로 판명된 어떤 이론에 대해 조금 각도에서 더 연구하고 토론해야 할 사안이라는 의미이다. 쉽게 말해, 이렇게 믿어도 구원에 지장이 없고 저렇게 믿어도 구원에 지장이 없는 주제이니 기본적으로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단성 문제라는 말과 신학적 문제라는 말은 같은 내용에 대한 조금 다른 표현이다. 어떤 신학이 비성경적인 것으로 판정받는다는 것은 그것이 기독교 신앙을 왜곡하는 이단사상이라는 뜻이다. (이단 사상이라는 말은 기본적 의미는 기독교 신앙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곧장 구원을 못 받는다거나 지옥에 가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개념이 아니다).

위 영상에서 정윤석은 능동적 순종 교리는 ‘칭의 항목’에 속한다고 말했다. 정윤석이 신학을 모르고,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해도 미약하다는 증거가 여기에서 또 드러난다. 칭의 신학은 교회를 살게 하거나 죽게하는 가장 중요한 신학이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알고 성경적으로 하나님께 반응하게 만드는 최고로 중요한 신앙이다.

로마교회는 그리스도를 믿고 이후 완전하게 순종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완전한 칭의를 얻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준수나 삶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직 은혜를 따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완전한 칭의를 얻는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의 거룩하심이 믿는 사람에게 의의 옷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로마교회는 ‘믿음 + 행위’로 얻어지는 칭의를 거부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칭의만 믿었다. 성경적 칭의 신앙을 교회에 정착시키기 위해 수 천, 수 만 이상의 성도들이 로마교회에 의해 순교당했다.

그런데 정윤석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이단성 문제가 아니고 신학적 접근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능동순종은 갑작스럽게 근래에 들어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 아니라 이미 개혁신학자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받아드려져 온 신학 개념이고” (정윤석).

정윤석의 논리대로 하면, 종교개혁자들은 로마교회의 칭의 신학에 반대하지 않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로마교회의 칭의 신학은 그 당시 상황에서 '근래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고 이미 역사적으로 오래되었고 특히 저명한 로마교회 신학자들에 의해 발전된 이론이기 때문이다. 오직 문제는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다는 것 뿐이었다. 정윤석은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합동측이 이 주제를 이단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관점으로 접근하게 되면, 합동측에서 지금까지 존경해온 신학자들은 스스로 이단시하는 아주 심각한 오류와 모순을 갖게 되는 거예요” (정윤석)

정윤석의 이 주장 우리가 성경을 읽지 말아야 하고, 잘못된 신앙을고쳐서 성경으로 돌아갈 생각도 하지 말고, 이전의 신학자들이 말했던 대로만 믿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경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곧 오류에 빠졌던 이전 조상들과 선배들에 대한 '배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윤석에 의하면, 종교개혁자들은 자신들의 조상들과 선배들을 배반하고(이단시하고) 성경으로 돌아가는 ‘배신’을 자행한 불의한 사람들인 셈이다. 

만일 우리가 정윤석의 말처럼 하면, 한국 교회는 결코 더 성경적인 신앙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잘못된 칭의 신학을 배우고 가르친 선배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신학적 접근이란 미명하에 신천지, 정명석 등 너무나도 명백한 사이비 이단들 외에 나머지 모두가 성경의 울타리 안에서 다 용인될 수 있게 만들어 버린다. 

칭의 신학은 우리의 신앙을 살게하고 또 죽게하는 가장 중요하고 예민한 내용이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신 방법에 대한 신앙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신 원리에 대해 성경과 다른 믿음을 주장하면, 이단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능동적 순종이 왜 이단일 수밖에 없는지 다시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의 대표는 첫 사람 아담인데, 타락하기 전에 그는 의로운 하나님 백성이었고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영원한 생명도 은혜로 누렸던 사람이다. 그러나 타락하여 의와 영생과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담이 영원히 죽는 것을 원하시지 않고 다시 살려 자기 백성되어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로 인해 잃어버린 자기 백성을 되찾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

구세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도 잃어버린 자기 백성을 찾아 구원하시려고 오셨다고 밝히셨다.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기 백성 되찾아 구원하시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성경은 죄로 죽은 자기 백성의 죗값을 그리스도가 대신 갚으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하나님이 그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 3: 25,26).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2:14).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해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0).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게 하셨느니라” (히 10:14).

성경은 완전히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으로 우리의 죗값을 갚으심으로 우리를 의인되게 했다고 한다. 그리스도가 자기 몸으로 우리의 죗값을 갚으셨고, 성부께서 성령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부어주셨다. 성령 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에게로 연합되어졌고, 동시에 하나님의 의에 동참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의’로 인정되어졌다. 이것이 죄용서와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칭의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2).

그러나 능동적 순종 교리는 하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성령으로 우리에게 전가된 하나님의 의를 부정한다. 대신 율법을 지켜서 얻어지는 의를 가르친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서 얻으신 의로 우리를 의인되게 했다고 한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키지 않았으면 비록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공로가 우리에게 온다고 해도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다고 한다. 성육신과 죽으심과 성령 파송으로 이루어진는 하나님의 의의 전가를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율법 준수의 공로를 채택하는 기독교로 변한다. 결국 성육신의 목적도 하나님이 자신이 우리의 의가 되시고자 함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준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함으로 전락한다.

결국 능동순종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반으로 쪼개고, 성육신의 의미와 목적도 반으로 쪼갠다. 그러나 사도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3).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2).

그러나 능동적 순종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율법이 영원한 왕이다. 율법이 없었으면, 율법을 지키지 않았으면 그리스도 자신도 영생을 얻지 못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영생을 얻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으로는 아담도 구원을 얻지 못하고 스스로 율법을 다 지켜야 할 의무 아래 남는다”.

이런 내용을 믿는 것이 기독교일까? <기독교 포털 ...> 어쩌고 하는 불건전한 개인 싸이트를 운영하는 자칭 이단사역자 정윤석은 기독교를 이렇게 만들기 위해 계획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나는 성경 어디에서도 이단사상을 겸손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대하라는 말씀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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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