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는 유일한 실체가 세 위격으로 계심

하나님은 무한한 신성이시므로 세 위격으로 계신다. 하나님은 무한한 신성과 생명과 지혜와 권능이 넘쳐나시므로 한 신적 인격으로만 계시는 것이 아니다. 한 인격으로는 하나님의 무한한 신성과 생명과 지혜를 다 표현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인격으로 계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한 인격으로는 그의 신성을 다 드러내실 수 없다.

하나님은 인격으로 계셔서 인격으로서 자기 완결적 존재 (the self-contained God)이심을 기뻐하셨다. 그리하여 한 인격으로 시작하시고 인격으로 존재하시며 인격으로 자기 완결적 존재로 계시기로 하셨다. 자기 완결적 존재로서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로 시작하고 자기로 말미암고 자기로 자기 전개를 완성하신다. 그래야 하나님은 자기의 신성과 생명을 다 표현하시기 때문이다. 무한한 인격적 영이신 하나님은 세 위격으로 완전하게 존재하신다.

삼위일체는 한 신적 실체 (divina et unica essentia)와 세 위격 (tres personae)의 관계이다. 한 신적 실체가 내적 존재에서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세 위격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계신다. 세 개별 위격은 하나의 동일한 참 하나님 (unus idemque verus Deus)이시다. 세 위격이어도 한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세 위격의 실체가 하나이고 동일하고 분할 불가하기 때문이다.

세 위격이 한 하나님이신 것은 위격들이 가장 긴밀한 연합 (arctissima unio, perichoresis, repixwpnors)을 하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체가 하나이고 동일하며 분할 불가하기 (unica et idemque essentia indivisibilis) 때문이다.

신적 실체는 자기를 인격으로 표현하신다. 하나님은 신적 실체로 계시는 법이 없고 언제든지 인격으로 나타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실체는 한 인격으로 표현되지만 세 인격으로도 표현되신다.

전통적인 이해에 의하면 한 유일한 신적 실체에 세 위격이 계 시는 것으로 삼위일체를 표현하였다. (In divina et unica essentia subsistunt tres personae, nempe Pater, Filius et Spiritus sanctus). 베자 (Theodor Beza)는 신적 실체와 위격들이 개별자로 있는 것으로 표현한다. 신적 실체가 있고 세 위격이 별개로 있는 것이 아니다. 신적 실체는 언제나 인격으로 계시고 인격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를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자'(substantia est ens perse)로 정의하였다. 이 정의는 사물의 우연적인 성질들과 구분해서 사물을 표현하기 위해서 작성되었다. 우연적인 것을 사물의 성질에 적용함으로, 사물의 성질은 존재하는 사물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에 대비해서 실체를 정의하였다.

이 정의를 하나님에게 적용하면 실체는 신적 실체이고 인격은 우연적인 것의 현현이 되지 않겠는가? 위격을 정의한 것을 살펴보자.

폴라누스 (Polanus)는 신적 위격을 정의하기를 신적 위격은 신적 실체 안에 그 실체를 자신 안에 다 가진 존립(存立)이라고 하였 (persona Deitatis est subsistentia in divina essentia totam illam divinam essentiam in se habens). 이 정의에 의하면 신적 위격은 신적 실체 안에 존립하는 것인데 신적 실체를 다 가지고 계시는 존재이다.

위격에 관한 이 정의에 의해서도 위격은 신적 실체와 구분된다. 그러나 실체와 위격이 다른 존재자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신적 실체 (divina essentia)는 언제든지 위격 혹은 인격으로 표현 되고 인격으로 존재하신다. 삼위일체를 한 신적 실체가 세 위격으로 계심으로 이해할 때 실체가 하나이고 동일하며 분할 불가하므로 한 하나님이심이 올바로 이해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질료(質料)가 구체화되어 형상이 되는 것 곧 인격이 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실체는 질료이고 위격은 형상이어서 질료의 구체화로 형상 곧 인격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피조물의 경우처럼 신적 본성이 구체화 곧 현실태(現實態)로 말미암아 인격으로 계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유일한 신적 실체가 세 위격으로 계신다.

따라서 신적 실체와 위격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신성 (Deitas) 은 존재하시면 언제나 인격으로 계신다. 하나님은 신성 자체로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고 인격으로 계신다. 신적 실체가 구체화되거나 구현되어서 인격으로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신적 실체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인격으로 계신다. 실체 따로, 인격 따 로 계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역에서 인격 (persona divina)으로서 일하시므로 언제든지 인격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제시한 것처럼 신적 실체가 창조사역을 하시는 것이 아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의지의 일이므로 하나님의 인격이 일하신다.
 

 

구속사역도 동일하다. 하나님의 실체가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위 격이 구원사역을 이루신다. 삼위가 함께 일하시지만 한 위격이 중심적인 사역을 하신다. 삼위가 함께 일하심을 신적 실체가 일하신 것 으로 볼 수 없다. 모든 사역을 하심에 있어서 언제든지 하나님의 위 격이 일하신다.

실체와 위격은 양태적으로 (modaliter) 구분되나 실체적으로 구분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위격 (persona Deitatis)은 자신 안에 전 신적 실체를 가지신다 (totamillam divinam essentiam in se habens). 그러므로 실체와 위격은 실체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양태적으로 구분된다. 실체 따로, 위격 따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 신적 실체는 언제나 위격으로 계신다.

동방교회의 대교부인 아다나시오스 (Athanasios)는 삼위 하나님이 한 하나님이신 것은 실체가 하나이고 동일하고 분할 불가하기 때문이라고 확정하였다. 서방교부들 중 암브로시우스와 빅토리누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도 삼위가 하나의 동일한 신격임을 강조하였다. 삼위가 한 동일한 신격이시므로 세 위격은 하나의 동일한 하나님이시란 것이 서방교회의 정통신학이다.

그러나 동방교회의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하나의 동일한 신적 실체에서 신학을 출발하지 않았다. 그들은 세 개별 독립적인 위격에 서 신학을 출발하였다. 세 위격은 완전히 개별적인 위격이다. 그래서 세 위격에 공동인 신격을 실체라고 이름하였다.

바실레오스는 그 설명을 사람의 경우에서 가져왔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세 개별 인격이다. 그들에게 공통인 것은 사람인 점이다. 세 개별 사람에게 공통적인 것인 사람 임 (humanness)에 실체란 용어를 적용하였다. 마찬가지로 세 개별 신적 위격에 공통인 신성에 실체라는 용어를 적용하였다. 이렇게 신학을 전개하므로 동방교부들의 신학이 삼신론으로 비난받게 되었다.

이 비난을 해소하기 위해서 닛사의 그레고리오스 (Gregorios of Nyssa)는 페리코레시스 (περιχορησις,)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리하여 세 개별 위격이 다른 위격을 관통하고 둘러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위격들 안에 있다고 하였다. 이것을 위격들의 긴 밀한 연합 (arctissima unio) 혹은 무한한 교제라고 하였다. 이 방식으로 세 위격이 한 하나님 되심을 구하려고 하였다.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자기들의 삼위일체론이 삼신론이라는 비난을 피하는 길로 세 위격이 동일 실체 (homoousia)라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데 두었다. 동일 실체라고 하지만 한 실체라는 것은 강조하지 않았고 실체가 분할 불가하다는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또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세 위격이 한 동일 실체임을 고백하지 않으므로 다른 문제도 일으켰다. 세 위격은 분리된 개별자들이고 성령은 아버지에게서만 나오시는 것으로 (processio a Patre) 신학을 전개하였다. 여기서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닛사의 그레고리오스는 성령이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에게서 출래하심을 (processio a Patre per Filium) 추가하였다 (Ad Ablabium quod non sint tres dii, 5:336).

아다나시오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처음부터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출래하심 (processio a Patre Filioque)을 바른 신학으로 정립하였다. 그들은 세 신적 위격이 하나의 동일 실체임을 처음부터 전제했기 때문이다. 두 교부는 한 신적 실체가 세 위격으로 계신다 고 표현하였다.
 

위격들의 관계와 구별
(relatio et distinctio personarum divinarum)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자기를 밖으로 계시하실 때는 언제나 한 하 나님으로 나타나신다. 어느 위격이 나타나시든지 하나님이 밖으로 계시하실 때는 동일한 한 하나님으로 나타나신다. 그러므로 피조물은 하나님의 위격적인 존재를 구분하고 인지하기가 어렵다. 성경을 인용하면 이사야가 바라본 여호와가 (사 6:1-13) 신약에서 성육신하신 하나님으로 계시되었다 (요 12:38-41). 구약백성은 이 신비를 도저히 깨달을 수 없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교회에 말씀하시기 시작하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말씀을 마치실 때는 성령이 교회에 말씀하신 것으로 끝낸다 (계2:1-3:22).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를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세 위격들은 각각 그 본질에 있어서 참되시고 동일한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관계에 의한 위격들의 구별

하나님 안의 위격들은 서로의 관계에서 구분되는 특성 (notio personalis)을 가지신다.

아버지의 위격적 특성은 비유래성과 아버지 되심 (paternitas), 아들은 아들 되심 (filiatio) 곧 출생 (nativitas, seu generatio)과 로고스 되심, 성령은 나오심 혹은 출래 (processio)의 특성을 가지신다.

하나님 아버지의 위격적 특성을 아버지 되심이라고 한 것은 아들에 대한 관계로 말한 것이다. 아버지는 출생과 기원 없이 존재하시므로 비유래성과 비출생성을 특성으로 가지신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전(全) 신성의 원천 (fons totius Deitatis)으로 삼는다.

아버지의 위격적 특성으로 아버지 되심을 말하지만 그 위격적 유래가 다른 위격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위격 적 특성은 비유래성임을 강조해야 한다. (하나님론, 82-8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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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 박사는 서울대학, 총신대 신학대학원(M.Div),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원(Th.M), 화란의 자유대학교(Ph.D)에서 연구하였다. 화란의 자유대학에서 칼 발트의 신학을 지지하는 지도교수 베인호프와 다른 발트의 제자 신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칼 발트의 신학의 부당성을 증명하였다. 발트의 사상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논문 '그리스도 창조-중보자직'을 관철하여 박사학위를 얻었고, 이 논문이 독일 튀빙겐대학이 선정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 논문 100편에 수록되어 한국 교회의 위상을 드높였다. 총신대 신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 십년 동안 목회자들을 길러내는 교수사역에 헌신하다 영예롭게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연구하시며 <바른믿음>의 신학자문 역을 맡아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