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
기독교포털의 정윤석 기자가 최근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신학적 판단을 사람들에게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정이철 목사님이 정윤석 기자의 능동순종 교리에 대한 이해가 맞는지, 최근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정윤석 기자의 말이 맞는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몇 번에 걸쳐서 나누어 정윤석 기자의 말을 녹취하여 보내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기독교포털뉴스 시청자 여러분들! 정윤석입니다. 오늘을 딱딱한 주제로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요즘 능동순종이라는 주제로 이단성 문제 제기가 한창입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들어 보셨겠지만, 이게 생소한 분들도 적지 않을 거예요. 신학을 전동한 분들에게도 이 개념이 익숙치 않는 요소들이 있거든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시고, 이것이 능동순종입니다. 그리고 온전하고 흠없는 제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것을 수동순종이라고 해요. 이렇게 압축을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나누는 것을 이단이라고까지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의 논리는 뭐냐하면, 십자가로만 얻는 구원을 부정하고 율법주의 신앙을 갖게 한다고 비판하는 것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의로우신 분인데, 어떻게 율법을 지켜서 의를 획득할 수 있으냐고 반문하는 거죠. 이 주장을 제기하는 언론사가 <바른믿음>이고, 서철원 교수님이 주로 이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대표적인 교수님입니다.

능동순종이 이단이라는 문제 제기에 공감하는 합동측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이 합동측 총회에다가 “능동순종이 이단성이 있느냐?”라고 헌의를 했어요. 근데 이 헌의에 대해 합동 총회가 이대위가 아니라 신학부로 넘겨서 조사하도록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 소식이 <기독신문>, 합동측 기관지이요, 22년 9월 23일자 기사로 나왔습니다.

합동측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거냐 하면, 능동순종은 이단이냐? 아니냐?의 사안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이것은 신학적으로 연구하고 논의해야 할 안건으로 판단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리고 합동측은 매우 지혜로운 선택을 했습니다. 신학적 논의와 연구를 통해서 능동순종에 나타난 사변적이고 무리한 해석이 있다면, 오늘 날 그것을 좀 수정하고 가다듬어 가야 한다는 자세는 저도 동의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2분 45초까지).

 

답변>
아직까지 정윤석 기자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잘 알지 못하면서 이단에 대하여 앞장서는 언론사를 운영한다는 자부심에 들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자신이 나서서 도우면 판도가 변할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윤석 기자의 말을 직접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시고, 이것이 능동순종입니다. 그리고 온전하고 흠 없는 제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것을 수동순종이라고 해요. 이렇게 압축을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나누는 것을 이단이라고까지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윤석).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가 이단사상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심각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만으로는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는 단지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낼 뿐이라고 합니다. 지옥의 형벌에서 구출된 우리를 천국 영생으로 인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가 아니고 그리스도가 생전에 모세의 모든 율법에 대해 완전하게 순종하신 공로라고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효력으로만 완전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기독교 신앙의 심장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효력만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므로 그리스도의 선행의 의, 또는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 등을 첨가하는 궤변론자들과 이단들이 고대로부터 있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그대로 유지하고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우리의 죗값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자기의 피로 죄의 장벽을 무너뜨리신 후 자기를 우리에게로 연합시키시어 자기의 본래의 의, 즉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우리에게 의의 옷으로 입혀 주심으로 우리가 완전히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그대로 가지신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우리를 위한 속죄물로 바치시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완전히 해소하신 후, 친히 자신을 우리에게 연합시켜 우리가 자신과 같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되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셨다는 사실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 3:22).

아담을 자기 백성으로 창조하셨던 하나님이 죄로 죽은 아담을 살리기 위한 의가 되어 주시고자 자기의 거룩함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람으로 성육신하여 자기를 아담과 우리의 죗값으로 바치고, 또한 자기를 우리 죄인들에게 연합시키심으로 자기의 본래의 의, 즉 하나님의 의로 우리를 의롭게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성경은 이 복음이 기독교의 심장이라고 분명하게 여러번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 5: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하나님이 그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 3: 25,26).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19).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2:14).

구원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이 진리를 알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지 못하고 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면 절대로 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만으로 구원이 완전히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무너뜨립니다.

대신에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 그리스도의 금욕 생활의 의, 그리스도의 새벽기도의 의 ... 이런 것을 추가합니다. 말도 안되는 것인데, 일반 사람의 것을 추가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어떤 것을 추가하므로 우리에게 큰 혼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능동순종 교리가 이단사상인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내용, 즉 기독교의 십자가를 정면으로 무너뜨리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만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말하는 총신 신대워 정승원 교수의 말을 보십시오.

“박형룡은 벌코프를 인용하면서 ‘최종으로 그리스도가 만일 사람에게 부과된 형벌을 받으셨을 뿐이면 그의 사역의 열매를 나누어 가진 자들은 아담이 타락되기 전에 있던 바로 그곳에 남아 있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즉 아담의 타락을 치유한 수동적 순종만 있었다면 우리는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상태에 놓이게 되고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행위언약으로서의 율법과 모세 율법과 도덕적 율법을 모두 지켜야 할 의무가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는 말이다” (총신신대원장 정승원 교수), (정이철 2022f).

정승원 교수의 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만 우리에게 전가되면, 아담과 우리는 여전히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누릴 자격을 만들어야 하는 불안정한 상황에 남아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심각한 이단사상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만으로 완전한 구원을 누릴 수 없으므로 우리가 율법준수의 공로를 더해야 한다고 가르친 이단들에게 다음과 같이 저주했습니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9).

제가 능동순종 교리를 이단이라고 외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 단독으로는 우리에게 천국을 보장하지 못하므로, 그리스도의 율법준수 공로가 더해져야 우리가 천국을 보장받게 된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능동순종 교리가 이단이 아니면 대체 이단이라고 할 것이 어디에 있을까요? 능동순종 교리는 단지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켰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율법지키신 공로로 우리가 천국에 간다는 것이 능동순종 교리의 핵심적인 이단성입니다. 그러나 정윤석 기자는 다음과 같이 모호하게 말함으로 진실을 왜곡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시고, 이것이 능동순종입니다. 그리고 온전하고 흠 없는 제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것을 수동순종이라고 해요. 이렇게 압축을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나누는 것을 이단이라고까지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윤석).

정윤석 기자가 잘 몰라서 이러는 것이면 지금이라도 나서지 말고 바르게 배워서 자신에게 후원금 보내는 사람들의 뜻을 배반하고 그리스도의 심장에 말뚝을 박는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정윤석 기자의 또 다른 말을 보겠습니다.

“능동순종이 이단이라는 문제 제기에 공감하는 합동측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이 합동측 총회에다가 “능동순종이 이단성이 있느냐?”라고 헌의를 했어요. 근데 이 헌의에 대해 합동 총회가 이대위가 아니라 신학부로 넘겨서 조사하도록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 소식이 <기독신문>, 합동측 기관지이요, 22년 9월 23일자 기사로 나왔습니다. 합동측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거냐 하면, 능동순종은 이단이냐? 아니냐?의 사안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이것은 신학적으로 연구하고 논의해야 할 안건으로 판단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정윤석).

정윤석의 이 말도 사실을 왜곡하는 내용입니다. 이미 합동 총회는 2회 연속 능동적 순종 교리가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습니다. 능동적 순종 교리가 성경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고 이대위가 2년 연속 총회에 보고했고, 총회는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어떤 구원론 신학이 있는데, 성경적 근거를 가지지 못한다고 이대위와 판정하고 총회에 보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총회는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한번도 아니고 두 번입니다. 그러면 그 사상은 이단사상이라는 것이 상식입니다. 현재 합동 총회에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는 이런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정윤석은 이런 사실이 전혀 없는 것처럼 말하였습니다. 마치 합동 총회는 능동적 순종에 대해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았고, 이것은 이단 문제가 아니고 정통 신학 내부의 신학 토의 주제인 것처럼 미화하였습니다.

정윤석은 아직 신학에 관한 실력이 없을뿐 아니라, 간교하고 사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생 같은 사람을 잘 이끌어 주고 싶은데, 마음이 이렇게 간교하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바른믿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