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고신 총회의 목사님들과 총대님들에게!

율법이 자기에게 복종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의인으로 만든다는 가르침을 성경에서 보셨습니까? 율법에게 죄인을 의롭게 만드는 기능이 있다는 가르침을 성경에서 보셨습니까? 성경은 율법이 사람을 의롭게 만드는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갈 3:11).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갈 3:21).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 7:19).

율법에게 사람을 의인으로 만드는 능력이 없는데, 우리는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었을까요? 성경은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생명을 우리의 죗값으로 내어놓으셨고, 자기의 의로우심에 우리를 동참시킴으로 우리가 의로워졌다고 가르칩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0).

“예수도 자기 피로서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 13:1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롬 5:9).

이와 같이 성경은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속죄 때문에 우리가 의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능동순종 신봉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만으로는 우리가 의인이 되지 못하고, 우리가 의인이 되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율법준수(능동순종)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천국에 갈 수 없는 소극적인 의를 주고, 그리스도의 율법준수가 우리에게 적극적인 의를 주어 천국에 들어가게 한다고 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라고 하는데, 저들은 십자가의 공로는 약하니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공로를 의지하고 감사하라고 합니다.

더욱 요괴한 일이 고신 총회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능동순종을 옹호하는 보고서를 작성한 고신 교수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가 혹 의인이 될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에서 나신 이유를(갈 4:5) 단지 수동적 순종을 위해서라고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만약 그 목적이 오직 율법에 대한 수동적 순종이었다면 죄인인 인간이 구속받아 의인은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아들의 명분을 얻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율법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아들의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성경적이다” (고신 교수회의 주장).

고신 교수회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신학을 고신 교수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성경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육신자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목숨을 우리의 죗값으로 드리시고, 죄용서를 이루어 내신 후 자기를 대신하는 성령을 부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가르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롬 8:15).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6).

그리스도께서 율법준수(능동순종)하셨으므로 우리에게 성령이 온 것입니까? 아닙니다. 처음부터 의로우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목숨을 우리의 죗값으로 내어놓으심으로 죄용서를 이루어 내셨습니다. 죄가 없어지면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의 장벽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을 창조하시고 그 속에 친히 거하시려는 하나님의 창조경륜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에게 성령이 오신 것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고신의 교수들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켰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합니다. 고신의 목사님들과 장로님들! 이런 기독교를 보신적 있으십니까? 저는 여지껏 이런 기독교를 본 적이 없습니다.

능동순종 교리를 신봉하는 신학자들은 성경에는 근거가 거의 없으나, 칼빈의 말들 속에서 그 근거가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문론 사실이 아닙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것들은 칼빈에 대한 심각한 왜곡일뿐입니다. 고신에서도 우병훈, 신호섭 두 교수가 능동순종 교리를 열열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칼빈의 말들을 교묘하게 왜곡하면서 능동순종 교리가 기독교 정통신학이라고 주장하는 일의 최전선에 이 두 교수가 있습니다. 

제가 저들이 주로 왜곡하여 이용해 먹는 칼빈의 말들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역시 심각한 왜곡이었고, 거의 범죄 수준이었습니다. 저들이 주로 왜곡하여 이용했던 칼빈의 말들을 소개하겠습니다.

1) 로마서 5:19절 주석

“바울은 우리가 정죄되었고 아무도 자신이 무죄하다고 주장하지 못하며, 모든 사람이 죄인이므로 정죄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 의로워졌다고 선언했으므로, 우리는 아버지께 만족을 드리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의를 제공(전가)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또한 의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였고, (처음부터) 그리스도에게 속한 고유한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칼빈, 로마서 5:19절 주석).

위 내용을 보면 칼빈이 마치 그리스도가 율법준수로 얻으신 율법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여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능동순종 옹호자들이 칼빈의 이 말을 이용해 먹으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칼빈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순종은 율법준수가 아니고 우리의 죗값을 대신 갚으라는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뜻에 대한 그리스도의 순종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성부께서 성자에게 율법준수를 통해 의인의 자격을 얻어 자기 백성들에게 전가하라는 요구가 없습니다. 성부는 성자에게 하나님의 의(거룩)를 담지하는 특별한 사람으로 성육신하여 하나님의 모든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삶을 완전하게 살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달려 그 목숨을 우리의 죗값으로 대신 바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그것에 대해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준 의는 처음부터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신 그리스도 자신의 고유한 의, 즉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의입니다. 율법준수로 얻으신 의가 아니라, 성육신하실 때부터 가지고 오신 고유하고 본질적인 그리스도의 의, 즉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거룩하심(의로우심)이 우리의 것으로 인정되게 하심으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결코 율법이 자기에게 복종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의인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2)고린도전서 1:30절 주석

“바울은 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하셨고 또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됨으로 우리가 의로워졌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곧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드려진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으로 얻는 의는 죄의 용서와 하나님에게로 받아드려짐으로 구성되는데, 우리는 이 두 가지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습니다” (칼빈, 고전 1:30절 주석).

저들은 여기의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칼빈의 말을 능동순종 교리의 근거로 주장합니다. 그러나 칼빈이 말하는 순종은 율법 조항들에 대한 순종이라기 보다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라는 아버지의 모든 뜻에 대한 순종입니다. 결코 모든 율법조항들을 지켜서 얻으신 율법의 의가 전가되는 능동순종 교리의 근거가 아닙니다.

뒷 부분을 보면, 믿음으로 얻는 의가 죄의 용서와 하나님에게로 받아드려짐, 이 두 가지로 구성된다고 칼빈은 말했습니다. 죄용서와 성령받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 곧 의를 얻는 것이라고 칼빈을 가르쳤습니다. 다음의 칼빈의 말은 율법조항들을 완전하게 실천하신 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이 율법의 의를 선사하시었고, 그것이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능동순종 교리를 완벽하게 허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 율법의 요구 곧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고 완전한 의를 이루셨다” (고전 1:30절 주석).

칼빈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신 방법을 이와 같이 더욱 더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모든 율법 조항들을 지켜서 율법의 의를 얻으신 것이 아니고, 대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율법의 요구’와 ‘하나님의 공의’에 만족을 드림으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이상으로 살펴본 것처럼, 율법이 자기에게 순종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의롭다함을 주었다는 능동순종 교리는 우리의 종교를 변개시키는 심각한 이단사상입니다. 성경에서 전혀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또한 종교개혁 완성자 칼빈에게서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저들은 칼빈의 <기독교강요>의 내용도 매우 그럴싸하게 왜곡하여 이용합니다. 지면이 길어지므로 그것까지 설명할 수 없어 아쉽습니다.

능동순종 교리는 칼빈이 죽고 그 이후 시대의 신학자들, 즉 웨신서를 작정했던 시대의 신학자들에 의해 자리잡았습니다. 칼빈의 신학과 그 이후 웨신서 작성 시대의 신학자들의 신학이 다르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머뭇거리지 말고 칼빈의 신학을 붙잡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웨신서 작성 시대의 개신교 신학자들의 목표는 종교개혁 신앙을 유럽의 교회에 정착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 신학을 대표하는 인물은 칼빈입니다. 칼빈의 종교개혁 신앙을 교회에 정착시키기 위해 웨신서와 다른 신앙고백들과 교리문답을 만들어졌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권위있는 신학은 칼빈의 신학입니다. 종교개혁 신학을 교회에 정착시키기 위해 일했던 신학자들이 칼빈의 신학과 다른 신학을 만들어 냈다면, 우리는 칼빈의 신학으로, 그리고 언제나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능동순종 신학은 성경과 칼빈에게서 찾을 수 없는 요괴한 신학입니다. 능동순종 교리는 단순히 예수님의 순종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능동순종은 예수님의 순종의 의미를 왜곡합니다. 예수님이 율법에 순종함으로 율법의 의를 얻어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이 자기에게 복중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맺는 말

능동순종 교리를 수용하면 친히 우리의 의가 되시려고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의가 사라집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무너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의 의를 주장하는 능동순종 교리는 이처럼 심각한 거짓(이단) 신학입니다.

이전에는 아무도 이것에 대해 소리쳐서 말하는 사람이 한국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이 몇 사람을 세우시어 크게 외치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수용하면, 고신 총회에서 하나님의 촛대가 떠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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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