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완전히 지켜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그것을 우리에게 전가하여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는 신앙은 마귀의 신앙입니다. 얼핏 보면, 그런 마귀의 신앙도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 3:26)는 성경의 가르침과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엄청난 사탄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하시어 의를 얻으신 후 믿는 자들에게 그것을 전가하여 의인을 만드신다는 뜻으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죄용서 받고, 하나님과 화목되는 은혜로 인해 믿는 자에게 칭의가 주어진다는 뜻으로 사도가 한 말입니다. 앞뒤 내용을 천천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 3: 25,26).

사도 바울의 신앙에 의하면, 우리가 예수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이유는 죄용서,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목 때문입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용서 받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의 장벽이 제거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성령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의 효력을 믿는 자에게 적용하시기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요 14:26), 그리스의 영으로(벧전 1:11), 예수의 영(행 16:17)으로 믿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를 적용하고, 그리스도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오시는 성령을 받음으로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우리들에게로 연합시키십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그대로 유지하시면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처음부터 거하였던 하나님의 거룩, 곧 그리스도의 본질적 의에 믿는 자가 동참되어 집니다. 여전히 사실상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의 의,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적인 의의 전가로 우리는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얻게 함으로 칭의가 일어난다고 로마서에게 확실하게 밝혀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감히 누가 모세의 율법의 의가 우리를 하나님 자녀되게 했다고 지금도 주절거리고 있습니까? 우리를 살린 의(능력)는 결코 율법의 의가 아닙니다. 죄로 영원히 죽은 우리를 살려 다시 자기 백성되게 하시려고 친히 거룩한 사람으로 오시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하나님의 의(거룩)로 우리는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이고 종교개혁의 핵심입니다.

아직까지도 자신이 배우고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를 버리지 못하는 어리석고 미련한 교수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진리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고 오히려 끝까지 진리를 속여 먹기 위해 허망한 교단 정치에 소망을 두는 교수들이 지금도 있습니까? 이 정도로 칭의에 대한 진리가 드러났음에도 계속 진리를 속이고 대적하는 죄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말 하나님께서 영원히 멸망하도록 단단한 ‘콘크리트 저주’를 보내시었기 때문일까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의를 얻는 길이라는 전제 하에 전개되는 능동순종 교리는 성경과 맞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 율법을 지키는 자에게 천국 영생을 누리에게 합당한 의(자격)를 준다는 내용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디 한 구절만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성경은 율법으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길이 처음부터 없었다고 합니다. 어떤 미련한 교수들이 끝까지 주장하는 능동순종 교리는 율법을 보내신 하나님이 기대하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그런 목적으로 보니시지 않았습니다.

다음의 율법에 대한 성경 말씀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다시 생각하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갈 3:11).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갈 3:21).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 7:19).

어떤 미련한 교수들이 능동순종 교리가 성경적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다음의 구절들이 율법으로 의를 얻을 수 있다는 성경의 증거라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 18:5).

이 내용은 가나안 땅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전 원주민들처럼 동성애, 친족성행위, 짐승과의 성행위 등의 죄악을 범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심판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일 뿐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눅 10:28).

그리스도의 이 말씀의 진정한 의도는 매우 난해하지만,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고 있다고 자기를 자랑하는 율법사가 율법도 제대로 지키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조롱하시는 내용입니다. 사람이 영생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죄용서인데, 율법을 완전하게 지킨다고 해도 아담 안에서 지은 죄는 용서되지 않습니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롬 10:5).

이 내용은 레위 18:5절의 인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결코 율법의 의로 영생의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조금 뒤를 보면 구원을 얻는 길은 오직 믿음이라고 강조합니다. 행위로 의를 얻을 수 없음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하는 내용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갈 3:12).

사도 바울의 이 내용은 매우 난해하지만, “율법으로 의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영원히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영생의 의를 얻지는 못할 것이다”라는 조롱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도의 강조는 바로 그 다음 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에 있습니다. 대신 저주 받고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죄용서 외에는 영생의 의가 없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신앙이었습니다.

사람이 영생의 의(자격)를 얻기 위해 율법을 완전하게 지켰어야 했는데, 그리 못하였으니 그리스도가 대신 철저하게 율법준수하셨고, 또한 자기를 믿는 자들을 의롭게 만드셨다는 능동순종 교리는 성경과 참 신앙을 대적하고 왜곡하는 마귀의 이단사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전혀 의도하신 적이 없는 거짓 신앙, 즉 마귀의 거짓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원리는 이러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찬송하는 백성을 가지시고자 아담을 창조하셨고, 아담에게 영생과 지고의 인격과 자기 형상과 그 외의 모든 아름다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반역하였습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반역함으로 영원히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으로 창조된 자가 영원히 죽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찬송하는 백성을 가지고자 이루신 창조가 마귀와 아담의 반역으로 영원히 훼손되는 것을 그대로 두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아담의 하나님이 되시기로 아담에게 언약하신 내용을 자기의 신실하신 인격으로 반드시 이루어 내시고자 원하셨습니다.

죄로 죽은 아담을 살려내는 길은 아담과 피조세계에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담의 죗값을 친히 지불하기 위해 하나님 자신의 거룩을 그대로 가시는 사람으로 성육신하셨습니다. 죄와 무관하고 거룩한 자가 아니면 아담의 죗값을 대신 치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의)를 그대로 가지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이 하나님께 완전한 만족을 드렸습니다.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완전하게 해소되었습니다. 아담과 우리 죄인들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으니 이미 죗값을 다 지불한 사람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습니다. 무죄한 사람으로서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거룩(의)에 믿는 자들이 동참되어 영원히 의로운 자라고 인정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얻은 칭의의 원리입니다. 칭의에 대한 모든 성경의 가르침은 오직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율법준수가 칭의의 근거(원리)이고, 그리스도가 우리 대신 철저하고 완전하게 율법준수하시어 얻의신 의의 전가로 우리가 칭의를 얻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런 주장은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를 대적하는 심각한 이단사상입니다. 구원의 원리를 대적하고 이단판정을 받지 않으면, 이미 기독교와 성경은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지금까지 제가 설명한 내용이 칭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오늘은 히브리서에 나타나는 칭의에 대한 가르침을 설명하고 마치겠습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 2:9).

창조주께서 피조물인 천사보다 못한 인간이 되신 이유를 말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으심을 당하기 위해 창조주께서 천사보다 못한 인간이 되시었다고 합니다. 능동순종파 교수들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이유가 율법준수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니 히브리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당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을 가신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는 내용입니다.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 2:10).

능동순종 교수들은 이 내용을 그리스도의 율법준수가 우리를 의롭게 만들었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이 죄인에게 요구하는 것, 즉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시는 고난으로 우리를 구원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히 2:17).

이 말씀도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목적이 대신 율법준수하려는 것이 아니고 대신 죽으심으로 죗값을 갚으심이라고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으니라” (히 5:7).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애 동안 하나님의 뜻을 성실하게 수행함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뜻, 즉 그리스도의 능동순종 교리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기신 사명, 즉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필요한 죄용서를 주시기 위한 모든 일들은 온전하게 성공적으로 감당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에 순종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고, 우리를 구원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성공적으로 감당(순종)하라는 성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결국 자신을 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에게 죄용서를 선물하라는 성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0).

히브리서의 이 구절은 우리의 칭의의 원리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의롭다하심을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거룩한 몸과 마음과 영혼과 생명을 대속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는 내용입니다. 바로 그것으로 우리에게 거룩함, 즉 의롭다하심이 주어졌다고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히 10:12)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칭의와 구원을 위해 하신 지상 사역을 ‘한 영원한 제사’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율법준수로 우리를 의롭게 만드셨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여기에 율법준수로 거론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므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게 하셨느니라” (히 10:14).

이 구절은 우리 성도들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이라고 합니다. 모든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으로 거룩해진 사람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칭의를 얻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율법준수 칭의론이 사실이면, 여기에 율법도 언급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19).

성도가 얻은 칭의가 그리스도의 율법준수에서 비롯되었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이유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율법준수 때문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죄용서 받았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앞에 당당하게 나아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도 자기 피로서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 13:12).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속죄의 피를 흘렸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율법준수가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다면, 여기에 그리스도의 율법준수가 언급되었을 것입니다.
 

맺는 말

여전히 능동순종 이단 사상을 고집하고 있는 교수들은 속히 돌이키고 회개해야 합니다. 교수라는 직업 그 자체가 무슨 대단한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진리를 거역하고 훼손하는 교수 생활은 한낱 이단 나부랭일 뿐입니다. 무엇보다 세상살이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은퇴하는 날이 그리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진리를 대적하고, 많은 영혼들과 후배 목사들을 진리로부터 이탈시킨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아무리 눈을 감고 살아도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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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바른믿음>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였고, 현재 University of Pretoria(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 「능동적 순종에 빠진 교회」가 있다.